조정래 선생 인하대 강연 ― 문학과 역사현실


 
 

  우리 소설문학의 큰 산봉우리라 할 수 있는 작가 조정래 선생이 지난 24일 인하대를 찾았다. 인하대학교 중등교육연수원에서 주관하는 1급 정교사 자격연수 교양강좌의 하나로 그를 초청했기 때문이다. 조정래 선생은 2시간여의 강연에서 자신의 문학 인생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지금까지의 삶과 문학을 총정리 했다.

  우선 선생이 문학을 하게 되기까지의 인생이야기로 시작했다. 어린 학창시절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많은 상들을 휩쓸면서 그는 문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단다. 그런데 선생이 말하길,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당시 자신이 상을 탄 글짓기 대회의 대부분의 주제는 ‘반공’이었다며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렇게 선생의 강연은 시종일관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 강연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묵직하게 자리 잡은 문학 인생의 연륜에서 나오는 커다란 선생의 가르침을 담고 있었다. 그것을 직접 현장에서 듣게 된 사실은 지금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선생이 대학시절 문학을 시작하기는 시에서부터였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먼저 시에 도전을 하고, 시가 안 되면 소설에 도전하고, 그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 비평을 한다는 문학하는 사람들이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을 폭로했다. 그러면서 선생을 초청하는데 큰 역할을 한 평론가 김명인 교수를 가리켰다. 일거에 청중들의 폭소가 터진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선생은 시를 쓰다가는 안 되어 한 등급(?) 낮은 소설을 쓰게 되었단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도 등단이 되질 않았고, 어떻게 하다 보니 학교교사를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선생 자신의 말로는 등단이 안 돼, 먼저 등단한 부인을 꿰 찼단다.

  뒤 늦게 선생이 등단을 하고 여러 편의 소설을 써 내던 어느 때에, 이제는 중견의 소설가라고 할 수 있을 때에,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지금까지 내가 쓴 소설 중에 세월이 흘러도 남을 수 있는 것은 몇 편이나 될까. 선생은 그러면서 단호히 말한다. 단 한 편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남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써야겠다고 다짐을 했단다.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되는 것은 바로 대하소설 󰡔태백산맥󰡕이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명멸했다. 그렇게 사라져간 작가들의 작품 중에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것은 얼마나 될 것인가? 작가 조정래는 그렇게 명멸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선생은 자신의 작품이 남기 위해서는 무엇을 써야하는가를 궁구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작가 조정래는 자신이 말해야 할 그 무엇으로 찾아낸 것은 바로 빨갱이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반공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남한 사회는 지극히 왜곡적으로 그들을 치장했다. 그들의 이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1990년대까지도 성행했던 반공 포스터 그리기와 글짓기다. 아이들이 그려냈던 반공포스터에서 붉게 칠해진, 때론 뿔이 달린 악마로, 불을 내뿜는 화마로 그려졌다. 글짓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반인간적 폐륜까지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것이 이 ‘빨갱이’들이었다. 작가 조정래는 이래가지고는 어떻게 통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악마와도 같은 ‘빨갱이’들과 어떻게 하나가 되고 한 민족이 되며, 삶을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겠는가? 거기에 조정래가 말해야 할 것이 분명 있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작가들의 의무와도 같은 이 말을 어떤 작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비평가들도 이러한 문제들을 암시하는데 그쳤다. 왜냐하면, 그랬다가는 바로 저 남산 밑으로 끌려가 치도곤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태백산맥󰡕으로 인해 작가 조정래는 고발을 당했다. 그것은 그가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순서였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야 무혐의 판결을 받아서, 강연을 듣고 있는 청중들은 다행이란다. 그렇지 않았으면 선생의 강연을 들으러 모인 모든 사람들이 공조자가 되지 않았겠는가.

  작가는 이 대작을 통해 “그들도 인간이다”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소설의 장면과 상황과 대화와 행동 속에 그려 담았다고 한다. 그들도 분명히 뜨거운 사랑을 하지 않았던가. 작가는 역사 현실을 말하면서도 그 안에 한갓 남녀의 정사를 비중 있게 그려 넣은 것은 그러한 의도였다. 거기에 작가는 수도 없이 가로를 치고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가?”, “이들이 어떻게 악마인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지 않은가?” 이런 말들을 가로를 치고 달아놓고 싶었단다. 하지만 그것은 비평가들의 몫이기에 참은 것이다.

