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도리에 서서
이정우 지음 / 산해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놀랍다. 그리고 대학교수직의 제의를 거절하고 제도권에서 할 수 없는 담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철학아카데미를 개원해서 그가 펼치는 활동은 우리 사회에 참된 지식이 나아가야 할 바를 시사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더불어 이미 지구는 전 세계적 자본주의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 자본주의는 이미 초기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에 대한 비판을 탄력적으로 흡수하여 더욱 공고한 체제를 바탕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물질적 성장에 대비되어 정신적이고 진정한 삶의 행복에 대한 우리들의 만족도는 형편없다. 따라서 이제 이러한 맹목적 성장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자의 물음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하고 있다.

과학에 기반하는 진리의 사회에서 철학과 사유에 기반하는 진실의 사회에로의 이행이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이라는 공간조차 자본과 기술 미디어의 3가지 세력에 의해 점령당한지 오래고 대학교수는 대학기업의 사원에 불과하다는 신랄한 비판은 단순한 독설적인 의미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기능이 변질되고 타락되어가는 것에 대해 새롭게 그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사회에서 기술과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고 인문이 차지하는 영역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과 과학이 자본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중요하게 그 의미를 점하는 부분은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이공계기피현상을 포함한 현상을 볼 때 그의 평가가 균형잡힌 것이라고 보기에 힘든 점도 없지 않다. 과학과 기술도 사회에서 나름대로의 역할과 중요성이 있으니까..하지만 인간이 길러야 할 전체를 보는 안목을 무시하고 한 부분의 전문가나 기술자만 되면 된다는 식의 교육제도와 사회구조에는 명백한 문제점이 있다.

분명 전체는 단순한 부분의 합이 아니다. 부분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데에는 네트워크가 작용한다. 인간의 유전자수가 23쌍의 염색체로 되어 있다고 해서 그 23쌍의 염색체의 기능이 밝혀진다고 해서 염색체의 비밀이 풀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상호작용의 네트워크를 가진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현실을 푸는 문제에도 이런 사실은 적용될 것이다. 한 부분 부분의 문제점이 각각의 대안을 가진다고 해서 그 대안들을 적용하여 각 부분이 풀리면 전체가 풀리는 식의 구조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전체로서 작동하며 그 연관관계의 네트워크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동서양의 오랜 고전들을 망라하여 그 지혜들이 상호작용의 과정을 통하여 융합하는 가운데 새로운 현실을 담아내는 새로운 이론과 담론, 철학의 탄생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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