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까지 많이 바쁠 예정이라, 조금 일찍(?) 시작해볼까 하고 들었다. 1권은 얇군.. 하면서. 4권은 사야지.. 하면서. 경자년을 푸코로 마무리하게 되었다는 것은 대환영인데, 차분차분히 이해하면서 제대로 읽을 틈이 날 지 모르겠다. 암튼 일단 시작.

 

억압은 사라지라고 정죄하는 것으로뿐만 아니라 침묵하라는 명령, 실재하지 않는다는 단언, 따라서 그 모든 것에는 말할 것도 볼 것도 알 것도 없다는 확증으로 작용한다. 이런 식으로 균형을 잃고 위선의 논리에 빠진 부르주아 사회는 어쩔 수 없이 몇 가지 타협을 하게 된다. 비합법적 성생활에 정말로 자리를 내줄 필요가 있다면, 다른 곳에서, 즉 생산의 회로가 아니라면 적어도 이윤의 회로로 편입될 수 있는 곳에서 소동이 일도록 하라. 유곽과 요양원은 이와 같은 허용의 장소가 된다. (p11)

 

어찌 보면 성생활과 억압, 이것을 연결하는 것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우 단순명료할 수 있을 지 모르겠으나 푸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푸코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는 거겠지. 그가 말하는 "억압의 가설"은 1) 성의 억압은 정말로 자명한 역사적 사실일까? (역사와 관계된 문제) 2) 권력의 메커니즘, 특히 우리 사회와 같은 곳에서 작용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은 요컨대 억압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역사-이론적 문제) 3) 억압을 겨냥하는 비판적 담론은 그때까지 이의없이 기능한 권력 메커니즘의 통로를 차단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억압'이라고 부르면서 비난하는 (그리고 아마 왜곡할) 것과 동일한 역사적 망(網)의 일부분을 이루는 것일까? 억압의 시대와 억압의 비판적 분석 사이에 정말로 역사적 단절이 존재하는 것일까? (역사-정치적 문제)의 세 가지 의혹에서 출발한다 (p18). 흥미롭다.

 

 

 

 

 

 

 

 

 

 

 

 

 

 

 

 

 

어제 다 읽은 이 책의 말미에 이런 말이 있었다.

 

마지 피어시가 말했듯 삶과 사랑은 버터와 같아서, 둘 다 보존이 되질 않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 (p385)

 

그렇구나. 왠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구절이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서. 매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삶과 사랑이라니. 삶도 사랑도 그냥 그대로 쑥쑥 커나가는 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오늘도 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인가. 사랑은 어쩌지? 남녀 사랑만 사랑은 아니니... 인류를 새롭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자.. 라고 하려니, 아 트럼프의 소송 기사가 뜨네? 인류애 소멸. 그냥 내 반려 식물을 새롭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자.... 호프 자런의 책이 한 권 더 나와 있던데 읽어봐야겠다. 이 분, 이 <랩걸>에서 쓰다 만 얘기들이 정말 많아 보인다.

 

 

 

 

 

 

 

 

 

 

 

 

 

 

 

 

 

추워졌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스미는 요즘이다. 책읽기에 좋은 계절에, 일을 하는 나지만, 삶과 사랑을 새롭게 만들어내겠다는 일념으로 오늘 하루도 버텨보자. 이렇듯, 책은.. 내게.. 의지를 준다. 버텨낼 의지. 고맙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11-05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앗 시작하셨군요. 저도 시작해야 할텐데..
사랑은...여성주의 책 같이읽는 멤버들에 대한 사랑으로 늘 거듭나면 되지 않겠습니까? 후훗.

그런데 인용해주신 푸코..저는 어렵네요 ㅠㅠ

비연 2020-11-05 14:00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을 바쁘다고 뜨문뜨문 읽어보니.. 나중엔 뭔 이야기였지 싶어져서 좀 일찍.
늦게 시작해도 다락방님이 저보다 빨리 읽는다는 것은 이미...수차례 입증된 ㅜㅜ
사랑은..ㅎㅎㅎㅎ 몽실몽실 멤버들에 대한 매일의 사랑으로 거듭나고 있긴 하지요 ㅋㅋ

인용한 글은, 맥락없이 뚝 떼어와서 그렇고 쭉 따라 읽으면 어렵지 않을 거에요.
근데 뭔가 번역 탓을 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 들기도 합니..다...홋.

