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주가 어떻게 지나갔나 모르겠다. 졸리는 눈을 손가락 두 개로 벌려가면서 자기 전에 책 한줄은 읽고 자려고 노력했던 한 주였다. 그래서 다른 때 같으면 하룻밤새에 다 읽었을 이 소설을 며칠이나 걸려 다 읽었고.


아사다 지로의 소설은 늘 비슷한 분위기다. 나른하고 환상적이나 그 이면에 깊은 상처가 있고 그리고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이 있다. 이 책 <겨울이 지나간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있을 법하지 않은 상상 혹은 환각 혹은 체험??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주인공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몸은 매여 있으나 정신과 마음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만나게 된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을 용서하고 지켜야 할 사람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누구나 다 그렇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일생을 관통하며 지니는 상처가 있다. 어릴 때 겪은 일들일 경우가 많지만 어쩌면 살아오면서 어떤 이벤트가 나머지 인생에 내내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누구에게 딱 뭐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내게는 정말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영향을 주며, 어쩌면 매일 매순간 그 영향을 받기도 한다.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받아 시설에서 자란 아픔이 있는 주인공 다케와키씨. 일생을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어느 정도 성공이란 걸 하고 난 후 정년퇴직을 하게 된 날, 지하철에서 쓰러져 사경을 헤매게 된다. 65세. 요즘 같은 때 이제 드디어 제 2의 인생을 살아갈 시기이건만,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누구에게도, 심지어 아내에게도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던 다케와키씨. 어쩌면 말하고 나면 너무 간단해지고 말 안하고 있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과거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소원은 단 하나. '평범한 사람'이 되는 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간 뒤, 결혼을 해서 집을 짓고 아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한 번도 입에 담은 적이 없는 꿈을, 염불이나 신문 기사의 제목이라도 읊조리듯 단숨에 말했다. 평범한 사람은 다들 비웃겠지만 내게 그 꿈은 그들이 가진 그 어떤 장대한 꿈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p 354)


코로나 시국이 되고 보니,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게 깨지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간단한지를 마음깊이 느끼고 있는 시기라서 그런 걸까. 다케와키씨의 이 말이 정말 마음에 콱 박혀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남들은 아무 생각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이루는 일들이 내게는 버겁고 힘든 일이 되는 것. 딱히 분노나 좌절을 마음에 품고 살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마음 속에 계속 켜켜이 쌓여온 불안감과 불행감이 문득문득 엄습하는 인생. 


그래서 다케와키씨의 일생을 찬찬히 더듬어 가는 이 책의 내용 속에서 나마저도 괜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헛되지 않았다고. 어려웠고 힘들었고 그래서 돌이켜 생각하기도 싫은 나날들이 있었지만, 이제 와 보니 잘 살아내었다고. 이 시대 많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일 수 있겠다 싶었다. 결말이 또렷하게 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다케와키씨가 돌아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들을 좀더 편한 마음으로 보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원하며 책을 덮었더랬다. 


아사다 지로의 책은, 늘 위안이다.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이 척박했음에도 항상 따뜻함과 희망을 남기는 글을 쓴다. <겨울이 지나간 세계>. 누구에게나 있는 겨울, 지금이라면 코로나의 겨울... 지나고 나면 또 좋은 세상이 올거라는 믿음이 마음에 아릿하게 남겨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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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3-07 18: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읽어야겠어요. 아사다 지로 ^^
남편이 오래전에 아사다 지로 읽고 좋다고 권했는데 그때는 마음이 동하지가 않더니...
여기서 북플님들이 읽고 후기 남기시는것 보고 남편이 모아놓은 책들에 관심을 보이자...보인 반응... 아시겠죠?^^
그런데 언제 다 읽죠? ㅎㅎ
뭐부터 읽을까요? 칼의노래? 철도원? 지하철? 장미도둑? .....?

비연 2021-03-07 20:19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님~ 한번 읽어보시길. 저라면 <철도원>과 <칼의노래>를 먼저 읽어보시라 권할 거 같네요 ^^

그레이스 2021-03-07 20:20   좋아요 1 | URL
예 도전!

파이버 2021-03-07 1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집을 짓고 아이를 기르는 것...
이 시대의 젊은이?로서 정말 평범을 이루는 것도 어렵다는 거에 공감해요...

비연 2021-03-07 20:19   좋아요 2 | URL
정말 평범하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요...

새파랑 2021-03-07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이 지나갔으니 봄이겠죠? ㅎㅎ 비연님의 리뷰 보니 정말 기대가 됩니다~

비연 2021-03-07 20:20   좋아요 1 | URL
겨울이 지나 봄이 오니 그래도 살만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 책, 권해드립니다^^

공쟝쟝 2021-03-25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ㅠㅠ 마지막 페이퍼라니 비연님 보고 싶다 ㅠㅠ

비연 2021-04-08 22:13   좋아요 1 | URL
ㅠㅠㅠ
 
















내가 이 책을 새삼 꺼내들게 되었던 것은 여성주의 책 함께 읽기 1월 책이었던 <육식의 성정치>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프랑켄슈타인'은 채식주의와 관련이 없었던 것 같은데, <육식의 성정치>에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그 책에 할애하고 있다.




