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5만원이 남은 절체절명의 위기 (월세 35만원에 사는터라 더욱)여서 훈련소를 다녀온 이후, 동네방네 과외를 구하러다녔다.

학부때부터 부모님께서 학비이외에는 일절 나에게 투자(?)를 안 하셨던더라, 과외를 꾸준히 하기는 했는데 석사과정부터는 '최소한으로 벌고 최소한 쓰자'라는 좌우명 같은 것을 실천하다보니까 연구보조나 장학금으로 그런대로 괜찮게 살고는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과외시장 -_-; 이라는 엄혹한 곳에 뛰어든 셈. 집 근처에도 전단지를 붙이고, 고향(?)근처에는 고향친구들 ㅋㅋ이 전단지를 붙여줘서 전화도 오고 그랬는데, 이렇게 전단지 붙여서 하는 것은 거의 성사되지 못한다. 아빠 친구분 딸과 그 친구분의 친구, 뭐 이렇게 알음알음으로 과외를 시작한 셈.

그런데 어제는 숙모가 전화와서 숙모 아시는 분 아들 논술과외를 해달라고 해서, 이런저런 조건을 말했다. 조금 후에 전화와서 숙모꼐서 하시는 말씀.

기인아, 너 되게 조금 받는 거라던데. 왜 이렇게 조금 받느냐고 물어보더라.

당황;; 그냥 충분히 받는 것 같은데요. ^^;;;

어쨌든, 이 과외시장이라는 것이 양극화되고, 이 과외 또한 과시소비 비슷한 양상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내 노동력의 가치를 알수 있는 수단은 소문과 매겨져있는 가격표 뿐.

특정 계층의 특정물품은 비쌀수록 이것의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듯이. 과외 시장 또한 그런식으로 흘러가고 있는 셈.

과외 5개 들어왔는데, 상담을 하고는 이 학생은 언어/논술 과외가 필요한 게 아니고, 자기 공부시간을 많이 가져야 하며 지금은 영수에 집중할 때.. 뭐 이런 소리로 3개 과외는 안 하겠다고 했다. 사실 맞는말이었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조금 황당하기도 했을 터.

언어/논술 과외해달라고 불렀더니, 한시간동안 한다는 이야기가, 과외 학원 많이 보낸다고 되는게 아니고, 영수가 중요하고 등등 이야기만 하고 간다니.

사실 과외를 완전히 노동력 판매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반은 재미로 -_-; 또 책임감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지만. 학부모 입장은 또 다르다.

정말, 과외를 많이 시키고 학원을 많이 보내야, 심리적 안정을 하는 것이고, 그 심리적 안정을 대가로 지불을 하는 느낌도 분명 있다. 그런낌새가 보이면 더 냉혹하게 말을 하는 편이지만...

이래저래 복잡한 시장이다. 노동력을 판매하는 사람은 구매자에게 손해가 갈테니 판매하기 싫다고 하고, 노동력을 구매하는 사람은 왜 이리 적게 받느냐고 하고. 뭐 이것도 따지고 보면 장기적인 이득을 얻기 위한 플랜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쩝.

어쨌든 지금 하고 있는 2명의 과외도 2달 정도 해서 성적을 올리고는 그만둘 예정이다. 친우는 기생해서 1년을 살라고도 하지만 -_-; 2달 가르치면 솔직히 언어영역은 가르칠 것도 없다. 애들한테 도움도 안되고..

학부때 한 선배는 우스개 소리로 과외 하러 갈때마다 부르주아 착취 투쟁 전선으로 간다하면서 가고는 했다. 이 노동력 판매 행위는 판매자 입장에서 구매자를 착취하는 것으로 생각될 정도라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착취에 반대하니, 그냥저냥 힘들게 살 수 밖에.

그렇지만, 그럼 2달 후에는 다시 또 과외를 구해야 하다니.. 비정규직은 괴로워 참.