단발머리 2020-11-05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시작하셨네요. 저는 책을 꺼내놓기만 했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사랑으로 거듭나는 일에 저도 한 표합니다!!!

비연 2020-11-05 19:15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얼른 시작해서 함께 읽어요! 우리는 늘 사랑이죠 ㅎㅎㅎ

수이 2020-11-05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과 사랑..... 버터 그리고 푸코....... 이 모든 게 왜 이다지도 다정하게 들리는 건가요 비연님, 오늘밤에는 푸코를 야금야금 씹어먹어봐야겠어요. 푸코 읽다가 버터빵이 먹고싶어지면 어쩌나..... 이런 쓰잘데없는 걱정을 마구 하면서.....

비연 2020-11-05 19:16   좋아요 0 | URL
지금쯤 푸코를 야금야금 씹어먹고 계실지. 푸코와 버터빵! 우째 어울리는 느낌이 드는데요 ㅎㅎㅎ 전 야구와 꼬깔콘 중..

syo 2020-11-05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터와 버텨보자의 라임을 느꼈다....
오늘이 엘지의 올해 마지막 경기라는 소식이 들리던데...ㅠ

비연 2020-11-05 19:40   좋아요 0 | URL
오 부지불식간에 제가 시인의 본능을 발휘? 크크~ 엘쥐는.. 그게 운명. 켈리는 몸풀다 집에 갔을듯.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어릴 적을 생각하면 기억나는 나무가 하나 있다. 모질고 긴 겨울 내내 도전적인 초록색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던 푸른 빛이 도는 은청가문비였다. (p46)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나무가 있다. 아니, 식물인가. 어딘가에 딱 고정되어 나의 어릴 적 추억을 함께 한 것은 아니고 그냥 그 품종이 내게 와닿는 식물. 코스모스.

 

왠 코스모스? '코스모스 한들한들~' 노래 부르던 김상희씨가 생각난다.. 고 한다면 그건 연식 드러나는 얘기고 내게 이 코스모스라는 식물은 외로움을 달래주던 존재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이란 걸 한 내가,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녔지만 속으로는 외롭고 외로와서, 학교 가는 길 길을 따라 쭈욱 피어있던 코스모스 분홍빛 꽃에 위안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예전 학교와 달리 전학온 학교의 아이들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더 깔끔하고 더 잘 살고 더 좋은 부모 밑에서 성장한 것 같은 아이들인데 참 못된 애들이 있었다. 동끼리 나눠서 서로 욕을 하고 (정치꾼들처럼 이 동에서 반장이 나오면 저 동에서 다음 반장이 나와야 한다 이런 걸로 싸우더라는) 친구 쟁탈전을 벌이고... 그 동네에 원주민이라 불리던 아이들을 괴롭혔다. 원주민이라니. 내 귀를 의심했었는데.. 그러니까 그 동네가 개발되기 전에 원래 살던 사람들이 거의다 이사를 갔음에도 남아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우리 반에도 여자아이 한 명이 있었다. 장의사 집 딸이었고, 집에서 잘 돌봐주지 않는지 항상 지저분한 행색으로 학교에 나왔고 공부도 잘 하지 못했었다. 그 아이를 어찌나 사악하게 따돌리고 괴롭히는지.. 순진했던 나는,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한 학기 정도 학교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으며 지냈다. 그 전 학교에서는 난다 긴다 했던 나였는데 말이다. 어쨌든 그 아이는 결국 못 버티고 전학을 갔고.. 난 학교 아이들한테 정을 못 붙인 채 겉도는 한 학기를 보냈었다. 아침마다 학교 가기가 정말 싫었는데, 그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참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요즘도 코스모스를 보면, 그 때 생각이 아주 선명하게 난다. 그 때의 괴로움, 무서움, 불안함... 그리고 위안이.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p52)

 

