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는 여자들
리비 페이지 지음, 박성혜 옮김 / 구픽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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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수영을 시작했다. 시작했다고 말하기에도 뭣한 게 한 번 갔다. (죄송) 하지만 8월부터 시작했으니까 이제 첫 걸음을 제대로 떼었다고 할 수 있다. (흠흠) 예전에도 수영을 여러 차례 시도해보았었지만, 늘 잘 뜨지도 않고 호흡도 안 되고 물만 먹고 힘들고 괴롭고... 그래서 포기하곤 했었다. 그러니까 수 차례의 시도 끝에 남은 건... '왕초보' 라는 타이틀 뿐이라는 분하기까지 한 결말이다 이거다. 그래서 이번에 시작할 때는 적쟎이 고민을 했었는데 아 나이들어 건강에 도움이 될 운동은 (내가 생각하기에) 요가와 수영이야. 라는 절박한 마음에 수영복이랑 수경이랑 수모를 사고 심지어 수영가방까지 사면서 결심을 굳혔다. 돈을 썼으니 적어도 시작을 하겠지 싶어서. 막상 가보니, 초초초초초보라고 얕은 물에서 (발이 닿는!) 어푸어푸만 시켜서 두려움이 실현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예전과는 좀 다르게 시원하다, 스트레스가 풀리네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이 먹어 뻔뻔해져서인가. 어쨌든 잘 시도한 거야 스스로에게 가득 칭찬을 퍼부으며 첫 수업을 잘(?) 마쳤다.

 

이 책을 펴면서, 나도 '수영하는 여자' 라는 자각을 가졌더랬다. 수영하는 여자가 어쨌다는 건가. 라고 궁금해하면서. 그런데 알고보니 원제는 'The Lido'. 그러니까 영국 브릭스턴이라는 곳에 있는 야외수영장을 둘러싼 이야기였다. 수지가 안 맞는다고 폐쇄하고 파라다이스 리빙이라는 거대기업이 여길 다 메꾸어 테니스장을 만든 후 회원제로 운영하겠다 라는 이야기에 반발하는 주민들의 이야기이다. 그 중심에, 케이트와 로즈메리가 있다.

 

그 거리 건너편에서 케이트는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케이트의 직업은 <브릭서튼 크로니클>의 기자이다. 지금 그녀는 채소들을 살펴볼 여유가 없다. 아니, 어쩌면 그저 뭘 살펴봐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봄이라 해도 케이트의 머리 위에는 구름이 끼어 있다. 그 구름은 그녀가 어딜 가든 따라붙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사람들을 헤치고 계속 걷는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로 기어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케이트에게 침대는 일이 없는 날이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거리 위의 그녀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어떻게든 떨쳐내려 한다. 그 소리에 휩싸여 짓눌리지 않으려 애쓴다. 계속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만 쳐다본다. - p8~9

 

케이트는 대학원을 나오고 지역신문의 기자로 일하는 20대 젊은이이다. 런던에 나와 공부하면서 위축감과 공황발작이 생겨버렸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에 어려움마저 느끼게 되면서 외롭게 시간을 때우는 청춘이다. 신문사에서도 반려동물 이야기를 쓰면서 원래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게 뭐인지도 가물가물한 상태이다. 온종일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산다.

 

로즈메리는 거의 평생을 이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곳으로 함께 이사한 사람은 남편 조지였다. 당시 이 아파트는 막 새로 지어진 건물이었고 로즈메리와 조지 커플도 막 결혼식을 올린 참이었다. 현관은 거실로 곧장 연결된다. 거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른편 벽을 가득 메운 책장이다. ... (중략) ... 로즈메리의 집 발코니와 가까운 공원 가장자리에는 붉은 벽돌로 된 나지막한 건물이 완벽한 푸른색 사각형으이 물을 감싸고 있다. 레인을 표시하는 로프들이 줄무늬처럼 나 있는 수영장이다. 수영장 테크에 띄엄띄엄 깔린 수건들도 보인다. 수영하는 사람들은 꽃잎처럼 물 위에 떠 있다. 로즈메리에게도 익숙한 공간이다. 그곳은 리도, 로즈메리의 리도이다 - p12~13

 