  조정래 선생은 많은 문학의 정의 중에서도 문학의 역사적 시대적 반영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작가의 역할을 “후세의 선생이요, 이 시대의 산소”와 같다야 한다고 역설했다. 후세를 인도하고 가르칠 선생의 역할은 이전의 위대한 작가들이 하겠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작가는 적어도 이 시대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작가 조정래는 적어도 이 시대의 산소의 역할을 해냈다. 이 시대가 억압당하여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을 그때에 그는 그 숨 막히는 현실에 산소를 뿜어내었던 것이다.

  선생은 󰡔태백산맥󰡕 이후 오히려 더 방대한 분량의 󰡔아리랑󰡕을 펴냈다. 이 작품은 그동안 역사연구자들이 말했어야 할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아무도 그 시대를 연구하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이 나섰다. 그는 말한다. 역사가들 덕에 󰡔아리랑󰡕을 쓸 수 있었다고. 이 작품을 쓰기위해 선생은 아직 수교를 맺지 않고 있던, 당시에는 적국이라고 할 수 있었던 중국에 들어간다. 중국의 연변에 가서 다양한 취재를 하고, 생생한 증언을 듣고 와서 󰡔아리랑󰡕을 써 낸 것이다. 당시 중국에 가기는 매우 어려웠단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선생 덕에 간신히 중국을 나가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어서 펴낸 것은 󰡔한강󰡕이다. 이제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것 중에, 남은 것은 전쟁 이후였다. 전쟁 이후의 남한 사회의 모습들, 문제들을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작품들을 끊임없이 쏟아낸 그에게는 작가의 의무로써 이 사회에 무엇인가 말해져야할 말해지지 않을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한 도전해야만 했다. 그것은 때로, 아니 시종일관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던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날 수는 없었다.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선생은 최근 󰡔인간연습󰡕을 펴내며 그간의 작업들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희생자, 그는 이 연습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모색을 시도’했고, 그러면서 바로 “인간답게 살고자”했다는 것. 바로 이것이 그간의 작업들의 종착점인 것이다. 북한의 이데올로기나 남한의 이데올로기나 어디까지 인간답게 살고자 한 연습에 지나지 않았겠는가? 그것은 시대와 사회와 민족과 인간의 아픔을 나았고, 때로 기쁨도 있었고, 행복과 슬픔도 교차해야 했다. 그러나 선생은 말한다. 아직 끝이 아니라고.

  선생은 이 책이 끝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벌써 50권의 출판 계약을 맺어 놓았단다. 그것은 손자들을 보면서 느꼈다. 올바른 우리 전래동화를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남의 자신의 생의 마지막은 ‘통일문학’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대략 통일의 시기를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를 대비해 이제는 ‘통일문학’을 내놓아야하지 않겠는가! 라고 반문하며, 그는 지금부터 그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그가 통일을 보지 못하고 죽더라도 유언으로라도 남겨 통일이 되면 자신이 써놓았던 ‘통일문학’을 책으로 내어 놓겠단다. 참으로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강연 후 조정래 선생(가운데)과 왼쪽에서 두 번째 김영 교수(인하대학교 사범대학 학장 ․ 국어교육과 교수), 조정래 선생 오른쪽으로 김명인 교수(문학평론가 ․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김석회 교수(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상과 같이 조정래 선생의 인하대학교 강연을 정리했지만, 사실 뒤죽박죽이다. 실제 선생의 강연 속에 문학에 대한 선생의 성찰과 각오, 그리고 삶과 현실과 역사에 대한 인식들은 강한 전류처럼 전해졌고, 그러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선생의 입담에 시종일관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기대한다. 조정래 선생의 통일문학을 빨리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사실을 고백하면, 나는 선생의 대하소설들을 아직 제대로 읽지 못했다. 마지막에 이 사실을 고백하며 선생에 대한 죄송스러움에 감히 용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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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6-08-01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인간연습 독후감 쓰고 다른 분들 독후감 읽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멜기세덱님은 인하대 교직원이신지요? 전 뉴질랜드 사는 백수입니다. 부럽습니다. 언젠가 조선생님 강연 들을 기회 있으면 꼭 가 보고 싶었는데 님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현장의 열기를 느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대하소설 3부작 제대로 읽어 보세요. 강추입니다. 독자가 소설에서 바라는 즐거움들을 모두 만끽시켜 주는 3부작이죠.

멜기세덱 2006-08-01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직원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요. 그냥 조교로 있습니다. 조정래 선생님을 직접 뵙고 싸인까지 받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강연도 너무 감명깊었습니다. 좋은 기회였던거 같아요. 저는 책 읽는 데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이 지론인데, 대하소설, 그것도 3부작을 읽겠다는 것에는 조금 가리게 되네요. 그래도 꼭 빠지고 싶은 마음 간절히 있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뉴질랜드 사시는 백수"가 전 왜 더 부럽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