좋은 글이다. 그냥 말했으면 그저 그런 잠언에 불과했겠지만, 이 작가의 말은 식물을 바라보며 과학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성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내어서 마음에 와 닿는다. 소란스럽고 야단스러운 걸 싫어해서인지, 작가의 글이 좋다. 과학자로서, 여성 과학자로서의 고충을 그려낸 부분도 좋다. 아니 사실 아리다. 어디나 참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게 어떨 땐 위로이고 어떨 땐 고통이다. 세상에서 진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어딘가는 훨씬 나은 상태여야 하지 않는가. 여성으로 태어나서 느끼는 건 왜 비슷할 수 밖에 없는 건가. 라는 약간의 좌절감도 스민다. 관련해서 사둔 몇 권의 책이 나를 째리고 있다. 읽을 책이 많구나. 할 일도 많고.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도 이럴 때가 좋은 거겠지, 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일이 대충 끝난 후, 연말 연초에는 일이 주 독서만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어디로 가든, 집에 쳐박히든. 사람들의 말이, 글이, 영상이 주는 재미가, 다 나의 시간을 그냥 잡아먹는 건 아닌가 두려울 때가 있다. 잠시 내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0-11-03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랩 걸 참 좋지요? 저는 특히나 같이 연구하는 이성 동료와의 관계가 인상적이더라고요. 그 부분에 되게 집중해서 보았던 기억이 나요.

라로 2020-11-03 12:26   좋아요 1 | URL
저두요!!

비연 2020-11-03 14:23   좋아요 0 | URL
반 쯤 읽었는데, 재미있네요. 독특하고. 이성 동료와의 얘기는.. 부럽다 부럽다 하면서 보고 있어요.
인생의 소울메이트랄까. 성적인 끌림 없이 그렇게 일에 파묻혀 서로를 보완하고 지지하는 관계. 멋져요~
 

 

 

 

 

 

 

 

 

 

 

 

 

 

형님, 책이 나오면 제가 나서서 널리 읽히도록 하고 싶네요.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절대 보여 주지 마세요." (p258)

 

100세 시대라고 한다. 60대는 이제 노년이 아니잖아, 청춘이지, 라고 말한다. 80대에 돌아가신 분 장례식장에 가면 사람들은 그런다. 너무 일찍 가셨어. 그렇지만 그건 그냥 하는 소리일 뿐. '사회적으로는' 60세가 넘어가면 그냥 노인이다. 국민연금도 65세는 되어야 나오고, 대중교통 수단 무료 이용권도 70세로 높여야 한다고, 고령인구 많은데 60대가 무슨 노인이냐며 이야기하지만, 60대의 사람들을 일할 사람으로 보진 않는다. 아니 일할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아무도 안 하려는 일, 막 부려도 되는 일, 허드렛일 등에 넣어도 될 만한 연령대의 '노인'으로 본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삶에 대해 낙관적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삶에는 비상구가 있기 마련이고, 살고자 하면 살아남는 법'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갈 날들을 근심하지 않았고 노후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퇴직하자마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들이 연달아 돌출했다. 언제 어디서나 있을 것이라 믿어 왔던 삶의 비상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p15)

 

38년간 공기업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한 조정진님에게 편하게 노후를 누릴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없어졌을 때, 세상은 냉혹한 현실로 다가온다. 은행에서는 대출을 갚으라고 닥달을 하고, 아들은 비싼 학비가 드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하고.. 그래서 가진 경력으로 취직을 다시 해보려 하지만 '나이 잡수신 노인을 어떻게 부려 먹습니까.(p16)' 라는 얘기에 머물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임계장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임계장. 임시 계약직 노인장(長)을 줄인 말. 그들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사지 육신 멀쩡하게 몸으로 버틸 수 있는 체력만을 요구한다. 그 전에 있었던 경력도, 지식도, 다 필요없고 그냥 '사람' 하나 때우는 일에 넣었다가 몸 상해 버티기 힘들어지면 그냥 바로 갈아끼우는 부품 취급을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대우는 좋아지지 않고 돌아오는 건 싫은 소리와, 자르겠다는 소리와, 책임지라는 소리 뿐이다. 직장이라고 나갔는데 어디 편하게 머물 곳도 없고, 제공하는 장소는 벌레가 나오고 비좁고 추운 곳이다. 최저임금이 도입되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정상화해주는 게 아니라, 사람 수를 줄이고 총액을 맞추는 구조로 운영된다. 남은 사람은 남아서 고맙다 열심히 일하지만, 한 사람이 서너 명, 어떨 땐 예닐곱 명의 일을 해야 한다.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문득 터미널을 둘러봤다. 구석구석을 쓸고 있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들과 늦은 오후 영화관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터미널만 봐도 인력의 80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그중 많은 수가 임계장들이었다. 이 고단한 이름은 수많은 은퇴자들이 앞으로 불리게 된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임계장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p39)

 