로즈메리는 86살의 노부인으로, 평생 이곳을 벗어난 일이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교감을 나누고 무엇보다 살아오는 내내의 추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리도를 사랑한다. 64년을 함께 했던 남편 조지를 2년 전에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도 수영장에 와서 수영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동네가 다 변해도 리도만큼은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리도를 없앤다는 소문이 들린다. 참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케이트와 로즈메리는 만난다. 처음으로 기사다운 기사를 쓰겠다는 설레임을 안은, 하지만 사람과 만나서 얘기하는 걸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케이트와 기자에 대한 불신이 있는 로즈메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어떤 관계가 될 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로즈메리가 "인터뷰할게요, 당신이 수영을 하겠다고 한다면." 이란 말을 던지면서부터 케이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로즈메리의 인생도 달라지게 된다. 이런 관계.. 아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어린 관계. 그렇게 수영장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들의 인생 이야기로 이어지게 된다.

 

로즈메리에게 있어서 리도는, 전부다. 수영을 사랑했고 남편 조지와 함께 하는 수영을 더욱 사랑했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 담을 넘어와 함께 수영을 하고 첫 경험을 한 것도, 어디 피서갈 것도 없이 일상적으로 가서 물 속에 몸을 맡기는 생활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남편을 바라보며 행복해한 것도, 전부 리도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로즈메리의 직장이었던 도서관이 없어졌을 때는 힘없이 그냥 그렇게 무너졌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다.

 

로즈메리 주변의,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따뜻한지.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프랭크와 저메인. 게이 커플이고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는 두 남자. 수영장을 지키는 제프, 거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시험을 준비하는 아메드. 청과물 가판대를 운영하는, 로즈메리가 자주 들러 야채랑을 사는 곳의 주인인 엘리스, 그리고 그의 아들 제이크. 로즈메리의 어릴 적 친구인 베티. 도서관에서 함께 근무했던, 주 1회 만나 커피 마시는 친구인 호프. 다들 로즈메리를 사랑하고, 리도에 얽힌 추억들을 사랑한다. 케이트에게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따뜻한 사람들 투성이다. 같은 신문사의 필과 제이. 늘 케이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홍보전문가 언니 에린. 이들이 리도라는 야외 수영장을 중심으로 하나 되고, 서로의 인생을 받쳐주는 모습들은, 아름답다.

 

그리고 케이트는 달라진다.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펴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맹렬히 돌진하고, 서툴렀던 감정표현도 하고, 숨겨두었던 공황장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인생이란 이래서 지낼 만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만치 잘 살게 된다. 이 중심에 로즈메리가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게 리도를 위해 열심을 다 하는 케이트와 로즈메리,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인생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참, 좋았다.

 

제이는 케이트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사무실 계단에서 그를 스쳐가거나 길 건너편에서 그에게 손을 흔들던 예전의 그녀 모습에 비해 지금은 얼마나 다른 모습인지. 사랑스러운 모습이야 똑같지만 지금은 꼭 그녀 안에 불이 켜진 것만 같다. 제이는 빛나는 케이트의 온기를 느끼며 서 있다. - p327

 

이 책의 마지막은 감동이다. 로즈메리와 케이트 다운 결론이라고나 할까. 슬픔보다는 다정함과 즐거움이 함께 하는 마무리였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아 나도 수영 시작하기 잘 했어. 라고 갑자기 뜬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기서 로즈메리 같은 분을 만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도 해방감을 느끼고 나를 찾는 과정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희망감이 생긴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다가온 소설이었다.

 

"리도에는 너무나 많은 우리의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바다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곳은 그들의 여름이며 자유입니다. 부모들에게 그곳은 아이가 처음으로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제 아이가 날아오를 수 있게 보내주어야 하는 순간들이 담긴 추억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저에게 그곳은 제 삶입니다." - p167

 

추억은, 머릿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나는 장소들, 물건들 하나하나에 배여 있게 마련이다. 평생을 잊지 않고 찾는 곳이나, 평생을 두고 가까이 하는 물건들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대상 이상의 것임을... 기억한다.

 

*  이 리뷰는 구픽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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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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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에서 책을 보내줄 테니 리뷰 쓰실 분 답장 주세요, 했을 때 냉큼 답장을 보낸 것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우선 책이 공짜래 라는 반가움과 현대문학에서 냈으니 일단 믿고 받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신뢰감 등등이 결합하여, 내 손가락은 내 뇌에서 발생하는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냥 먼저 답장 버튼을 눌렀고 그렇게 내 개인정보를 날림으로써 공짜책+리뷰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책이 왔길래, 살짝 갸우뚱 하는 순간을 지난 후, 아하 하고 뜯어보니 이 책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700 페이지 가량의 두꺼운, 갈색 표지. 첫인상은 상당한 무거움. 그 두께와 그 색깔.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은 후회. 아 이 바쁜 와중에 이걸 어떻게 읽고 리뷰를 쓰겠다는 것이냐 라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버렸다. 어쨌든 책을 일단 받았고 책임감 강한 비연은 그날 저녁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라는 이 책을 왜 읽게 되었느냐 를 설명하기 위해 서문을 이리 길게 할애한다. 헥헥.

