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월화드라마 [너는 나의 봄]이 끝났다. 김혜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만큼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그 탓인지 시청률이 그만큼 나오지는 못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드라마였다. 젊은이들의 사랑을 담은 멜로적 측면과 살인 사건을 다룬 형사물의 냄새를 잘 버무려, 세상은 살 만하다고 말한다.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것은 어릴적 상처다. 마지막회 전인 15화에서 피투성이가 된 발로 길을 걷는 세 명의 아이 이야기를 전했다.

그 아이들이 서로 다른 어른을 만났는데 한 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신발을 벗어 주었고, 또 한 아이는 남을 위해 더는 자신에게 상처를 내지 않도록 숨겨졌지만, 다른 아이는 신발이나 위로 대신 비난이나 학대를 받았다. 세상에는 발이 없는 아이도 있는데 너는 신발이 없다고 징징댄다고. 그날의 일은 세 명의 아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주인공인 주영도는 엄마의 신을 신었던 아이와 형에게 신을 벗어주지 못했던 아이는 타인을 구해주지 못했다는 마음으로 힘겨울 수 있겠지만 끝내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건 죄책감일 뿐 죄가 아니니까. 하지만 다른 한 아이는 아무도 약한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는 좌절이 분노가 되는 발화의 순간이 올 수 있다. 돌이키고 싶어도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생겨나는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트라우마는 어른이 되어 삶을 살아가는 동안 갑자기 툭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것이 한 사람의 삶을 갉아먹어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거나, 극단적으론 목숨마저 앗아갈 수도 있다. 아니면 반대로 타인에게 화살을 돌릴지도 모른다. 이런 불행을 막아주는 것은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다시 마주치되, 그를 응원해줄 사람이 곁에 있어, 함께 극복해가는 것이다.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따듯한 말 한마디를 건네받았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목구멍에 걸린 칼날을 뽑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아름다운 세상은 분노를 유발하는 현실에서 잔잔한 위로가 된다.


하지만 이럴 때면 항상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오 헨리의 단편 [마녀의 빵]이다. 누군가의 선의가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섬뜩하다. 다만 우리는 재앙이라는 결과만을 보지않고 선의라는 그 의도를 보는 마음도 함께 가졌다는 것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 그 누구라도 [너는 나의 봄]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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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vN 월화드라마 [루카:더 비기닝]은 김래원 표 액션을 기치로 내세웠다.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즉 초능력을 보유한 지오(김래원 분)라는 인물의 초강력 액션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정서는 외로움이다. 정호승 시인이 말했듯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지오는 유전자 조작(편집)을 통해 세상에 태어났다. 그가 인간인지 아닌지를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드라마는 외로움을 그 기준으로 내세웠다. 


2. 현재 유전자 조작에 관한 과학 기술은 어느 정도까지 도달했을까. SF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대하는 초능력자나 괴물, 돌연변이 등의 의도적 탄생이 가능한 수준일까. 드라마에서는 윤리가 이걸 막아서고 있을 뿐 과학 그 자체는 이미 도달했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이 퇴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라면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라도 인간의 진화를 진행하고 싶어할 수 있다는 상상을 품게된다. [루카:더 비기닝]을 보는 재미는 이런 상상으로부터 비롯된다. 


3. 물리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동물들은 많다. 이런 동물들의 장점만을 지닌 유전자를 하나의 세포에 다 집어넣는다면 어떤 생물이 탄생할까. 지오는 이렇게 실험된 세포 중 유일하게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진화 또는 능력을 확장시킬까. 

반면 지오는 힘을 크게 한 번 쓰고나면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린다. 에너지의 과다 소비로 기억을 담당하는 뇌세포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과거가 없는, 즉 기억이 없는 이의 고통은 무엇일까. 


4. [루카:더 비기닝]의 재미는 어떤 초능력이 새롭게 선보일지와, 이런 초능력을 바탕으로 한 액션이 하나의 큰 줄기를 이루고, 기억없는 삶, 괴물로 비쳐지는 삶의 고통을 이겨내고 온전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다른 줄기를 형성할 듯하다. 이 두가지 재미가 꽤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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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화를 모티브로 결말은 판타지로. 부정한 힘에 맞서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찬가. 최근 영화 [다크워터스]와 비슷한 소재이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지극히 사실적인 [다크워터스]와 달리 코믹과 추리를 넣은 경쾌한 방식.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올해 영화 중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듯. 


