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하는 영화. 25년 전 실종됐던 여동생이 돌아왔지만, 진짜인지 의심스럽다. 과연 여동생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슨 목적으로 주인공 서진의 집에 들어온 것일까. 다른 가족들은 여동생 유진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서진만은 의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더군다나 자신의 아내가 뺑소니를 당해 죽었던 현장에서 유진의 모습을 발견했다. 서진의 추적이 시작된다.


2. 영화의 재미는 유진이 진짜 여동생일까, 영화의 제목처럼 침입자일까 혼동스러움의 강도와 비례관계라 할 수 있다. 즉 유진의 주장이 맞을지, 서진의 주장이 맞을지 관객이 곱씹어볼 수록 재미의 크기는 크다 하겠다. 서진이 아내를 잃고 나서 정신적 충격을 받은데다 우울증 탓에 사리판별을 제대로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면 영화의 묘미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진의 추적이 환상일지도 모른다면 영화는 어떻게 흘러갈까. 


3. 영화 [침입자]는 이미 이런 사실과 환상 사이의 줄다리기를 포기했다. 제목에서 버젓이 어떤 것이 진실인지를 말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이유는 어떤가. 꽤나 실망스럽다. 정말 그런 이유라면,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긴 시간을 공들였다는 것은, 시간을 들인 것 치고는 너무 허술하게 정체가 탄로난다. 그야말로 김 새는 결말. 


4.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선 서진이 유진과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파쇄해버린다. 유진이 진짜 잃어버렸던 여동생이든 아니든 상관없는 것이다. 서진에게 있어 유진은 이미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유전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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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결백]은 일본추리소설을 읽는듯한 기분이 든다. 현재 벌어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추적은 과거의 비밀을 밝히게 되고, 그 비밀은 뜻밖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식의 전개가 그렇다. 하지만 복선이나 치밀한 구성이 다소 약하다. 즉 과거 비밀의 절반 정도는 어느 정도 예상됐으며, 추적의 과정에서 발생되는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다. 그럼에도 몇 장면의 연출-어머니를 면회하는 장면에서 정인과 어머니의 실루엣이 겹쳐지는 장면 등- 덕에 지루함 없이 볼 수 있다.     


2. 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농약막걸리 사건. 변호사 정인은 용의자로 어머니가 지목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사건을 맡는다. 쉽게 이기리라 생각했던 재판은 피해자들의 진술과 정황 탓에 어려움에 처한다. 어머니가 결백하다고 믿는 정인은 사건을 파헤치면서 무엇인가 감추어진 것이 있음을 알게된다.   


3. 권력을 이용한 사익의 추구. 그 이익을 공고히 하기 위한 카르텔 형성. 음모이론처럼 보이지만 뉴스를 통해 현실 속에서 수없이 접했던 사건들이다. 개발을 둘러싼 이권다툼 뒤에는 이런 카르텔이 서성이고 있다. 그런데 영화 [결백]에서는 이 카르텔이 법정에서 힘한번 쓰지 못한다. 세상이 그만큼 정의로워졌기 때문일까. 


4.모든 비밀을 간직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자폐를 앓고 있는 동생. 동생이 자폐를 앓게 된건 어렸을 적 정인의 실수로 인한 사건 때문. 영화에서 궂이 과거의 이 사건을 보여준 것은 정인의 죄책감과 아버지의 미움을 설명하기 위한 것일터. 하지만 정인의 죄책감은 영화 속에서 길을 잃는다. 정인의 행동을 설명하는 하나의 요소도 되지 못한 것이다. 


5. 변호사란 정의를 드러내는 존재일까, 의뢰인의 이익을 지키는 존재일까. 정인은 변호사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일까. 아니면 일종의 복수를 법정에서 실현한 것일까. 복수란 과연 정당한 행위일까. 정당하다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을까. 정인의 변호가 이런 의문점을 들게 하지만, 그보다는 재판이 결코 진실을 밝히지는 못한다는 것만 말해주는듯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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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원히(?) 죽지않는 전사들의 이야기. 샤를리즈 테론의 남성미(고정관념이나 편견적 의미가 아닌) 물씬 나는 액션 영화. 이야기와 액션, 감정의 선 등이 잘 버무러졌다. SF나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적극 강추.


