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모임이 중단된 교회 소모임 중에 내가 정기적으로 참석했던 모임은 구역예배이다. 각 가정에서 4-7명 정도의 인원이 함께 예배하는 소모임인데, 그 모임에서 4년 이상 매주 만났던 집사님이 한 분 계시다. 편의상 그 집사님을 A집사님이라고 하자.


모임에서는 교회에서 배포하는 예배순서지를 참고해 예배를 드리고 같이 기도를 한다. 목회자가 참석하지 않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첨예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참석자 전원이 전업주부이고 아이들, 육아, 교육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성경에 관련된 이야기도 가끔 하게 되는데, 독실한 신자인 A집사님과 날라리 구역장인 나는 종종 가정 내 남편과 아내의 지위에 관해 이견을 보였다. A집사님은 성경에 쓰인 대로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고, 따라서 아내들은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에베소서 5 22-24)이 옳다는 의견이고, 나는 하와가 아담의 돕는 자일 뿐 아니라 구원자였다는 의미에서, 가정 내에서 아내와 남편의 지위는 동등하며, 한 쪽이 일방적으로 한 쪽에게 순종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쪽이다. 결론을 낼 수 없는 문제다. 만약 A집사님이 그런 해석에 근거해서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즐겁고 기쁘다면 내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A집사님은 보통 거리는 걸어서 다니신다. 웬만하면 장 본 물건을 들고 다니고 배달도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 아이 셋을 직접 요리한 음식으로 먹이고 키운다. 365일 맨얼굴이다. 과시적 소비를 하지 않는다. 여행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나는 가까운 거리도 차로 이동한다. 아이들에게 완전조리식품, 반조리식품, 배달음식을 먹인다. 당연히 플라스틱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내 맨얼굴을 보면 사람들이 놀란다는 이유로 가볍게라도 화장을 한다. 과시적 소비의 정점, 옷 구매를 좋아한다. 원피스는 각종 디자인을 망라하며, 요가복은 색상별로 구비하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부쩍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다. 비행기를 많이 탔다는 뜻이다.



나는 에코 페미니즘을 읽는 시간이 반성문의 시간으로 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책을 시작할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고, 이런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누가 누구에게 페미니스트라면 어떠해야 한다거나 페미니스트가 그러면 되니?’라고 말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 사람이 어떠하다, 혹은 어떠해야 한다는 것으로 페미니즘을 한계지을 수 없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이렇게 반성할 수 밖에 없다. 이 모든 일은 나의 잘못이며, 나의 한계이다. 반성은 나의 것이다. 나만의 것이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지위에 대한 문제를 제외하면, A집사님은 나보다 훨씬 더 페미니스트적이다.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친화적이다. 정직하고 진실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 또 한 명의 입만 살아있는’ 1인은 다시 한 번 절망에 빠진다. 책을 읽으면 뭐하나.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페미니즘을 읽고 쓴다는 것 무슨 의미인가.


글을 쓰는 일은 밀실 속에서 혼자 하는 행위일지 모르겠지만 그 자체로 사회적 실천이다. 글을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그것이 세상을 향한 무기가 된다. (『여자-공부하는 여자』, 민혜영, 105)












그녀의 말은 큰 위로가 되지만 이제는 사회적 실천을 넘어 실체적 실천으로 움직여야 할 때다. 그럴 때가 되었다고, 내가 나에게 말한다. 사람은 변한다. 자연스럽게 변하기도 하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통해 의도적으로 자신을 바꾸어 갈 수도 있다. 나는 젖과 알, 인간 어른이 먹어서는 안 되는 것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고기는 동물의 시체다육식의 성정치를 읽은 후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를 덜 먹게 됐다. 그 책들을 읽고 나면 누구든 고기 먹는 일이 어려워진다. 아직 맥도날드 상하이 스파이시 치킨버거와 닭강정, 고기만두를 완전히 끊지는 못했지만, 폭풍성장 아롱이의 성장기가 지나고 나면, 육식 섭취를 조금 더 줄여 볼 계획이다


