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의 신화 - 새로운 길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베티 프리단 지음, 김현우 옮김, 정희진 / 갈라파고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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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프리단이 이 책을 처음 쓸 당시는 지금부터 50년도 더 전이었다. 그 때는 세계대전이 두 차례나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시기였고 그래서 일자리가 부족했고 가난했고 불안정한 시기였다. 그래서 미국의 여성들은, 서부 개척시대에 남성과 동등하게 그 땅을 일구어나갔던 그 미국 여성들의 위상은 오히려 그 시절에 더 퇴보한 상태였다. 여자란, 여자의 의무란, 원래 여자의 역할이란, 이런 이야기들을 어릴 때부터 주입했고 그렇게 큰 여성들은 마음 속에 채워지지 못한 뭔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정한 규범, 타인의 눈초리에 따라 살 수 밖에 없는 시기였다. 베티 프리단은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일들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표현 자체가 매우 과격해서 불편하기까지 했었지만, 결국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여성성에 갇혀 자신을 펴나가지 못하는 여성들을 교육을 통해 자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여성이 여성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을 옥조여 사는 삶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성은 중요한 여성적 특징을 상실하는 큰 비용을 치러야만 지성을 얻을 수 있다... 여성을 관찰한 의견들은 모두 여성이 자신의 따뜻하고 직관적인 지식이 냉철하고 비생산적인 사고에 의해 희생됨으로써 지적인 여성이 남성화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p320)

 

늘 재미나게 생각하는 것은, 언론이 지도자격의 여성을 대하는 태도이다. 어릴 때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에 대한 기사가 났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진 중의 하나가, 대처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장면이었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그 사람이 난데없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어색한 모습이라니. 그러니까 기사의 논조는 그거였다. 아무리 철의 여인이라도 집에서는 요리를 하는 '자애로운 아내이자 엄마' 라는 것이었다. 내가 아직까지 그 사진을 기억하는 건,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대처의 모습이 너무 어색했던 탓이다. 그리고 생각했었다. 아니 이 사람이 요리를 하는 것과 수상이라는 직위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거지?.. 이런 관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현존하는 가장 일 잘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메르켈 총리에 대한 기사에도 가끔, 그녀가 장을 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옷이 한벌이야, 맨날 같은 것만 입어 이런 패션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그러니까 여성이 한 나라의 지도자를 하는데, 그 성별에 따른 역할을 '그래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고나 할까. 이 사람은 이래도 남자는 아니야. 그럴리가 없쟎아. 이런 관점. 남성들이 지도자를 할 때는 이런 모습을 찍지 않는다. 서점에 가는 모습,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 반려견과 신나게 노니는 모습, 피곤해서 소파에 누워 쉬는 모습... 지적인 여성은 남성적이라는 의도를 깔고 이야기하는 이런 관점들은 지금도 너무나 만연하다.

 

 

하지만 여성들 자신은 왜 빗발치는 비난에 가만히 있었을까? 문화가 여성을 독립적인 자아로 성장하는 것을 막고, 법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교육적으로 여성이 성숙되는 것을 차단했다면, 이런 장벽들이 무너진 후에도 여성이 집이라는 피난처를 찾기가 여전히 더 쉬웠다. 여자가 독자적으로 세상에서 살아가기보다 남편과 자식을 통해서 사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도 남자아이와 마찬가지로 여자아이도 성숙하게 하지 못하는 똑같은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그 어머니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는 무서운 것이다. 마침내 어른이 되어 수동적인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성숙하지 않으면 더 잘 될 것이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강요하는 문화 속에서 애써 주부나 엄마 이상의 존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p368-369)

 

 

이게 미국만의 문제일까. 지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딸이 시집을 잘 가면 만사 오케이라는 사고방식은 여전하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는 것도 시집을 잘 가기 위한 방편이 되기도 한다. 요즘 남자들은 약아서 직장 없는 여자 싫어해.. 이게 만연한 말이다. 여자들은 좋겠어, 안되면 취집하면 되쟎아. 이런 말을 농담처럼 한다. 일부의 여성들은 그런 말에 기댄다. 쉬우니까. 어쩌면 그런 노력들은 사회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버티며 일하는 것보다는 쉬운 길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좋은 화장품을 쓰고 좋은 옷을 걸치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외모로 성형을 하고 피부를 가꾸기도 한다. 시집을 잘 가는 것이 무엇인지, 남자에 기대어 살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게 어떤 상태인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집이란 걸 잘 간 사람에 대한 부러움은 부모님에게나 동년배의 여성들에게나 다 느껴진다. 그리고 아무리 사회적으로 전문직을 가지고 성공을 해도 결혼에 실패하거나 그다지 조건이 좋지 않은 남자와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뒤에서 그런다. 역시 넘 배우면 안돼. 여자는 적당히 배워야 해. .. 베티 프리단의 글을 읽으면서, 이게 50년 전의 이야기인데 말이다, 어째서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느껴지지. 라는 생각에 좀 씁쓸했더랬다.

 

그래서 소비를 조장하고 집안일에 더 신경을 쓰게 만들고 성적인 부분에 에너지를 쏟게 하고 아이에게 자신이 못다 이룬 인생을 걸게 한다. 사회가 이런 식으로 여성을 가정에 묶어 두고 다른 생각을 못 하게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조금 불편했던 부분도 있었다. 

