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년전 일본 상황을 배경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한국적 상황과 다를듯 하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는 구석이 있다. 거품경제가 막 터지기 직전의 풍요가 거품이 터지면서 어떻게 가족(사회가 아닌)을 변화시키고 몰락시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과거 IMF시절은 물론 현재 거품을 이야기하는 한국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사건은 이렇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주상복합 또는 유명브랜드 건설회사의 아파트에서 한 가족 4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화자는 이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을 사건 이후부터 몇년 후까지 계속 인터뷰하면서 그 실상을 밝히려 한다. 이 과정에서 혈연으로 뭉쳐진 가족이란 것이 가족애가 아닌 억압의 굴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반대로 혈연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가족처럼 지낼 수도 있다는 신가족형태를 보여준다. 즉, 이 소설은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실제 원서도 그럴진 모르겠지만 번역서에는 대상을 개인이 아닌 ㅇㅇㅇ가(家)로 표현하는 경우가 곳곳에 비친다.

나는 부모랑 사는 게 훨씬 더 힘들었어요.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영문도 모른 채 부모한테 이러저리 끌려 다니고. 타인하고 살았다면 꼭 필요한 최소한의 규칙만 지키면 되니까 오히려 간편하잖아요. 414쪽

애초에 가족이 싫어서 가출했는데 스나카와 씨들이 가족처럼 기대려고 하니까 화가 나고 두려웠던 거야. 이대로 스나카와 씨들한테 붙들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 573쪽

이상한 일이다. 집안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 자립하고자 갈망하고 노력하는 것이 여자들일 터인데, 한편으로는 애오라지 혈연과 모자지간이라는 관계 속으로 회귀하려고 하는 것도 역시 여자들 뿐이다. 남자들은 ... 그저 도망치기만 할 뿐이다. 574쪽

야시로 유지에게 부모란 나를 지배하고 나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하는 섬뜩한 괴물이었겠지요. 친부모뿐만 아니라 부모같은 자리에 있는 존재라면 다 그랬을 겁니다. 631쪽

가족이니 핏줄이니 하는 것은 누구한테나 번거롭고 신경이 쓰이는 것이야. 그런데 실제로 그런 것들을 싹둑 잘라내 버리고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구나. 하지만 실패했잖아. 그래, 실패했지, 그 사람들은. 652쪽

이렇게 가족이 구성되면 가족과 가족간의 관계는 또 어떻게 될까. 이 관계가 바로 사회의 모습일텐데 결국 소통의 부재와 배금주의에 물든 사회가 어떤 비극을 낳는지를 소설은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로 말하면 알박기와 비슷한 종류의 버티기꾼이 나타나게 된 배경도 이것에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웃이란 의지가 되는 존재가 아니라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서로 못본 체하고 사는 것이 딱 좋다고 봅니다. 126쪽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가족은 전에 이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했습니다. 이웃이 무섭다는 것은 곧 세상이 무섭다는 것이고, 결국은 커뮤니티 자체가 무섭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이상할 것이 없지요. 129쪽

저 안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갑부들이고 세련되고 교양도 있고 옛날 일본인의 감각으로는 상ㅅ강도 못할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건 어쩌면 가짜인지도 몰라요...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가 거기에 다다르기까지는 얇은 껍데기 바로 밑에는 예존의 생활 감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은 위태로운 연극이 아직은 한참 동안 계속되지 않을까요. 493쪽

저런 곳에 살면 사람이 못쓰게 돼요. 사람이 건물의 품격에 장단을 맞추려고 영 이상하게 돼버리는 거 같아요. 494쪽

나는 당신이 유방암에 걸리면 일본 최고의 명의한테 진료 받게 해줄 수 있다. 그런 연줄을 쥐고 있다. 그런 힘이 있는 인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입니다. 이런 것이 남자들이 좋아하는 동화 아닐까요. 262쪽

그런데 가족은 이렇게도 우울한 것일까.