2. 불멸의 존재를 그리는 영화는 많다.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결코 행복일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태반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계속해서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겪은 세월의 무게를 같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외로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등등의 이유를 든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도 없이 결코 끝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결코 행복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3.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넘치는 건 시간이니 쫓겨가며 할 일은 없다. 정주하는 삶을 살까.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살까. 한 가지 일에 정진할 것인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볼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벅차다. 

영화 [올드 가드]는 영원히 죽지 않는 이들이 전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그린다. 그렇다면 불멸의 존재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4. 샤를리즈 테론은 지쳤다. 소위 '엿 같은 세상'이다. 아무리 세상이 나아지라고 정의를 위해 싸워왔지만 세상은 결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말 이런 세상이라면 될 대로 되라지 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정의를 위한 싸움은 멈출 수가 없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불멸의 존재에서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에 말이다. 


5. 부상이 회복되지 않아 약품을 구입했을 때, 점원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오늘은 내가 당신의 치료를 돕지만, 내일은 당신이 길을 가다 넘어진 이를 일으켜 세워주면 된다" 샤를리즈 테론이 수천년의 세월을 전사로 살아오면서 목숨을 구해준 이들은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도록 힘을 써 준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후손들 또한 그런 일들을 해 나갔던 것이었음도 알게된다(나치 하에서 유태인의 목숨을 구한다거나, 핵 전쟁을 막는다거나 등등).


6. 인연과보다. 우리는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연으로 맺어진 존재이며, 그 인연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과 또한 달라지는 것이다. 선한 행위가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간혹 지켜보기도 하지만, 또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결국엔 선한 행위는 선한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그렇게 믿고 싶다). 어떤 행위든 그 행위로 인한 당연한 결과를 수반하는 것이다. 영화 [올드 가드]는 이 인연과 과보를 이야기하고 있다. 샤를리즈 테론은 인연과보를 깨닫는 순간, 회의와 상실감에서 벗어나 다시 보다나은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7. 오늘 나의 조그만 일상의 행위가 소위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에서라도 말이다. 즉 나의 목숨은 유한하지만, 나의 삶의 흔적들은 끝없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불멸인 것이다. 나의 행위의 불멸의 영향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좋은 과보를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1회용품을 최대한 쓰지 않는 것 등등의 작은 일에서부터라도 말이다. 우리 또한 샤를리즈 테론과 같은 불멸의 전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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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에 나오는 이야기 호접몽은 '물아일체'로도 읽히지만, '인생무상'으로도 해석된다. 나비꿈에서 깨어나서 정신을 차린 내가 진짜 나인지, 원래 나비인데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이때 '나와 나비가 모두 하나'라 여기면 물아일체요, '모든 것이 꿈이로다'로 생각하면 인생무상이 되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가상공간 속의 나를 진짜로 알고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각기동대]를 비롯한 수많은 기억에 관한 영화는 기억이 바로 나라는 것을 말해준다. 


시골 교사를 자청한 수혁 부부에겐 비밀이 있다. 아내가 밤이면 접신 또는 빙의가 되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되고, 위험하다면서 밤에는 집에 자물쇠를 채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몇일 후 하필 집에 화재가 나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한 부부는 죽고 만다. 형구는 이 사건을 수사하다 마을 사람을 수상히 여긴다. 마을 사람이 모인 곳에서 수사를 하려던 형구는 어찌하다 만취가 됐는데, 깨어나보니 형사로서의 형구는 사라져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이다. 게다가 아내와 아들 둘도 없어지고, 독신의 처지로 바뀐 것이다. 형구는 자신이 형사인지 선생님인지 혼란에 빠진다.


