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창녀 두 명이 살해된 사건을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혼혈로 완벽한 미모를 지닌 유리코, 그리고 그녀의 미모 때문에 패배주의에 빠져 악의로 극복하려는 그녀의 언니인 나, 가난한 집안 배경에도 불구하고 전교 1등을 비롯해 일류학교로 진학한 미쓰루, 자신이 예쁘다고 착각하며 거식증 등에 걸리면서도 언제나 1등이 되고싶었던 가즈에 등 4명의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이 네명의 여성이 바라보는 각각의 시각에서 유리코와 가즈에가 살해되기까지의 성장과정이 그려지면서 과연 어떤게 진실이고 거짓인지, 그리고 악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사회적 가치관에 개인이 어떻게 휘둘리는지 등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지고 있다.

소설의 대전제는 이 사회가 미모를 중요한 경쟁력으로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차별대우받는 계급적 구분이 있다는 것이다. 즉 집안의 부나 권력 등과 같은 태생적 환경과 외모라는 것은 스스로 선택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운명이라는 점에서, 그 운명을 극복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 사회에서 거의 불가능함을 소설은 지극히 생생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요즘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있자면, 소설의 내용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더군다나 개천에서 용나는 시절이 지나가고, 외모라는 것도 중요한 경쟁력이 됐지만, 그 외모도 돈을 주고 관리하는 자가 더욱 잘 가꿀 수 있다는 점이 소설을 더욱 현실에 빗대게 만든다.

젊고 아름다워야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뿐이란다.(42쪽) 여자의 외모는 타인을 상당히 압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어도 그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뇌나 재능 따위로는 외모가 뛰어난 여자를 절대로 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68쪽) 하지만 단 한 가지, 주류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엄청나게 아름다우면 어떻게든 주류가 될 수 있어.(80쪽)

소설의 주 내용이 여성들의 이야기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슬프게 읽혔던 부분은 유리코를 살해한 중국에서 온 이주노동자 장제중의 진술서다. 물론 이 진술서는 나중에 가즈에의 일기와 비교해서 읽다보면 진실에서 벗어난 미화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되지만 그 속에서 가난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처절함이 느껴진다.

중국인은 태어난 장소로 그 운명이 결정된다. 이 말은 천안문사건의 영웅, 우얼카이시가 했다고 하는데, 사실 아닙니까. 저도 당 간부의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지금 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정말로 분하기 짝이 없습니다.(366쪽) 부라는 것은 항상 과잉을 낳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고 음탕한 것입니다. 그 음탕함은 설사 겉모습이 평범하더라도 그 학생을 특별한 존재로 꾸밀 수 있는 것입니다.(70쪽) 이 세상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꼴사납고 허영심이 뒤엉킨, 복잡한 세계 속에 있는데도, 그녀는 이 세계에 자신이 지금까지 배양해 온 노력과 근면이라는 가치관이 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잖아요.(90쪽) 이 세상은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답받지 못하는 자들로 가득하단 말이야(124쪽) 노력이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의 인내 끝에, 일시적인 자기만족을 얻는 것. 나는 노력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198쪽)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격차는 한없이 커서, 인간의 인생을 비뚤어지게 만듭니다.(326쪽)

유리코라는 완벽한 미의 화신이 가져온 풍파, 그리고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미의 몰락,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섹스, 그것을 완전히 거부하면서 고독하게 버텨내는 악의, 최고만을 지향하다 결국 타인의 삶을 비극으로 몰아가는 맹목 등등 소설은 현대인의 삶의 피폐함을 특히 현대 여성의 삶의 피폐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서도 과연 희망을 싹틀 수 있을까.

모두가 허황된 것에,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겼던 거야. 유리코가 그처럼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단지 미모 때문만이 아니었는지도 몰라. 네가 유리코에게 계속 열등감을 느꼈던 것은 유리코의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라, 유리코의 자유로움이 너로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어.(454쪽) 여자가 몸을 파는 단 하나의 이유, 그것은 이 세상에 대한 증오입니다. 그것은 확실히 어리석고 슬픈 일이지만, 남자 또한 그런 여자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순간이 섹스할 때뿐이라면, 남자도 여자도 어리석고 슬픈 것일까요. ...다정하게 대해주세요. 부탁이에요.(61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