텀블러를 꺼내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장바구니도 여러 개 챙겨 두었다. 한 끼라도 더 내가 만들어 먹이려고 한다. (오늘저녁: 카레라이스) 덜 읽으면 더 자주 집밥이 가능하다. 며칠은 반성 모드로 가야할 테고, 갈 길은 멀다. 어떻게 마무리해야하나 고민되는 찰나, 한살림에서 보내주었던 카톡이 생각난다. 에코로 가는 길, 에코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의 작은 실천 사항들이다. 여기 딱 세 개에서 시작한다. 가볍게 세 개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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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17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급적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머그컵과 텀블러를 이용하며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비행기를 타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비행기 한 방이면 다 끝나버려요. 게다가 고기..누구보다 많이 섭취하죠. 좀 줄여야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도 잘 되질 않아 최근엔 식단을 적는 앱을 다운 받았는데요, 며칠 적다 또 포기했어요. 반성이야말로 제몫이죠. 그러나 반성만으로 끝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잖아요. 그 다음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올려주신 한살림의 세가지 제안, 저도 늘상 생각하고 있던 바, 가급적 실천할 수 있도록 해볼게요. 같이 한 번 해보십시다.

단발머리 2020-07-17 11:44   좋아요 1 | URL
전 고칠 점이 진짜 많아서 (위에 참고) 실천목록을 적어야할 판입니다. 저도 차근차근 하나씩 해보려고 해요. 생각하면 할수록 저희 엄마, 우리 어머니들이 딱 그렇게 사신 거에요. 가까운 거리 걸어다니고, 알뜰하게, 음식 안 남기고, 채식반찬에, 입던 옷 재활용. 더 보탤 것이 없어서 저는.... 책을 왜 읽나, 엄마한테 배우면 되네... 그런 생각도 자주 합니다.

비행기에 대해서는.... 전 요즘에 관련 이야기 읽을 때마다 ‘지금껏 비행기를 많이 타서 지구한테 미안하다‘ 보다는 ‘아, 다행이다. 나는 이미 비행기 많이 탔어‘ ... 이런 얄미운 생각이 듭니다. 알게 되면 줄일 수 밖에 없다고,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같이 하나씩 찬찬히 실천해 봐요. 지구를 위해서, 에코 페미니즘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요^^

수이 2020-07-1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카레 만들어 막 먹었는데_ 우리 고기 좀 줄여야 하지 않나 민이랑 이야기중이었는데_ 남편은 아내의 머리_ 에이 집사님 말씀 지금 읽고 있는 책에도 나오는데 정확히는 소노 아야코가 그렇게 살아가는 게 여자로 태어나 살아가는 행복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 걸 글쓴이가 까는_ 물티슈 안 쓰기 이거 일상화 해본다고 물티슈 사지 않은지 한달 지났는데 왜 이렇게 불편할 때가 많은지 모르겠어요. 아 부끄러운 나날들_

단발머리 2020-07-17 20:18   좋아요 0 | URL
고기를 얼만큼 먹느냐에 따라 줄일까 말까를 정할 수 있습니다. 매일 먹으면 줄여야지요. 근데 성장기이니까 전 이틀에 한 번 아롱이한테만 고기 반찬 줍니다. 주말에는 자주 치킨 먹고요. 막 줄이는 거는 어려운 거 같아요, 특히 애들은... 어른들은 콩이라는 피난처가 있지만 아이들이 바로 그 쪽으로 가기는 어려울 수도 있고요.

아, 물티슈 추가해야겠군요. 물티슈랑 휴지.... 난 너무 많이 쓴다요 ㅠㅠㅠ

페넬로페 2020-07-17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성은 우리들의 것입니다^^
제가 막연히 알고있는 페미니즘 앞에 에코라는 글자가 붙어있어 좀 궁금해서 기회가 되면 이 책을 꼭 읽어보겠습니다**
그래도 책을 읽어서 반성이라는 것도 할 수 있는것 같아요
그러니 힘내서 열심히 책 읽기로 해요^^

단발머리 2020-07-17 19:58   좋아요 1 | URL
우리들의 것이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반성은 오로지 저의 것이지만, 결국 함께하는 ‘내‘가 여럿 함께하면 지구의 오염을 막을 수 있을 거 같고요. 저희 책모임 같이하는 친구가 코로나 시대에 딱 적합한 책이 아닌가, 하더라구요.
페넬로페님께도 좋은 책읽기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힘내요!!!!!