 

내용도 모르고 받아든 책은, 러시아 이야기였다. 1922년의 어느 법정. 러시아의 전통적인 귀족, 경마 클럽 회원이자 차르의 자문역인 분의 대자인, 니즈니노브고로드의 로스토프 가문의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이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라는 시로 인해, 메트로폴 호텔에 감금되는 형을 받는 것에서 시작한다. ".. 당신은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는 그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절대 착각하지 마시오. 만약 당신이 한 걸음이라도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총살될 테니까." 를 언도받는다는 것. 그러니까 일종의 가택 연금. 로스토프 백작은 파리에 있었고 그냥 그렇게 망명을 해도 되었을 것을 혁명 이후 러시아로 다시 돌아와 이런 형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로스토프 백작이 메트로폴 호텔에 구금된 약 30 여년간의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줄거리이다.

 

이런. 호텔 안에서만 뺑뺑 도는 이야기라니. 이를 어쩌나. 그 이야기가 700 페이지라니. 라는 약간의 좌절감이 엄습하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이 저자는 어떻게 700 페이지를 호텔 안에서의 이야기로 다 메꾸려고 하는 것이지? 라는 의아함과 함께. 하지만, 먼저 고백하건데 이 책은, 그러니까 로스토프 백작의 30년 호텔 구금기인 이 책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그 어느 책보다 재미있고 그 어느 책보다 진지하며 그 어느 책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으로 백작은 평생을 연금 상태로 지내야 하는 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이 목표를 이루려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지 궁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p52)" 그렇게 해서 백작은, 러시아의 마지막 르네상스적 인간에 속하는, 시와 예술과 문화에 정통하고 음악과 와인과 음식에 대한 조예가 깊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예의가 몸에 깊숙이 밴 로스토프 백작은 호텔에서의 나름의 삶을 꾸리게 된다.

 

백작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기를 맞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9살배기 여자아이인 니나였다. 우연히 이발소에서 멋진 콧수염을 날려 버리게 된 백작이 식당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찰나에 니나가 다가왔다.

 

"그거 어디 갔어요?' 아이가 다짜고짜 물었다.

"뭐 말이니? 뭐가 어디 갔다는 거니?"

아이는 백작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기울였다.

"아저씨 콧수염 말이에요."

...(중략)...

"그게 말이다." 백작이 대답했다. "여름을 보내려고 제비처럼 다른 곳으로 날아갔단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아이들이 모방하는 것을 좋아할 거라는 생각에서 한 손을 파닥이며 탁자에서 공중으로 움직여 제비가 날아가는 흉내를 냈다. (p70)

 

이렇게 시작된 니나와의 우정은, 그저 겉으로 들어난 호텔에 익숙했던 백작에게 호텔의 뒷면 구석구석을 찾아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주었고 수선실의 마리나를 알게 되었다. 함께 여러 장면들을 엿보고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고... 호텔에서 옛 친구인 미시카를 만나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고 호텔의 많은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게 되었다. 전설적인 식당 보야르스키의 에밀과 안드레이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백작은 백작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도 있는 이 곳에서 웨이터 주임을 하겠다고 요청하게 된다. 그 전 1926년 6월 22일, 백작은 호텔의 처마 위에 올라 일생을 마감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간혹 그 곳에서 함께 하던 늙은 잡역부가 건네준, 고향의 맛이 감도는 꿀을 음미하며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게 되기도 했다. 고향. 니즈니노브고로드. 이 곳은 백작에게 일생을 통해 버팀목이 되어준 곳임이 틀림없다.

