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전역-_-;; 퇴소했습니다. 훈련소 생활, 그닥 어려운 것은 없었습니다. 4주 중 3주까지는.
하라는 대로 하는 것. 짬밥 먹기와 용변, 세면의 어려움은 감수해야 할 것이지요. 기간병들의 짜증도. 정신교육에서 '우리'의 첫번째 적이 북한정권과 북한군이며 두번째 적은 '운동권'이라고 하는 것도. '이해'하면서 들었습니다. 여성비하적인 발언들과 성매매여성이 주된 농담거리고 등장하는 것도.
중대장에게 처음 들어본 속담. (나름 국문학 박사과정이지만;;)
씹주고 뺨 맞는다고, 네가 니들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 운운했던 것에 놀라기는 했지만. 이런게 군대이구나 했지요.
처음에 가장 힘든 것은, 단체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보충역 공익근무요원입니다. 우리 소대는 40명인데 그 중 30명은 몸이 아파서 보충역이 된 사람이고, 5~6명은 전과가 있는 사람들, 5~6명은 학력미달입니다. 몸이 아픈 사람들 중 정신질환도 5~6명은 있었고요.
처음에는 이 사람들과 같은 내무반에서 24시간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긴장도 되서 힘들기도 했지만, 색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생각을 듣는 것에서 많이 배웠지요.
그런데. 역시 4주차. 야간행군을 했던 10월 6일. 북한의 핵실험이 발표되고, 우리는 소총수로 끌려간다고 하고. 어떤 기간병은 자기네들은 전쟁나면 제주도 가서 그 곳에서 애들 훈련시키니까 안 죽지만, 너네들은 다 총알받이라고 하면서 웃고. 물론 훈련병들은 웃지 않았지요. 정말 전쟁이 나는구나. 미국의 대북제재는 기성사실화였고... 어지러웠지요. 녹슨 k2소총, 녹슨 반합, 녹슨 군장, 구멍난 훈련복, 물집이 잡혀서 피가 번지는 발, 냄새나는 방탄.. 계속 정훈장교가 보여주던 한국전쟁 (군대 용어로는 6.25 남침전쟁)의 참상들. 포로들 총살당하는 모습. 실제로 그들이 절규하다 머리에 총을 맞고 풀썩 쓸어지는 모습들...
짜증이라기 보다는, 허탈감이라기 보다는, 분노라기 보다는, 역시 우리는 역사를 살고 있구나. 한반도에 살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퇴소를 앞에 둔 마지막 주가 힘들었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역사라는 큰 물줄기 속에서 나라는 개인은 무엇도 못 하고, 소총 한 자루를 들고 '국가'라는 것을 위해서 살인을 하고 죽기도 하고 해야 하는 것이구나.
내가 동의하든 말든 관계없이, 국가라는 제도/폭력 속에서 나라는 개인은 소총수/보충역으로 자리 매김 되는 것이구나. 역사를 그래프로 그렸을 때, 나는 한 점과 한 점을 연결하는 직선에서 무시될 수 있는 값이구나 등등.
군복을 입고 있으면서, 매일 정훈장교들과 중대장, 대대장의 전쟁 위협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국방일보 속의 북핵보도를 읽으면서...
그렇게 마지막 4주를 겨우겨우 살아냈던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었던 '외부' 영상물로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있었지요. 2차세계대전 노릉망디 전쟁에 참전한 '우리의 친구 미국'의 전우들. 그들이 학살당하고 또 학살하는 모습들.
그리고 행진 하면서 불렀던 '멸공의 횃불'. '육군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백두산까지...
어지러운 날들. 북한은 정말 벼랑끝 전술, 혹은 벼랑 아래의 전술을 택하고 있고. 미국은 저기 있고, 남한은 흔들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