퍼시 셸리는 이 신화에 관해 낭만주의적 채식주의식 해석을 내린다. "(인류를 대표하는) 프로메테우스는 자기의 천성을 크게 바꿨고, 불을 조리에 사용했다. 다시 말해 도살장에서 인간이 느끼는 혐오스런 공포감을 숨길 수 있는 방편을 개발했다. 이 순간부터 질병이라는 독수리가 프로메테우스의 장기들을 쪼아 먹었다.

'근데적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괴물 이야기에서, 피조물이 불과 고기를 다루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떠돌이 거지들이 남겨놓은 불씨를 찾아낸 피조물은 말한다. "방랑객들이 남겨놓고 간 고기 부스러기를 불에 구웠더니, 나무에서 딴 열매보다 숼씬 더 맛있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이런 발견을 육식이 아니라 채소나 과일을 조리하는 데 이용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같은 방식으로 내가 먹는 음식을 불 위에 올려놓았죠. 열매는 이렇게 하면 그냥 먹을 때보다 맛이 없지만, 견과류와 나무뿌리를 더 맛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고기 부스러기는 육식을 형상화한다. 그러나 피조물은 이런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을 거부한다. (p 226~227)




사람의 선입견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프랑켄슈타인 하면 그 책을 제대로 읽어본 기억도 없으면서, 만화에 등장하는, 그 괴물을 상상하게 되고, 그 괴물은 절대 채식같은 건 하지 않게 생겨서 고기를 뜯어먹는 모습을 바로 연상하게 된다.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있는지 정말이지 그 이미지를 없애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자꾸 생각난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는 이런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르게 여러가지 측면에서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메리 셸리라는 작가의 상상력과 존재론적 가치부여에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읽었다. 생각해보니 이 책을 읽기 전엔 그저 어떤 (미치광이) 박사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내어서 그 괴물이 으악.. 하며 달려드는 그런 내용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참으로... 무지했다.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샤실은 괴물에겐 이름이 없다. 그 괴물을 '창조'한 이가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었다. 인간이 과학에 몰두하여 끝도 없는 오만의 열정에 불타오르게 되면서 이것이 선인지 악인지 분간도 못하는 지경에서 무책임하게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고는 자기가 만든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버려버리는 과정은... 현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학과 문명이라는 그 열기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망쳐버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걸 야기한 존재(인간이겠지)가 그것을 얼마나 나몰라 방관하면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명깊었던 부분은 그 '괴물'이 자신의 목소리롤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난데없이 그냥 그 모습으로 만들어져서 만든 사람에게서 버림받고 흉측한 몰골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처음 내가 태어났던 때를 기억하는 건 아주 힘들다. 당시의 사건들은 모두 혼란스럽고 불분명한 느낌이다. 이상한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동시에 보고 느끼고 듣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여러 다양한 감각의 작용을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p 136)



그 '존재'는 쫓기듯 어느 축사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는데 그 근처 오두막에 사는 프랑스인 가족에게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온화하고 아름다운 그들을 보며 말을 익히고 글을 익히고 스스로를 가꾸어나가는 모습이 애절할 정도다. 언젠간 나의 진심을 알아주겠지. 내가 아무리 모습이 흉해도 저들은 이해할 거야.. 그러면서 내심 그들을 친구로 삼게 된다. 


... 이런 그들을 보고 있을수록 보호와 친절을 갈구하는 내 욕망은 커져만 갔다. 내 심장은 사랑스러운 이들에게 존재를 알리고 사랑받고 싶어 애가 달았다. 그 다정한 표정들이 나를 애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내 궁극적 야망이 되었다. 그들이 경멸과 공포로 내게 등을 돌릴 거라는 생각은 감히 떠올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이 그 집 문간을 찾아왔다가 쫓겨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내가 바라는 건 약간의 양식이나 휴식보다 훨씬 소중한 보물이었다. 내가 요구하는 것은 친절과 연민이니까. 그러나 나 자신에게 전혀 자격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p 176) 



그러나 외면당했고 버림받았다. 그리고 자신을 창조한 사람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커졌다. 프랑켄슈타인 근처로 와서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프랑켄슈타인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의 요구사항은 하나였다.