2020-07-17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7 2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7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7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0-07-17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도날드 상하이 스파이시 치킨버거 먹고 싶어요! 여기 맥도날드에서는 더 이상 맥도날드 상하이 스파이시 치킨버거를 안 만들어 팔아요!! (눈치없는 1인이라 죄송)

단발머리 2020-07-17 20:04   좋아요 0 | URL
아.... 라로님..... 맥도날드 상하이 스파이시 치킨버거는 사랑인 것입니다. 저는 정말 그 햄버거를 좋아합니다.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 앞에 24시간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 생긴거에요. 제가 많이 좋아했습니다 ㅠㅠ
이사 온것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비연 2020-07-17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이 책을 떠올리니 제 생활에 대한 반성이 뭉글뭉글 피어오릅니다...;;;;
베지테리언으로 살아볼까도 고민했었는데.. 도저히 고기를 완전히 끊고는 못 살 것 같고...
그나마 하는 일이 장바구니와 텀블러 챙기기.. 였는데 요즘은 텀블러도 잘 안 들고 다니는 것을 발견 ㅜ
저도 생활 수칙을 정해서 작은 것에서나마 실천해야겠어요.

단발머리 2020-07-17 20:08   좋아요 0 | URL
고기를 완전히 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상상이 안 돼요. 상상할 수 있어야 실천도 할 수 있는데.....
된장찌게, 김치, 두부조림, 취나물.... 이렇게 먹는 건가요? 우유는요, 달걀은요, 치즈는요, 만두는요 ㅠㅠ 치킨버거 ㅠㅠ
저는 한살림 이용하면서 나름대로 국산 먹거리 소비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이 반성할 것이 많고,
실천은 생각보다 멀더라구요. 텀블러, 장바구니 여기가 시작은 맞는 거 같아요.
걸어다니기, 불필요한 소비 줄이기 등등 뭐, 목록은 끝이 없습니다. 아하ㅠㅠ

psyche 2020-07-18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교통이 없고 막둥이 대학만 가면 일년에 한번씩 한국에 갈 야무진 계획을 가지고 있는 저는...ㅜㅜ

단발머리 2020-07-18 16:25   좋아요 0 | URL
대중교통이 없는 경우 어쩔 수 없이 자동차를 이용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막둥이가 대학에 가면 일년에 한 번이라도 비행기 타고 고국에 올 수 있지 않을까요?
태평양을 배 타고는 올 수 없잖아요 ㅠㅠ
 



 













성 범주는 남성이 여성의 재생산과 생산을, 결혼 계약으로 실제 여성 개인을 전유하는 이성애 사회의 생산물이다. (51)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에 모니크 위티그는 반대한다. 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성이라는 이 본래 존재한다는 것인데, 위티그는 누구도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여성이라는 원형에 대한 생각이야말로 여성과 남성 이분법에, 이성애 사회=’정상이라는 생각에 힘을 실어 줄 뿐이라고 말한다.

 

성이 계급으로 존재한다고 했을 때, 계급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표식이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쉽고 간단한 표현 양식. 자켓, 정장바지, 짧게 자른 머리카락, 블라우스, 미니스커트, 긴 생머리, 화장, 하이힐. 남성 혹은 여성으로서의 구별이 확인되면, 그에 적합한 대우가 가능하다.

 

여성이 젠더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남성적인 것은 일반적인 것으로 이해되기에, 성의 표식 대부분은 여성에게 주어진다. 여성은 여성다운옷차림으로 여성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일시적으로 그리고 평생에 걸쳐 여성으로서의 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 출산, 양육, 육아, 가사의 책무가 모든 계층의 여성에게 동일하게 부여된다.

 


여성이 국가 최고 자리에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다. 독일수상 메르켈에게 따라붙는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의 의미는 명확하다. 여성은 국가 수반이라 하더라도 여성적이어야 하며 여성적 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쪽 면에서는 세간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다. 국가 원수들간의 일대일 환담 자리에서조차 여성성의 상징인 핸드백을 포기할 수 없는 그 극한의 여성성’.

 


여성이 쉽게 마녀로 변할 수 있는 건, 흑인이 쉽게 도둑으로 오해받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난 생각한다. 농노 계급만큼 구조화된 계급인 여성 계급이 그의 제안대로 이성애 질서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것인가.

 

















제일 먼저 클릭 경험click experience이 필요할테고, 자신만의 개인적 경험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연대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의식화consciousness를 위한 자발적 학습 과정은 더 큰 변화를 위한 필연 조건이 될 것이다.(73) 자발적 학습이 어려운 경우에는 친구 찬스도 괜찮은 선택지다. 이를 테면,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같은.