 

 

몇십 년 전, 정신적으로 저능한 사람을 연구한 보고서는 집안 일이 정신박약 소녀들의 능력에나 적합하다고 기록했다. 많은 도시에서 가사 노동자로서 정신박약 환자들을 많이 요구했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집안일이 훨씬 어려웠다.

자녀 교육, 실내 장식, 식단 짜기, 가계 예산, 오락에 관한 기본적 결정을 내리려면 물론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성성의 신화가 갖는 부조리함을 목격한 몇 안 되는 가족 및 가정 전문가들 중 한 사람에 따르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집안일은 대부분 "여덟살 난 아이라도 할 수 있다." (p449)

 

 

여성이 필요한 교육을 못 받게 되고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여 출산을 하게 됨으로써 가정에 얽매이게 된 결과 집안일을 하게 되는 과정에는 반대한다. 더 많은 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고 사실은 가증스러운 사회의 일면이다. 하지만, 집안일 자체에 대한 이런 폄하는 개인적으로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과격한 표현이었다. 저자는 동성애에 대해서도 같은 실수(?)를 범하는데, '아이가 동성애자인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남성과 경쟁하는 해방된 여성이 아니라 여성성의 신화의 모범이다 (p481)" 이라고 하면서 아동 병리 증세나 난잡한 성교까지도 엄마의 여성성에서 기인한다고 한 부분에는 백프로 동의하기 힘들었다. 굉장히 다층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는 결과에 대해서 하나의 원인을 너무 부각시킨 것은 아닌가 싶었고 동성애에 대해서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이렇게까지 과격한 표현을 써가며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능력이 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에 가두지 말라, 는 것이다. 여성들이 못 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에 휘말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그렇게 되다보니 속에 많은 것들이 쌓이는 것이지,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할 수 있는 바를 제시하면 충분히 날아오를 수 있다, 그 얘기이다.

 

 

그 함정의 열쇠는 물론 교육이다. 여성성의 신화는 여성에게 고등교육을 허락하는 것이 회의적이고 불필요하며 위험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교육이야말로 미국 여성들을 여성성의 신화라는 끔찍한 위험에서 구했으며, 앞으로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610)

 

교육이 '여성의 역할'이라는 낡은 이미지와 타협하고 영합하는 것을 그만두는 순간, 소녀들은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불꽃과 새로운 상을 키울 수 있다. 교육은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에게도 인간 진화의 모형이며, 원형이어야 한다. (p627)

 

 

내가 이 책을 읽고나서 사실 가장 감명을 받았던 부분은 <나오는 말>에서였다. 수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펴냈던 베티 프리단은 그냥 그렇게 안주한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을 벌였고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게 함으로써 평등과 인간의 존엄성을 찾도록 노력했으며, 임신중절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이 선진적인 저자는 책만 쓴 게 아니라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상황을 더 낫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점에서 나는 이 책 전체에서 조금씩 불편했던 부분들을 다 잊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노력으로 지금 미국의 여성 인권, 나아가 세계의 여성 인권이 더 나아질 수 있었으리라는 예측, 그리고 그것이 베티 프리단을 살아있게 만든 원동력이었으리라는 예상들이 나를 기쁘게 했다. 아마 앞으로의 50년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면, 역시 실천하는 여성주의자들이 늘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것이 정치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고 혹은 일상생활에서의 활동일 수도 있을 게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동등함을 추구하기 위한 남성들의 합류가 수반되어야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두꺼워서 읽는 내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역시나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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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수전 팔루디 지음, 손희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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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 그렇게나 자주 그랬던 것처럼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대교도인가 기독교도인가? 헝가리인인가 미국인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너무 많은 상반되는 것들이 함께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의 누워 있는 몸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우주에는 단 하나의 구분, 단 하나의 진정한 이분법이 있구나. 삶과 죽음,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녹아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p623)

 

아마 올해 다른 수많은 책들을 읽겠지만, 이 문구가 내겐 올해의 문구가 되리라는 건 확실하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머리를 둔기로 맞는 듯한 충격이 왔었다. 그래, 뭐라뭐라 이유를 말하고 사상을 말하고 해도 이 문장 하나로 다 해결될 수 있겠구나. 사과를 반으로 나누듯 겹치는 부분 없이 짝 갈라지는 양쪽을 가진 것은 단 하나, 삶과 죽음 뿐이다. 그래, 정말 그렇다. 이 세상 무엇이 삶과 죽음 만큼 단호하게 갈라질 수 있을까. 그러니 우리가 양편으로 나뉘어 상대를 혐오하고 핍박하고 강제하는 것은, 참 넌센스로구나. 라는 생각에 이 대목을 거듭 읽게 되었다.

 

수전 팔루디의 유명한 책 <백래시>를 두고 이 책 <다크룸>을 먼저 읽은 것은, 그 정체성이란 부분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유대인이었고 수용소 생활을 했으나 헝가리인으로 살고 싶었고 그러다가 미국으로 들어와 전형적인 미국적 남자 혹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평생 애썼고 그 과정에서 때아닌 폭력과 강압을 가족에게 휘둘렀었던 아버지가 돌연 70이 넘은 나이에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면, 딸의 입장에서 여성의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아버지의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이런 여러가지 의문점에 사롭잡혀 600페이지가 훨씬 넘는 이 책을 선듯 손에 잡게 된 거이다.