여성들은 이런 부분에서 취향이 맞으면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라도 같이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여인들에게 가족이란 함께 사는 사람들이었다. 441쪽

소설 속에 드러나는 가족이 모두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서로 이해하고 아끼고 도와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도 있다. 다만 그 형태는 꼭 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가정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냐가 결국 나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사람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과거라는 것을 야스타카는 깨달았다. 이 과거는 경력이나 생활 이력 같은 표층적인 것이 아니다. 피의 연결이다. 당신은 어디서 태어나 누구 손에 자랐는가. 누구와 함께 자랐는가. 그것이 과거이며, 그것이 인간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만든다. 그래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를 잘라낸 인간은 거의 그림자나 다를 게 없다. 본체는 잘려버린 과거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이다. 553쪽

그러기에 오히려 새로운 가족과 사회가 탄생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젊고 아름다워야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뿐이란다.(42쪽)

현실은 내 꿈같은 것을 아주 간단하게 부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학생간의 차별이었습니다.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클럽활동에도 격차가 있었고, 주류와 비주류가 확실히 나누어진 사회였던 것입니다. 그 근본이 되는 것은 물론 선민의식이었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세상이 결국 그런 것이었음을 새삼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66쪽)

여자의 외모는 타인을 상당히 압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어도 그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뇌나 재능 따위로는 외모가 뛰어난 여자를 절대로 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68쪽)

부라는 것은 항상 과잉을 낳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고 음탕한 것입니다. 그 음탕함은 설사 겉모습이 평범하더라도 그 학생을 특별한 존재로 꾸밀 수 있는 것입니다.(70쪽)

하지만 단 한 가지, 주류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엄청나게 아름다우면 어떻게든 주류가 될 수 있어.(80쪽)

보통 사람들과 다른 양심과 온순함을 가진 생물, 그것은 틀림없이 마음 속에 남들보다 큰 악마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83쪽)

이 세상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꼴사납고 허영심이 뒤엉킨, 복잡한 세계 속에 있는데도, 그녀는 이 세계에 자신이 지금까지 배양해 온 노력과 근면이라는 가치관이 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잖아요.(90쪽) 이 세상은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답받지 못하는 자들로 가득하단 말이야(124쪽)

인생은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는 되지 않는다. 마음속 외에는 자유가 없다.(183쪽)

노력이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의 인내 끝에, 일시적인 자기만족을 얻는 것. 나는 노력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198쪽)

네가 여성인 것은 네가 선택하고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야. 너는 우연히 아름다운 여성으로 태어난 것뿐이야. 그것을 이용해서 살아가면 영혼이 더럽혀지게 돼... 새로운 생각이었다. 내 몸은 나의 것이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나를 사랑하려는 사람은 내 몸까지 지배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사랑은 그처럼 부자유스러운 것이라면 나는 평생 몰라도 된다.(210쪽)

개성이나 재능같은 것은, 범상한 종족이 어떻게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비축하고 연마하는 무기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230쪽)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격차는 한없이 커서, 인간의 인생을 비뚤어지게 만듭니다.(326쪽)

중국인은 태어난 장소로 그 운명이 결정된다. 이 말은 천안문사건의 영웅, 우얼카이시가 했다고 하는데, 사실 아닙니까. 저도 당 간부의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지금 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정말로 분하기 짝이 없습니다.(366쪽)

생물의 개체군이라는 것은 매우 재미있단다. 먹을 것과 생활환경만 갖추어지면 개체의 수는 자꾸만 늘어나지. 이렇게 개체 밀도가 높아지는 것을 개체군 성장이라고 한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개체 밀도가 포화 상태를 넘어서면, 이번에는 개체 간의 경쟁이 심해져서 결국에는 출생률이 저하되고 사망률이 증가해. 개체 밀도가 높아지면 종종 개체의 발육이나 형태, 생리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생물학의 상식이란다. ... 어쩌면 너의 신앙도, 히라타의 창녀 일도, 사토의 이중생활도 개체의 형질 변화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개체 밀도가 높아졌다기보다는 동일한 생활환경 속에 머물러야 하는 숨 막힘이라고나 할까, 그 괴로움이 형태변화를 낳은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구나. 그것은 가혹하고 쓰라린 경험이었겠지. 그 경험만큼은 우리가 가르칠 수 없었던 것이다. (415쪽) 노력은 개체 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발육하거나, 형태와 생리가 변화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무익하지. 왜냐하면 변화는 개체가 멋대로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411쪽)