"왜 이렇게 조금 받아요?"는 역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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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1-09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리다매" 입니다..라고 답변하세요..^^

물만두 2006-11-09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심냉장곱니다 하세요^^

기인 2006-11-09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ㅋㅋ 최대한 적게 일해야 되서;;; ㅋ 박리다매 웃깁니다 ㅎㅎ
물만두님/ 켜켜; 어쨌든 너는 그 정도 가격이냐?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지요. 다음부터는 더 많이 받으려고요 쩝 =.=;
 

올만에 집에와서 몸무게를 달아보니 68kg. 한 선배한테 농담처럼 68혁명을 기리기 위해 몸무게를 68로 유지할 거라고 했는데, 진짜 68이 됬다. 출소 후 많이 먹었지만, 역시 시급 300원의 압박으로 미숫가루로 아침과 점심을 대체한 것이 효과가 있었나 보다.

어쨌든, 진짜 시급 300원으로 먹고 살 수는 없는지라 (집에 얹혀사는 것도 아니고 방값도 내야하기 때문에) 과외를 구하고 나섰다.

말이 와전되서 석사때 받던 봉급과 동일하게 받게 되었지만, 뭐 그래도 시급 300원보다는 괜찮기에, 그리고 진짜 이대로 가다가는 길바닥에 내앉게 생겼기에 (사실 그렇기보다는 강제로 집으로 소환;; 되겠지만.) 아버지 친구분 딸 과외를 하게 되었다. (*사실 아버지 친구분 중에 아직도 고등학생 딸이 있으신 분이 있다니! 하고 놀라기도 했지만) 과외 하나로는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어쩌다 보니 그 집 어머니 친구 분의 따님과 또 그 이웃사촌의 아들까지 도합 3개의 과외가 하루에 들어와 버렸다. -_-;;; 게다가 원래 과외를 하기로 딸의 남동생과 그 집 이웃사촌의 동생도 봐달라고 해서 곧 5개의 과외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음... 워낙 거절을 못하는 성격인지라......... 기 보다는 통장 잔고가 5만원인 상태의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상태에서, 그냥 있을때 모아 놓자 라는 생각에 (내 뱃살도 그렇게 해서 쌓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있을 때 먹자는... -_-; ) 왠만하면 다 봐준다고 하고 말았다... 쩝;

어짜피 주중 3시부터 11시는 시급 300원의 복무를 해야되니 과외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주말 밖에 없다. 그런데 오늘은 또 대치동 모 학원에서 논술강사로 오라고 하니, 이거 주중에는 국가를 위해, 주말에는 내 뱃살을 위해 쉴 새 없이 일하게 될 듯.

어쨌든 오랜만에 과외를 하다보니, 또 3 학부모의 걱정과 각각 5 아이의 고민을 들으니 새삼, 모든 사람들은 나름의 고민과 걱정으로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새삼스럽지만. 다 같이 고등학교 학생들이고 그 중 3명은 서울대 미대를 지원하는 학생들이지만 고민이 각기 다르다. 학부모님들이 걱정하는 것도 각기 다르고.

전 세계, 60억이 넘는 사람들. 그 사람들 각자에게 너무도 다른 일상과 세계. 각기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문제가 지상과제일 터이다. 훈련소 가서도 나와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 공익 근무를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나에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고충과 고민을 털어놓는 학부모나 학생과의 만남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어찌됬든. 지금까지는 배고팠지만, 주말에 하는일 없이 빈둥거리면서 잠이나 잤는데.

앞으로 주말에 과외5개와 학원강의 1~2개를 할 생각을 하니... 음.

동선을 잘 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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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6-10-29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만 들어도 압박이 몰려오는 듯한 느낌.
그러다가 살이 더 빠지시는거 아니예욧?

건우와 연우 2006-10-30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동선을 잘 짜셔야겠군요...^^

기인 2006-10-30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쿄쿄 더 빠져도 좋죠. :) 과외 1~2달만 할 예정이라서요 ㅎㅎ
건우와 연우님/ 근데 그게 제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서 걱정이랍니다 ㅜㅠ

seeker16 2006-11-02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살도 빠져 좋고, 돈도 벌어 얼굴이 설 테고 아주 잘 됐네. 나도 12월 넘으면 과외 구해야하는데...기인아 힘들면 한 개 넘겨주렴! ㅎㅎ(앞으로 지원하면서 원서값이 쏠쏠히 들텐데, 그것 갚아야 되거든. 근데 언제부터 자취생활을 시작한 게얌?)

