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유럽을 간 것은 22살 때였다. 그 이후로 숱하게 방방곡곡을 다녀왔지만 그럼에도 내게 있어 '런던'이 특별한 건, 그 처음의 유럽여행에서 처음으로 간 나라가 영국이고, 처음으로 간 도시가 런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London In'을 한 셈이다. 그 때의 그 설렘, 그 기대, 그 (약간의) 두려움... 이런 느낌은 지금도, 귀가 쿵쿵 울릴 정도의 벅찬 감동으로 느껴진다. 멋모르고 떠났던 거였는데, 지금 돌아보면, 참 좋았다. 젊었고 처음이었고.. 그래서 모든 게 새로왔고 즐거웠고 다정했다. 내가 <자기만의 방>을 읽으면서 버지니아 울프를 새삼 새롭게 기억하는 건, 그 런던을 추억하며 읽었던 그녀의 책 때문이기도 하다.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이 책.
그녀의 시선을 따라, 런던 부두를 걷고 옥스퍼드 거리를 지나, 칼라일의 집을 거쳐, 수도원과 대성당과 하원의사당을 향하는 시간들은 즐거웠다. 물론 이 책을 무슨 여행기라고 생각하며 읽으면 실망일 수 있겠지만, 애시당초 사진 왕창 들어가고 지나가는 건물이나 사람이나 맛집이나 이런 것들에 집중해 쓰는 책은 여행기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 나의 정서상, 이렇게 어딘가를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책이 좋다. 사진은 한두 장. 그것도 흑백.
어디어딜 다녀왔어. 이런 게 무슨 소용인가. 이런 말 하는 자체가 유치하다. 몸과 발이 가지 않고 정신과 영혼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이란 걸 할 수 있다... 고 생각한다. 이 아주 얇은 책에서 난 예전 내가 다녀왔던 런던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가서, 버지니아 울프의 그 발자취대로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과 맛집과 사람과.. 그 사진들은 저 뒤로 던지고, 그냥 걷고 그냥 생각하고.. 손을 들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일 따위는 접어둔 채로 말이다... 코로나는 참, 많은 것을 못하게 한다. 그 때, 그 생각이 들었을 때 다녀와야 했던 거구나.. 싶다.
멈추고, 돌아보고, 음미하고, 행동을 삼가라. 이 옛 경구들이 늘 우리를 충고하고 타이르는 셈이다. (p59)
"인생은 농담이다. 세상만사가 그렇게 가리킨다.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은 그것을 알고 있다." 게이가 웃으며 말한다. (p65)
몇 가지 문구들을 한번씩 더 읽으며, 이제 버지니아 울프의 다른 작품을 통해 그녀의 정신세계를 느껴보자.. 마음 먹어본다.
사고 싶은 책은 바로 사야겠지. <수용소군도>가 도착했다. 솔제니찐의 책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암병동>도 읽었는데, 러시아 작가를 좋아해서인지 꽤 좋았었다. 특히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수용소 안의 생활이 너무나 일상적이라 좀 놀랐던 것 같다. 물론 그 안에 내재된 폭력에 대한 내용들도 섬뜩했지마. <수용소군도>는 그야말로 다큐멘터리라 불릴 정도의 긴 저항문학이고 솔제니찐은 이 책을 쓰는 바람에 소련에서 추방당했었다. 6권이나 되니 이걸 언제 읽을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일단 뿌듯한 마음으로 책장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두었다. 시간 나면 제일 먼저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주일 정도 정말 하루에 잠을 서너시간 밖에 못 자면서 일했고 (그러나 스트레스는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오늘 어쨌든 그 중 일부를 완료해서 잠깐 짬이 났다. 내일부턴 논문을 수정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지만, 다 잊고 오늘은 와인과 고기를 벗하며 영화나 한편 보려 한다. 문자를 읽는 자체가 지금 내겐, 좀 지치는 일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