그녀가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타인보다 우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닻을 무력하게, 아니 완전히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아닐까. 그 때문에 인간은 타고난 아름다움을 펄쩍 뛰면서 부정하고, 닻을 강화하려 하지. 즉,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히라타 유리코는 존재 자체만으로 미움을 받고, 학교에서 추방된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드는구나. 그리고 아름다움을 욕되게 하면서 따돌린 쪽도 닻을 풀 수 없어서 바다 속 깊이 닻을 가라않힌 채, 바다 위에서 큰 파도에 농락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421쪽)

모두가 허황된 것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겼던 거야. 유리코가 그처럼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단지 미모 때문만이 아니었는지도 몰라. 네가 유리코에게 계속 열등감을 느꼈던 것은 유리코의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라, 유리코의 자유로움이 너로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어.(454쪽)

손님이 젊은 창녀를 사고 싶어 하는 건 육체의 매력 때문이 아니야. 젊다는 것은 미래가 있으니까, 남자들은 젊은 창녀가 갖고 있는 시간을 사는 거라고 생각해.... 남자란 모두 마음이 약해. 여자가 추하게 변했거나, 나이를 먹어서 우울해진 것을 견딜 수 없는 거야. 우리의 모습이 남자가 지닌 약점을 드러내 보이는 셈이지. 반면에 우리 같은 괴물을 좋아하는 남자는 쇠약이라든가 쇠퇴같은 추악함을 즐기고 있는거야. 우리를 좀 더 타락하게 해서 넝마로 만들고 최후에는 죽여버린다니까. (552쪽)

여자가 몸을 파는 단 하나의 이유, 그것은 이 세상에 대한 증오입니다. 그것은 확실히 어리석고 슬픈 일이지만, 남자 또한 그런 여자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순간이 섹스할 때뿐이라면, 남자도 여자도 어리석고 슬픈 것일까요. ...다정하게 대해주세요. 부탁이에요.(61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창녀 두 명이 살해된 사건을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혼혈로 완벽한 미모를 지닌 유리코, 그리고 그녀의 미모 때문에 패배주의에 빠져 악의로 극복하려는 그녀의 언니인 나, 가난한 집안 배경에도 불구하고 전교 1등을 비롯해 일류학교로 진학한 미쓰루, 자신이 예쁘다고 착각하며 거식증 등에 걸리면서도 언제나 1등이 되고싶었던 가즈에 등 4명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 네명의 여성이 바라보는 각각의 시각에서 유리코와 가즈에가 살해되기까지의 성장과정이 그려지면서 과연 어떤게 진실이고 거짓인지, 그리고 악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사회적 가치관에 개인이 어떻게 휘둘리는지 등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지고 있다.

소설의 대전제는 이 사회가 미모를 중요한 경쟁력으로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차별대우받는 계급적 구분이 있다는 것이다. 즉 집안의 부나 권력 등과 같은 태생적 환경과 외모라는 것은 스스로 선택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운명이라는 점에서, 그 운명을 극복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 사회에서 거의 불가능함을 소설은 지극히 생생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요즘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있자면, 소설의 내용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더군다나 개천에서 용나는 시절이 지나가고, 외모라는 것도 중요한 경쟁력이 됐지만, 그 외모도 돈을 주고 관리하는 자가 더욱 잘 가꿀 수 있다는 점이 소설을 더욱 현실에 빗대게 만든다.

