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작가는 아모스 오즈 정도 알고 있다가 '뉴욕 타임즈'로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을 뿐 아니라 아모스 오즈와 얀 마텔, 조너선 샤프란 포어 등의 극찬을 받은 작가의 에세이가 있다 해서 찾아 읽어보았다. 작가 이름은 에트가르 케레트. 몰랐던 사람이다. 이런. 세상에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다... 작가 인생 처음으로 논픽션 에세이를 쓴 것인데, 그러니까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서 7년이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의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매우 독특한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일면 애잔함이, 그러니까 2차대전을 겪은 부모를 두고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스라엘에 사는 상황에 대한 애잔함이 스미는 에세이였다. 사실, 이 모든 공포스러운 상황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다보니, 글 중간 중간에서 혼자 빵빵 터지곤 했다.
그렇다. 그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기저귀를 더럽혀버린다. 그가 우주로 날아가거나 F-16 전투기를 조종하려면 아직 배울 게 몇 가지 더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48센티미터 규격의 완성된 인간이며, 그것도 그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매우 극단적으로 기묘하고 독특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남들이 존중해주기는 하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사람. 왜냐하면 복잡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키나 체중과 무관하게, 그에게는 다양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p20)
아기(이름이 레브)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하니, 뭔가 생생해지는 느낌이랄까. 이후에도 아들에 대한 얘기들은 참 다정하면서도 재미나게 그려진다. 이런 아빠에게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는다면 인생을 참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리키 선생님은 네가 초콜릿을 다 먹고 다른 애들이랑 나눠 먹지도 않는다고 하시더라." 내가 덧붙였다.
"응." 레브는 바로 그렇다고 했다. "애들은 학교에서 단 걸 먹으면 안 되니까 나눠줄 수 없어."
"그렇구나." 내가 말했다. "하지만 애들이 학교에서 단 걸 못 먹는데 왜 너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애가 아니니까." 레브가 능글맞게 웃었다. "난 고양이잖아."
"네가 뭐라고?"
"야옹." 레브는 가르릉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옹, 야옹, 야옹."
..(중략)...
하지만 레브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보니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그들은 내 아들처럼, 자기가 고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속임수를 쓰고, 남의 것을 훔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귀엽고 털이 복슬복슬하며 크림을 좋아하는 생명체인 그들은, 주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다니는 이족보행 생물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과 법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p135~136)
아직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가 싶지만 어딜 가나 그런 것 같다. 우선 가장 가까운 부모가 홀로코스트를 겪은 세대이고 전쟁을 겪은 세대이니 그 상황이 작가에게 전달되었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중동 틈바구니에서 힘들다. 주변에 내전이 일어나고 폭탄도 터지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것을 그냥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사는 모습은, 이스라엘인들이 얼마나 매순간 평안하기 힘들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부다페스트의 문학 행사가 끝나고 술집에서 만난 헝가리 남자는 자기 등에 있는 커다란 독일 독수리 문신을 보여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자기 조부가 홀로코스트 때 유대인을 삼백 명이나 죽였다고 하더니 자신도 언젠가는 비슷한 숫자를 자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느 작고 평화로운 독일 동부의 마을에서는, 두 시간 전에 무대에서 내 단편을 읽은 배우 한 사람이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는 반유대주의는 나쁜 것이지만, 역사를 통틀어 유대인들이 저지른 견딜 수 없는 행동이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어느 호텔 직원은 나와 아랍계 이스라엘인 작가 사예드 카슈아에게 자신이 규정을 정할 수만 있다면 호텔에 유대인을 받지 않을 거라고 했다. (p54~55)
제2차대전 중, 아버지와 아버지의 부모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느 폴란드 소도시의 땅속 굴에서 육백 일 가까이 숨어 지냈다. 굴이 너무 작아서 그들은 서지도 눕지도 못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인들이 그 지역을 해방시켰을 때, 그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들어서 옮겨야 했다. 모두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근육이 전부 위축되어버린 것이다. 굴에서 보낸 시간 때문에 아버지는 사생활에 민감해졌다. 형과 누나, 내가 같은 방에서 지낸다는 사실이 아버지에게는 미칠 노릇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방이 있는 곳으로 이사하고 싶었다. (p168~169)
너무나 좋은 아버지를 둔 행운을 가졌다고 말하다가 아버지가 암에 걸렸음을 얘기할 때는 내가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그것도 혀뿌리에 생겨서 여든이 넘은 나이에 항암치료 같은 것은 부담만 된다 하고 수술을 하면 혀를 잘라 말을 못하게 될 거라고 의사가 말했다 하는데,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본다 (어쩌면 자식 앞이라 노력하는 지도).