... 나는 외롭고 불행하다. 사람들은 나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기형이고 추악한 존재라면 날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내 반려자는 나와 똑같은 종족이고 같은 결함을 가져야만 한다. 당신은 바로 이런 존재를 창조해내야 한다. (p 192)



이런 존재론적 비극이라니. 외로움에, 고독에 스스로가 내몰리는 것을 괴로와하면서 자신을 환대할 단 하나의 다른 존재를 기대하는 그 '존재'의 바램이 마음에 와닿을 수 밖에 없었다... 꼭 그 '존재'가 아니라도 이 세상에는 어떤 이유로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주 사소하게는 (너무나 주관적인 판단임에도) 못생겨서, 뚱뚱해서, 가난해서, 더 나아가서는 몸이 불편해서, 나이들어서, 성적 취향이 달라서.. 다수는 그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치부하거나 어쩌면 너무나도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해서 아픔을 준다. 내가 왜 세상에 나서 이런 고초를 당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입장이 된다면. 


이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도 안 들어줄 수도 없어 방황하던 프랑켄슈타인은 결국 시도는 하지만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나가던 것을 없애 버린다. 그리고 나서 프랑켄슈타인이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게 되고... 결국 프랑켄슈타인과 그 '존재'간의 일대일 겨루기가 되어 쫓고 쫓기는 긴 시간이 이어진다. 그리고..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 그러나 내 존재와 그에 수반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초래한 장본인이 감히 행복을 꿈꾸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게는 비참과 절망을 쌓고 또 쌓아 안겨준 주제에 영영 금지된 감정과 열정을 누리려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무력한 질투와 쓰디쓴 분노가 나를 끔찍하게 허기진 복수심으로 가득 채우고 말았다. (p 298~299)


복수가 즐겁기만 한 것이더냐. 프랑켄슈타인의 고통만 고통인 줄 아느냐. 그런 일을 저지른 나에겐 더 컸을 수 있는 고통이 수반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지내게 해놓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려 바둥거리는 프랑켄슈타인의 모습을 보며 어쩔 수 없는 복수심을 불태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내 분노가, 내 복수심이 흘러넘치는 것을 자제하지 않았다.. 라며 울부짖는 그 '존재'의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울리는 것 같다. 


19세기에 지어진 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흡인력 있고 놀랍고 상상력이 만발한 책이었다.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물론 프랑켄슈타인과 그 '존재'의 불행에 마음은 아파왔지만) 다음 내용이 궁금해 잠을 못 자는 며칠이 이어졌더랬다. 좋은 책이 주는 지극한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껴볼 수 있었던 2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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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2-28 14: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폭풍의 언덕>혹시 안읽으셨음 추천드려요♡ 뭔가 옷깃을 잡혀 끌려가듯 주인공의 감정에 빨려들어가는 기분이 이 소설과 유사해서 좋았어요😆

비연 2021-02-28 16:08   좋아요 2 | URL
미미님. <폭풍의 언덕> 제가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에요^^ 정말 격정적이면서 흡인력이 큰 소설. 미미님이 말씀하시니.. 다시 한번 읽어볼까 싶네요.

scott 2021-03-05 15: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의 프랑켄슈타인 이달의 당선작을 선물로 줌 ㅋㅋ
추카~*추카~*
오늘 태어난 개굴군 🐸 놓고 가여

비연 2021-03-06 21:09   좋아요 1 | URL
아 이제 봤네요~ scott님, 감사요^^ 개굴군도 감사 ㅎㅎ
 
















버터링을 먹고 있다. 네 줄이 든 큰 통을 구매했는데 벌써 마지막 줄이다. 그래도 오늘은 그냥 먹으련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함께. 이 책을 다 읽은 기념으로. 잊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읽으면서 '넛지'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놀라움. 익숙한데 익숙하지 않음. '넛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도 내가 성별이 여자라서 좀더 체화된 느낌을 가졌다는 것 정도. 주변 언니, 후배에게 추천을 했다. 이거 넘 좋은 책이다. 꼭 읽어야 한다. 대부분 대답이 그랬다. "나오자마자 읽었지.." 내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뿌듯했다. 그리고 더 열심히 읽었다. 


보통, 책을 읽으면 감명깊게 읽은 단락을 옮겨와서 그 때 그 때 감상을 적곤 하는데, 이 책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냥 몽땅 읽어야 한다. 뭐 하나 빼서 이게 좋아요, 하려면 책 한 권을 다 옮겨담아야 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굳이 (섭섭하니) 한 단락 정도 남길까 하면 다음을 남기고 싶다. 14장의 말. 



