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좀비와 싸우는 새로운 방법, 이번엔 드리프트다. 카레이싱 욕구를 일으킨다. 그런데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마저 드리프트로 날려버렸다. 


2. [반도] 영화 초반, 부산행 이후 4년이 지난 한반도 상황을 미국의 인터뷰 방송으로 짧고도 명확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좀비화되고, 한국을 탈출하던 사람들 중에도 감염자가 나타난다. 세계는 한국을 봉쇄하고 더이상의 난민을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의 코로나19를 대처하는 방법으로 봉쇄를 말하는 이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좀비의 전염과 코로나의 전염은 다르지만, 방역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좀비를 연상시킨다. 선한 얼굴의 좀비!


3. 봉쇄된 나라. 생존자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곳. 하지만 그곳에선 세계에서 통용하고 있는 금이나 달러가 방치되어 있다. 만약 그곳에 들어가 금이나 달러를 가져올 수 있다면 일확천금이다. 영화 [반도]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작가의 재미있는 상상력이 빛나는 설정이다. 


4. 영화 [반도]의 빛나는 초반은 사건이 전개되면서 조금은 실망스러워진다. 좀비와의 싸움에서 내세울 수 있는건 자동차 추격과 드리프트뿐이다. 빛을 좋아하고 소리에 민감하다는 좀비의 특성을 활용한 싸움이 흥미를 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다른 한 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나 애증을 다루는 부분은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한다.   


5. 영화 속에선 좀비의 속도와 힘이 남성 성인이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렇다면 애당초 좀비 초기에 적극적으로 전염을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든다. 좀비의 사냥터 게임 속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을 보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것처럼 보인다. 전염 초기가 중요하다.  


6.좀비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사람의 피를 먹고서 사는 것인가. 그렇다면 영화 [반도] 속 한반도는 좀비왕국이 되었는데, 이들은 어떻게 에너지를 얻을까. 생태계에서 우위에 있는 종들의 숫자가 적은 것을 생각해보라. 그렇다면 좀비도 어느 정도 전염이 이루어지면 일반인들을 물어뜯는 행위가 줄어들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마치 집단면역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좀비천국은 결국 좀비의 멸종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영화 [반도]를 보고 있자니, 감독의 좀비에 대한 세계관이 궁금해진다.      


7. 시도는 해봤어? 포기란 시도를 해보고 할만큼 다해봤을 때, 그때 내뱉을 말이다? 영화 [반도]속에서 강동원은 죄책감에 쌓여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내버려두었다는 것, 누나와 조카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 그를 괴롭힌다. 그래서 그는 영화 종반 끝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일으켜 생명을 구해낸다. 마치 이건 영화야! 라고 증명하듯. 

현실에선 어떨까. 현명한 사람이란 애당초 시도할 것과 포기할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그리고 시도가능하다고 판단했을 때 혹여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시도할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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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상상력 풍부한 애니메이션. 나는 어떤 동물로 변하면 좋을까? 기분좋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2. 오웬은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가족을 위해 장인어른의 회사에 다닌다. 그러던중 삼촌이 남긴 동물모양의 크래커가 담긴 요술상자를 얻게된다. 이 크래커를 먹으면 그 모양의 동물로 변신한다. 그리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신의 형태로 된 크래커가 하나 생긴다. 오웬은 동물변신이라는 신비한 능력으로 서커스를 일으켜세운다. 하지만 이 비밀을 눈치챈 호레이쇼가 애니멀 크래커를 노리면서 좌충우돌 사건이 벌어진다. 


3. 동물로의 변신이 유쾌하다. 서커스 장면은 짜릿하다. 동물의 특성을 살려 서커스의 이야기를 꾸려가는 것도 재미있다. 어른도 아이도 동심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총알맨을 비롯한 서커스단원들은 물론 악당 캐릭터들도 개성이 철철 넘친다. 


4. 오웬은 동물로 변신해 있는 와중에 자신의 모습을 띤 크래커를 잃어버린다. 사람으로 돌아갈 순 없는 것일까. 이때 호레이쇼가 크래커를 가지고 등장한다. 그리고 사람으로 돌아갈 것인지, 서커스를 넘길 것인지 선택을 강요한다. 오웬은 가족들이 서커스를 사랑하는 것을 안다. 가족들을 위한다면 자신이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서커스를 지키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오웬은 서커스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람이 될 수 없는 오웬이라도 가족은 그를 사랑해줄까. 겉모습은 아무래도 좋다. 사랑만 있다면. 

