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에 나오는 이야기 호접몽은 '물아일체'로도 읽히지만, '인생무상'으로도 해석된다. 나비꿈에서 깨어나서 정신을 차린 내가 진짜 나인지, 원래 나비인데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이때 '나와 나비가 모두 하나'라 여기면 물아일체요, '모든 것이 꿈이로다'로 생각하면 인생무상이 되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가상공간 속의 나를 진짜로 알고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각기동대]를 비롯한 수많은 기억에 관한 영화는 기억이 바로 나라는 것을 말해준다. 


시골 교사를 자청한 수혁 부부에겐 비밀이 있다. 아내가 밤이면 접신 또는 빙의가 되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되고, 위험하다면서 밤에는 집에 자물쇠를 채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몇일 후 하필 집에 화재가 나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한 부부는 죽고 만다. 형구는 이 사건을 수사하다 마을 사람을 수상히 여긴다. 마을 사람이 모인 곳에서 수사를 하려던 형구는 어찌하다 만취가 됐는데, 깨어나보니 형사로서의 형구는 사라져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이다. 게다가 아내와 아들 둘도 없어지고, 독신의 처지로 바뀐 것이다. 형구는 자신이 형사인지 선생님인지 혼란에 빠진다.


[사라진 시간]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찌보면 명확해보이지만, 영화의 이야기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 아무리 짝을 맞추어보려해도 이야기는 술술 새나간다. 물론 이런 틈이 많은 이야기가 해석의 여지를 다양하게 주지만, 이야기 자체가 견고하지 못하다보니 감동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도대체 형구는 형사였는지, 선생인지 답을 주지 않는다. 아니, 답을 구할 보기조차 없다. 


요즘 드라마 소재로 자주 쓰이는 평행세계인 것도 아니요, 다중인격을 소재로 사용한 것도 아니요, 전생과 이생의 이야기도 아닌데, 형사와 선생이라는 두 인격이 공존하고 있어 혼란만 야기한다. 마치 삼인성호 마냥 주위의 사람들이 형구를 형사였다 선생으로 만든 듯한 착각마저 일으킨다. 영화 속 도구들은 형구가 정신분열에 걸린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하지만, 이 또한 <메모지>가 실재 존재하고 있어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맞다. 이 <메모지>가 문제다. <메모지> 탓에 아귀를 맞출 수가 없다. 


정말 호접몽 처럼 형사로서의 삶이 진짜처럼 느껴지는 한낱 꿈이었을까. 하지만 꿈이면 어떤가. 결국 나비로 있을 때는 나비로, 사람으로 있을 때는 사람으로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꾸려가면 되는 일임을. 형사로서의 삶이 사라졌다 한들, 지금 선생으로서의 삶을 터벅터벅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영화는 [사라진 시간]을 찾지 말고 지금 현재의 시간을 살라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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