 

호텔 안에서도 사랑은 있어서 여배우와의 밀회도 있었고 러시아의 유력 인사에게 개인 교습을 하기도 하고 미국인들과 친분을 쌓기도 하면서, 백작은 나름의 긍정적인 성격과 기품있는 태도와 그러면서도 잃지 않고 유지되던 유머러스함으로 삶의 지평을 넓혀갔다. 격조높은 집안에서 무엇 하나 부러운 것 없이 성장한 백작이, 어쩌면 그 호텔의 다른 사람들을 무시할 수도 있고 자기 혼자 만의 세계에 갇혀서 우울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백작은 모두를 합리적이고 겸허하게 대했고 누구에게나 친절했으며 어떤 일도 하챦게 여기지 않는, 정말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귀족의 기품을 가진 자로서 수많은 사람들과 쉼없는 유대관계를 맺고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주며 자신의 인생도 즐기는 모습을 유지하였다.

 

무엇보다 불쑥 니나가 맡기고 간 딸 소피야는 백작의 인생에서 큰 기쁨이 되었다. 난생 처음 여자아이의 양육을 맡게 된 백작의 허둥거림과 여러 생각들은 읽는 이에게 웃음을 띠게 하는 면이 있다. 영민하고 똑부러지고 세상에 대해 외향적인 태도를 가졌던 니나와는 달리, 소피아는 얌전하고 차분하고 성실하면서도 빛나는 아이였다. 그렇게 소피야는 로스토프 백작의 딸이 되어갔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딸. 책의 후반부에서 소피야에게 보여주는 백작의 사랑은 진실되고 놀라왔다.

 

"사실 그 부탁을 하려고 왔는데... 하지만 당신이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우리의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 건 소피아예요, 방금 전 당신과 소피야 둘이 있는 걸 보면서, 당신의 본능적인 자상함을 보면서, 소피아가 당신과 함께 있을 때 금새 편안함을 느끼는 걸 보면서, 소피야에게 필요한 것은, 특히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 애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엄마의 손길이라는 확신이 갑자기 들었어요. 엄마의 방식. 엄마의..."

그때 마리나가 그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솔직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알렉산더 일리치. 저한테 그걸 요구하진 마세요. 그건 백작님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예요." (p393-394)

 

미시카가 오랜 수형 생활을 마치고 백작을 다시 찾았을 때, 백작의 호텔 친구들의 따뜻함과 잘 지내고 있는 백작의 모습을 바라보며 남긴 말은, 백작이 수십 년간 호텔에 갇혀 있었음에도 결코 실패한 인생이 아니었음을 알게 한다.

 

자기도 반가왔다며 작별 인사를 마친 미시카는 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열더니, 잠시 멈춰 섰다. 분주히 돌아가는 풍성한 주방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신사적인 안드레이와 가슴 따뜻한 에밀의 얼굴을 바라본 다음 백작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 옛날 너에게 평생 메트로폴을 떠날 수 없다는 연금형이 선고되었을 때, 네가 러시아 최고의 행운아가 되리라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가 말했다. (p460)

 

책의 말미. 1954년. 백작의 활약은 읽는 내내 통쾌했고 멋졌다. 항상 시간을 흐르는 대로 두고 일초 일분에 연연해하지 않던 백작은, 정말로 일생일대의 행동을 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누구보다 치밀하고 구체적인 계획 하에 매분 매초를 세어가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눈치챌 수 없도록. 그렇게 해서 이루어낸 일은... 아 읽어봐야 한다. 주먹을 쥐고 초조해서 나 혼자 침대 위에 벌떡 일어나 한자 한자 읽어내려갔던 그 순간을 함께 느껴봐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마음에 아릿함이 스미는 그 장면.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될 것 같다.

 

책 속에서는 백작의 생활 곳곳에서 몽테뉴와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이야기하고, 미국과 프랑스와 영국과 러시아를 이야기한다. 호텔 안의 늘 비슷한 생활이 있을 지라도 세상은 변하고 있었고 러시아는 특히나 그 당시 급격한 변화의 시기였고 그 영향은 호텔에도 고스란히 미쳤다. 그런 변화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배웠던, 익혔던 귀족으로서의 자긍심과 기품을 유지하는 백작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카사블랑카>. 이 영화의 비유는 너무나 적절하여 다시한번 봐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험프리 보가트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가 그랬던가.. 라는 기억에 자리하지 않은 그 잠깐의 장면을 보기 위해서 정말 <카사블랑카>를 조만간 보게 될 듯 싶다.