셰릴 린드버그가 <린 인>에서 밝힌, 적대적 근무 환경을 헤쳐나가는 법은 이 악물고 밀고 나가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해결책의 일부이긴 하다. 나도 여성 정치인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여자로서 어느 정도의 협박과 욕설을 듣는데, 이 의견이 많은 공감을 얻지는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본인이 모진 풍파를 견딜 수 있다고 해서 그냥 견디기만 한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위협은 공포에서 비롯되는데 사실 그 공포는 젠더 데이터 공백에 의해 생긴 것이다. 남자의 목소리와 남자의 얼굴로 가득한 문화 속에서 자란 어떤 남자들은 그들이 당연히 남자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권력이나 공간을 여자들이 빼앗아 갈까 봐 두려워한다. 그 공포는 우리가 문화적 젠더 데이터 공백을 메워서 남자아이들이 더 이상 공공 영역을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지 않게 될 때까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 세대의 여자들이 다음 세대의 여자들을 위해 견뎌야 할 시련이다. (p 345)



결국 이게 결론이랄까. 메세지랄까. 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혼자 버틴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면 나서야 한다.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 이런 일이 줄어든다. 그리고 그 용기는 남자아이들이 커서 디폴트로 자기만의 세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동의한다. 


사람들은(어쩌면 여자도 포함해서) 나서서 얘기하면 싫어한다. 그냥 가만히 너만 참으면 되는데. 언젠가는 해결될거야. 남자가 원수냐. 너무 그렇게 적대적으로 행동하지 말아라. 들어줄게 말해봐. 그러면서 좀더 나서서 얘기하는 여자들에겐 (책에서도 나왔지만) '쌍년'이라고 욕한다. 제대로 된 말을 하는 여자들을 미워한다. 그 기저에 깔린 심리들을, 어느 철학책 못지 않게, 근거를 또박또박 들어가며 정말 다방면에서 증거를 모아 제시하고 있는 책이 이 책이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읽지 않았다면 읽기를 강추한다. 좋은 책을 발견한 기쁨에 오늘따라 버터링이 더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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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1-02-21 19: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미 읽었던 책이지만 비연님 글 때문에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어요ㅎㅎㅎㅎ 나서서 이야기하는 행동을 정말 미워하는 것 공감 이백 배ㅜㅜ…

비연 2021-02-21 19:26   좋아요 5 | URL
파이버님. 이미 읽으셨군요! 역시~ 저도 좀더 시간 지나서 다시 읽고 싶어요. 그 사례들이 다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정독해야 할 듯. 나서서 이야기하면 참 욕을 많이 먹어서, 사실 움츠려들기 쉬운데... 이 책을 읽고나니 그래도 해야하는 거구나 란 생각이 들었어요. ‘견뎌야 할 시련‘이라는 말에.

청아 2021-02-21 19: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은 모두 한 번씩 꼭 읽어봤음 좋겠고 남자들도 읽어본다면 심각성을 알거라고 생각해요!🤔

비연 2021-02-21 22:09   좋아요 2 | URL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scott 2021-02-22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구매하면 버터링도 굿즈로 줬으면 ㅋㅋㅋ
장바구니 탈탈 털고 비연님 서재방에 들렸다가
이렇게 한권 주섬~@주섬~@

비연 2021-02-22 11:06   좋아요 1 | URL
오 좋은 생각! 버터링 굿즈! ㅋㅋㅋ

라로 2021-02-22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버터링 좋아했는데, 늙었나봐요...이젠 안 땡겨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 대신 영양갱. ^^;;

비연 2021-02-22 19:36   좋아요 0 | URL
앗 라로님. 저도 영양갱 좋아해요! 가끔 사먹는데 달달이로 ㅋ

감은빛 2021-02-25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과 부제만 봐도 꼭 읽어야 할 책이 맞네요. 저도 읽어야겠어요. 다 읽고 딸들에게도 얘기해줘야겠어요.

비연 2021-02-25 21:15   좋아요 0 | URL
완전 추천입니다!
 
















이 책 5장을 읽으면서, 아 이 책을 포기해야 하나, 적잖이 망설였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번역이.. 번역 핑계를 대고 싶다 ㅜ 


월린의 주장처럼 시민사회의 정치적 본성을 '흐려놓기'보다는 오히려 로크는 그것에게 그리고 오로지 그것에게만 '시민' 또는 '정치적' 사회라고 불릴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새로운 요소'에 대한 전적으로 명시적이었다. (p 164) 


.... 세 번쯤 읽었는데 도저히 뭔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skip. 이런 문구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서... 꾸욱 참고 다 읽기까지 고통스러운 시간이 흘렀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구나 하면서 지나다보니 5장이 끝났고(수없이 헤드뱅잉하며 졸았더랬지..) 6장에 이르러서야 왜 5장에서 그런 말들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것 때문이었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이분법은 거의 두 세기에 걸친 여성주의적 글쓰기와 정치투쟁에서 중심적이다...(중략)...여성주의와 자유주의의 관계는 극도로 가까우면서도 극도로 복잡하다. 두 교설 모두 사회적 삶의 일반 이론으로서 개인주의의 출현에 뿌리를 둔다. 자유주의도 여성주의도 전통사회의 귀속적, 위계적 유대로부터 해방된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서의 개인이라고 하는 어떤 개념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p 189)