 

"나는 이제 숙녀니까, 버데르가 이것저것 다 고쳐 준단다." 그녀가 말했다. "남자는 나를 도와야지. 나는 손가락 까닥 안 한다고." 아버지는 나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게 여자로 살아가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 아니겠니." 아버지가 말했다. "하긴 너는 여자의 어려움에 대해서 쓰지. 나한테는 유리한 점만 보이는구만!" (p83)

 

성별을 바꿀 때 그 결심을 할 때, 나와 다른 성별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인지 늘 궁금했다. 물론 선천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성별보다 가지고 있지 않은 성별로서 살기를 마음 깊이 원하게 되는 것도 있겠지만, 사실 성별이 다르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생물학적인 구분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닐진대, 성전환이라는 것을 할 때 다른 성별이 처하게 되는 여러가지 상황을 과연 알고 바꾸는 걸까. 수전의 아버지 말처럼,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여성으로서 살기 힘든 점이 몸으로 마구 느껴지지만, 성전환이라는 것을 했을 때는 기존의 성이 가지지 못했던 좋은 점들만이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말하자면, 사회적인 진정한 '여성'의 성별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었다는 이야기이다.

 

트랜스섹슈얼은 '이전의' 자아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그리고 당신의 과거를 삭제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이 그 성별이라고 믿는 성별처럼 '보이도록' 신체를 변형시킴으로써 당신은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완고하고 성차별적인 이해에 동조하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은 그런 변형을 통해서 생물학이 운명이 아님을, 그리고 '트랜스'는 젠더에 처진 경계선을 단순히 건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 자체를 초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인가? (p230)

 

수전 팔루디의 이 책이 훌륭한 것은, 그저 아버지가 트랜스섹슈얼이 되었다는 것을 통해 그 일생에 집착하여 구구절절 인생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 누구보다도 복잡한 과거를 가진 그 존재를 통해 역사적이면서 사회적인 의미를 집요하게 파헤쳐 고민한 결과를 보여준다는 데에 있다. 트랜스섹슈얼이 되면 그 이전에 가졌던 스스로와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인가. 아버지의 과거를 기억하는 저자는, 여성이 되어버린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수십 년 살아온 정체성과 개인사를 가진 사람이 그것을 전부 버리고 생물학적으로 변해버린 몸만으로 다른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겠는가. 어려운 문제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러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에서 젠더의 의미를 찾아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반유대주의에는 화수분처럼 수많은 원천이 있었지만, 근대 파시스트 국가를 위협한 유대인다움이란 종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젠더로서의 유대인다움이었던 것이다. (p384)" 유대인 남성의 여성성에 대한 믿음이라. 유대인 여성은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찬사를 보내면서 유대인 남성에 대해서는 '우스꽝스럽고 멋지지 않은 외모'를 가진 여성적 질환으로 병든 존재 취급을 했다는 것.

 

이런 시스템, 그리고 이런 윤리 속에서 자라나서 동화되고 싶어 안달이 난 유대인 소년이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궁금했다. 어린 이슈트반은 자기 '인종'의 남자란 정신질환을 앓는 계집애일 뿐이고, 여자란 여성적인 우아함의 모범으로 귀애함을 받는 문화에서 어른이 되었다. (p386)

 

수전의 아버지는, 어쩌면 평생 주류에 들고 싶었던 존재였는 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주류. 어린 시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어머니에게 방치되다시피 살았던 어린 시절. 덕분에 번듯한 가정을 주류로 생각하고 나는 가정을 제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가장 컴플렉스에 시달리며 가족을 자신이 만들고자 한 방식으로 정형화시키려 했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세계대전 중에 여러 고초를 겪은 청년 시절. 그래서 유대인이길 거부하고 헝가리에서는 헝가리인으로 미국에서는 미국인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했다. 남성으로 태어나 그다지 귀함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여기고 결국엔 늦은 나이에 자신이 오히려 주류라고 생각하는 여성으로 탈바꿈했다,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정체성은," 아버지가 고심하며 대답했다. "정체성은 사회가 너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야. 사람들이 인정한 대로 행동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적이 생긴단다. 나는 그렇게 살았어.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는 거야." (p517)

어쩌면 한 개인이 살아내기에 너무나 어려운 여러가지 여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한 인간으로서 수전의 아버지를 받아들여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기를 체벌하던 방식 - 로지가 벌을 줄 때 선호했던 방법은 아들을 '어두운 방에(in the dark room)' 가두는 것이었다 (p521) - 처럼 사는 내내 스스로를 '어두운 방에' 두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고. 직업처럼,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암실에 머무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잘 몰랐던 아버지의 역사를 아버지와의 잦은 만남을 통해 듣고 이해하게 되고 친척들을 만나면서 아버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어쩌면 수전은 트랜스섹슈얼로서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를 발견하게 되었을 것 같다 싶다.

 

페미니즘이란, 계속되는 만트라에 따르면, '선택'에 대한 것이다.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선택했을까? 그것은 내가 물려받은 것, 내가 조절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역사로부터 이룩해낸 것이 아닌가? 아내와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남자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분노 때문에 나는 여성 평등을 위해 움직이는 운동가가 되었다.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정체성은 아버지가 겪은 '정체성 위기'의 잔해, 자신이 선택한 남성적인 페르소나를 주장하지 못했던 좌절에서 태어났다. 취미이자 피난처였던 페미니즘은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내가 도망치지 못했던 것은 아버지였다. (p99)

 

그렇게 시작했지만, 결국 수전은 아버지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다. 그 혹은 그녀를 더 많이 알게 된 말년을 통해, 그 혹은 그녀를 관통하는 역사를 이해하면서, 용서라기보다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라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인 듯 하다.