기인 2006-11-0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석사때부터 자취했어요~ 이제 1월쯤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예정 ㅎㅎ
언어 과외인데 괜찮으세요? 영어 과외 필요하다고 그럼 바로 소개시켜드릴께요 ;)

seeker16 2006-11-02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야 동시간 접속이네. 역시 공익 맞구나^^; 난 시험 이틀 남은 주제에 왜 이 모양인지-ㅗ-; 언어는 내가 어떻게 가르치겠어, 당치 않은 소리. 영어과외 좋은 자리 하나 있음 소개해주라. 자취한지 오래됐었구나. 같은 관악구민을 못 알아보았군. 관악구민 체육관 좋다던데, 그 근처인 거지?

기인 2006-11-0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ㅎ 테니스장 4면 있고 축구장, 농구코트, 족구 코트 있고 축구장 주위로 트랙있고 그런데에요. 컥 누나 무슨 시험이요? 유학 시험인가요? 설마 영문과는 박사과정도 시험을 보는 건;; 아니겠지요 ^^ㅎ
 

이등병 때 안 서러울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은, 역시 생각처럼 만만치는 않다. 지금 선임은 말년 병장으로 12월 10일날 소집해제 예정. 선임이 있으면 있는데로, 없으면 없는대로 스트레스.

뭐 이래저래 얼른 적응을 해야지. 3시부터 11시까지 근무하고 집에 와서 1시쯤 잠에 드는데도, 오전에 일어나기 힘들다. 12시쯤 일어나서 또 하루가 시작이구나 하면 출근해서 어리버리하고 욕먹다가 어느새 퇴근. 시간은 잘만 간다. 적응한답시고 하는 일이란 도피식 11시간씩 자고 피아노 레슨 띵기기 -_-;;;

아 방금 훈련소 동기가 네이트 온에 들어왔는데 대화명이 '피할수 없음 즐겨라'이다. 으음. 고견이군.

어쨌든 다음주부터는 아침에 일어나서 책이라도 쫌 보다가 출근을 해야지. 시급 300원 노가다. 책이라도 읽어야지 원.

계획을 잘 짜서 외국어 공부랑 석사논문 쓰느냐 못 읽었던 책들을 읽어야지, 했었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말짱 도루묵이다.

어쨌든 요즘 수입은 이 시급 300원 노가다 외에는 없어서 출퇴근은 도보로, 아침 겸 점심은 미숫가루 저녁은 거기서 (공짜) 라면으로 때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역시 먹는게 부실하니 더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인지...

1월 쯤에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부모님께 기생할 예정. 밥심으로 살아야 하는데, 사먹기도 그렇고 돈도 없고 작전상 후퇴(?)다. 배고픈 삶.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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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0-2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도보로 가능할 정도로 가까운가요??

기인 2006-10-2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저는 관악구청에 출근도장 찍고 관악구민운동장으로 출근해야 되는데, 구청까지 30분 구청에서 20분 넉넉잡고 가능합니다. ^^

건우와 연우 2006-10-2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익은 해당기관에서 식사를 제공하는거 아닌가요?

비자림 2006-10-27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걷는 건 좋은데 라면은 좀..
식사 잘 하셔야 합니다. 화이팅, 이등병!!!!!!!!!!!!!

기인 2006-10-27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 공익은 식비가 4000원 따로 제공됩니다. ㅎㅎ
비자림님/ 1월에 집에 들어간 다음에는 도시락 싸가지고 댕기려고요 ^^
 

훈련소 가기 전 내 허리는 34. 훈련소 막바지 A급 전투복을 맞출 때는 30. 물론 꽉 끼기는 했지만, 딱 맞는 정도. 훈련소에서 몸무게는 3~4kg 빠졌지만 몸은 정말 날씬해진 것을 느꼈다. 훈련소 나와서 공익복을 맞출 때는 재단사가 와서 옷 위로 허리를 재는데, 그 때는 32. 사람들 모두 날씬해졌다고 해서, 그래도 훈련소 괜찮구나 하면서 내심 즐거워했는데...