나는 아니야. 난 나이 들어도 저렇지 않을 거야. 라고 대책없는 낙관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는 나같은 사람에게 (사실,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아직 당해보지 않은 일이니) 이 대목은 가슴에 쿵, 하고 내려앉아 자욱을 남긴다. 드라마나 영화나, 잡지나, 어디에서든 나이들어 전원생활을 하고, 나이들어 취미생활을 하고, 나이들어 못해본 것들을 이루어내는 사람들 이야기 투성이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훨씬 많은 사람들은 70세가 넘어서까지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이 내 것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혹여 운이 좋아 내 것이 되지 않더라도,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처할 수 있는 상황이다. 누군들, 삶의 예측할 수 없는 길을 비껴갈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의지만 있으면 못할 게 뭐가 있어? 나도 이 바닥에서 밥벌이하면서 위에서 시키는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 해냈다고! 밥벌이가 그렇게 쉬워?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 돼. 늙은 영감탱이를 써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지금 어디서 불평이야?" (p42)

 

"너 이 자식, 대대손손 아파트 경비나 해처먹어라." (p78)

 

"어이, 경비, 이 새끼, 너 전에 공기업에 근무했었다며? 거기서 국민 세금을 마구 쓰던 습관을 아직도 못 고쳤군! 주민들 피 같은 돈 들어가는 공동 수돗물을 펑펑 써? 이 새끼, 당장 잘라야 할 놈이네. 네가 버린 수돗물 값은 네 월급에서 까게 해주마. 너 오늘 아주 제대로 걸렸어." (p98)

 

"뭐야, 이 새끼, 신고를 하든 조치를 하든, 지금 바로 해! 당장 살 수가 없는데 내일이 뭐야, 내일이. 당신 그런 일 하라고 월급 주는 거 몰라? 한번만 더 오밤중에 오토바이 소리 들려봐. 가만두지 않겠어." (p101-102)

 

"아빠, 저 경비 아저씨, 참 힘들겠네."

아빠가 대답했다.

"응, 많이 힘들 거야. 너도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저럼 된다.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해." (p103)

 

읽으면서, 슬프다 씁쓸하다 이런 게 아니라 고통이 찾아왔다. 사람이 사람한테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비정규직 노동자들, 나이든 노동자들, 시급 받으며 온갖 일 다하는 사람들이라고 함부로 보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들 성질머리를 있는 대로 퍼붓는 이런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한테도 비수인데 직접 듣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다가갈까.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 된 거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p122)

 

이불을 꺼내려고 이불장을 열자 벌레들이 무더기로 흩어졌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숙소는 무엇보다 청결해야 한다. 자주 세탁하고 해충을 없애지 않으면 여러 잡균에 감염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 숙소의 침구에는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전임자들의 20년 묵은 체액과 체취가 배여 있었다. 이 냄새에 적응해야 경비원 생활을 할 수 있다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터미널 고속에 입사해서 퇴사할 때까지 숙소에서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파트 경비원을 하며서 악취 나는 쓰레기를 매일 주무르고 음식물 잔반통을 씻으며 살았기 때문에 왠만한 냄새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경비원 숙소의 냄새를 맡으며 잠을 잘 수는 없었다. 1980년대 군대 내무반보다 더 못한 취침 환경이다. 자는 곳이라기보다는 심야 근무를 교대하기 위해 잠시 대기하는 곳에 가까웠다... (중략) ... "당신들이 쓰는 침구를 왜 회사가 세탁해 줘야 합니까. 그런 건 당신들이 빨든지 새로 사든지 알아서 해요." (p213-215)

 

아는 분이 그런 말을 하셨었다. "사람 하나하나는 하나의 우주다. 한 명이 고통받는다면 그것은 하나의 우주가 침해받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아래, 노인이라는 이름 아래,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주여야 할 사람을 뭉개고 멸시하고 하찮게 대하는 곳들이 있다. 힘이 없으니, 돈이 급하니, 일을 해야 하니, 참아나가는 그들의 마음 속 우주는 정말 시커멓겠다.. 싶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자리에 그 사람이 필요해서 앉혔으면 그 직종 자체를, 그 사람 자체를 적어도 기본적인 예의는 갖추고 대해야 하고 최적은 아니라도 기본적인 살만한 환경은 제공하면서 일을 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역지사지라고. 말하는 너같으면 그런 데서 일하겠는가,  사람 대접 못받는 직장에서 일하겠는가.. 묻고 싶어졌더랬다.