 

순전히 트랜스섹슈얼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책이었지만 읽는 동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며 복잡해졌었다. 단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다만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성별 하나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럼에도 성별 하나 만으로도 수만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 그런 많은 깨달음이 속에서 교차했던 좋은 시간이었다.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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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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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찬사가 워낙 여기저기서 들려와서 책표지가 정말 맘에 안 듦에도 불구하고 책장에서 꺼내 읽기 시작했다. 1952년부터 1970년까지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 여섯살박이 어린 카야가 24살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오늘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 부분들을 읽으면서 오열을 했다... 아 왜 그랬는 지 모르겠다. 사실 내용이 대단히 다른 것도 아닌데, 대단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지막 부분에서는 카야의 마음과 하나가 되면서 눈물이 그칠 줄을 몰랐다.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이고... 무엇보다 다 떠나가고 버림받은 아이의 성장이야기이며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켜나가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했던 분투기이다.

 

 

엄마가 떠나고 몇 주에 걸쳐서 큰오빠와 언니 둘도 모범이라도 보이듯 홀연히 떠나버렸다.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다 도망가버렸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아버지는 처음에는 고함을 지르다가 주먹으로 때리고 결국은 제 분을 못 이겨 손등으로 철썩철썩 갈겼다. 그렇게 언니들과 오빠는 한 사람씩 사라졌다. 카야는 훗날 언니 오빠의 나이도 잊고 진짜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생각나는 건 미시, 머프, 맨디라는 애칭뿐이었다. 포치의 매트리스에는 언니들이 두고 간 양말들이 쌓여 있었다. (p23)

 

 

모든 불행의 시작은 폭력이다. 자격지심에 사로잡힌 아버지는 엄마를 두들겨 패고 그래서 떠나간 엄마를 대신하여 자식을을 패기 시작한다. 그냥 자기 울분에 못 이겨, 자기 인생의 불만을 연약하고 힘없는 자들에게 퍼붓는 가장 졸렬하고 비겁한 인간상. 그 속에서 나 혼자라도 살아야겠다 떠나는 가족들. 그렇게 해서 언니 둘, 큰오빠가 떠난 후 가장 가깝게 지내던 조디 오빠마저 떠나버린 후 카야는 정말 혼자가 된다. 여섯살 짜리가. 두들겨 패는 아빠와 단 둘이. 아.. 정말 이게 뭐란 말인가.

 

 

"다들 왔구나. 그런데 이렇게 많은 숫자는 셀 수가 없는데."

우짖는 새들은 빙글빙글 돌다 자맥질하고 카야의 얼굴 근처에서 떠다니다 옥수숫가루를 던져주자 땅에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조용해져서는 가만히 서서 몸단장을 했다. 카야는 다리를 한쪽으로 모으고 모래밭에 앉았다. 커다란 갈매기 한 마리가 카야 곁의 모래사장에 내려와 홰를 쳤다.

"나 오늘 생일이야." 카야는 갈매기에게 말했다. (p33)

 

 

이 부분에서부터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외로운 아이. 생일만큼은 엄마가 돌아올거라 애타게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 엄마. 그렇게 아이는 습지와 동물들과 벗하며 사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요리를 하고 물건을 사고, 돈을 벌기 위해 홍합을 채취하는 아이. 그리고 서서히, 오지 않는 엄마를, 형제들을 마음에 묻고 습지에 스며드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p49)"

 

한번쯤 아버지와 낚시를 다니며 평화롭게 지내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은 잠시였을 뿐, 아버지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제 버릇 남 주겠는가. 못난..) 홀연히 없어진다. 정말 혼자 남게 된 카야. 그런 카야를 음으로 양으로 돌봐주는 흑인 점핑 아저씨와 메이블 부인. 인종차별이 아직도 여전하던 시절, 돌로 맞아도 대꾸도 못하던 흑인 부부는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던 카야를 다정하게 조용하게 도와준다. 옷을 받아주고, 음식을 나누어주고, 무엇보다 정을 준다.

 

그리고 찾아든 첫사랑. 글을 가르쳐주고 수학을 가르쳐주고 습지와 생물을 아끼는 마음이 카야와 같은 조디 오빠의 친구 테이트. 다정하고 사려깊은 테이트의 보살핌 속에서 카야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고 많은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테이트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테이트가 대학을 가고 나서 카야와의 연락을 무정히 끊어버리면서 카야는 다시 혼자가 되어 버리고. 이 아이는 언제쯤 혼자가 아닐 수 있을까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사랑이란 차라리 씨도 뿌리지 않고 그냥 두는 게 나은 휴경지인지도 모른다. (p264)

 

 

이 책은 사실, 테이트 이후에 카야를 이용하러 다가든 체이스 앤드루스의 시체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전과 현재가 교차하면서 카야의 외로운 인생과 체이스와의 악연, 그리고 체이스의 죽음으로 인해 카야에게 쏟아지는 의혹들이 하나하나 전개되어 가는 구조이다. 끝까지 읽고 나면, 뭐랄까. 스포일을 할 수 없으니 더 말을 할 수는 없겠지만, 카야라는 여성상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외롭고 또 외로왔던 한 아이가 자연과 동물들을 벗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감각적이면서도 정감있게 펼쳐지고 그 속에서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의 행태가 대비되어 그려지면서 카야가 그 속에서 세상과 마주하는 방법을 어떻게 터득하는 지를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뿐이었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p267)

 

외로운 사람들, 핍박받는 사람들은 서로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 점핑과 메이블 부부가 카야에게 보여준 사랑은 온갖 잘난척은 다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밖에 모르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착한 부부가 그런 중에도 흑인이란 이유로 받는 차별을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모습은 분노를 넘어서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카야의 외로움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그 시절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며 지낼 수 있었는가를 서글프게 그리고 있기도 하다.

