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떨려.”

초등학교 예비 소집일.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자 딸내미가 한마디 툭 건넨다.

그런데  이 말이 내 가슴을 때린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어떻게 해야할지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과연 학교에선 방과후 학교와 돌봄 교실을 몇시까지 진행할 것이며, 딸내미가 배우고 싶어하는 것을 위해 학원과 어떻게 연계해야 할지, 또 6개월 쯤 후엔 이사를 해야 하는데 전학 문제는 잘 해결할 수 있을련지 등등 걱정만 한 가득이었다.

그런데 딸은 학교에 첫 발을 내딛는다는 마음으로 설레고 있었던 것이다.

아~ 딸의 마음조차 헤어리지 못하고 내 생각에 갇혀 있었다. 딸 조차도 이런데 타인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일은 어른도 함께 성장하는 일일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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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의 퇴비더미에 굼벵이가 나타났다. 굼벵이는 부엽토나 썩은 나무 등을 먹고 배설을 하는데 이것이 천연 비료가 된다. 음식물 찌꺼기를 지렁이에게 먹이고 얻을 수 있는 배변토가 비료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야말로 천연의 무공해 퇴비인 셈이다.

그런데 이 굼벵이들이 땅 속에서 자라면 그야말로 골칫거리 해충이 되어버린다. 나무나 농작물의 뿌리를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똑같은 굼벵이 이지만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인간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한다. 물론 굼벵이는 그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적절한 곳에 쓰여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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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다이어리

 

드라마, 가족2015.12.17.128분  일본  12세 관람가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세 자매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다른 곳에서 살고 있던 아버지의 부고가 날아왔다. 세 자매는 장례식에 참석해서 그들의 배다른 여동생을 만난다. 여동생은 아버지를 잃고 의붓어머니와 살게되는 처지에 놓였다. 세 자매는 여동생을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이 네 자매가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 속에서 중요한 소재로 나오는 것 중에 하나가 매화나무다. 자매들의 집 정원에서 자라는 매화를 보며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손길이 가야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정말 정말 무척이나 손이 많이 간다. 작은 텃밭이라 하더라도 농사를 짓다보면 이래저래 손이 갈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것들과는 이렇게 손이 가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손을 타서는 안 된다. 손이 가는 것은 긍정의 힘이다. 손을 타는 것은 부정의 힘이다. 관심이 어리고 사랑이 넘치는 손이 가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넘치면 손을 타게 된다. 손이 가야 하는 대상이 스스로 해야 하는 몫이 있는 것이다. 이 몫을 빼앗을 정도로 손이 가면 손을 탄다. 아이도 작물도 손을 타면 시들시들해진다.

반대로 아예 손이 가지 않은 방치 상태는 상대를 제멋대로 만든다. 제멋에 사는 거야 괜찮지만 제멋대로 구는 것은 상대를 힘들게 만든다. 제멋이 참 멋이 되려면 제멋대로가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멋스러움을 갖추어야 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네 자매는 따듯한 손길을 가지고 각자 제멋을 가지면서도 멋스러움을 잃지 않는다. 손을 타지도 제멋대로 굴지도 않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에서 만나는듯하다. 세상이 어찌 손을 타지 않고 제멋대로 굴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내가 손길을 뻗친 그 대상들이 이 네 자매처럼 절로 손이 가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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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자동차로 달리다보면 움찔움찔할 때가 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는 반대편 차 때문이다. 인도가 없어 도로 가장자리를 걸어가는 어르신들을 피하기 위해서, 또는 자전거나 경운기, 오토바이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앙선을 넘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가장자리가 패이거나 울퉁불퉁해 이걸 피하려 할 때도 중앙선을 넘어서기 일쑤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아니라 무작정 중앙선을 넘어서 달려오는 차들도 있다. 중앙선을 넘었다 차선을 지켰다하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귀찮아서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차들이 다가오면 이쪽에선 도로 끝자락까지 피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차선을 지키겠다고, 내가 옳다고 고집하고 나아가다간 충돌할 게 뻔하다.

 

도로에서뿐만이 아니다. 직장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가족 관계에서조차 나는 올바르게, 정당하게 내 차선을 지키며 끝까지 내 길을 고집하겠다고 주장하다가는 필시 사고가 난다. 상대방이 중앙선을 넘어오는 경우 피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잠시 피해간다고 내 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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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UN이 정한 '콩의 해'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영양가 높은 곡물'이 슬로건이다. 다 시우바(José Graziano da Silva) FAO 사무총장은 "콩은 세계 많은 사람들의 식량안보에 중요한 곡물이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서 영양 곡물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소작농에게 커다란 희망이 되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반기문 UN사무총장도 "콩은 여전히 인류에게 중요한 작물이며 특히 질소를 고정해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콩과 함께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 가자"고 말했다.

 

우리나라 콩의 자급률은 11.3%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과잉생산이라고 난리다. 농식품부가 포장두부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대기업이 국산콩을 사지 않으면서 벌어진 일이라고도 한다. 더 이상 사업을 확장할 수 없는 대기업이 판매가격이 낮고 수익성도 좋은 수입 콩 두부시장에 치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일부 콩 생산농가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해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과잉생산(?)된 콩 탓에 수매가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아예 수매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재고가 쌓여있기 때문이란다. 소작농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콩도 자본주의의 시장 안에서는 절망이다. 질소를 고정하는 성질 덕분에 친환경농사를 짓는데도 큰 도움을 주는 콩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 땅에서는 자라지 못할지도 모른다. 콩의 원산지이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콩을 먹던 한반도가 알콩달콩 맛있는 콩맛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수입되는 콩의 대부분은 사료용으로 개량된 것들이다. 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비지를 사료로 쓰기 위해 키운 것들이라 기존 콩에 비해 지방 성분이 3% 정도 많다고 한다. 이 콩으로 된장을 담그면 우리가 갖고 있던 그 깊은 맛을 담아낼 수 있을까. 우리가 키우든 말든 싼 가격으로 먹을 수만 있다면 괜찮은 일일까. 만약 기후변화로 콩값이 천정부지가 된다면 고기 값도 덩달아 뛸 것이다. 그러면 값싸게 충족시킬 수 있었던 단백질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땅짐승과 날짐승, 사람이 나누어 먹자고 콩 세 알을 심던 농부의 마음이 사라져가는 팍팍한 세상이다. 콩이 희망이자 풍요로운 미래가 되기 위해선 콩만으로는 안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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