 

 

가족에게 부탁이 있다. 이 글은 이 땅의 늙은 어머니, 어비지들, 수많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나의 노동 일지로 대신 전해보고자 써낸 것이니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 (감사의 글 中)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을 억눌러 와서인지, 쌓인 고통이 터져나와서인지, 이 책 제일 마지막 이 대목을 보고 새벽녘에 혼자 펑펑 울어 버렸다. 글쓴 이의 심정이 이 짧은 글에 집약되어 나타난 듯 하여. 내가 괜히 미안하고 감사해서 더 눈물이 쏟아졌다. 학술적인 글, 비정규직이 어떻다 고령인구가 어떻다 어쩌구저쩌구 공부한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론들 다 갖다붙여서 써내는 글들의 공허함을 확 걷어내고, 정말 그 속에서, 사실은 지난 세월 동안은 그 속과 전혀 무관하게 살았으나 이제는 그 속의 일부가 되어서 담담히 써내려간 이런 글이 훨씬 더 명징하게 현실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더더욱 이 글을 쓴 이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임계장을 하고 계시겠지만, 이 글이 널리 널리 퍼져서,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글들을 내주셔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제도가 변하는 데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뿐이다.

 

 

*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살아야, 사람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버 2020-10-18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임씨 성을 가진 ‘계장‘ 직급을 뜻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수명은 길어졌는데, 정년퇴직 나이는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지금 막 노인이 된(또는 될) 세대가 위로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자식도 키웠는데, 노후도 스스로 해결해야 해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비연 2020-10-18 23:55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엔 몰랐었어요. 사실 알기 힘든 게 사실이기도 하고.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나이에 맞게, 경력에 맞게 일할 자리들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수명도 길어졌는데 연륜과 더불어 쌓인 것들이 사장되는 것도 아깝고.. 무엇보다 노후문제도 있고 하니.
 

 

 

 

 

 

 

 

 

 

 

 

 

 

 

북유럽 스릴러. 하지만 이 책은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보는 차별적인 시선'에 대해서일지도. 그래서 살인사건의 전모가 밝혀졌을 때 (사실 뭔가 좀 급하게 서둘러 많은 것이 해결된 느낌도 있었지만) 씁쓸함이 더 강하게 남는 것 같다.

 

오름베리라는 곳이 있다. 낙후된 곳. 그 옛날엔 제철소가 있었고 제분소가 있었고 사람들에겐 직업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 이전하고 남은 것은 변화라고는 없는 매일의 일상과 그 곳에서 먼지처럼 눌러 앉아 사는 사람들, 그리고 난민수용소만이 있을 뿐이다. 산업이 나가고 들어온 것은 난민수용소. 보스니아나 아랍의 이주민들이 갈 곳 없이 떠돌아다니게 하지 않으려고 정부에서 이 곳에 그들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지원을 하고 있다. 이제는 쇠퇴해가는 이 곳에서, 대놓고 뭐라 하진 않으나 그 난민들에 대한 두려움, 증오, 역차별당한다는 실의.. 이런 것들이 동네의 저변에 무겁게 깔려 있다.

 

여기서 성장한 경찰관 말린. 그녀는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고 이제 스톡홀름의 변호사와 결혼을 해서 완전 탈출을 할 수 있는 기회 직전에 이 곳에 다시 돌아온다. 지긋지긋한 곳. 하지만 일상적인 경찰 업무에서 벗어나 좀더 스릴 있는 살인사건을 다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돌아온다. 그것이 그녀의 인생에 크나큰 전환점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테고.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동네가,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그 동네가 그녀에게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점점 느끼게 된다. 그녀에겐 엄마가 있고 고모 마르가레타와 사촌 망구스가 있다. 오름베리의 터줏대감들. 외로운 사람들.

 

엄마 집에서 지내기로 한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다 큰 어른은 부모와 함께 살아서는 안 되는 법이다. 마르가레타와 망누스가 어떻게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망누스는 25년 전에 그 집에서 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마르가레타에게는 달리 아무도 없고, 망누스도 마찬가지다.

외로움은 분명 사랑보다 훨씬 강력한 접착제다. (p310~311)

 

마지막 대목에서 멈칫, 한다. '외로움'은 사랑보다 훨씬 강력한 접착제라니.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어우러져 사는 건, 사랑해서, 증오해서, 그런 이유가 아니라 외로와서인지도.