 

 

"깜둥이 노인네가 마을로 가네. 조심해라, 깜둥아, 그러다가 넘어지지 말고."

소년들은 발끝만 보고 걷는 점핑을 놀려댔다. 한 소년이 허리를 굽히고 돌멩이를 주워들어 점핑의 등에 던졌다. 돌은 툭, 소리를 내며 점핑의 어깨뼈 바로 밑에 명중했다. 점핑은 비틀, 하고 고꾸라졌지만 다시 걸었다. 소년들이 배를 잡고 웃어대는 사이 점핑은 길모퉁이를 돌았다. 그러자 소년들은 돌멩이를 더 많이 주워 들고 뒤를 따라갔다. (p129)

 

 

좋은 책이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생태학자가 첫 번째로 낸 소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선이 날실과 씨실처럼 엮여 들어가고 그 속에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아냄과 동시에, 한 아이의 외로움과 사랑과 성장을 개연성있게 잘 그려내어서 읽는 동안 내내 상당히 몰입되는 책이었다. 마지막 부분까지 다 읽어내려가다 보면 아마 나처럼 가슴 뭉클함에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카야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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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08 0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을래요! 그리고, 앞으로 비연님께 더 많이 써달라, 더 많이 쓰시라 강권하는 단발머리가 되겠습니다.
길게, 기~~일게 써주소서!!!

비연 2020-01-08 08:48   좋아요 0 | URL
이 책... 마음에 들어하시리라..^^ 더욱 강권하는 단발님에 힘입어 더욱 열일 아니 열쓰하는 비연이 되기로 ㅋㅋㅋ

카스피 2020-01-09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며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비연 2020-01-09 21:29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저 북플마니아만 된 ㅠㅠ 서재의 달인은 안되었지만 축하 감사해요! 올해는 좀더 활발히 활동할래요^^*
 
수영하는 여자들
리비 페이지 지음, 박성혜 옮김 / 구픽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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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수영을 시작했다. 시작했다고 말하기에도 뭣한 게 한 번 갔다. (죄송) 하지만 8월부터 시작했으니까 이제 첫 걸음을 제대로 떼었다고 할 수 있다. (흠흠) 예전에도 수영을 여러 차례 시도해보았었지만, 늘 잘 뜨지도 않고 호흡도 안 되고 물만 먹고 힘들고 괴롭고... 그래서 포기하곤 했었다. 그러니까 수 차례의 시도 끝에 남은 건... '왕초보' 라는 타이틀 뿐이라는 분하기까지 한 결말이다 이거다. 그래서 이번에 시작할 때는 적쟎이 고민을 했었는데 아 나이들어 건강에 도움이 될 운동은 (내가 생각하기에) 요가와 수영이야. 라는 절박한 마음에 수영복이랑 수경이랑 수모를 사고 심지어 수영가방까지 사면서 결심을 굳혔다. 돈을 썼으니 적어도 시작을 하겠지 싶어서. 막상 가보니, 초초초초초보라고 얕은 물에서 (발이 닿는!) 어푸어푸만 시켜서 두려움이 실현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예전과는 좀 다르게 시원하다, 스트레스가 풀리네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이 먹어 뻔뻔해져서인가. 어쨌든 잘 시도한 거야 스스로에게 가득 칭찬을 퍼부으며 첫 수업을 잘(?) 마쳤다.

 

이 책을 펴면서, 나도 '수영하는 여자' 라는 자각을 가졌더랬다. 수영하는 여자가 어쨌다는 건가. 라고 궁금해하면서. 그런데 알고보니 원제는 'The Lido'. 그러니까 영국 브릭스턴이라는 곳에 있는 야외수영장을 둘러싼 이야기였다. 수지가 안 맞는다고 폐쇄하고 파라다이스 리빙이라는 거대기업이 여길 다 메꾸어 테니스장을 만든 후 회원제로 운영하겠다 라는 이야기에 반발하는 주민들의 이야기이다. 그 중심에, 케이트와 로즈메리가 있다.

 

그 거리 건너편에서 케이트는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케이트의 직업은 <브릭서튼 크로니클>의 기자이다. 지금 그녀는 채소들을 살펴볼 여유가 없다. 아니, 어쩌면 그저 뭘 살펴봐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봄이라 해도 케이트의 머리 위에는 구름이 끼어 있다. 그 구름은 그녀가 어딜 가든 따라붙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사람들을 헤치고 계속 걷는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로 기어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케이트에게 침대는 일이 없는 날이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거리 위의 그녀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어떻게든 떨쳐내려 한다. 그 소리에 휩싸여 짓눌리지 않으려 애쓴다. 계속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만 쳐다본다. - p8~9

 

케이트는 대학원을 나오고 지역신문의 기자로 일하는 20대 젊은이이다. 런던에 나와 공부하면서 위축감과 공황발작이 생겨버렸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에 어려움마저 느끼게 되면서 외롭게 시간을 때우는 청춘이다. 신문사에서도 반려동물 이야기를 쓰면서 원래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게 뭐인지도 가물가물한 상태이다. 온종일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산다.