"지금 아주 이상적인 상황이란다." 아버지가 내 손을 쓰다듬으며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상황이 바닥을 칠 때 결정을 내리는 걸 좋아하지. 그런데 상황이 어찌나 암담한지 결국 이보다는 나아지는 것밖에 없겠구나. 화학요법을 받으면 곧바로 죽고, 방사선 치료를 하면 턱에 괴저가 생기고, 모두다 내가 여든셋이라 수술을 받으면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하는구나. 내가 이런 상황에서 땅을 얼마나 많이 사들였는지 너도 알지? 주인이 팔지도 않으려고 하고, 내 주머니에 동전 한 닢 없을 때 말이다."
"알아요." 내가 말했다. 정말로 알고 있다. (p168)
"널 사랑하니까." 내가 말했다. "내 아들이니까. 아버지는 항상 아들을 지켜줘야 하니까."
"그런데 왜?" 레브가 끈질기게 물었다. "왜 아버지는 아들을 지켜야 돼?"
나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있잖니." 아이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끔 아주 힘들기도 하거든. 그러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적어도 지켜줄 사람 하나는 옆에 있어야 공평하지."
"아빠는?" 레브가 물었다. "이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빠는 누가 지켜줘?" 레브 앞에서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울었다. (p208)
주말에 부모님 집에 갔다. 매주 가는데도 엄마는 내가 집에 가려고 나설 때마다 따라 나서신다. 춥다고, 힘들다고 계시라고 해도 내가 차를 몰고 나가는 뒤꽁무니에 대고 손을 흔드신다. 현관을 나서는데 아빠가 말씀하셨다. "비연이는 좋겠다. 엄마가 있어서.".. 그리고는 약간 쓸쓸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빠는 엄마가 없는데.".. 그 얘길 듣고 나오는데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참았다. 그 때만큼은 우리 아빠가 나의 아빠가 아니라 돌아가신 할머니의 아들로 보였다. 한참 전에, 정말 한참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인데. 누구나 누군가의 자식이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나를 보호해주는 아빠와 엄마가 있(었)다.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잘 모르고 살다가 문득 문득 가슴에 사무친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약해지시고 연세가 들어가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뒤돌아 나올 때마다 가슴에 먹먹함이 차오르곤 한다. 내 나이가 이렇게나 많이 먹었는데도 늘 걱정하시고 뭐든 해주려고 하시는 부모님을 쳐다보면 그렇다. 부모란 뭘까. 엄마란 뭘까. 아빠란 뭘까...
마지막 에피소드가 너무 좋은데, 여기 옮기지는 않으련다. (이 에피소드는 읽어야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작가는 이 책을 모국어(히브리어)로 쓰지 않고 영어로 썼다. 내밀한 이야기라, 그래서 '비행기나 열차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사람에게 하는 편이 더 좋은 이야기'라 그냥 모르는 사람과만 나누고 싶다 생각했단다. 작가와 함께 따라가는 7년의 여정은, 그저 재미있기만 하진 않다. 전쟁과 아이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나와 형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마음에 뭔가 차곡차곡 쌓이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책이 너무나 멋진 에세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맞았다. 좋은 에세이다.
작가를 알게 된 김에 그의 책들이 있나 찾아봤더니 번역된 게 몇 권 있었다. 심지어 이 작가가 2013년인가 우리나라에 오기까지 했더라는. 아, 이렇게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많다. 이 에세이는 원서로 읽어볼까 라는 생각도 있다. 흠. 아니다. 쌓인 원서들. 지우자 지우자 생각을 ㅜ 나도 나중에 에세이를 쓴다면 이 작가처럼 쓰고 싶다. 이렇게까지 위트있으면서도 다정하게, 마음의 스산함까지 담아내는 글을 쓰진 못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