여성주의는 흔히 자유주의 혁명 내지는 부르주아 혁명의 완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즉 자유주의적 원리들과 권리들을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확장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평등한 권리들에 대한 요구는 언제나 여성주의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자유주의를 보편화하려는 시도는 흔히 인식되는 것보다 더 광범위한 결과들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국에는 불가피하게 자유주의 그 자체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여성주의는 급진적 함의를 갖는다. 특히 자유주의 이론과 실천에 근본적인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분리와 대립에 도전한다는 점에 그렇다. (p 190)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나누고자 한 자유주의는 가부장적인 특성을 가지게 되는데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무시하고 지나가려 하지만, 여성주의자들은 이 부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그러니까 '자유주의 이론이 갖는 표면적인 개인주의와 평등주의가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의 가부장적 현실과 여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지배를 흐려놓는다는 것(p 193)' 이다. 



여성주의자들이 제기하는 질문은, 탈정치화된 공적 영역을 사적인 삶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의 가부장적 성격이 왜 이토록 쉽게 '잊히는가' 하는 것이다. 왜 두 세계의 분리가 시민사회 내부에 위치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공적 삶은 암묵적으로 남자들의 영역으로서 개념화되는 것인가? (p 198)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나누고자 하는 시도보다는 사적인 영역은 여성에게 공적인 영역은 남성에게 허용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아니 문제가 있다는 것. 이 얘길 하려고 5장에서 자유주의와 사적/공적 영역의 함의에 대해 그 알 수 없는 말들을 얘기했던 것이로구나. 이해는 합니다만, 덕분에 내 머릿속도 책 제목처럼 무질서해지고 있는 게 문제다. 일단, 이제 200페이지까지 읽었나이다... 앞으로도 146페이지 남았구요. 


이건 약간 빗나간 얘기이긴 한데... 요즘 넷플릭스로 <퀸스 갬빗(The Queen's Gambit)>이란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말이다. 이 제목이 체스의 오프닝 중 하나를 말하는 거라고 하는데 (체스를 모르는 비연ㅜ) 어쩄든 천재소녀의 체스를 통한 인생 분투기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중간 정도까지 봤는데 좀 음울한 느낌이긴 하지만 꽤나 재밌다. 체스를 몰라도 재밌다. 체스를 알면 더 재밌지 않을까 해서 체스를 배워볼까 잠시 생각해봤다. (아서라, 비연...;;;) 







아뭏든, 엘리자베스 허먼이라는 아이가 엄마를 잃고 고아원에 들어오면서부터 얘기는 시작된다. 우연히 거기 일하는 샤이벌 아저씨에게서 체스를 배우게 되는데,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데다가 승부욕이 대단해서 금방 천재 소리를 듣게 된다. 샤이벌 아저씨가 소개한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의 제안으로 고등학교 체스 동아리와 겨루는 장면부터가 압권이다. 말하자면 이 시대가 1960년대. 여자는 시집가서 결혼해서 애 풍풍 낳고 살면 최고라고 생각하던 시대에서 여자인 엘리자베스 허먼이 그 동아리 남자애 12명을 한꺼번에 상대하여 다 이겨내는 장면은, 우와, 라는 생각과 함께 뭔가 벽 하나를 훌쩍 넘은 기분이 들게 한다.


이후에도 계속된다. 베스는 체스를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체스로 세상과 겨루고 싶어하지만 주위에서는 그 아이가 '여자'라는 것에만 집중한다. 처음 공식 경기에 나갔을 때 여자아이가 할 게 아니라는 듯한 모두의 표정은 가관이었고 그 와중에도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실력 하나만으로 한명 한명 이겨내는 베스의 모습은, 체스만큼이나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이를 지탱해주는 건 입양된 가정의 양엄마. 사랑을 퍼붓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베스가 길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잘 지켜봐주고 있다. 


여성이, 여성으로서 자립하기에 얼마나 험악한 시대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어서, 그리고 무표정한 베스의 그 담담함이 맘에 들어서 아주 재미나게 보고 있다. <여자들의 무질서>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그 드라마가 자꾸 내 머리에 떠올랐다.. 자유주의라든가 사적 영역 공적 영역 어려운 개념을 쓰지 않더라도 여자들이 알 수 있는 그 공기의 맛이 있다. 씁쓸한 맛. 남자와 경쟁하게 될 때 쟤 뭥미? 하는 듯한 느낌. 자라면서 한번도 그런 대접을 받은 적이 없고, 집에서도 남녀 차별을 전혀 안 겪으며 컸다 해도 사회에 나가면 바로 받게 되는 '그' 시선과 '그' 느낌이다. 말하자면 남자들이 자신들을 default화해서 정해놓은 (공적) 영역 내에 들어가려 하면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거나 무시하며 시작하는 그것. 지금 읽고 있는 <보이지 않는 여자들>에서도 아주 호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가, 쓰는 스타일 정말 맘에 든다. 아주 거침이 없다. 매우 점잖은 단어들을 늘어놓고 있지만 내용은 신랄하다. 욕하지 않아도 욕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1972년 저서에 이렇게 적었다. "기본적인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말하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전통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이것이 전통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백인이라는 점과 남자라는 점은 말해지지 않는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기 떄문이다. 백인이라는 점과 남자라는 점은 내포되어 있다.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는다. 그것이 디폴트이기 때문이다. (p 49)


