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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862857

기사는 연합뉴스 소개입니다.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동시 출간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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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주무시는 것을 처음 보았다. 주무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주무시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면 주무시는 것이지만, 특수한 잠이었다. 뇌출혈로 쓰러지신 한 달째, 어머니는 매일 팔다리를 마사지 해주시고 계셨다. 팔다리를 주무를 때면, 할아버지는 아이처럼 몸을 뒤틀고 싫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 같았다. 눈만 뜨면 될 것 같았다. 이쪽과 저쪽이 가늘게 할아버지 몸의 들숨과 날숨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저쪽으로 가셨는데, 몸은 이쪽에 남아있었다. 이쪽과 저쪽 사이에 어딘가에 있었다.

지금 나에게도 할아버지가 있다. 금방이라도 다시 서울에 올라오셔서, 스탠드 불빛에 책을 읽으실 것 같다. 아니면 창원에 내려가면 그 곳에 할아버지가 계실 것 같다. 할아버지 안에서 끊임없이 풀어져 나오던 이야기들. 소년시절 이야기,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때 그 후의 당신의 삶의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풀어져 나왔었다. 그것이 내 안에 어딘가에 엉켜있다가, 가끔은 풀어져 떠오른다.

나는 죽음의 의미를 할아버지를 통해서 처음 안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나, 외삼촌이 돌아가셨을 때와는 다르다. 영영 볼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살아간다는 것 또는 죽어간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았다. 그만큼 나에게 할아버지란 존재는 컸던 것인지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처음 경험한 것 같다. 덧없기도 하고 쓸쓸해지기도 한다.

아직도 그 때가 생생하다. 이쪽과 저쪽이 나뉘어 있는데, 이쪽과 저쪽이 육화되어 경계로서 현존하는 것 같았던 의식불명의 할아버지 모습. 나는 아마, 살아가면서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몇명 이렇게 보내야 할 것이다. '조금 더 잘 해드릴껄, 조금 더 이야기를 많이 해 볼 껄'같은 생각이라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그렇게 이별하는 구나, 조금씩 지쳐가기도 하고, 조금씩 그리워지기도 하다가, 어느순간 떠나는 것. 남겨진 사람은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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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대전 현충원에 모시고, 오늘 돌아왔습니다.

참, 할아버지가 많이 그립네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를 가장 닮은 손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었습니다. 항상 골방에서 책만 읽어서 그런거죠..

이렇게 갑자기 가시게 될 줄 몰랐는데, 너무 할아버지가 그립습니다. 80이 넘으시고, 할머니를 먼저 보내시고, 부쩍 늙으셨다는 많이 야위셨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언제나 누구보다 정정하시고, 누구보다 빨리 성큼성큼 걸으시던 할아버지였는데...

마지막 할아버지가 의식이 있을때 뵈었던 것은, 서울에 올라오셨을 때 잠깐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생각하던 것이랑 정말 많이 달러. 노인의 몸이란 전혀 상상하던 것이란 다르다.." 라고 하시던 말씀이 마지막이었네요..

할아버지의 웃음, 할아버지의 이야기들, 커피를 가져다 드리거나 하면, '고마워'라고 하던 목소리... 할아버지 어린 시절 농고에서 고생하던 이야기, 해군사관학교 입학해서 동기생 절반이 '빨갱이'로 총살당하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시며 그 광경의 아이러니한 희화성을 말씀해주시던 이야기, 6.25때 부상당하던 이야기, 기관총 파편을 맞으실 때의 느낌, 전쟁 상황 중의 멍한 기분, 베트남 전쟁 때 어뢰로 모두 폭사당할 뻔 이야기, 베트남 전쟁이 질 수 밖에 없는 전쟁인지 느끼셨던 이야기 등등..

언제나, 언제나 창원에 가면, 할아버지가 평생 다시 짓고 계시는 집에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렸을 떄, 할아버지가 마작과 노트럼프라는 카드게임을 가르쳐 주시던 것, 트럼펫 카드를 멀리 던지는 법을 가르쳐 주시던 것, 영어 단어들을 외우게 시켜서 1등에게는 초콜릿을 많이 주시던 것, 나무를 깍아 자동차를 만들어주시던 것 등이 생각이 나네요.

그러다가 한달 전에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계속 혼수상태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면회때 뵈고 다리를 주물러드리고 하면, 몸을 움직이시고, 잠투정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뒤척이셔서,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장례를 치루면서, 큰아버지에게서부터, 제가 몰랐던 할아버지에 관련 이야기들을 들으니, 청년, 장년 할아버지의 모습이 조금씩 제가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미국 유학시절 '여호와의 증인'을 굳게 믿게 되셔서, 한국 돌아온 이후에 그 때문에 군 내부에서 문제가 많았던 이야기.. 상관에게 반항해서 대위에서 소령으로 올라가는 시점에서, 소령에서 중위로 2계급 강등되셨다는 이야기.. 그 때문에 자기보다 해군사관학교 1기 후배의 차 얻어타고 다녀야 해서, 항상 후배 집 앞에서 꼳꼳히 서서 기다리셨다는, 융통없이 꽉 막혀서 사셨다는 이야기.. 감찰관 때는 쌀한가마니 뇌물로 들어온 것을 그대로 돌려보내시고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는 이야기 등등..

모두 제 기억 속에 있는, 항상 웃으시고 온화하고, 언제나 미국소설이나 시사지, 또는 일본 문예공론등을 스탠드 불빛 아래 누워서 읽고 계시거나, 아니면 팔을 겉어붙이고 담장을 쌓거나 천장보수를 하고, 초여름에도 두터운 내복과 털모자를 항상 끼고 계시던 70~80대 노인과는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할아버지가 그리워지게 되네요.