 




젠더는 성별 사이의 정치적 대립에 대한 언어학적 색인이다. 젠더는 여기서 특이하게 사용된다. 왜냐하면 실제로 두 개의 젠더는 없기 때문이다. 젠더는 하나뿐이다. 여성. ‘남성’은 젠더가 아니다. 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것이다. (<관점: 보편적인 혹은 특수한?>, 143쪽)

나는 항상 여성은 농노 계급만큼 구조화된 계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그들이 한 명씩 도망쳐서 이성애 질서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사회계약에 대하여>, 100쪽)

여성은 자신들이 남성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마침내 그 사실을 인정했을 때 여성들은 그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리고 종종 그 날것의 잔인한 현실 앞에서 마지막 의지를 다해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는 것"을 거부한다. (억압은 억압하는 자보다 억압당하는 자에게 훨씬 더 끔찍한 것이다). 반면 남성은 자신들이 여성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앙드레 브르통이 말하길, "우리는 여성의 주인이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배하도록 훈련되었다. 남성은 그 사실을 항상 표현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한 지배를 거의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의 범주>, 47쪽)

여성은 오직 성, 그 성이다. 그리고 성이 여성의 마음, 몸, 행동, 제스처를 만든다. 심지어 살인과 구타도 성적이다. 정말로, 성 범주는 여성을 꽉 옭아매고 있다. (<성의 범주>, 53쪽)

‘여성’은 우리 각자가 아니라 ‘여성’ (착취 관계의 산물)을 부정하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형태다. ‘여성’은 우리를 헷갈리게 하고 ‘여성들’의 현실을 숨긴다. 우리가 계급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계급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가장 강력하게 유혹적인 측면(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 작가의 첫 번째 임무는 "집 안의 천사"를 죽이는 것이라던 말을 생각한다)을 포함해서 ‘여성’ 신화를 없애야 한다. (<누구도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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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16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단발머리님의 글을 읽으니,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해당도서에 대한 글을 읽으니, 이제야 뭔가 막혔던 게 풀리는 것 같고 제자리를 찾은 것 같고 막 그런 기분이 듭니다. 사랑해요 단발머리님. 제 사랑 여기에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 또 살포시 놓고 갑니다. 아니야, 오늘은 쿵- 떨어뜨리고 갑니다.

단발머리 2020-07-16 12:26   좋아요 0 | URL
‘계급‘에 대한 자세하고 적확한 설명은 syo님의 글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전, 이 글 쓰기전에 한 번 더 정독했더라지요.
다락방님의 사랑이 변함없이 입금된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부자가 됩니다. 사랑부자!! 😘😍🥰

비연 2020-07-16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 글들이. 쉽게 와닿진 않아도 상당히 대단한 생각이라는 느낌에 조금 콩닥거리는 중입니다.
단발머리님 글 읽으니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고... 강남순 교수의 글도 읽고 계신가요? 좀 현학적이라 사놓고도 망설이고 있는데 펼쳐봐야겠습니다. 요즘 심란하고 우울하여 책이 손에 수이 안 잡히는 세월에 단발머리님이 청량한 종을 울려주시는^^

단발머리 2020-07-16 15:03   좋아요 1 | URL
어렵기는 하지만 전 나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무척이나 많았지만요.
네, 근래 강남순 교수님 책도 읽고 있어요. 전에 읽었던 책[페미니즘과 기독교]에 비하면 이 책은 좀 더 쉽게 쓰여진것 같아요. 망설이지 않으셔도 될듯 합니다. 제가 종을 울렸나요. 댕댕댕!!! 청량하게 울리려면 어쩌야지요? 디이우웅~~~~~!!! 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0-07-16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재독해야하는데! 재독해야지! 얼른!!

