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저자는 소설 서문격인 '하는 말'에서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고통받는 자란 모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저자의 고통받는 자들의 편이라는 말에 공감할 수 없다. 이 책은 살아남은 자들의 편이기 때문이다.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들은 결국 강한 자들이라고 했다. 그렇다. 이 책은 고통받지만 살아남은 사람들, 그래서 강한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강한 자가 고통받다니... 그러나 힘없이 죽지말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사람이 바로 강한 사람이기에 모순은 해결된다. 유일한 지상과제는 생존이다.

왕조가 쓰러지고 세상이 무너져도 삶은 영원하고, 삶의 영원성만이 치욕을 덮어서 위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최명길은 차가운 땅에 이마를 대고 생각했다.(236쪽)

삶은 거저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이미 말했다.(285쪽)

이 책은 병조호란 당시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인조를 중심으로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신과 남한산성 내의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척화파와 주화파의 갈등이 큰 씨줄로 구성되고 백성들의 삶이 날줄을 구성한다. 지도자와 백성간의 간격이 얼마나 큰지를 은연 중에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다.

-조정의 막중대사를 대장장이에게 맡기시렵니까?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성이 위태로우니 충절에 귀천이 있겠는냐? -먹고 살며 가두고 때리는 일에는 귀천이 있었소이다.(227쪽)

또한 그 간극이 얼마나 큰지도...

무명에 풀을 먹여 천막을 쳐 눈을 막겠다는 조정은 그러나 이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바늘과 실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생각은 대장장이 서날쇠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행방안을 얻는다.

전하, 사직의 백성들 중에서 바늘을 만들 줄 알고 실을 꼴 줄 아는 자가 가까이 있으니 전하의 복이옵니다.... 김상헌은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128쪽)

또한 임금과 신하 사이의 간격도 냉소적으로 표현된다.

-민촌에 바늘이 없겠는냐?-백성들의 바늘은 작고 약해서 감당할 수 없사옵니다. 다섯 치짜리 굵은 쇠바늘이 백 개는 있어야 하겠는데...-그것이 다섯 치냐?-그러하옵니다.-그것은 손가락 아니냐?-병판은 어찌 어전에서 바늘을 아뢰시오? 군왕이 옥좌 밑에 바늘 쌈지를 깔고 앉아 있겠소?-바늘을 못 내주니 과인의 부덕이다(126쪽)

살아남기 위한 선택은 청에게 보내는 화친에 대한 국서를 써야 하는 네명의 신하를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국서를 쓴다는 것이 가문의 수치이며 결국 죽음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을 안 신하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그 책무를 피하려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방책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소설은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니 독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인지, 고귀한 희생을 택할 것인지. 그렇다면 과연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죽은 후에 고귀함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역사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한다면 왜 저자가 그토록 삶에 집착하는지도 일견 이해가 간다. 그러나 정녕 지상유일의 과제는 오직 삶일까. 입에 풀칠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문제는 역시 어렵다. 그래서 살아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탈출구일까 나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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