 

열다섯살의 제이크. 엄마가 몇 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시고 알콜중독 증상을 보이는 아빠와 누나와 함께 산다. 이 아이, 여자처럼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다. 자기는 그래서 '돌연변이'라고 생각한다. 병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싫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남자들한테서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남자들만이 그놈들이 원하는 걸 손에 넣는 걸까? 그렇다는 건 나 역시 어른이 되면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고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는 인간이 된다는 뜻일까? 여자애들이 조심해야 하는 종류의 인간? 내가 자라면 통제력을 잃게 되나? 그게 남자가 된다는 뜻일까?

그런 거라면, 난 남자가 되고 싶지 않다. (p185)

 

 

가부장적인 남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구나, 이 아이. 남자가 그런 거라면 되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생각할 줄 아는 아이. 이런 아이가 드레스를 입고 한껏 치장한 채 나갔다가 정신없이 헤매고 다니던 프로파일러 한네를 만나면서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치매를 앓아 정신이 점점 흐릿해지던 한네가 살인사건을 조사하면서 써내려간 일기장을 주워 와서 그것을 읽어내려가면서, 한네를 친구로 생각하면서, 세상에 대해 부딪힐 용기를 가지게 된다. 여자 같다고, 호모 같다고 끊임없이 괴롭히는 친구에게 분연히 대적할 줄 아는 아이로 변하게 된다.

 

사라진 한네의 애인이자 경찰인 페테르를 찾아나가면서, 8년 전 발견된 여자아이의 유골과 이제야 발견된 어느 여자의 유골을 따라 그들을 살해한 사람을 찾아나가면서, 수없이 부딪히는 타인에 대한 편견이.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그 고정된 사고방식이 어떤 것인가가 하나씩 하나씩 드러난다. 난민들에  대한 편견, 여성적인 취향을 가진 남자아이에 대한 편견, 나이든 사람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편견, 남자와 여자에 대한 편견. 그러나 누구나, 그 대상이, 그 편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당신이었을 수도 있었어요. 전쟁과 기아에서 도망쳐야 했던 게 당신일 수도 있어요.." 라는 말을 빌어 여실히 전달하고 있는 소설이다.

 

나는 스스로, 편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부딪히는 많은 일들 속에서 온전히 중립적일 수 있는지, 나의 상황에 비추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을 멈추고 있는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고의 흐름에 편하게 손쉽게 나를 얹어 그냥 그렇게 따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었다. 제대로 산다는 건, 이렇게 어렵다. 아이는 그저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을, 어른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여러 가지 잔머리를 굴리며 시선을 고정하며 사는지, 가끔씩 흠칫 흠칫 놀라는데, 그 속에 제발 내가 없기를, 항상 바랄 뿐이다... 소설이 좋은 건 이런 거겠지. 어려운 얘길 하지 않아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제부터인가 사랑하는 남녀가 나오는 소설이나 영화를 잘 보지 않게 되었다. 언제부터였는 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그다지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그런 소설이나 영화를 본 게 언제지? 스릴러 소설을 읽다가 주인공 남녀가 연애하는 이야기야 어쩔 수 없이 볼 수밖에 없으니까 휘리릭 읽어버리는 것이고... 온전히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보지도 읽지도 않고 있구나...  마음에 구멍이 난 듯 바람이 스산하게 스쳤던 기억이 난다. 왜 이렇게 삭막해진 것이냐 비연. 예전엔 안 그랬잖은가...

 

맞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들을 몹시 좋아했다. 특히나 애잔한 이야기들. 이루어질듯 말듯한데 이루어지지 않는 슬픈 결말의 사랑 이야기들을 좋아했다. 작가나 감독이 펼치는 그 이야기들이 내 감정을 막 쥐고 흔들어서 눈물 뚝뚝 가슴 미어짐으로 며칠을 헤매는 적도 많았던 나란 인간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냐... 몰라. 어쨌든 지금 상태는 그렇다는.