젊고 아름다워야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뿐이란다.(42쪽) 여자의 외모는 타인을 상당히 압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어도 그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뇌나 재능 따위로는 외모가 뛰어난 여자를 절대로 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68쪽) 하지만 단 한 가지, 주류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엄청나게 아름다우면 어떻게든 주류가 될 수 있어.(80쪽)

소설의 주 내용이 여성들의 이야기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슬프게 읽혔던 부분은 유리코를 살해한 중국에서 온 이주노동자 장제중의 진술서다. 물론 이 진술서는 나중에 가즈에의 일기와 비교해서 읽다보면 진실에서 벗어난 미화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되지만 그 속에서 가난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처절함이 느껴진다.

중국인은 태어난 장소로 그 운명이 결정된다. 이 말은 천안문사건의 영웅, 우얼카이시가 했다고 하는데, 사실 아닙니까. 저도 당 간부의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지금 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정말로 분하기 짝이 없습니다.(366쪽) 부라는 것은 항상 과잉을 낳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고 음탕한 것입니다. 그 음탕함은 설사 겉모습이 평범하더라도 그 학생을 특별한 존재로 꾸밀 수 있는 것입니다.(70쪽) 이 세상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꼴사납고 허영심이 뒤엉킨, 복잡한 세계 속에 있는데도, 그녀는 이 세계에 자신이 지금까지 배양해 온 노력과 근면이라는 가치관이 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잖아요.(90쪽) 이 세상은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답받지 못하는 자들로 가득하단 말이야(124쪽) 노력이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의 인내 끝에, 일시적인 자기만족을 얻는 것. 나는 노력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198쪽)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격차는 한없이 커서, 인간의 인생을 비뚤어지게 만듭니다.(326쪽)

유리코라는 완벽한 미의 화신이 가져온 풍파, 그리고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미의 몰락,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섹스, 그것을 완전히 거부하면서 고독하게 버텨내는 악의, 최고만을 지향하다 결국 타인의 삶을 비극으로 몰아가는 맹목 등등 소설은 현대인의 삶의 피폐함을 특히 현대 여성의 삶의 피폐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서도 과연 희망을 싹틀 수 있을까.

모두가 허황된 것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겼던 거야. 유리코가 그처럼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단지 미모 때문만이 아니었는지도 몰라. 네가 유리코에게 계속 열등감을 느꼈던 것은 유리코의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라, 유리코의 자유로움이 너로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어.(454쪽) 여자가 몸을 파는 단 하나의 이유, 그것은 이 세상에 대한 증오입니다. 그것은 확실히 어리석고 슬픈 일이지만, 남자 또한 그런 여자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순간이 섹스할 때뿐이라면, 남자도 여자도 어리석고 슬픈 것일까요. ...다정하게 대해주세요. 부탁이에요.(61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저자는 소설 서문격인 '하는 말'에서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고통받는 자란 모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저자의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라는 말에 공감할 수 없다. 이 책은 살아남은 자들의 편이기 때문이다.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들은 결국 강한 자들이라고 했다. 그렇다. 이 책은 고통받지만 살아남은 사람들, 그래서 강한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강한 자가 고통받다니... 그러나 힘없이 죽지말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사람이 바로 강한 사람이기에 모순은 해결된다. 유일한 지상과제는 생존이다.

왕조가 쓰러지고 세상이 무너져도 삶은 영원하고, 삶의 영원성만이 치욕을 덮어서 위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최명길은 차가운 땅에 이마를 대고 생각했다.(236쪽)

삶은 거저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이미 말했다.(285쪽)

이 책은 병조호란 당시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인조를 중심으로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신과 남한산성 내의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척화파와 주화파의 갈등이 큰 씨줄로 구성되고 백성들의 삶이 날줄을 구성한다. 지도자와 백성간의 간격이 얼마나 큰지를 은연 중에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다.

-조정의 막중대사를 대장장이에게 맡기시렵니까?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성이 위태로우니 충절에 귀천이 있겠는냐? -먹고 살며 가두고 때리는 일에는 귀천이 있었소이다.(227쪽)

또한 그 간극이 얼마나 큰지도...

무명에 풀을 먹여 천막을 쳐 눈을 막겠다는 조정은 그러나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바늘과 실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생각은 대장장이 서날쇠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행방안을 얻는다.