이제 더 이상 할아버지를 못 뵈게 된다는 것이 참 슬프네요.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는, 참 내가 해드린 게 너무 없고, 할머니에 대해서 아는게 너무 없다는 것이 슬펐는데.. 할아버지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게 너무 슬픕니다. 많이 그리워요..

여자친구한테도 할아버지 보여드리고, 할아버지에게도 여자친구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여자친구한테, 나한테는 이렇게 재미있고 똑똑한 할아버지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이제 벌써 늦었네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편히 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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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8-10-22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아버지께.. 이런 마음이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랄께요-
마음은 말이 없어도 전달되는 것인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더불어 할아버님께서 좋은 곳에서 편안하시길...

kklpower 2008-11-02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보니 나도 마음이 아프구나. 나 또한 할아버님께 기인의 마음이 닿으리라 믿는다. 낼부터 내게 찾아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더욱 잘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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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8-08-2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쵸! 차마 쓰기는 뭐했는 데 이런 것이 필요했답니다.
물론 검색하면 알수 있었겠지만 동가홍상이죠.
이케 책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있으면 더 좋죠. ㅎㅎ

마늘빵 2008-08-26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번역가의 길을 걸으시는건가요? ^^ 오랫만입니다.

기인 2008-08-26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ㅎㅎ
아프님/ ㅎㅎ 번역도 하고 기획도 하면서, 대학원 다니려고요. 역시 뭐든 먹고 살면서 공부도 해야되는데.. 힘드네요 ㅡ.ㅡ;

마늘빵 2008-08-26 19:45   좋아요 0 | URL
지금 박사과정 들어가시는거죠? ^^ 기인님도 한번 봐야하는데. 아직까지 연이 없네요.

기인 2008-08-26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ㅎ 아프님 전화번호는 아직도 고의 제 핸폰속에 저장되어 있답니다 ㅋㅋ
다음 번개때 :)

이매지 2008-08-2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나타나셨다 했더니 그간 이런 일을 하셨군요! ㅎㅎ

기인 2008-08-26 22:43   좋아요 0 | URL
오^^ 정말 오랜만이에요 이매지님 :) 준비하셨던 일은 잘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하하; 뭐 1년 동안 번역만 한 것은 아니고, 그냥 잘 놀았지요. ㅋㅋ
일어공부랑 번역만 했던 것 같아요. 슬슬 알라딘 활동 다시 해야 하는데..
귀차니즘이 늘어서 어찌될지는 몰라요 ^^; ㅎ

2008-09-04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8-09-04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넹 :) ㅋㅋ 속삭이신 ㅇ님 목소리도 부드러우시네요 ㅋㅋ 예전 느끼남 별명이 문득 떠올랐다는 ^^
헐.. 속삭이신 ㅇ님 목소리도 부드러우시네요... 약간 미묘 ^^; ㅋ

2008-09-16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9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8-10-10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 ㅎㅎ 뭔가 삶의 계기들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복학하면 다시 알라딘을 열심히 해볼까 생각중입니다 ㅋㅋ
그럼 다시 닉네임을 바꿀수도 ^^;
 

 

 

 

 

돼지머리들처럼    -나희덕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며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입 끝을 집어올린다.
자, 웃어야지, 살이 굳어버리기 전에.

새벽 자갈치시장, 돼지머리들을
찜통에서 꺼내 진열대 위에 앉힌 주인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웃는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웃어야지, 김이 가시기 전에.

몸에서 잘린 줄도 모르고
목구멍으로 피가 하염없이 흘러간 줄도 모르고
아침 햇살에 활짝 웃던 돼지머리들.

그렇게 탐스럽게 웃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적당히 벌어진 입과 콧구멍 속에
만 원짜리 지폐를 쑤셔 넣지 않았으리라.

하루에도 몇 번씩 진열대 위에 얹혀 있다는 생각,
자, 웃어, 웃어봐, 웃는 척이라도 해봐,
시들어가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긴다.

아--- 에--- 이--- 오--- 우---
그러나 얼굴을 괄약근처럼 쥐었다 폈다
숨죽여 불러보아도 흘러내린 피가 돌아오지 않는다.

출근길 백미러 속에서 발견한
누군가의 머리 하나.




양질의 시들을 꾸준하게 쓰고 있는 나희덕. 2008 소월시문학상 작품집에서.
참 좋은 시다라는 감탄보다는, 처연하게 지쳐가는 나희덕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녀의 시력도 이제 근20년이 되어간다. 그녀가 90년대 초중반 썼던 시들을 기억한다.
세상에 지친, 외로운, 쓸쓸한 이들을 처연하게 바라보다가도 따스하게 감싸던 시선.
어쩌면 그 시선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지침, 외로움, 쓸쓸함을 외부 존재에게 전가시키고 오히려 자신은 편한 마음을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기실, 그녀도 지치고, 외롭고, 쓸쓸하다. 예전 그녀는 지치고 외롭고 쓸쓸한 외적 존재로 인하여, 그들을 그리면서 그 지침, 외로움, 쓸쓸함을 견디고 이겨냈다고 한다면, 이제 그것도 포기한다. 실상 지치고 외롭고 쓸쓸한 것은 자신이었음을. 출근길 백미러 속에서 발견한, 40대 시인...

그녀의 93년 창비 여름에 실린 시를 다시 본다.

 

 

 

 


못 위의 잠     -나희덕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 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 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던 20대 후반의 시인, 자신의 마음을 사물과 함께 공감하는 40대 초반의 시인. 시인이 건너온 삶들과 함께, 흐르는 시를 읽는다.

(원래 somun.info 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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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4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7-10-14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ㅎㅎ 고맙습니다~ 알라딘 들리고는 있었는데 글은 못 올렸네요 ㅎㅎ 종종 이제 글도 올리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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