 

로즈메리는 거의 평생을 이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곳으로 함께 이사한 사람은 남편 조지였다. 당시 이 아파트는 막 새로 지어진 건물이었고 로즈메리와 조지 커플도 막 결혼식을 올린 참이었다. 현관은 거실로 곧장 연결된다. 거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른편 벽을 가득 메운 책장이다. ... (중략) ... 로즈메리의 집 발코니와 가까운 공원 가장자리에는 붉은 벽돌로 된 나지막한 건물이 완벽한 푸른색 사각형으이 물을 감싸고 있다. 레인을 표시하는 로프들이 줄무늬처럼 나 있는 수영장이다. 수영장 테크에 띄엄띄엄 깔린 수건들도 보인다. 수영하는 사람들은 꽃잎처럼 물 위에 떠 있다. 로즈메리에게도 익숙한 공간이다. 그곳은 리도, 로즈메리의 리도이다 - p12~13

 

로즈메리는 86살의 노부인으로, 평생 이곳을 벗어난 일이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교감을 나누고 무엇보다 살아오는 내내의 추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리도를 사랑한다. 64년을 함께 했던 남편 조지를 2년 전에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도 수영장에 와서 수영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동네가 다 변해도 리도만큼은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리도를 없앤다는 소문이 들린다. 참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케이트와 로즈메리는 만난다. 처음으로 기사다운 기사를 쓰겠다는 설레임을 안은, 하지만 사람과 만나서 얘기하는 걸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케이트와 기자에 대한 불신이 있는 로즈메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어떤 관계가 될 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로즈메리가 "인터뷰할게요, 당신이 수영을 하겠다고 한다면." 이란 말을 던지면서부터 케이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로즈메리의 인생도 달라지게 된다. 이런 관계.. 아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어린 관계. 그렇게 수영장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들의 인생 이야기로 이어지게 된다.

 

로즈메리에게 있어서 리도는, 전부다. 수영을 사랑했고 남편 조지와 함께 하는 수영을 더욱 사랑했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 담을 넘어와 함께 수영을 하고 첫 경험을 한 것도, 어디 피서갈 것도 없이 일상적으로 가서 물 속에 몸을 맡기는 생활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남편을 바라보며 행복해한 것도, 전부 리도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로즈메리의 직장이었던 도서관이 없어졌을 때는 힘없이 그냥 그렇게 무너졌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다.

 

로즈메리 주변의,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따뜻한지.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프랭크와 저메인. 게이 커플이고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는 두 남자. 수영장을 지키는 제프, 거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시험을 준비하는 아메드. 청과물 가판대를 운영하는, 로즈메리가 자주 들러 야채랑을 사는 곳의 주인인 엘리스, 그리고 그의 아들 제이크. 로즈메리의 어릴 적 친구인 베티. 도서관에서 함께 근무했던, 주 1회 만나 커피 마시는 친구인 호프. 다들 로즈메리를 사랑하고, 리도에 얽힌 추억들을 사랑한다. 케이트에게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따뜻한 사람들 투성이다. 같은 신문사의 필과 제이. 늘 케이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홍보전문가 언니 에린. 이들이 리도라는 야외 수영장을 중심으로 하나 되고, 서로의 인생을 받쳐주는 모습들은, 아름답다.

 

그리고 케이트는 달라진다.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펴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맹렬히 돌진하고, 서툴렀던 감정표현도 하고, 숨겨두었던 공황장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인생이란 이래서 지낼 만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만치 잘 살게 된다. 이 중심에 로즈메리가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게 리도를 위해 열심을 다 하는 케이트와 로즈메리,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인생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참, 좋았다.

 

제이는 케이트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사무실 계단에서 그를 스쳐가거나 길 건너편에서 그에게 손을 흔들던 예전의 그녀 모습에 비해 지금은 얼마나 다른 모습인지. 사랑스러운 모습이야 똑같지만 지금은 꼭 그녀 안에 불이 켜진 것만 같다. 제이는 빛나는 케이트의 온기를 느끼며 서 있다. - p327

 

이 책의 마지막은 감동이다. 로즈메리와 케이트 다운 결론이라고나 할까. 슬픔보다는 다정함과 즐거움이 함께 하는 마무리였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아 나도 수영 시작하기 잘 했어. 라고 갑자기 뜬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기서 로즈메리 같은 분을 만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도 해방감을 느끼고 나를 찾는 과정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희망감이 생긴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다가온 소설이었다.

 

"리도에는 너무나 많은 우리의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바다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곳은 그들의 여름이며 자유입니다. 부모들에게 그곳은 아이가 처음으로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제 아이가 날아오를 수 있게 보내주어야 하는 순간들이 담긴 추억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저에게 그곳은 제 삶입니다." - p167

 

추억은, 머릿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나는 장소들, 물건들 하나하나에 배여 있게 마련이다. 평생을 잊지 않고 찾는 곳이나, 평생을 두고 가까이 하는 물건들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대상 이상의 것임을... 기억한다.

 

*  이 리뷰는 구픽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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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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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에서 책을 보내줄 테니 리뷰 쓰실 분 답장 주세요, 했을 때 냉큼 답장을 보낸 것은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우선 책이 공짜래 라는 반가움과 현대문학에서 냈으니 일단 믿고 받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신뢰감 등등이 결합하여, 내 손가락은 내 뇌에서 발생하는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냥 먼저 답장 버튼을 눌렀고 그렇게 내 개인정보를 날림으로써 공짜책+리뷰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책이 왔길래, 살짝 갸우뚱 하는 순간을 지난 후, 아하 하고 뜯어보니 이 책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700 페이지 가량의 두꺼운, 갈색 표지. 첫인상은 상당한 무거움. 그 두께와 그 색깔.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은 후회. 아 이 바쁜 와중에 이걸 어떻게 읽고 리뷰를 쓰겠다는 것이냐 라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버렸다. 어쨌든 책을 일단 받았고 책임감 강한 비연은 그날 저녁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라는 이 책을 왜 읽게 되었느냐 를 설명하기 위해 서문을 이리 길게 할애한다. 헥헥.