 

몰랐는데, 오바마 前 미국 대통령이 2017년에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 11권 목록 중에 이 책이 들어 있단다. 저자인 에이모 토울스의 책은 우리나라에 <우아한 연인>으로 번역되어 나온 게 있고, 이 분은 한 권 쓰는 데 4년씩을 잡고 있다니 우선 <우아한 연인>부터 사서 읽고 다음 책을 목빼고 기다릴 예정이다. 최근에 읽은 소설 가운데, 이 <모스크바의 신사>는 최고의 소설이었다. 아마 내게도 올해의 가장 감명 깊었던 책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될 확률이 매우 높은. 강추한다.

 

* 앞에도 썼지만, 이 리뷰는 현대문학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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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8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18-07-08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왕~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비연 2018-07-08 14:02   좋아요 1 | URL
꼭꼭 읽어보시라고 추천요~^^

stella.K 2018-07-08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니 이렇게 좋아하시면서
저한텐 신청 거절하길 잘했다고 하시면 반칙 아닙니까?ㅋ

근데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읽었으면 써야죠.
돈 주고 샀으면 적어도 리뷰를 써야한다는 의무는 지지 않아도 되고,
쓴다고 해도 아무 때나 쓸 수 있잖아요.
근데 기한을 정하고 그 안에 써야한다면
예전에 이렇게라도 해서 글 쓰는 습관을 들여야지 했는데
지금은 반대가 됐어요.
결국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겠죠.
전 이 책 중고샵에 혹시 나오면 그때 한번 읽어볼까 해요.ㅋ

비연 2018-07-08 18:57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께 잘했다고 했던 게 이제야 기억이 나네요. 이런^^;;;;
스텔라님도 읽고 나면 저처럼 좋아하실 것 같은데..
사실 리뷰 쓴 지 한참만이에요. 의무로 쓰겠다고 생각하니 금새 읽고 바로 쓰게 되네요.
공짜로 받지 않아도 읽으면 쓰고 그래야 하는데 말이죠ㅜ (반성중)

레삭매냐 2018-07-08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구 달리다가 로맹 가리의 다른 소설 때문에
잠시 유보되었습니다.

빨랑 <별을 먹는 사람들>부터 먹고 나서,
아니 읽고 나서 재도전해야겠습니다.

비연 2018-07-08 21:24   좋아요 0 | URL
아. 꼭 읽어보시길. 꼭 재도전!
마지막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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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이론이 낡은 이론을 무효화하거나 대체하는 게 아니라, 낡은 개념들을 좀 더 높은 수준에서 재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고 역설했다. 그는 유명한 직유법으로 이 개념을 확장했다.

 

비유법을 사용하여 설명해보겠다. 새로운 이론을 만든다는 것은 낡은 헛간을 부수고 그 자리에 마천루를 세우는 것과 다르며, 그보다는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은 위로 올라감에 따라 시야가 새롭고 넓어지며, 출발점과 다채로운 환경 사이에서 예기치 않았던 관련성을 발견하게 된다. 당신은 변화무쌍한 산행길에서 장애물을 통과하여 마침내 널따란 시야를 확보한다. 그러나 출발점은 아직 존재하며, 크기가 아무리 작아 보이고 시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더라도 여전히 시야에 들어온다. (p226)

 

 

올리버 색스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이 에세이는, 무엇보다 스쳐 지나간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이 돋보였다.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시대에 맞지 않아서 당시의 과학자들의 생각과 달라서 등등의 이유로 그냥 묻혀 있다가 오랜 세월 후에 다시금 대두되곤 한다. 어쩌면 여건이 맞아떨어져서 또 어쩌면 몇몇의 천재들이 이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인슈타인의 위 말처럼 이 모든 것이 '발전'이라는 것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발견되고 어쩌면 그 가는 길 중에 외면당하고 회피되고 거부당하기도 하면서 직선으로 쭉 가는 게 아니라 지그재그로 움직여가면서 어느 순간에 다시금 길을 찾아 그 출발점을 확인하게 되는 것. 그것은 누구 하나의 힘이 아니며 역사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온 토대 위에 누군가 벽돌 하나 더 올림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일 게다. 뉴턴마저도 이전 세대를 부정하고 자신의 이론이 독창적임을 강조했다고는 하지만, 누구든 "거인의 어깨"를 빌리지 않고는 발전이라는 것, 새로움이라는 것을 일구어내기 힘들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올리버 색스의 글을 읽으면서,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노익장으로도 끊임없이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있고 이런 글을 써낼 수 있었던 그가 평생 지녔던 것은 무엇일까. 한편으론 그가 가졌던 그 많은 지식들, 그 치밀한 시야들이 이젠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글로써 여전히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으니,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고 그도 누군가에게는 '거인'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억은 고정되고 활기 없고 간편적인 수많은 흔적들을 고스란히 재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반응이나 경험들을 바라보는 전반적 태도‘와 ‘이미지나 언어의 형태로 저장된 세부 사항‘을 기초로 하여 상상력이 가미되어 구성되거나 재구성된다. 심지어 가장 기초적인 암기와 반복의 경우에도 기억이 늘 정확한 것은아니다. 따라서 기억의 정확성을 절대시할 필요는 없다. (p109)