[사라진 시간]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찌보면 명확해보이지만, 영화의 이야기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 아무리 짝을 맞추어보려해도 이야기는 술술 새나간다. 물론 이런 틈이 많은 이야기가 해석의 여지를 다양하게 주지만, 이야기 자체가 견고하지 못하다보니 감동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도대체 형구는 형사였는지, 선생인지 답을 주지 않는다. 아니, 답을 구할 보기조차 없다. 


요즘 드라마 소재로 자주 쓰이는 평행세계인 것도 아니요, 다중인격을 소재로 사용한 것도 아니요, 전생과 이생의 이야기도 아닌데, 형사와 선생이라는 두 인격이 공존하고 있어 혼란만 야기한다. 마치 삼인성호 마냥 주위의 사람들이 형구를 형사였다 선생으로 만든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영화 속 도구들은 형구가 정신분열에 걸린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하지만, 이 또한 <메모지>가 실재 존재하고 있어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맞다. 이 <메모지>가 문제다. <메모지> 탓에 아귀를 맞출 수가 없다. 


정말 호접몽 처럼 형사로서의 삶이 진짜처럼 느껴지는 한낱 꿈이었을까. 하지만 꿈이면 어떤가. 결국 나비로 있을 때는 나비로, 사람으로 있을 때는 사람으로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꾸려가면 되는 일임을. 형사로서의 삶이 사라졌다 한들, 지금 선생으로서의 삶을 터벅터벅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영화는 [사라진 시간]을 찾지 말고 지금 현재의 시간을 살라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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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홍콩무협영화를 사랑한 사람들에겐 소극적으로 추천. 김용 류의 무협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소극적으로 추천. 레트로적 감성에 취하고 싶은 사람에겐 강추. 어설픔과 상투성이 곳곳에 묻어나지만, 그때 그시절을 그리며....


2. 어렸을 적 마교의 습격으로 부모를 잃은 주인공 '정소범'. 마침 그곳을 찾은 천하제일 문파인 청운문의 제자가 되지만 무술 실력은 영 늘지 않는다. 다만 누구인지도 모를 살인자를 대상으로 복수를 꿈꾸는 대신, 옆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만이 가득하다. 그런데 어릴적 습격 사건 때 없애버리라고 건네받은 '서혈주'를 지금껏 간직하다 우연한 사건으로 서혈주가 법기 섭혼을 깨운다. 세상을 지배할 절대적인 힘을 갖게 된 정소범은 마교에게도 청운문에게도 죽임의 대상이 된다. 


3. 이 영화는 소설이 원작이다. 원작의 샤오딩이라는 작가는 팬덤이 형성될만큼 인기가 높다고 한다. [주선]은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남자주인공은 중국 아이돌 그룹의 멤버. 원작과 주인공의 힘 덕분인지 지난해 중국에서 추석시즌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개인적으론 이 정도 그래픽 기술로 관객을 모았다는 것에 놀랐다. 마치 심형래 감독의 [디 워]처럼.) 


4. 개인적으론 정소동이라는 감독 이름을 보고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천녀유혼]과 [소오강호]에서 비쳐진 무용같은 무술과 슬픔과 허무감을 드러내는 극의 전개를 좋아했다. [영웅]과 [연인]에선 무술감독이었는데, 정중동의 움직임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번 [주선]은 [영웅]과 [연인]류의 움직임이 아닌 30여 년 전 [천녀유혼]과 [소오강호]류의 어설픈 와이어 액션이 비쳐져 실망이었다. 게다가 이야기는 틀에 박혀 감동을 주기에도 미흡하고 흥미를 끌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엄청 긴 원작을 압축하다보니 발생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5. 순박한 마음. 무협이야기 속 절대무공의 주인공들을 강하게 만든 원동력은 대부분 순수함이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대부분 잃고 살아가는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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