단발머리 2020-07-16 21:38   좋아요 0 | URL
재독합시다! 재독재독재독!!! ㅎㅎㅎ
 
감염도시 - 대규모 전염병의 도전과 도시 문명의 미래
스티븐 존슨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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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님의 리뷰를 읽고감염도시』를 찾아 읽었다. 리뷰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blanca님의 리뷰는 그 자체로 훌륭한 한 편의 글이어서 그 글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뺄 필요가 없다. 완벽하게 잘 정돈된 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글을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 책을 읽어봐야겠어. 나도 그 책을 읽어봐야지. 따라읽기로의 행복한 초대.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854, 당시 세계 최고의 도시였던 런던에서 콜레라가 발생한다. 불과 열흘 만에 진원지로부터 반경 225미터 이내에 거주하던 사람들 중 500명이 쓰러지고, 특히 브로드 가에서는 열 명 중 한 명 꼴로 사망자가 속출했다(302, 옮긴이의 말). 당시에는 악취가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는 독기론이 우세했는데, 의사 존 스노와 브로드가 교구 목사 헨리 화이트헤드는 콜레라에 대한 특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비전문가, 아마추어였음에도 죽음의 도로를 오가는 끈질긴 추적 끝에, 콜레라가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된 수인성 전염병임을 밝혀냈다. 저자는 그들이 완성해낸 감염지도의 탄생과정을 따라가며, 새롭게 탄생한 거대도시가 가진 한계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도시민들의 분투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지어낸 이야기인 소설 속에서 독자들은 감동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소설 아닌 실제 사건의 소설적 재구성이 소설보다 더 큰 혹은 소설만큼의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런데 몇 안 되는 이동 경로를 통해 근근이 살아남으며 무수한 나날을 보낸 끝에 콜레라균이 행운을 맞았다. 사람들이 역사상 유래 없이 높은 인구 밀도를 보이며 도시 지역에 몰려 살기 시작한 것이다. 4층짜리 건물에 50명이 끼어 살고, 1에이커 땅에 400명이 몰려 살기 시작했다. (59)

 


역사상 유래 없는 인구 밀도를 보이며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런던은 사람들의 분뇨로 가득찼다. 대도시 공간의 필연적 겹침 현상으로 상수망과 하수망이 마구 얽히기 시작했고, 콜레라균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기 복제와 재생산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마구 쓰러져갔다. ‘… 꺼지지 않는 생생한 빛을 내며, 영혼은 시체 속에 갇힌 채 공포에 질려 밖을 본다.’(51)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화이트헤드의 마음속에는 펌프 손잡이를 제거하던 날 세인트루크 교회에 모였던 과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야 왜 그들이 해를 면했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인들이 죽은 자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해서도 아니고, 체질이 강건하거나 생활 습관이 위생적이어서도 아니었다. 여인들의 공통점은 나이 들고 허약하며 혼자 산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물을 길어다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208)

 

질병의 원인이 악취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일면 이해되기도 한다. 못 볼 것은 눈감으면 되고, 고개를 돌리면 피할 수 있지만, 냄새는 피할 수가 없다. 저자의 주장대로 악취로 인한 불쾌감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이기 때문에, 악취가 질병을 불러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여러모로 쉽고 편리한 방법이었다. 이에 더해 가난한 사람들의 청결하지 못한 생활환경을 그들의 게으름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불결-악취-질병의 연결고리는 더욱 견고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높은 유병률을 손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1866 6월 말, 이스트런던은 다시 끔찍한 콜레라에 휩싸였다. 1853년에서 1854년의 참상 이후 최악의 상태로 8월말까지 무려 4,000명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윌리엄 파라는 사람이 나서서, 스노가 주장했던 대로 콜레라 사망자들이 이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상수원을 신속히 찾아냈고, 사망자 대다수가 이스트런던 상수회사의 고객임을 확인했다. 곧 이스트런던의 여과 체계를 살펴보는 역학 전문가가 투입되었고, 콜레라 발생지를 찾을 수 있었다. 존 스노의 선구적 연구는 윌리엄 파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내가 궁금해하는 지점을 저자는 자세히 설명해준다. 정보를 관리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모형을 만들어낸 존 스노와 화이트헤드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들 모형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원칙은 무엇일까. 첫번째 원칙은 아마추어와 비공식적 지역 전문가들의 중요성을 믿는 것이고, 두번째 원칙은 학제의 벽을 넘어 사방으로 아이디어들을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도심의 공공장소나 커피숍은 전문 분야와 관심 영역에 따라 엄격하게 나뉜 공간이 아니다. 대학이나 회사 조직과는 다르다. 다양한 직업이 뒤섞이고, 다채로운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디어와 기술을 교환하는 공간이다. 스노는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이었다. 스노가 독기라는 미망을 쫓아낼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분야에 걸쳐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업 의사이자 지도 제작자, 발명가, 화학자, 인구통계학자였으며, 의학 탐정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재다능한 배경을 갖고 있었어도 전혀 다른 종류의 기술을 남에게서 더 빌려 와야 했다. 지적이라기보다는 교분에 바탕한 기술, 헨리 화이트헤드의 토박이 지식이라는 기술 말이다. (264)  