전하, 사직의 백성들 중에서 바늘을 만들 줄 알고 실을 꼴 줄 아는 자가 가까이 있으니 전하의 복이옵니다.... 김상헌은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128쪽)

또한 임금과 신하 사이의 간격도 냉소적으로 표현된다.

-민촌에 바늘이 없겠는냐?-백성들의 바늘은 작고 약해서 감당할 수 없사옵니다. 다섯 치짜리 굵은 쇠바늘이 백 개는 있어야 하겠는데...-그것이 다섯 치냐?-그러하옵니다.-그것은 손가락 아니냐?-병판은 어찌 어전에서 바늘을 아뢰시오? 군왕이 옥좌 밑에 바늘 쌈지를 깔고 앉아 있겠소?-바늘을 못 내주니 과인의 부덕이다(126쪽)

살아남기 위한 선택은 청에게 보내는 화친에 대한 국서를 써야 하는 네명의 신하를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국서를 쓴다는 것이 가문의 수치이며 결국 죽음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을 안 신하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그 책무를 피하려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방책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소설은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니 독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인지, 고귀한 희생을 택할 것인지. 그렇다면 과연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죽은 후에 고귀함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역사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한다면 왜 저자가 그토록 삶에 집착하는지도 일견 이해가 간다. 그러나 정녕 지상유일의 과제는 오직 삶일까. 입에 풀칠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문제는 역시 어렵다. 그래서 살아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탈출구일까 나락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 것도 귀찮아 그냥 페이지 귀퉁이를 접어두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이책, 도저히 책 귀퉁이를 접을 수가 없다. 한장 넘기면 접고 한장 넘기면 접다보니 책의 부피가 너무 커져버렸다.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이 작가는 현실비판적 시선을 놓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을 통해 실감할 수 있다. 일본의 명문대인 도쿄대생들의 집단 자살이나 테러, 이지메 등등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곳곳에 녹아 있다.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면서도 현실에서 살아남아 미래를 꿈꾸어야 하는 중학생을 주인공으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현실의 고통은 소설 속에서 회색이라는 악마로 등장한다. 중학교 지하에 망자들이 다니는 또다른 중학교 등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인간과 현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주인공은 자아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도오루, 그리고 성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시라토다. 여기에 도오루의 분신 또는 또다른 자아라 할 수 있는 도우루의 눈에만 보이는 친구 히카루도 있다.

소설을 이루는 핵심은 도오루가 다니는 중학교를 대상으로 연이어 유괴 사건이 발생하고, 결국 행방불명된 아이들은 시체로 되돌아온다. 아이들은 공포에 떨고 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안간힘은 인간의 조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학교의 방침, 언론의 행태, 그리고 학생 스스로 논리적 대응 또는 감정적 대응, 문제 해결의 엇갈림 등등 곳곳에서 갈등이 양상된다.

유괴와 죽음이라는 것으로부터 발생한 불안이 선과 악을 불분명하게 만들고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은 9.11테러와 같은 공포감과도 잇닿아 있다.

마음없는 인간을 양산하는 현대사회에서 도오루와 시라토는 사랑의 감정을 바탕으로 희망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감정의 상호전달은 언제나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때론 상처를 주고 때론 아픔을 주며, 때론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도록 유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처마저도 안아줄 감정은 진정한 소통과 이해를 가져온다. 그러기에 유일무이한 인간세상의 희망은 이러한 감정의 전달을 통한 소통이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품는 것에 있다는 주인공들의 생각은 많은 생각을 품게 만든다. 더군다나 지금 현실에 지쳐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인생이란 모두가 말하듯이 멋진 것일까, 아니면 나쁜 꿈일까라는 질문에 답은 오로지 가슴 속에 희망을 품고 있는냐에 달려 있다는 작가의 생각, 그리고 그 희망은 사랑과 같은 감정의 상호전달로 가능하다고 말하는 듯한 소설은 건조한듯 하면서도, 우울한듯 하면서도 결국 따듯하고 밝은 빛을 품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