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대전 현충원에 모시고, 오늘 돌아왔습니다.
참, 할아버지가 많이 그립네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를 가장 닮은 손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었습니다. 항상 골방에서 책만 읽어서 그런거죠..
이렇게 갑자기 가시게 될 줄 몰랐는데, 너무 할아버지가 그립습니다. 80이 넘으시고, 할머니를 먼저 보내시고, 부쩍 늙으셨다는 많이 야위셨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언제나 누구보다 정정하시고, 누구보다 빨리 성큼성큼 걸으시던 할아버지였는데...
마지막 할아버지가 의식이 있을때 뵈었던 것은, 서울에 올라오셨을 때 잠깐 하셨던 말씀이 기억에 남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생각하던 것이랑 정말 많이 달러. 노인의 몸이란 전혀 상상하던 것이란 다르다.." 라고 하시던 말씀이 마지막이었네요..
할아버지의 웃음, 할아버지의 이야기들, 커피를 가져다 드리거나 하면, '고마워'라고 하던 목소리... 할아버지 어린 시절 농고에서 고생하던 이야기, 해군사관학교 입학해서 동기생 절반이 '빨갱이'로 총살당하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시며 그 광경의 아이러니한 희화성을 말씀해주시던 이야기, 6.25때 부상당하던 이야기, 기관총 파편을 맞으실 때의 느낌, 전쟁 상황 중의 멍한 기분, 베트남 전쟁 때 어뢰로 모두 폭사당할 뻔 이야기, 베트남 전쟁이 질 수 밖에 없는 전쟁인지 느끼셨던 이야기 등등..
언제나, 언제나 창원에 가면, 할아버지가 평생 다시 짓고 계시는 집에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렸을 떄, 할아버지가 마작과 노트럼프라는 카드게임을 가르쳐 주시던 것, 트럼펫 카드를 멀리 던지는 법을 가르쳐 주시던 것, 영어 단어들을 외우게 시켜서 1등에게는 초콜릿을 많이 주시던 것, 나무를 깍아 자동차를 만들어주시던 것 등이 생각이 나네요.
그러다가 한달 전에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계속 혼수상태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면회때 뵈고 다리를 주물러드리고 하면, 몸을 움직이시고, 잠투정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뒤척이셔서,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장례를 치루면서, 큰아버지에게서부터, 제가 몰랐던 할아버지에 관련 이야기들을 들으니, 청년, 장년 할아버지의 모습이 조금씩 제가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미국 유학시절 '여호와의 증인'을 굳게 믿게 되셔서, 한국 돌아온 이후에 그 때문에 군 내부에서 문제가 많았던 이야기.. 상관에게 반항해서 대위에서 소령으로 올라가는 시점에서, 소령에서 중위로 2계급 강등되셨다는 이야기.. 그 때문에 자기보다 해군사관학교 1기 후배의 차 얻어타고 다녀야 해서, 항상 후배 집 앞에서 꼳꼳히 서서 기다리셨다는, 융통없이 꽉 막혀서 사셨다는 이야기.. 감찰관 때는 쌀한가마니 뇌물로 들어온 것을 그대로 돌려보내시고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는 이야기 등등..
모두 제 기억 속에 있는, 항상 웃으시고 온화하고, 언제나 미국소설이나 시사지, 또는 일본 문예공론등을 스탠드 불빛 아래 누워서 읽고 계시거나, 아니면 팔을 겉어붙이고 담장을 쌓거나 천장보수를 하고, 초여름에도 두터운 내복과 털모자를 항상 끼고 계시던 70~80대 노인과는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할아버지가 그리워지게 되네요.
이제 더 이상 할아버지를 못 뵈게 된다는 것이 참 슬프네요.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는, 참 내가 해드린 게 너무 없고, 할머니에 대해서 아는게 너무 없다는 것이 슬펐는데.. 할아버지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게 너무 슬픕니다. 많이 그리워요..
여자친구한테도 할아버지 보여드리고, 할아버지에게도 여자친구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여자친구한테, 나한테는 이렇게 재미있고 똑똑한 할아버지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이제 벌써 늦었네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편히 쉬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