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 에덴서, 박성일 옮김, 대중문화와 일상, 그리고 민족 정체성, 이후, 2008.
(National Identity, Popular Culture and Everyday Life, 2002)
3부 민족 정체성의 퍼포먼스 Performing National Identity
이 장에서는 민족 정체성 형성에 사람들의 행위를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보고 분석하고 있다. 국가/지방 전통 의식이나 대중 드라마, 일상생활, 습관,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민족적 맥락에서 어떻게 ‘연기’를 함으로서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는지를 분석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장에서도 계속 그러하듯이, 에덴서는 이론과 분석 사이에 어정쩡하게 위치함으로서, 추상적 수준에서 수준높은 이론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분석으로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추상적 수준에서 에덴서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민족 정체성이란 유동적이며 다층적이며 수행적이며, 대중문화나 일상에서 조직되는 면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이론적으로 버틀러의 수행성 개념과 빌리히의 민족 정체성을 (재)생산하는 “신념, 가정, 습관, 재현, 실천의 총체”가 일상의 평범한 영역에서 민족 특유의 조건으로 재생산된다는 평범한 민족주의를 따른다.

3부에서는 민족 기념식, 스포츠, 축제, 관광, 일상 등을 다루는데 각 예는 앞서 말한 것처럼 얼마나 민족 정체성이 유동적이고 다양한 분파에 의해서 전유되고(특히 국가), 다층적인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관광을 ‘민족의 무대화’라고 표현한 것은 흥미롭다. 관광객에게는 ‘어떻게 행동할지, 무엇을 봐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들어야 할지에 관한 상식화된 생각을 뒷받침하고 현실적 규범을 유지하기 위한 담론적이고 규율적인 질서’가 존재한다. 또한 많은 부분 서구 관광객에 대한 비서구 지역은 과거 식민지 시대의 관광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형태의 무대화는 원초성, 이국성, 성애화와 관련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반면, 전통적이고 민속적인 민족문화가 무대화됨으로써 종족성과 민족 정체성을 재구성함과 동시에 관광객을 위한 진정성 없는 구경거리를 전달할 수도 있지만 죽어 가는 전통을 다시 되살려서 이를 새롭게 표현된 정체성에 주입할 가능성도 있다. 늘 하는 결론처럼, ‘민족의 무대화는 민족 주체들이 상품화된 문화를 동적인 방식으로 재전유하는 것 또한 가능하게 하는 복잡한 문제’라고 한다.
일상적인 퍼포먼스 또한 주제는 흥미롭다. 사회생활은 본질적으로 연극적이고, 우리는 언제나 그 안에서 특정한 역할들을 담당한다. 이러한 일상적 퍼포먼스는 특정한 환경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 주는 일련의 기법과 기술에 의해서, 그리고 실용적이며 구체적인 규범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런 퍼포먼스들은 공동체적으로 공유된다는 점에서 적절한 행위 실연과 부적절한 행위 실연에 대해 문화적 지침이 존재한다. 이러한 지침, 공유된 규범들은 어떻게 민족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일상에서 획득된 습관은 규범적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방법이며, 무의식적으로 몸에 각인되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이 몸에 체화됨으로써 자아에 일관성이 주어진다. 이런 습관이 공유되서, 정서적이고 인식적인 유대가 강화되며 아비투스를 구성하는 공동 행동과 통념이 견고해진다.
4부 물질문화와 민족 정체성 Material Culture and National Identity
이 부분도 ‘사물들이 익숙하고 상징적인 물적 세계에서 어떻게 조직되고 분배되어 문화적, 공간적, 수행적 환경을 구성하는지’, 그래서 ‘사물이 민족 정체성에 내재한 일상 세계와 상징적 상상력, 정서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에 속한다는 점’을 살펴본다고 시작하고, 제목도 그럴듯하지만, 별 내용은 없다. 사물이 어떻게 민족 정체성과 연관되는지를 논의하는 것인데, 앞서 논의한 ‘일상생활’이 어떻게 민족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가라는 논의에 ‘사물’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라 하겠다. 핵심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은 자동차, 자동차 산업과 민족 정체성 정도이고 나머지는 개략적으로 소개하는데 그치고 있다. 자동차 부분에서 기억해 둘만한 것은, (앤더슨의 논의처럼 획기적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 앤더슨의 논의에서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자동차 여행이 대중화되면서 국내의 낭만적 경관을 보러 가거나 명승지를 찾아가기가 쉬워졌으며 민족이 무엇인지 알 기회도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민족을 응시하게 될 가능성은 더 커졌다’. 여기서도 원문과 대비가 필요한데, 지적한 것처럼 Nation(al)을 민족(적)으로 번역하니, 이런 번역이 된 것 같다. 이보다는 (상상적 공동체)인 ‘국가’를 응시하게 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이해된다. 어쨌든 이는 앤더슨이 인쇄매체의 등장과 함께 상이한 공간들을 같은 시간, 같은 지면에서 상상가능하게 만듦으로서 ‘민족/국가’라는 것이 상상될 수 있었다는 논의와 함께 생각해볼만하다. 자동차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이런저런 곳에 다니면서 ‘국가’라는 것의 부분들을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민족/국가’ 정체성의 (재)생산과 관계는 물론 있겠지만, 여기서 소략하고 만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한계인 것 같은데, 논의는 시작/소개로 끝이 난다. (마치 학부 1학년 때 들었던 ‘심리학 개론’ 같은 한 학문 분야를 개설적으로 소개하는 듯하다) 어쨌든 이는 당연히 계급적인 구분를 고려해야 하고, 과연 이를 ‘우리’로 인지하게 되는 과정을 더 철저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가령 ‘불국사’를 보고나서, 우리는 이를 ‘한국’이라는 정체성의 (재)생산에 기여하는가, 아니면 서울/지방, 지금/과거라는 이분법으로 타자화하는지 등, 복잡다단한 그야말로 ‘수행적’이고 ‘다층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이론적인 배경은 ‘사물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사물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예측하는 것은 곧 감각을 이용해 이를 몸에 각인시키는 일’이고, 이는 민족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기술이나 사물과 상호작용하게 되면서 사물은 점점 더 자아나 관계의 친밀함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공동의 주체성과 사회적 통합의 근거가 되고 있다.’ 앞서 ‘일상생활’과 똑같다. 외국에 가면, 다른 사람들이 같은 물건을 가지고도 다르게 사용하고, 다른 물건을 가지고 다르게 사용한다는 것. 부르디외가 계급적 속성(문화자본, 자본 등의 소유에 따른 xy좌표평면)에 따라 샴페인이나 포도주를 위치시켰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