이제 훈련소 다녀온지 10일이 되가는 이 시점. 다시 몸이 예전으로 돌아오고 있다. 훈련소에서 컴백했기 때문의 환영회에서의 음주와 안주. 그리고 하루종일 집에서 오전에는 탕수육 오후에는 피자, 밤에는 갈비. 이런 패턴이 지속되니, 완전히 컴백이다. 다시금 경건한 마음으로, 미숫가루와 함께 살아야지.

목요일 처음으로 내가 일할 관악구민운동장에 배치되었고, 금요일 공식 첫 출근을 했다. 선임이 친절히 가르쳐줘서 그냥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이제 오늘(월요일)부터는 공식적인 한 주를 시작해야 겠구나. 부디 계속 비가 내리길. 오늘(월요일)은 비가 온다니 다행이다. 비가 오면 근무가 쉽다는 사실.

친구들은 고급인력을 운동장 관리 (청소, 사람들 담배 못 피게 하고, 자전거, 애완동물, 인라인 방지, 열쇠 잠그기 등) 시킨다고 뭐라고 했지만. 뭔 놈의 고급인력. 국가가 필요하는 것은 관리인일 뿐. 하긴 문학석사를 어따 쓰겠는가. (사실 최선의 방법은 정훈장교로 국군을 선전선동하는 찌라시를 만드는 것이겠지만;;;)

아자. 내일부터 관악구민운동장은 내가 지킨다... 는 아니고, 내가 관리한다... 는 것도 아니고, 공무원들과 선임공익요원과 상용직과 일용직 아저씨들과 공공근로 아줌마들을 보조하며, 관악구민운동장을 관리하는데 일조... 해야겠다. 아으. 2년 1개월동안 무사히 관악구민운동장을 잘 관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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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0-23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굿모닝~ 오~ 축하드려요^^ 고생한 만큼 날씬해지셨군요.. 관악구민운동장도 잘 지켜주시길...

Mephistopheles 2006-10-2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동네 꽤 오래 살았음에도 관악구민운동장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
낙성대쪽인가요.?

기인 2006-10-2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네^^ 근데 다시 찌고 있다는 ;)
메피스토님/ ㅋㅋ 구민들이 모를수록 좋아요 ㅎㅎ 네 낙성대 쪽에 있어요. 낙성대역과 서울대 후문 사이라고 할 수 있죠 ^^

건우와 연우 2006-10-2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장관리하는 고급인력이라...^^
운동장을 구민에게 홍보하는 홍보물이나 구민행사 기획같은거 하면 안돼나요?@@
날씨도 쌀쌀해지는데 화이팅!!!입니다.^^

해리포터7 2006-10-23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날씬해지셨구만요..사진도 바뀔때쯤 안되었나요? 멋진 공익복입으신 모습으로다....ㅎㅎㅎ추워지는데 몸조심하셔요^^

산사춘 2006-10-24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훈련복 치수와 같군요. 관악구민운동장 잘 관리해 주시고 잘 이용해 주세요. 마포구민 올림

기인 2006-10-2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구민들이 많이 오시면 저희 공익들은 죽어나요 ㅜㅠ
해리포터님/ ㅋㅋ 공익복은... 멋지다기 보다는 음울하죠;;;
산사춘님/ 님의 성별이 헷갈리기 시작하는데요;;; 음. 님의 농담을 잘 못 알아들어서 죄송 ^^;
 

어제 전역-_-;; 퇴소했습니다. 훈련소 생활, 그닥 어려운 것은 없었습니다. 4주 중 3주까지는.

하라는 대로 하는 것. 짬밥 먹기와 용변, 세면의 어려움은 감수해야 할 것이지요. 기간병들의 짜증도. 정신교육에서 '우리'의 첫번째 적이 북한정권과 북한군이며 두번째 적은 '운동권'이라고 하는 것도. '이해'하면서 들었습니다. 여성비하적인 발언들과 성매매여성이 주된 농담거리고 등장하는 것도.