남성이 보편이라는 추정은 젠더 데이터 공백의 직접적인 결과다. 백인이라는 점과 남자라는 점을 말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다른 정체성이 아예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 보편은 젠더 데이터 공백의 원인이기도 하다. 여자들이 보이지 않고 기억되지 않기 때문에, 남성 데이터가 우리 지식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남성이 보편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이 소수자의 위치로 끌어내려진다. 특수한 정체성, 주관적 관점의 취급을 받게 된다. 이러한 설계를 통해 여자들은 문화에서, 역사에서, 데이터에서 잊어도 되는 존재, 무시해도 되는 존재, 없어도 되는 존재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여자는 투명 인간이 된다. (p 50)



보편은 남성이요, 특수는 여성이라는 생각. 그래서 일반적인 것은 대부분 남성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고 여성을 거기에 넣으려면 뭔가 특수한 상황이나 정체성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 이제 저자는 '젠더 데이터 공백'이라는 이름으로 각 분야에서 사라진 여자들을 살펴볼 생각인 것 같다. 기대 만빵이고... '젠더 데이터 공백' 이라는 단어도 너무 맘에 든다. 


<여자들의 무질서>는... 번역도 그렇고 사실 내용도 어렵다. 하지만 어쨌거나 끊임없이 머리를 자극하는 바람에 그 수많은 드라마 중에서도 <퀸스 갬빗>을 찾아 보게 하고, <보이지 않는 여자들>을 읽으며 그 연관성을 실감하게 한다. 이런 책이 좋은 책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그래서 무질서해진 머릿속을 억지로라도 잡아끌고 끝까지 읽어나가야 한다, 싶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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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2-17 17: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많이 읽으셨네요, 비연님. 저는 통 진도가 안나가서 미치겠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두 번 읽고 세 번 읽어야 하는 문장들이 많고 그렇게 여러번 읽는다고 머릿속에 훅 들어오는 것도 아니에요. 미치겠어요 ㅠㅠ 포기할까, 던지고싶다, 저도 생각하지만, 제가... 푸코도 읽은 사람입니다... 스스로에게 푸코도 읽었다 푸코도 읽었다 하면서 억지로 읽고있어요. 이제 막 100쪽을 넘기기 시작했어요. 어휴.. 비연님, 우리 화이팅!!

비연 2021-02-17 17:51   좋아요 1 | URL
겨우... 읽고 있지만 끝은 꼭 보기로. 홧팅!

다락방 2021-02-17 18:52   좋아요 1 | URL
비연님, 저 4장 읽는 중인데 4장 너무 재미있어요!!

비연 2021-02-17 19:16   좋아요 1 | URL
그쵸그쵸.. 동의 부분. 거기 좋슴다~

청아 2021-02-17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놀라운 내용인데~번역자한테 항의하고싶어요~ 공과 사 이분법과 동의문제, 정치적 대리문제가 제일 소득이었고 쇼킹했어요.쿠X에 체스 다양하게 파는데 해리포터 모형 굉장히 이쁘답니다^^ (갖고 싶지만 저도 체스를ㅠ)<퀸즈 갬빗>득템ㅋ~♡

비연 2021-02-17 17:52   좋아요 1 | URL
저도 다른 데선 잘 안 나오는 개념과 사상 설명이라 얻는 건 있으나... 고통은 고통. <퀸스 갬빗> 강추요!

얄라알라 2021-02-17 1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과 비연님 두 분 다 번역 말씀을 하시니, 궁금해서라도 원서를 찾아보고 싶어지네요. 쉽게 넘어가지 않는 번역문에도 이렇게 기록으로 공유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비연 2021-02-17 17:53   좋아요 1 | URL
아아. 전 원서는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있나이다. 고통은 여기까지만. 번역자들이 이상하다기보단 어째 전공이 아니라 그런 느낌이랄까...흑.

난티나무 2021-02-17 1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164페이지 저 문장 저도 올리고 싶었어요! 도대체 무슨 문장이 이래!!! 버럭!!!!!
저도 6장의 첫문장을 들쳐보고 5장을 꾹 참고 읽고(?) 있습니다. 웃음만 나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글고 보이지 않는 여자들 정녕 사야 한단 말입니까...