 

내용도 모르고 받아든 책은, 러시아 이야기였다. 1922년의 어느 법정. 러시아의 전통적인 귀족, 경마 클럽 회원이자 차르의 자문역인 분의 대자인, 니즈니노브고로드의 로스토프 가문의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이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라는 시로 인해, 메트로폴 호텔에 감금되는 형을 받는 것에서 시작한다. ".. 당신은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는 그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절대 착각하지 마시오. 만약 당신이 한 걸음이라도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총살될 테니까." 를 언도받는다는 것. 그러니까 일종의 가택 연금. 로스토프 백작은 파리에 있었고 그냥 그렇게 망명을 해도 되었을 것을 혁명 이후 러시아로 다시 돌아와 이런 형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로스토프 백작이 메트로폴 호텔에 구금된 약 30 여년간의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줄거리이다.

 

이런. 호텔 안에서만 뺑뺑 도는 이야기라니. 이를 어쩌나. 그 이야기가 700 페이지라니. 라는 약간의 좌절감이 엄습하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이 저자는 어떻게 700 페이지를 호텔 안에서의 이야기로 다 메꾸려고 하는 것이지? 라는 의아함과 함께. 하지만, 먼저 고백하건데 이 책은, 그러니까 로스토프 백작의 30년 호텔 구금기인 이 책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그 어느 책보다 재미있고 그 어느 책보다 진지하며 그 어느 책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으로 백작은 평생을 연금 상태로 지내야 하는 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이 목표를 이루려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지 궁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p52)" 그렇게 해서 백작은, 러시아의 마지막 르네상스적 인간에 속하는, 시와 예술과 문화에 정통하고 음악과 와인과 음식에 대한 조예가 깊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예의가 몸에 깊숙이 밴 로스토프 백작은 호텔에서의 나름의 삶을 꾸리게 된다.

 

백작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기를 맞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9살배기 여자아이인 니나였다. 우연히 이발소에서 멋진 콧수염을 날려 버리게 된 백작이 식당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찰나에 니나가 다가왔다.

 

"그거 어디 갔어요?' 아이가 다짜고짜 물었다.

"뭐 말이니? 뭐가 어디 갔다는 거니?"

아이는 백작의 얼굴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기울였다.

"아저씨 콧수염 말이에요."

...(중략)...

"그게 말이다." 백작이 대답했다. "여름을 보내려고 제비처럼 다른 곳으로 날아갔단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아이들이 모방하는 것을 좋아할 거라는 생각에서 한 손을 파닥이며 탁자에서 공중으로 움직여 제비가 날아가는 흉내를 냈다. (p70)

 

이렇게 시작된 니나와의 우정은, 그저 겉으로 들어난 호텔에 익숙했던 백작에게 호텔의 뒷면 구석구석을 찾아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주었고 수선실의 마리나를 알게 되었다. 함께 여러 장면들을 엿보고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고... 호텔에서 옛 친구인 미시카를 만나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고 호텔의 많은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게 되었다. 전설적인 식당 보야르스키의 에밀과 안드레이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백작은 백작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도 있는 이 곳에서 웨이터 주임을 하겠다고 요청하게 된다. 그 전 1926년 6월 22일, 백작은 호텔의 처마 위에 올라 일생을 마감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간혹 그 곳에서 함께 하던 늙은 잡역부가 건네준, 고향의 맛이 감도는 꿀을 음미하며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게 되기도 했다. 고향. 니즈니노브고로드. 이 곳은 백작에게 일생을 통해 버팀목이 되어준 곳임이 틀림없다.

 

호텔 안에서도 사랑은 있어서 여배우와의 밀회도 있었고 러시아의 유력 인사에게 개인 교습을 하기도 하고 미국인들과 친분을 쌓기도 하면서, 백작은 나름의 긍정적인 성격과 기품있는 태도와 그러면서도 잃지 않고 유지되던 유머러스함으로 삶의 지평을 넓혀갔다. 격조높은 집안에서 무엇 하나 부러운 것 없이 성장한 백작이, 어쩌면 그 호텔의 다른 사람들을 무시할 수도 있고 자기 혼자 만의 세계에 갇혀서 우울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백작은 모두를 합리적이고 겸허하게 대했고 누구에게나 친절했으며 어떤 일도 하챦게 여기지 않는, 정말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귀족의 기품을 가진 자로서 수많은 사람들과 쉼없는 유대관계를 맺고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주며 자신의 인생도 즐기는 모습을 유지하였다.

 

무엇보다 불쑥 니나가 맡기고 간 딸 소피야는 백작의 인생에서 큰 기쁨이 되었다. 난생 처음 여자아이의 양육을 맡게 된 백작의 허둥거림과 여러 생각들은 읽는 이에게 웃음을 띠게 하는 면이 있다. 영민하고 똑부러지고 세상에 대해 외향적인 태도를 가졌던 니나와는 달리, 소피아는 얌전하고 차분하고 성실하면서도 빛나는 아이였다. 그렇게 소피야는 로스토프 백작의 딸이 되어갔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딸. 책의 후반부에서 소피야에게 보여주는 백작의 사랑은 진실되고 놀라왔다.