 

그래서 이 책을 사놓고도 제목에 떡하니 박힌 '사랑'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계속 읽지 않았던 것 같다. 뭔가 끌림은 있는데 선듯 손을 내밀어 잡기는 싫은 느낌. 근데 가을이 와서인가. 하늘이 너무 파래서, 구름이 너무 하얘서, 어쩌면 코로나가 주는 약간의 저기압 때문에 이 책을 집어들었나 싶다. 처음에는 외로운 할아버지 이야기로 시작하길래 사는 외로움에 대해 마음 깊이 느끼며 읽기 시작했는데 시공간을 왔다 갔다 하며 여러 사람들이 나오고,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이 마지막에 하나로 모일 때 아 이건 정말 애절한 사랑 이야기구나.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따스한 뭉클함이랄까..가 느껴졌다. 

 

이런 사랑 싫은데. 어릴 때 만나 사랑하게 되고, 그러나 운명은 잔혹하여 역사의 휘몰아침 속에 헤어지게 되고, 여자는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되고, 남자는 그 여자를 평생 사랑하며 기다리며 혼자 외롭게 늙어간다. 그녀와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에 자신의 전력을 쏟고는, 그렇게 시들어간다. 이런 사랑 싫다. 또 한번 되뇌면서도.. 괜히 슬퍼진다. 가을이라 그런가.

 

사랑은 뭘까. 그 사람이 나에게 특별해지는 순간. 첫눈에 반할 수도 있고 그저 그렇게 잘 지내다가 어느 순간 가슴에 확 꽂힐 수도 있고.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고 나서 쭈욱 상승기류를 타다가 세월이 점차 지나 그 사랑이 낡아가는 과정이 싫었다. 낡음의 끝은 권태기인지. 그 전에 헤어지게라도 되면 뭔가가 남아 그 사람에게 낡음 대신 그리움을 덧붙이게 된다. 낡아가는 것도 싫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의 긴 그림자인 그리움은 더 힘들고 싫다.. 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 레오 거스키는 평생을 그런다.

 

 

옛날에 소년이었던 남자, 살아 있는 동안 절대로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남자가 그 약속을 지킨 것은 고집스러워서도 심지어는 충실해서도 아니었다. 그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삼 년 반을 숨어 지내고 나니, 자신의 존재조차 모르는 아들에게 품은 사랑을 숨기는 것이 생각할 수도 없는 일 같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하나뿐인 사랑일 여자를 위해 그래야 한다면, 어쨌거나, 완전히 사라져버린 남자에게 한 가지를 더 숨기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p26)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게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난 그(녀)를 그리워할거야, 사랑할거야, 영원히 변치 않을거야 결심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 그럴 수 밖에 없음이 그런대로 지탱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둘이서 죄스러운 비밀을 함께 나눈 것 같았다. 전에도 그애를 날마다 학교에서 봤지만 특별한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대장 노릇을 하려 드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매력적인 구석도 있었다. 그러나 그애는 지는 것을 못 견디는 성격이었다... (중략) ... 하지만 이제는 그애가 다르게 보였다. 그애의 특별한 힘을 인지하게 되었다. 자신이 선 곳으로 빛과 중력을 끌어당기는 듯한 힘. 전에는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발가락이 살짝 안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p195)

 

 

사랑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추억 어느 한 귀퉁이에 묻어 두었을 이 찰나의 순간. 사랑이 마음에 드는 순간. 여러 장면이 머릿 속에 스친다. 가을이라 그런가보다. 상념이 많아졌다. 사랑도 싫고 그리움도 싫은데 말이다. 지금도 싫지만, 앞으로도 싫겠지만, 그냥 지금은 따스하게 흘러가는 마음을 그대로 두며 커피 한잔에 이 생각 저 생각 해본다. 어쩌면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잘 꾸려낸 작가의 글솜씨도 생각하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기운에 취해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0-10-12 0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싫다고 하신 분이 쓰셨다고 하기에는 너무 사랑스러운 사랑 이야기네요. ㅎㅎㅎㅎ 비연님 머릿 속 스친 생각들이 더 궁금합니다.
비연님 덕분에 저는 굿모닝이에요!

비연 2020-10-12 12:38   좋아요 0 | URL
그저 스산한 느낌이 스쳐서... 제 덕분에 굿모닝이라니 다행임다, 단발머리님^^

레삭매냐 2020-10-12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서문에 등장하는
˝내 삶의 전부˝에도 유효기한이
있는 지 작가에게 물어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지금은 아닐테니깐요. 책을 읽
다 말았네요. 다시 읽어야 하나
어쩌나...

비연 2020-10-12 12:39   좋아요 0 | URL
다시 읽어보세요, 레삭매냐님~
끝까지 읽으면.. 맘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게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