비연 2021-02-17 17:54   좋아요 1 | URL
난티나무니이이임! 저랑 같은 느낌이셨다니, 느무 반가와요~ 와락. 6장은 좀 나으니 힘!

청아 2021-02-17 17:56   좋아요 0 | URL
난티나무님 <보이지 않는 여자들> 쉽고 재밌음요!

비연 2021-02-17 19:17   좋아요 1 | URL
<보이지 않는 여자들> 매우 재미나다는 것에 두손두발 들어 찬성!!!

라로 2021-02-18 0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퀸즈 갬빗을 지금 보시는 군요!! 저는 작년에 봤는데 넘 좋았어요!! 저도 체스 다시 배워 볼까?가 아니라 다시 빼고 배워볼까? 하다가 아서라 라로씨 했다는요. 😂😂😂😂 우리 가만보면 좀 비슷한 면이 있어요. 거의 뭐든지 다 하고 싶어하는 것. 그래도 비연님이 저보다 낫습니다. 얼른 아서라~~하시잖아요. 저는 일단 지르고 나중에 감당 못하는~~!!😅😅

비연 2021-02-18 07:16   좋아요 1 | URL
ㅋㅋㅋ 라로님. 정말 체스 배울 방법을 찾아보기까지 했다는. 겨우 아서라.. 했어요. 휴우... 전 라로님이 확 감행하고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좋아요~ 저야말로 맨날 감당 못해 허덕허덕. 그나저나 <퀸스 갬빗> 넘 재밌어요! 아껴가며 보고 있답니다 ㅎㅎ
 
















내 지식이 별로 없어서인지, 번역이 미흡해서인지, 아뭏든 이 책은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다. 뭔 말인지 모르고 읽는 경우도 허다하다. 서론에서 보았던 그 중요한 주제의식들에는 경의를 표하는데 그 이후엔 정말 가시밭길이다. 정치학이나 사회계약론이나 등에 대한 내 지식의 얕음이 전적인 이유라고 하기에는, 글이 매끄럽지가 않다. 어쨌든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으나 하루에 한 장 읽으면 꽥.. 이다. 어느새 눈이 무거워지고 속에서 다른 걸 읽어야겠다는 열망이 생긴다. 이 중에 4장 여자와 동의 부분은 그래도 번역도 괜찮은 편이고 내가 이해(?)가는 부분도 많았다. '동의'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부분. 이 장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이런 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은 기분. 



여자가 남자와 맺는 가장 내밀한 관계들은 동의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자들은 결혼에 동의하며, 여자의 동의 없는 성교는 강간이라는 형사 범죄를 구성한다. 여자와 동의의 쓰이지 않은 역사를 검토하기 시작하면 동의 이론의 억제된 문제들이 표면으로 드러나게 된다. 여자들은 동의 이론가들이 동의 능력이 없다고 공언했던 개인들을 예시한다. 하지만 동시에 여자들은 언제나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제시되었으며, 여자들의 비동의는 무관한 것으로 취급되거나 '동의'로 재해석되었다. (p 121)


여자들의 영향은, 심지어 좋은 여자라도, 언제나 남자들을 타락시킨다. 왜냐하면 '자연적으로' 여자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지위 혹은 시민의 지위에 도달할 수 없으며, 동의를 제공하는 데 요구되는 능력을 개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성관계에서 여자들의 '동의'는 막중하다. 더구나 여자들의 동의는 언제나 주어진 것으로 가정될 수 있다 - 겉보기에 분명 동의를 거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소에 따르면, 남자들은 '자연적인' 성적 공격자들'이다. 여자들은 '저항하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다. 루소는 '공격과 방어의 질서가 변한다면 인류는 어떻게 되겠는가' 리고 묻는다. 정숙과 순결은 탁월한 여성적 덕목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또한 열정의 피조물이기에, 정숙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중성과 위장이라는 그들의 자연적 기술을 이용해야만 한다. 특히 여자들은 '응'이라고 말하기를 욕망할 때조차도 언제나 '아니'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루소는 여자와 동의의 문제의 심장부를 드러낸다. 동의에 대한 겉보기의 거부는 여자의 경우 액면가로 취해질 수가 결코 없다. (p 128)



그러니까 이런 거다. 여자의 동의란, 동의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존재라서 할 수 없는 것인데, 남자들이 '자연스럽게' 성적으로 공격을 하면 '저항은 해야 한다'는 것이고, 심지어 열정 그자체인 여자들은 동의를 겉으로는 아니라고 표시함으로써 위장을 한다고 '생각한다' 라고 본다는 거다. 참 놀랍다. 따라서 여자는 늘 '동의'가 default인 거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싫다고 안 했잖아, 싫으면 반항을 했어야지, 따라왔으니 동의한 거 아니야, 결혼했는데 성관계에 동의가 무슨 필요가 있어, 네가 동의 안 했으면 나도 안 했을 거야... 아하. 그 근간의 생각이 이런 것이로구나. 