2. 대부분의 밥벌이는 힘들다. 주어진 일에 매달려 해치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사회에 아니 이웃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어떻게든 하루 하루를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일이 최소한 부끄럽지 않고 나아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라면 어떨까. 비록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이것이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면 일에 끄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일을 끌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 물론 어림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림 좀 잡아보자. 세상의 많은 노동자들이 이런 값어치를 지니고 일을 한다면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영화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의 고졸여사원들이 회사의 부정을 눈감지 않고 바로 고치려 한 것처럼 말이다. 


3.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의 주인공 자영은 잔심부름을 하러 간 공장에서 폐수가 유출되는 것을 목격한다. 회사에 보고하고 사건은 일단락 된듯 했지만, 이 폐수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것을 알게된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깨달은 자영은 유나, 보람과 함께 폐수 유출을 무마하려한 회사의 비리를 캐기 시작한다. 과연 회사와 맞짱뜨려는 이들은 잘못을 바로잡고, 자랑스러운 회사로 거듭나게 만들 수 있을까.


4. 페놀 유출 사건은 불과 20여 년 전 실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낙동강에 흘러간 페놀로 대구 지역 시민들이 피해를 보았고, 사회적 문제가 됐었다. 최근 드라마 중에도 이런 대기업들의 독성 폐기물 무단 방류를 소재로 한 것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를 감추기 위한 권력기관과의 부정한 결탁은 물론이다.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을 소재로 한 [다크워터스]라는 영화가 있다. 듀폰이라는 회사가 독성폐기물질을 버림으로써 벌어진 사태를 다룬 것으로, 지금도 현재진행중인 재판 과정을 진지하게 묘사하고 있다. 반면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은 힘없는 회사원들의 연대를 통해 회사의 부정을 폭로하고 대항하는 판타지적(?) 결말로 끝난다.


5.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의 주인공은 고졸사원 3인방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최동수 대리에게 눈이 간다. 이 영화의 힘도 아마 조연급 캐릭터들이 이야기의 도구로만 쓰이지 않고 나름의 개성을 갖춤으로써 나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최동수 대리는 회사의 지시대로 페놀 유출과 관련된 자료를 감추는 일에 동참하다, 결국 자영 3인방과 합류하게 된다.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힘은 흐름에 반하는 주장을 펴는 1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1인을 지지하는 2인의 등장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영은 일종의 내부고발자가 된 셈인데, 자영에 동조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이 일은 자영에게 상처만 주고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 속 내부고발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는 마치 판타지마냥 회사의 동료들이 모두 힘을 합쳐 자영의 행동에 동조한다. 잘못됐다고 느껴지는 것을 바로잡는 것은 자영의 자발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잘못을 깨닫고 자영에 힘을 보태는 최동수 대리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나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눈을 뜨고 지켜봐야 한다. 일개 사원이기에 그저 명령과 지시에만 따른다는 생각이 잘못된 회사의 길을 탄탄하게 다져주는 콘크리트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자영은 될 수 없을지라도 최 대리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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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 월화드라마는 작정하고 과장을 한다. SBS [펜트하우스]는 연기와 줄거리로, tvN [산후조리원]은 장르를 넘나드는 플롯으로 과장을 한다. 취향의 문제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펜트하우스]의 과장은 채널을 돌리게 만들고, [산후조리원]의 과장은 채널을 고정시킨다. 


2. [산후조리원]은 격정 출산 느와르를 표방하고 있다. 실상은 드라마와 코미디, 스릴러 등을 자유롭게 오간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연기의 과장이 필요해진다. 즉 [산후조리원]의 과장된 연기는 극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도한다. 아마도 연출가가 SNL코리아를 통해 코미디를 잘 알고있기 때문이 아닌가싶다. 그저 웃는데 그치는 것도 아니다. 웃음과 함께 모성에 대한 고민과 공감을 끌어모으기도 한다.    