비록 판타지일지라도 아이들과 이런 판타지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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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0자평 - 5분 초능력자들과의 액션신은 황홀하지만, 상투적 결말은 아쉽다.


2. 5분간 초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알약 '파워'가 암시장에 나오면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전직군인, 그리고 10대 흑인여자딜러의 활약을 그린 SF액션영화.


3. '파워' 알약을 먹는 순간 어떤 초능력을 발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초능력은 5분간만 발휘된다. 만약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면 폭발해버린다. 이 초능력이라는 것은 동물들의 능력을 모사한다. 카멜레온의 위장력, 도마뱀의 재생력 등등. 이런 초능력을 보여주는 CG의 화려함을 무장으로 알약을 먹은 범죄자와 전직 군인 아트의 격투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 그런데 짧은 액션 장면이 몇 개 나열되면서 스~윽 스쳐 지나가버린 느낌. 영화 중간에 클럽에서 싸우는 장면은 그 시점이 유리관에 갇힌 피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게 독특하다. 이 장면은 강력추천.

   

3. 그런데 당신도 5분간이지만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면 알약을 먹을 것인가? 알약을 먹겠다고 선택했다면 왜 초능력자가 되고 싶은 것인가? 영화 [프로젝트 파워] 속에서는 그 힘으로 대부분 범죄를 저지른다. 힘에 대한 갈망이 범죄를 불러오는 것이다. 

반면 전직군인 아트는 10대 흑인소녀 마약딜러인 로빈에게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켜 생존의 도구로 사용하라고 충고한다. 로빈은 랩에 자신있다. 아트는 로빈의 랩 실력에 엄지 척 해주며, 그 실력을 쌓아서 살아가라고 한다. 

그런데 세상은 자신의 온전한 실력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인가? 영화[프로젝트 파워]는 어찌보면 초능력을 꿈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바랐던 것은 아니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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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인도 영화를 좋아한다면 강추. 다만 영화 중간 뜬금없이 나오는 군무 형태의 발리우드식 영화는 아니다(그렇지만 영화가 끝나고 타이틀이 올라가면 군무가 등장한다^^). 악질 경찰의 모략으로 눈물을 흘리게 된 연인의 통쾌한 복수극.   


2. 여주인공 사라는 모든 억압으로부터 탈출해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그녀의 팔목엔 자신을 억압하는 것을 매듭으로 만든 팔찌가 있다. 억압된 것을 하나하나 벗어날 때마다 매듭을 풀어낸다. 남주인공 아드바이트는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와 끈끈한 관계를 맺기 전에 헤어짐을 선택한다. 두 주인공이 인도를 여행하다 우연히 마주치면서 사랑을 나눈다. 사라는 임신을 하고 아드바이트는 관계맺기의 두려움에 그녀를 떠나간다. 하지만 이윽고 진정한 사랑이란 끈끈한 관계에서 비롯됨을 깨우치고 그녀에게 돌아온다. 그런데 하필 돌아온 그 시각 못된 경찰의 오해로 인해 사라가 죽음에 내몰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라는 죽고 아드바이트는 감옥에 갇혀 5년을 옥살이한다. 아드바이트는 출소날 사라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경찰들을 찾아가 복수를 실행한다. 


3. 아드바이트의 액션은 리얼함과 판타지 그 어디쯤의 중간에 어정쩡하게 서 있다. 격투의 현실성은 떨어지고, 그렇다고 중국 무협같은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것도 아닌, 무적의 액션장면은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4. 영화 [말랑]의 사랑과 복수는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잠깐 쉬었다가 노래가 나오고 그 노래에 맞추어 화려한 영상이 시작된다. 뮤직비디오 예닐곱편이 이어지면서 영화는 극적 구성을 갖춘 듯한 모양새다. 짧은 영상에 빠져있는 현대인의 집중력에 딱 들어맞는 구성이라 해야 할까.


5.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가 허술한 것은 아니다. 영화 [말랑]은 끊임없는 교차편집으로 복수의 장면과 왜 이런 복수를 하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교차편집이 이어지다보니 다소 흐름이 끊기는 기분도 들지만, 나름 사건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측면도 있다. 그리고 사건의 단서가 되는 것들을 교차편집 속에 드러내면서 허술할 것 같은 이야기의 전개가 나름 반전을 갖추는 정교함도 보여준다. 