 

"사실 그 부탁을 하려고 왔는데... 하지만 당신이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우리의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 건 소피아예요, 방금 전 당신과 소피야 둘이 있는 걸 보면서, 당신의 본능적인 자상함을 보면서, 소피아가 당신과 함께 있을 때 금새 편안함을 느끼는 걸 보면서, 소피야에게 필요한 것은, 특히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 애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엄마의 손길이라는 확신이 갑자기 들었어요. 엄마의 방식. 엄마의..."

그때 마리나가 그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솔직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알렉산더 일리치. 저한테 그걸 요구하진 마세요. 그건 백작님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예요." (p393-394)

 

미시카가 오랜 수형 생활을 마치고 백작을 다시 찾았을 때, 백작의 호텔 친구들의 따뜻함과 잘 지내고 있는 백작의 모습을 바라보며 남긴 말은, 백작이 수십 년간 호텔에 갇혀 있었음에도 결코 실패한 인생이 아니었음을 알게 한다.

 

자기도 반가왔다며 작별 인사를 마친 미시카는 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열더니, 잠시 멈춰 섰다. 분주히 돌아가는 풍성한 주방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신사적인 안드레이와 가슴 따뜻한 에밀의 얼굴을 바라본 다음 백작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 옛날 너에게 평생 메트로폴을 떠날 수 없다는 연금형이 선고되었을 때, 네가 러시아 최고의 행운아가 되리라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가 말했다. (p460)

 

책의 말미. 1954년. 백작의 활약은 읽는 내내 통쾌했고 멋졌다. 항상 시간을 흐르는 대로 두고 일초 일분에 연연해하지 않던 백작은, 정말로 일생일대의 행동을 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누구보다 치밀하고 구체적인 계획 하에 매분 매초를 세어가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눈치챌 수 없도록. 그렇게 해서 이루어낸 일은... 아 읽어봐야 한다. 주먹을 쥐고 초조해서 나 혼자 침대 위에 벌떡 일어나 한자 한자 읽어내려갔던 그 순간을 함께 느껴봐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마음에 아릿함이 스미는 그 장면.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될 것 같다.

 

책 속에서는 백작의 생활 곳곳에서 몽테뉴와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이야기하고, 미국과 프랑스와 영국과 러시아를 이야기한다. 호텔 안의 늘 비슷한 생활이 있을 지라도 세상은 변하고 있었고 러시아는 특히나 그 당시 급격한 변화의 시기였고 그 영향은 호텔에도 고스란히 미쳤다. 그런 변화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배웠던, 익혔던 귀족으로서의 자긍심과 기품을 유지하는 백작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카사블랑카>. 이 영화의 비유는 너무나 적절하여 다시한번 봐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험프리 보가트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가 그랬던가.. 라는 기억에 자리하지 않은 그 잠깐의 장면을 보기 위해서 정말 <카사블랑카>를 조만간 보게 될 듯 싶다.

 

몰랐는데, 오바마 前 미국 대통령이 2017년에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 11권 목록 중에 이 책이 들어 있단다. 저자인 에이모 토울스의 책은 우리나라에 <우아한 연인>으로 번역되어 나온 게 있고, 이 분은 한 권 쓰는 데 4년씩을 잡고 있다니 우선 <우아한 연인>부터 사서 읽고 다음 책을 목빼고 기다릴 예정이다. 최근에 읽은 소설 가운데, 이 <모스크바의 신사>는 최고의 소설이었다. 아마 내게도 올해의 가장 감명 깊었던 책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될 확률이 매우 높은. 강추한다.

 

* 앞에도 썼지만, 이 리뷰는 현대문학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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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8 1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18-07-08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왕~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비연 2018-07-08 14:02   좋아요 1 | URL
꼭꼭 읽어보시라고 추천요~^^

stella.K 2018-07-08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니 이렇게 좋아하시면서
저한텐 신청 거절하길 잘했다고 하시면 반칙 아닙니까?ㅋ

근데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읽었으면 써야죠.
돈 주고 샀으면 적어도 리뷰를 써야한다는 의무는 지지 않아도 되고,
쓴다고 해도 아무 때나 쓸 수 있잖아요.
근데 기한을 정하고 그 안에 써야한다면
예전에 이렇게라도 해서 글 쓰는 습관을 들여야지 했는데
지금은 반대가 됐어요.
결국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겠죠.
전 이 책 중고샵에 혹시 나오면 그때 한번 읽어볼까 해요.ㅋ

비연 2018-07-08 18:57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께 잘했다고 했던 게 이제야 기억이 나네요. 이런^^;;;;
스텔라님도 읽고 나면 저처럼 좋아하실 것 같은데..
사실 리뷰 쓴 지 한참만이에요. 의무로 쓰겠다고 생각하니 금새 읽고 바로 쓰게 되네요.
공짜로 받지 않아도 읽으면 쓰고 그래야 하는데 말이죠ㅜ (반성중)

레삭매냐 2018-07-08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구 달리다가 로맹 가리의 다른 소설 때문에
잠시 유보되었습니다.

빨랑 <별을 먹는 사람들>부터 먹고 나서,
아니 읽고 나서 재도전해야겠습니다.

비연 2018-07-08 21:24   좋아요 0 | URL
아. 꼭 읽어보시길. 꼭 재도전!
마지막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