인간의 기억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취약하며 불완전하지만,굉장히 유연하고 창의적이다. 출처에 대한 혼동과 무차별성은 역설적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어디 한번 생각해보라! 만약 모든 지식에 출처가 표시된 꼬리표가 붙어 있다면, 우리는 종종 엄청난 양의 부적절한 정보에 압도당할 것이다. 출처에 무관심한 우리의 뇌는 ‘우리가 읽고 들은 것‘과 ‘타인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쓰고 그린 것‘을 통합하여, 마치 1차기억인 것처럼 강렬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고,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예술, 과학, 종교가 포함된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동정신common mind에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보편적인 지식연방commonwealth of knowledge을 구성하게 된다. 기억은 개인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많은 개인들 간의 교류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34)

멀린 도널드Merlin Donald는 <현대 정신의 기원Origins of the Modern Mind>에서, 모방문화mimetic culture를 문화와 인지능력 진화의 핵심 단계로 간주한다. 그는 흉내, 모방, 미메시스mimesis를 명확히 구분한다.

첫째, 흉내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으로, 가능한 한 정확한 사본duplicate을 만들기 위한 시도다. 따라서 누군가의 얼굴 표정을 정확히 재현하거나 앵무새가 다른 새의 소리를 정확히 모사하는 것은 흉내에 해당한다. 둘째, 모방도 대상을 재현하지만, 똑같이 따라 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는 자녀들은 모방을 하는 것이지 흉내를 내는 것은 아니다. 셋째, 미메시스는 모방에 표상representation이라는 차원을 첨가한다. 그리하여 흉내와 모방을 통합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며, 하나의 사건이나 관계를 재현하는 동시에 표상한다. (p148)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지 타인이나 주변의 문화로부터 아이디어를 차용한다. 아이디어는 늘 공중에 떠돌아다니며, 우리는 종종 의식하지 않고 오늘날 유행하는 구절과 언어들을 차용한다. 우리는 언어를 발견하고 그것을 빌려 와, 각자 개별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해석한다. 우리는 언어를 차용하는 것이지, 발명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왜 남의 것을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끼거나 영향받는가‘가 아니라,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낀 것을 갖고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다. 다시 말해서, ‘남의 것을 완전히 소화시켜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 자기 자신의 경험, 생각, 느낌, 입장과 혼합하여 얼마나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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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5-27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수고했어용, 토닥토닥^^*

비연 2018-05-27 21:32   좋아요 0 | URL
^_______^
 

 

 

 

 

 

 

 

 

 

 

 

 

 

 

 

책표지 정말 맘에 안 드네... 이 이유로 살까 말까 망설인 책이었다. 책 살 때 표지도 유심히 보는 나로서는, 아 이런 류의 책표지는 절망감에 가까운 느낌을 안겨 주곤 한다. 물론 저마다의 취향이 있으니 이 책표지가 맘에 드는 사람들도 있을테니 여기서 더 왈가왈부할 내용은 아닌 듯 하지만 말이다.

 

슬픈 이야기이다. 미국의 1920년부터 1950년까지 조재아 탠과 멤피스 산하 테네시 보육원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이게 전쟁 때도 아니고 그것도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가능했던 이야기인가 라는 현실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게 한다. 미국이 잘나서가 아니라, 1950년대까지 이런 일들이 그냥 덮어진 채 자행되었다는 자체가 놀랍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릴과 그 오남매의 인생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내용이기도 하다. 강가에서 브라이니와 퀴니라는 엄마 아빠를 두고 아카디아라는 배 위에서 단란하게 살던 릴과 카멜리아, 라크, 펀, 가비언 오남매가 있었다. 이렇게 강가를 떠돌아다니며 사는 가족들이니 일종의 집시라고 할 수 있겠지. 퀴니가 쌍둥이를 낳는 와중에 위기가 닥쳐와 아빠와 근처에 사는 지드 아저씨와 함께 병원으로 가는 일이 벌어졌고 결국 쌍둥이는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이 아이들에게 들이닥친 것은 엄마와 아빠가 아니라 경찰들 비스므레한 낯선 남자들이었다. 엄마 아빠를 보러가게 해주겠다며 억지로 끌려간 아이들은 보육원에 갇히게 되고 학대와 폭행이 이어지는 현실에 맞부닥치게 된다.