중대장에게 처음 들어본 속담. (나름 국문학 박사과정이지만;;)

씹주고 뺨 맞는다고, 네가 니들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 운운했던 것에 놀라기는 했지만. 이런게 군대이구나 했지요.

처음에 가장 힘든 것은, 단체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보충역 공익근무요원입니다. 우리 소대는 40명인데 그 중 30명은 몸이 아파서 보충역이 된 사람이고, 5~6명은 전과가 있는 사람들, 5~6명은 학력미달입니다. 몸이 아픈 사람들 중 정신질환도 5~6명은 있었고요.

처음에는 이 사람들과 같은 내무반에서 24시간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긴장도 되서 힘들기도 했지만, 색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생각을 듣는 것에서 많이 배웠지요.

그런데. 역시 4주차. 야간행군을 했던 10월 6일. 북한의 핵실험이 발표되고, 우리는 소총수로 끌려간다고 하고. 어떤 기간병은 자기네들은 전쟁나면 제주도 가서 그 곳에서 애들 훈련시키니까 안 죽지만, 너네들은 다 총알받이라고 하면서 웃고. 물론 훈련병들은 웃지 않았지요. 정말 전쟁이 나는구나. 미국의 대북제재는 기성사실화였고... 어지러웠지요. 녹슨 k2소총, 녹슨 반합, 녹슨 군장, 구멍난 훈련복, 물집이 잡혀서 피가 번지는 발, 냄새나는 방탄.. 계속 정훈장교가 보여주던 한국전쟁 (군대 용어로는 6.25 남침전쟁)의 참상들. 포로들 총살당하는 모습. 실제로 그들이 절규하다 머리에 총을 맞고 풀썩 쓸어지는 모습들...

짜증이라기 보다는, 허탈감이라기 보다는, 분노라기 보다는, 역시 우리는 역사를 살고 있구나. 한반도에 살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퇴소를 앞에 둔 마지막 주가 힘들었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역사라는 큰 물줄기 속에서 나라는 개인은 무엇도 못 하고, 소총 한 자루를 들고 '국가'라는 것을 위해서 살인을 하고 죽기도 하고 해야 하는 것이구나.

내가 동의하든 말든 관계없이, 국가라는 제도/폭력 속에서 나라는 개인은 소총수/보충역으로 자리 매김 되는 것이구나. 역사를 그래프로 그렸을 때, 나는 한 점과 한 점을 연결하는 직선에서 무시될 수 있는 값이구나 등등.

군복을 입고 있으면서, 매일 정훈장교들과 중대장, 대대장의 전쟁 위협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국방일보 속의 북핵보도를 읽으면서...

그렇게 마지막 4주를 겨우겨우 살아냈던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었던 '외부' 영상물로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있었지요. 2차세계대전 노릉망디 전쟁에 참전한 '우리의 친구 미국'의 전우들. 그들이 학살당하고 또 학살하는 모습들.

그리고 행진 하면서 불렀던 '멸공의 횃불'. '육군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백두산까지...

 

어지러운 날들. 북한은 정말 벼랑끝 전술, 혹은 벼랑 아래의 전술을 택하고 있고. 미국은 저기 있고, 남한은 흔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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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6-10-14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련소 3주차 일요일 두시간의 자유시간, '진중문고'에서 발견한 '장미의 이름'하권을 뽑아들고 환장하며 그야말로 빨려들어갈 듯 읽은 건, 평생 잊지 못할겁니다.

'수고했다'는 말은 이년 후로 미루겠습니다. =)

기인 2006-10-14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상권은 어찌하고요? ^^
아으 군대 ㅜㅠ

Mephistopheles 2006-10-14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정치적이거나 사상적인 관념의 스위치를 끄고 보면 볼만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인 2006-10-1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에서 보면 넘 암담해요 ㅜㅠ 북핵터지고 우리도 저기 가야되구나 하면서 보니까 완전 -_-;;;

물만두 2006-10-1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군요^^

Mephistopheles 2006-10-14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겠군요..
2차세계대전이후 살상용 무기는 계속해서 업그레이드가 되었는데 인간은 업그레이드가 안되었으니....더 끔찍해지겠군요..