3. 모성이란 본능일까. 글쎄... 모성은 신화에 가까운지 모른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면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이라는 거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폭행하고, 겁박하며, 함부로 대하는 엄마들을 뉴스에서 마주치게 되는 것을 보면 본능이 아닐 수도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국가가 그렇듯이 모성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 신화가 지금 우리 사회를 버텨내게 하는 원동력의 하나일 수 있기에, 막강한 힘을 가진다. 


4. [산후조리원]은 신화가 된 모성을 갖추기 위해 성장해가는 엄마들의 이야기다. 본능이 아닌 신화이기에, 모성을 갖춘다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괴로움과 수고 속에서 체득되어지는 것이다. [산후조리원]은 이렇게 모성을 갖추어가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고민과 갈등을 코미디 장르를 통해 발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오현진 역의 엄지원을 통해서 말이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보며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의 행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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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드라마를 멀리한 지 꽤 됐다. 대부분 사랑이야기이면서, 대부분 삼각관계이면서, 대부분 해피엔딩이어서다. 청춘을 정의하는 나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젊은 청춘들의 사랑이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청춘기록]을 보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음악을 소재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생각에 끌렸다. [청춘기록]은 순전히 박보검 때문이다. 그의 순진한 이미지는 마냥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꺠끗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 두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첫째는 20대 청춘의 꿈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늦깍이 대학생 29세 채송아(박은빈)가 졸업을 앞두고 문화재단에서 공연기획 등을 업무로 인턴생활에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바이올린을 계속하고 싶지만, 타고난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자꾸 좌절한다. [청춘기록]에서는 26세 사혜준(박보검)이 모델에서 연기자로 변신을 시도하지만, 든든한 지원자 없이 혼자서는 무리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이 두 주인공은 가슴이 설레는 일에 도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현실의 벽은 높지만, 크나큰 성공을 바라는 것이 아니기 떄문이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싶을 뿐이다. 


둘째는 20대 청춘의 사랑과 우정 사이의 감정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실제 브람스와 슈만, 클라라의 관계처럼, 세 주인공 남녀 사이에서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청춘기록]은 찐한 우정의 사혜준과 원해효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안정하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로 변할 듯 보인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채송아와 박준영(김민재)은 이제 좋아하는 감정을 갖기 시작한다. 드라마는 그 감정의 시작을 아주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닿을듯 말듯한 손과 밝힐듯 말듯한 고백들 사이에서 모든게 수줍다. <수줍음> 실로 언제 느껴본 감정인지 모르겠다. 이 드라마가 이슬비처럼 가슴에 스며드는 것은 이 수줍음을 과장하지 않고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감정의 끈을 찾은듯한 기분을 만끽하게 해준다. 



[청춘기록]의 사혜준과 안정하(박소담)의 이끌림은 덕질에서 출발했지만, 그 매력은 <솔직함>에서 찾을 수 있다. <솔직함> 감추지 않고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내주는 것. 사랑에 있어 솔직함은 금과옥조다. 솔직해지지 않는 순간 사랑이라는 성도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 두 주인공의 통통 튀는 솔직함이 드라마를 경쾌하게 만들어준다. 


청춘드라마 속에서 <수줍음>과 <솔직함>이라는 감정의 결을 다시 만날 수 있어 참 좋다. 당분간 월요일과 화요일을 기다리는 행복감에 젖어 살 수 있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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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20-09-15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준영 캐릭터는 조성진을 많이 참고한 것 같아요. 헤어스타일부터요. ㅎㅎ 쭉 따숩게 갔으면 좋겠네요.

하루살이 2020-09-15 18:19   좋아요 0 | URL
네, 정말 마음이 아련하게 따스해지는 드라마에요. ^^

stella.K 2020-09-15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보람이 아니라 박보검인데...
저도 청춘드라마는 좀 안 보는 편인데 브람스는 음악 드라마라
관심이 갑니다. 나중에 tv 다시보기로 챙겨 볼까 합니다.^^

하루살이 2020-09-15 19:29   좋아요 0 | URL
앗차차, 그렇네요. 수정합니다.^^;
브람스, 생각보다 재미있네요.

캐모마일 2020-09-16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관심 갖는 드라마들인데 직접 보지는 못했네요. 글을 읽으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나중에 시간 나면 몰아봐야겠습니다.

하루살이 2020-09-16 08:36   좋아요 0 | URL
몰아보는 재미도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