 

과거의 이야기는 현실의 이야기와 맞물려, 70여년이 흐른 어느 날, 명문가인 스태포드의 막내딸 에이버리가 우연히 다녀간 요양원에서 아흔의 메이라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이 돌아가게 된다. 할머니가 에이버리의 손을 잡으며 "펀?" 이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에이버리가 자신의 친할머니인 주디 할머니로부터 받은 팔찌를 메이라는 할머니가 자기 것이라고 얘기하면서부터, 그리고 메이 할머니의 방에서 발견한, 부부의 사진을, 주디 할머니와 빼닮은 여자의 얼굴을 보면서부터 과거에 대한 탐색은 시작되고, 결국 드러난 진실은... 아...

 

가난한 아이들, 집시들의 아이들 등을 유괴하거나 부모를 속여 서명을 하도록 하여 보육원에 가두고는 명망있고 돈 많은, 그러나 자식이 없거나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던 조지안 탠이라는 여자. 어려운 아이들을 구하는 데 삶을 바친 대단히 훌륭한 여성으로 칭송받던 그 여자. 나중에 이 악독한 일들이 세상에 드러난 직후 암으로 죽은 여자. 죄에 대한 벌조차 죽음으로 비껴간 여자. 그리고 이 일에 연루된 수많은 명망가들에 의해 스르르 덮여간 아이들, 그 친부모들... 이런 끔찍한 일이 20세기에 벌어졌었다니... 놀라움을 넘어서 슬픔이 밀어닥친다.

 

그리고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거다. 소설에서, 가난했던 그 아이들은 친부모와 형제들과 떨어져 부유하고 품위있는 집안에입양되어, 아마도 친부모와 형제들과 살았다면 누리지 못했을 삶을 누렸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았고, 교육도 충분히 받았고, 좋은 집안의 사람과 결혼하여 평생 부족함 없이 살았다. 그냥 그대로 남겨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어느 순간 다른 행로를 탄 이 인생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잘 모르겠다. 여기에서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어쩌면, 입양되어 산 세월이 그들을 더 행복하게 했을 수도 있었을까... 하지만, 혈육이란 것을, 그들과의 이별을 잊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그건 확실한 것 같다. 인생이 바뀌어 좀더 풍요로와지고 좀더 품격은 있어졌을 지라도 마음으로 이어지는 가족의 사랑은, 늘 그들을 지배하지 않았을까. 외로움의 근원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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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8-04-29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화라고요. 음음... 잠시 생각해보니 울나라에선 더한 일도 일어났을 것 같네요. 리뷰 보니 저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 마지막 대목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네요. 친부모랑 살았으면 누리지 못할 삶.... 다시 태어나면, 그리고 친부모랑 사는 게 가능했다면 어떤 삶을 선택했을까요, 그들은.