강간법은 최근에 '정의의 패러디'라고 묘사되었다. 이에 대한 많은 이유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피해자의 '동의'가 해석되는-또는 무시되는-방식이다. 이 문제에서 여론과 법원은 홉스적이다. 그들은 강요된 복종을 포함해서 복종을 동의와 동일시한다. 기소된 강간범들은 거의 언제나 여자가 실제로 동의했다는, 혹은 자신들의 여자가 동의한다고 믿었다는 변론을 제시한다.. (중략) ... 동의하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단순한 삽입 증거를 넘어서 신체적 상해를 보여주는 것이 거의 법적 기준의 지위를 갖는다.' (p 133)


정의의 패러디라는 말의 각주에는 이런 말이 있다. '강간은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히는 범죄다. 강간 피해자는 빈번히 '그것을 자초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심리학자들은 실제로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믿음을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 정확한 지적이다. 



대중만이 아니라 탁월한 법률가들조차도 '자연적으로' 성적으로 공격적인 남성은 여자의 거절을 진짜 욕망을 숨기는 대수롭지 않은 제스처로서 무시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강간 피해자들은 '좋은' 여자와 '나쁜' 여자로 나뉜다. 명백히 폭력이 사용된 곳에서조차도 피해자가 '의심스러운 평판'을 가졌다거나 '형편없는' 성도덕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에는 '동의'가 제공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p 135) 


이전에 읽은 <페이드 포>가 생각났다. 말하자면 성매매 여성들은 위의 기준으로 볼 때 '나쁜' 여자일 것이고 따라서 이 사람들은 '더' 막 대하고 폭력을 행사해도 되고 심지어 돈을 주었으니 '당연히' 성적인 모든 행동이 용납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위의 기준으로 볼 때 말이다. 



1994년 여름 리머릭에서의 그날, 내가 돈을 받았기 때문에 성폭행당하지 않았디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똑떨어지고 복잡하지 않은 언어로 성폭행이 설명되거나 기술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만약 그렇다면 사회적 정의가 그릇된 것이라고 믿는다. 성매매에 내재된 성학대와 성매매 영역 밖에서 일어난 성학대 간의 유사성은 너무도 극명해서 무시해버릴 수 없다. (p 181)


이런 것을 레이첼 모랜은 '돈이 지불된 강간'이라고 했다. 이 표현이 적확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회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 그러니까 나쁜 여성, 그러니까 형편없는 성도덕을 가진 여성은 이런 짓을 당해도 된다, 이런 건 당연한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기저에 깔려 있다면, 세상은 그릇된 거다. 정확히 그렇다. 







동의는 언제나 어떤 것에게 주어져야만 한다. 양성 관계에서 남자들에게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어제나 여자들이다. '자연적으로' 우월하고 능동적이고 성적으로 공격적인 남성이 주도권을 행사하거나 계약을 제안하며 '자연적으로'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여자는 이에 '동의한다'. 평등주의적인 성적 관계는 이러한 기초에 의지할 수 없다. 그것은 '동의'에 근거 지어질 수 없다. 어쩌면, 여자와 동의의 문제에서 가장 현저한 측면은 다음과 같다. 즉, 두 동등자들이 함께 지속적인 연합을 창조하기로 자유롭게 동의하는 개인적 삶의 형태를 구성함에 있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언어가 없다. (p 146)


'동의'를 했냐 안 했냐가 화두가 되는 것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그것을 여성이 마치 자율적인 선택권이 있는 것마냥 받아들일까 말까를 결정하는 것처럼 만들어서 여성에게 귀책사유를 돌리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에게 '동의'라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 '동의'라는 것의 범주는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따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점에서 이 책은 훌륭한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성평등이 없는 상태에서 공격은 남자가 방어는 여자가, 그런데 공격은 남자의 본성이니 방어를 잘 하라는 식의 논조를, 정치적으로든 법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유지하는 한, 남녀 관계에서의 가부장적인 구조를 깨기는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이 책이 번역만 좀더 매끄러웠더라면, (어쩌면 내가 기본적인 지식이 좀만 더 있었더라면) 정말 크게 와닿을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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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9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9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21-02-15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의라는 범쥐를 따져봐야하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강요된 동의인지, 자율적인 동의인지도 중요할 것 같고. 공격자들을 과연 동의, 거부라는 것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인가?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비연 2021-02-15 22:31   좋아요 0 | URL
저도 이 한 단어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하나의 단어를 보더라도 참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고들이 나올 수 있는 것 같구요. 번역이 좀 힘들긴 해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