마늘빵 2006-10-14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견디기 힘든 날이었지요. 돌이켜보면. 전 군가도 대충 입맛 뻥긋거리고 그 '따위' 가사들 제 입으로 읇고 싶지 않아서, 여성 비하적인 발언들은 모른 척 하고, 주적이 어쩌구 저쩌구 하며 외우라고 한 것도 안 외우고, 최대한 농땡이 치고 그랬답니다. 나름 군대에 대한 반항과 거부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그네들이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또 화장실이나 기타 등등의 장소에 군대비판 이랍시고 끄적이기도 했고, 완전 싸이코로 알았겠지만. 아 정말 짜증나는 2년 2개월이었습니다. 이번달에 또 예비군있는데 집총거부해야지.

기인 2006-10-1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무사히는 다녀왔습니다 ^^; ㅎㅎ
메피님/ 화생방때 특전사 출신 소대장 왈. 난 화생방 나면 자살할까 생각 중이야. 화생방 잘 해봐. -_-;;; 그리고 조금 후에 북핵 터졌죠 ㅜㅠ
아프락사스님/ 네 ㅜㅠ 근데 집총거부하면 실형사는 거 아니에요? 어제 퇴소해서 계속 군법이야기만 기억에 남네요. 저는 안보관 제일 처음에 외워서 전화조치를 받았다는 -_-;;;;; 북한정권과 북한군이 우리의 적인 이유는?....
아프님 언행일치 멋있습니다!

이매지 2006-10-14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뵈니까 더 반갑네요^^ 그나저나 살이 빠지셨네요^^
건강하시죠? ^^

비자림 2006-10-14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주차가 많이 힘들었나 보네요.
애썼어요!
화이팅!

바라 2006-10-1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일하게 틀어주는 영화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뻔한 정훈교육들이며...
역시 훈련소는 1년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게 없군요

프레이야 2006-10-1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고생 많이 하셨어요. 살도 많이 빠지셨군요. 근데 그 속담 참 거시기 하네요^^

기인 2006-10-14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네 ㅎㅎ 살은 빠지고 허리도 아프고 그래요. 계속 잠만 잔답니다. 아으 사회 잠의 달콤함! ^^
비자림님/ 네; 북핵 때문에 긴장 많이 했죠. 군대 안에 있으니까, 그리고 훈련병이니까 되게 깝깝했어요. 우리는 현역들이 대비할 동안 총알 몸으로 막아주는 역할이거든요 -_-;;;
바라님/ 군대가 가장 늦게 변하는 집단이라고 하잖아요~ ^^
배혜경님/ 그렇죠? 그런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연대장까지 여성의 성을 가지고 농담하면 훈련병들이 좋아하는 줄 안다니까요;;;

LAYLA 2006-10-14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어요~~*^^*

LAYLA 2006-10-14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3킬로그램 이상 빠지셨군요 호호

Oiseau 2006-10-14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중감량은 많이 하셨는데 중요한건 여전히 건강하시죠? 아으 저 속담 -_-;;
운동권과 386세대까지 '군사화'된, 그리고 젠더적관점에서는 여성을 비하하는 역사를 말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군대다>란 책을 읽고 있어서 더욱 님의 글이 실감이 나는군요.

기인 2006-10-15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네 ㅎㅎ 이제 5kg만 더 빠지면 제 최전성기(?) 때의 몸무게로 컴백하게 됩니다. ㅎㅎ
Oiseau님/ 어휴 그래요. 뭐 학교나 직장이나 군대의 연장내지는 조금씩 변화한 거 같아요. 전과자 친구들말 들어보면 교도소가 역시 제일 빡세다는... 전과 있는 친구들이 가장 군대생활 잘하는 것 같아요. 모포 각도 잘 잡고;;;

산사춘 2006-10-18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결같은 저 짓거리... 그루나 잘 버티고 오셨어요, 짝짝!

기인 2006-10-18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ㅎ 지나고 보니, 아득하네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