6. 영화 [말랑]의 말랑은(영화 속에서 '마랑'으로 들리는데) '방랑자'라는 뜻이다. 사라와 아드바이트는 자유를 찾아 거처없는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억압에서 벗어나면 매듭을 풀어나간다. 그런데 그 자유라는 것이 대부분 익스트림스포츠와 마약이다. 히피의 자유정신보다는 신자유주의의 쾌락적 소비에 가까워보인다. 그래서일까. 마약공급자이면서 이들 연인을 도와주는 인물은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 선배로서 그 여행의 끝이 불행일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자유란 결코 방종이 아니다. 사라와 아드바이트는 매듭을 풀어내며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배울 수 있으리라.  


7. 영화 [말랑]속 경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악질경찰뿐만 아니라 주인공 연인을 결국 돕게되는 경찰마저도 상대를 향해 총을 쉽게 쏜다. 자유를 말하고 있는 영화이지만, 경찰의 모습 속에서 인권은 저 멀리 있다. 

악질 경찰인 마이클은 초반 정의의 사도처럼 보여졌다. 하지만 그는 어렸을 적 어머니로부터 남성성을 거세당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그 트라우마 탓에 잃어버린 남성성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보여준다. 그 집착이 온갖 악행을 일삼게 만든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성성에 대한 잘못된 관념은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경찰의 무지막지한 공권력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듯하다.  

영화 [말랑]이 말하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 그 자유를 느끼는 방랑자의 표상이 위태롭게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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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은 남북이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도 나왔듯이 1953년 체결됐던 정전협정에는 대한민국의 서명이 없다. 북한과 중국, UN의 사령관이 협정체결서에 서명을 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통일에 대한 희망을 부풀게 만들었던 북미회담 또한 우리의 자리는 크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 대통령의 약속이란 것이 얼마나 약한 토대위에 있는지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평화협정에서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강철비2]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희생정신과 소통력을 통해 들러리 역할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그려보인다. 


2. [강철비2]에서는 중국, 일본, 남한, 북한, 미국이 각자의 국익을 위해 복잡한 셈법을 펼친다. 특히 일본은 중국과의 다오위다오-센카쿠 분쟁, 한국과의 독도 분쟁을 자국 자위대의 희생을 빌미로 국방력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카게무샤 계획을 세운다. 물론 영화속 상상이다. 이 상상이 공상으로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상상조차 못한 일이 현실에서 간혹 벌어지기 때문이다. 


3. [강철비2]는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역학관계를 드러내는 극사실적 영화가 아니다. 오락영화다. 오락의 핵심은 북한의 핵잠수함을 두고 벌어지는 미국, 일본, 한국의 군사력 대결이다. 그 중심에 남북미의 정상을 납치해 감금한 북한의 핵잠수함이 있다. 일본 초계기와 잠수함이 북한의 핵잠수함을 공격하고 이에 맞대응하는 장면은 의외로 흥미진진하다. 잠수함의 전술이 다소 단순하다는 점만 빼면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잠수함 영화 [유령](이 영화에서도 정우성이 주연으로 나온다)으로부터도 진일보한 모습이다. 


4. [강철비2]의 또다른 오락적 측면은 블랙코미디일 것이다. 삼국의 정상이 잠수함의 좁은 공간에서 벌이는 행태는 마치 사춘기 사내아이들의 자존심 싸움처럼 보인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유머가 극의 강약을 조절한다. 반대로 이 웃음이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측면도 없지않아 보인다. 아무튼 미국 대통령의 억지같은 모습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 덕분으로 생각된다. 


5. [강철비2]의 감독은 정우성의 입을 통해 묻는다. 통일이란 통솔자가 이루어내는 일이 아니라, 온 국민의 열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러분은 통일을 진정 원하는가? 라고. 맞다. 국민적 지지없이 통솔자만의 독단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간혹 있다 할지라도 끝내는 좌초하고 만다. 

그런데 통일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과연 옳은 질문일까. 통일은 목적이 아니다. 통일은 수단이다. 목적은 평화다. 평화를 위한 가장 좋은 수단 중의 하나가 통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물어야 한다. 당신들은 전쟁 없는 평화를 원하느냐고? 그 평화의 길을 걷기 위해 통일이라는 다리를 선택할 것이냐고 말이다. 이 땅에는 아직도 전쟁을 원하는 자가 있고, 전쟁을 위협삼아 이익을 챙기는 무리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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