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어제 한국시리즈가 끝났기에 나의 2020년은 끝났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내가 좋아라하는 두산베어스가 준우승에 그친 바람에 내상이 있기는 하지만, 덕분에 즐거웠고 끝나서 슬프다. 이제 스토브리그를 앞두고 있고... 아직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못 봤기에 그거나 보면서 이 겨울을 나려고 한다. 남겨둔 야구 드라마가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야, 위안삼고 있고. (별 게 다 위안입니다, 그려)


한 달 여 와일드카드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야구 보느라 야구 응원하느라 야구 신경쓰느라 할 일을 자꾸 미뤄서 이젠 독촉의 지점까지 다다라 매일 쫓기고 있는데, 이제 일을 해야겠다 싶다. 이 중엔 뭐라 하는 사람은 없으나 늘 내 마음 한 귀퉁이에 돌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푸코. 



'성생활에 내재하는 잠복성의 원칙에 의해,' 고백의 기술에 의해 성의 진실을 끄집어낼 필요가 있는 것은 성의 진실이 말하기 어렵거나 품위의 금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성의 작동방식이 불분명하기 때문이고, 성이 본래 포착하기 어렵고 성의 에너지와 메커니즘이 감추어지기 때문이며, 원인으로 여겨지는 성의 영향력이 일정 부분 은밀하기 때문이다. (p80) 


진실은 고백함으로써 진실을 완성된 상태로 분명히 드러낼 주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진실은 말하는 사람에게 현전하나 불완전하고 그 자체로는 맹목적이어서, 진실을 전달받는 사람에게서만 완결될 수 있다. 이 모호한 진실의 진실을 말하는 것은 후자의 몫이다. 고백하는 사람이 말하는 내용에 대한 해독이 고백의 내용에 덧붙여져야 한다...(중략)... 듣는 사람의 기능은 해석하는 것이다. 고백과 관련하여 듣는 사람의 권력은 고백이 행해지기 전에 고백을 요구하거나 고백이 이루어진 후에 결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고백을 가로질러 고백을 판독함으로써 진실한 담론을 구성하는 것이다. (p81) 



참 어렵게도 썼수, 푸코. 번역이 아무리 영어식으로 되었다고 해도 어쨌거나 이렇게 한 문장에 수많은 단어들을 우겨넣은 것은 푸코겠지. 푸코는 아마 그럴거야. 나는 다 이해되는데 너넨 왜 이해가 안 된다고 하니... 읽는 사람의 능력을 고려해서 쓰는 것은 사상가의 몫이 아니거들. 끄덕끄덕. 눼에. 


<성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적어도 3권의 책을 써낼 때는 머릿속에 뭔가 쭈욱 정리된 게 있었으리라. 내가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참으로 대단하다. 성의 역사를 권력의 담론으로 해석하는 글을 3권이나 써낼 생각을 하다니. 근데 읽어나가다 보니, 하, 이 사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구나 싶다. <성의 역사>는 푸코 철학의 결정판과 같은 것이라 (죽기 직전까지 썼으니) 이걸 이해한다면 감옥이나 병원 등을 대상으로 썼던 권력의 담론들을 재정리할 수 있겠구나. 근데 예전에 읽었던 그 책들은 어째 단어 한조각 생각나는 게 없는 것인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억압이나 우리가 알고 있다고 추정하는 것에 비례하는 무지보다는 오히려 지식을 생산하고 담론을 증가시키고 즐거움을 유발하고 권력을 낳는 실증적 메커니즘으로부터 출발하여, 이 메커니즘이 출현하고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주의 깊게 추적하고 이 메커니즘과 깊은 관계가 있는 금지나 은폐의 진상이 이 메커니즘과 관련하여 어떻게 배치되는가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우리의 작업은 이러한 지식의 의지에 내재하는 권력의 전략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생활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대상으로 지식 의지의 "정치경제학"을 구성하는 것이다. (p88-89)


1권의 부제가 '지식의 의지'인데, 그러니까 왜 이 책 제목이 이것인가가 여기쯤에 명확하게 나와 있다. 지식의 의지에 내재하는 권력의 전략을 규정. 그 대상 사례가 성생활이다 라는 것. 결국 푸코는 정치경제학을 '성'의 메커니즘을 통해 말하고 싶다는 것이로구나.


이제 겨우 100페이지쯤 읽었고 뇌에서 선명하게 그려지는 이미지가 없어서 뭐라고 떠들어댈 것도, 의지도 없지만, 어쨌거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뭐랄까. 뇌를 좀 refresh 하는 기분이랄까. 한동안 이 느낌을 누려보고자 한다. 이제 야구도 끝났으니 (다시한번 강조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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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25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1권 다 읽었는데 비연님 이 페이퍼 인용문 왜이렇게 낯설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푸코 화이팅이요!! 💪

비연 2020-11-25 18:35   좋아요 0 | URL
그것은,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ㅎㅎㅎ;;;;;; 푸코 화이팅입니다!

수이 2020-11-25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경제학....... 제가 싫어하는 거....... 저도 다 읽었는데 낯설어요;;; 또다른 인생의 낙이 올 거예요~ ^^

비연 2020-11-25 18:37   좋아요 0 | URL
푸코의 매력은 볼 때마다의 낯설음일까요. 볼매 푸코. ㅎㅎ;;
또다른 인생의 낙은 내년 야구 다시 시작할 때가 될 듯. ㅋㅋ

유부만두 2020-11-25 1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시즌은 잘 하나 싶다가 얼렐렐레 망쳐버린 엘지 덕분에 야구 끊어보려구요 ;;; 애증의 베이스볼입니다.

비연 2020-11-25 20:57   좋아요 0 | URL
올해 엘지 팬들이 다들 이런 상태..이나, 그래도 야구는 계속 되어야죠^^ 유부만두님, 홧팅!

공쟝쟝 2020-11-26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 다산 듯한 비연님 말투 ㅋㅋ

비연 2020-11-26 07:37   좋아요 0 | URL
푸코가 저를 이리 만든 걸까요....

공쟝쟝 2020-11-26 08:32   좋아요 0 | URL
야구가....

단발머리 2020-11-26 08:57   좋아요 0 | URL
야구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구야구

비연 2020-11-26 08:59   좋아요 0 | URL
들켰....;;;;;;;;;;

블랙겟타 2020-12-03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대로 저는 야구의 맛을 알았어요...(처음 해봤거든요. 봐주세요 ㅠㅠ)

비연 2020-12-04 18:26   좋아요 1 | URL
... 처음 해봤으니 봐달라는 말에.. 불끈 쥔 주먹을 풉니다... 으흑.
지금은 스토브리그. 이건 뭐, 한국시리즈보다 더 슬프네요.. 막 곳간이 비고 있어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