비연 2018-04-29 20:47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꺅. 오랫만이에요.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더한 일들이 일어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니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어요. 한번 읽어보실 것을 추천.
저도, 그들의 인생을 생각하면서, 어떤 것이 최선이었을까. 이 나쁜 짓의 결론에 대해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 아이를 유괴하고 부모에게서 억지로 빼앗고 학대하는 그 천인공노할 죄를 물어야 하는데, 결국 어쩌면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정말 아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들 때문에 만감이 교차하더이다... 마태우스님 리뷰 보고 싶네요~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
앙투안 로랭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예전 아주 고전 영화 중에 롤스로이스 라는 차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그 흑백 영화는 지금도 그 가치가 어마어마한 롤스로이스를 가지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처음에 롤스로이스를 산 사람은, 그 차 안에서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차를 팔아 치우고.. 뭐 이런 내용이었나. 아뭏든 비싼 차를 가진 사람들이, 그 차를 두고도 그닥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차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내 어린 심정엔 차가 가엾다, 무슨 운명으로 저런 주인들을 만났나 라는 느낌마저 가졌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물건이란 건, 생명은 없을 지라도, 그렇게 사람들의 운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는 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었던 것 같고.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 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 영화 생각이 났었다. 다니엘 메르시에라는, 그냥저냥 회사 생활 하면서 그닥 인정도 받지 못하는 한 남자가 어느날 가족들이 다들 자기 일을 하러 간 저녁 혼자 들렀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미테링' 대통령을 만나게 되는 사건이라면 사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테랑이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미테랑이라는 프랑스 대통령이 상징하는 바는, 지금 생각해봐도 상당히 큰 것이었다. 레지스탕스 출신의 프랑스 최초 좌파 대통령. 잘할 수 있을까를 수없이 의심받았지만, 프랑스의 자긍심을 높이고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받는 대통령. 그가 다니엘과 같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대통령이 식사를 다 마치고 나갈 때까지 천천히 식사시간을 가졌던 다니엘은, 문득 대통령이 그의 모자를 두고 나갔음을 알게 되고, 순간적인 충동으로 자기의 모자인 양 쓰고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모자는 마술을 부리게 된다. 소극적이고 근근했던 다니엘 메르시에는 회사에서 딱 부러지는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윗사람의 눈에 들게 되고 더 높은 자리에 임명이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그러니까, 그 모자가 주는 힘.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라는 권위가 그에게 모자랐던 2%를 채워준 셈이 된 것인가. 대통령의 머리 위에 얹어져 부여되었던 파워가, 그 모자를 쓴 사람에게도 작용한 것인지. 그러다가 그 모자를 우연히 기차칸에 놓아두고 내리게 되고 다시 그 모자는 파니 마르캉이라는 여자의 손으로 넘어가고... 그렇게 우연을 거듭하며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동하던 모자는, 그 모자를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상상할 수 없는 자신감을 부여하게 된다. 아. 이게 무슨 조화인지. 알라딘의 요술램프란 말인가. 

 

이 소설은, '대통령의 모자'라는 상징적인 존재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면서 변화하고자 애쓰던 보통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모습들, 그러니까 소심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생 역전극을 보여주는 재미가 있다. 그것이 알라딘의 요술램프이든, 마녀의 유리구슬이든 간에, 사람들은 어쩌면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런 생활을 타파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그 무엇. 그것이 아마도 '대통령의 모자'라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 지. 무엇보다 미테랑 대통령이라는 실제 존재했던 인물,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손꼽히는 대통령을 소재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는 점이 가장 흥미진진하다. 마지막까지 가면, 작가가 미테랑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도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는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프랑스 국민에게 보낸 마지막 신년 인사에서 그는 의례적인 대통령의 새해맞이 인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매우 당돌한 한 마디를 했다.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쿵저러쿵 논란이 많았지만 어느 누구도 만족할 만한 해석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 자신은 물론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이 문장엔 무려 461만 개의 댓글이 달려 있음을 구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4년 12월 31일 신년 인사를 마치기 2~3초 전, 그는 두 눈으로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한 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신의 힘을 믿으며, 여러분들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 p266

 

소설 말미에 있는 이 문장. 실제로 미테랑 대통령은 1995년 퇴임 후 1996년에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굿바이인사였을까. 그는 아직도 프랑스 국민들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

 

문득, 부럽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처럼, 대통령의 모자가 나에게 이렇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려면, 그 대통령을 싫어해서는 안 되겠지. 그리고 이렇게 소설에서 대통령을 '마음대로' 묘사하려면 그만한 자유가 보장된 나라여야 하겠지. 그리고 나의 첫 소설에서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대통령이라니, 그 사람에게 애정이든 뭐든 그런 게 있어야 가능한 것이겠지... 우린 어떨까. 내가 식당에서 대통령의 모자를 주우면, 내 머리 위에 쓰고 싶을까. 심지어 그걸 쓰면 의기양양하게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 노 코멘트.

 

이 작가의 글솜씨가 마음에 든다. 나온 책 중에 <빨간 수첩의 여자>도 마저 사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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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 2016-09-1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읽겠다고 찜하신 책이
<빨간 수첩의 여자>라고 하시니.. 갑자기 개드립 하나가 생각납니다.(윽 비웃지 마세여) 우리나라엔 `수첩공주`가 있잖아요...

비연 2016-09-19 09:06   좋아요 0 | URL
앗. 컨디션님.... 대통령에 이어... 수첩... 앙투안 로랭은...혹시 우리나라를 염두에.. 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