 


서로 다른 배경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도심 공간이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스노라는 인물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런던으로의 인구 집중과 밀집 현상이 콜레라의 창궐을 불러왔지만, 도시인 스노는 콜레라에 맞서 싸워 결국에는 콜레라를 이겨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성의 힘을 통해서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스노의 감염지도로 막아낼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에겐 긴급 문자 메시지와 확진자 동선만이 주어진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다면 이기는 게 좋겠다. 아주 오래는 아니지만 조금 더 살고 싶다. 그렇다면, 이제 스노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비공식적 지역 전문가들의 지혜를 빌리고, 학제의 벽을 뛰어넘어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커피숍에만 자주 가지 말고, 살아있는 커피숍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쓰던 중에 나는 거의 20년간의 내 발자취가 바로 이 책을 쓰기 위한 준비였음을 깨달았다. 계기는 전염병에 대한 문화적 대응을 주제로 대학 논문을 쓰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몇년 뒤 대학원을 다닐 때는 빅토리아 시대의 도시 소설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당시 작가들이 런던이라는 너무나 압도적인 존재를 표현하는 데 얼마나 큰 상상력의 한계를 경험했는가 하는 대목에 관심이 있었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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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16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제 자기전에 [야밤의 공대생 만화]를 읽었거든요. 거기에 ‘폰 노이만‘이라는 천재학자가 나와요. 그는 순수수학, 응용수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경제학, 통계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대요. 위키피디아에 그의 업적을 검색하면 어마어마하다고요. 저랑은 너무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저는 본 적조차 없는 엄청난 천재인데요, 오늘 아침 밥 먹으며 단발머리님의 이 리뷰를 읽다가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같은 스노에 대한 부분을 읽고 이 세상엔 천재가 정말 많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

아무튼 저도 이 책 읽고 싶어 내내 보관함에 넣어두었는데 조만간 사서 읽어야겠어요!

단발머리 2020-07-16 09:24   좋아요 0 | URL
가끔 그런 사람이 있더라구요.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천재적인 사람이요. 전 마야 안젤루 책 읽으면서 검색해보니 그 분도 천재시더라구요. 마지막 설명이 르네상스적 인간이다. 이렇게 되어 있더라구요. 전 그 분들의 업적을 감탄하는 사람이 되어도 참 좋은데,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같은 인간.... 이런 묘사 들을 때는 다락방님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는.... 하하하!

다락방 2020-07-16 0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ㅜㅜ

단발머리 2020-07-16 09:2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같은 사람이라니..... 키햐, 근사하죠?
 

















『엄마, 나 그리고 엄마』에 대한 내용이 많을 것 같아 이런 순서로 배치했지만, 제일 먼저 출간된 책은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1969)이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2010년에,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마야 안젤루가 발표한 일곱번째 에세이이자 고인이 되기 전 발표한 마지막 책으로 2013년에 출간되었다. 순위에 집착하는 사람이라서 (왜 그럴까, 진짜), 세 권 중에 제일 좋았던 책 한 권을 고르라 하면새장에 갇힌 새가… 』를 꼽고 싶다.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보니 내용이 서로 겹치기도 하고, 다른 책의 사건이 더 자세히 서술되기도 하는데, 마야 안젤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읽어봄 직하다.

 

나는 엄마니까 아무래도 엄마의 입장에서 읽게 된다. 부모가 자녀의 삶에 좋은 모범이 되면 참 좋겠지만 그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까이 지내다 보면 장점보다는 약점이나 단점이 더 잘 보이기도 하고, 모든 잔소리 ‘~ 해라‘~ 하지 마라를 종합할 때 부모는 자녀에게 억압이다. 부모도 완전한 인간은 아니기에 자신의 주장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 나는 그렇다. 마야 안젤루 어머니의 특별한 점은 여기에 있다. 솔직함. 자신의 실수 혹은 선택에 대해서 자녀에게 솔직하게 말한다는 점.

 

 

너희가 보고 싶었지만, 그곳이 너희에게 가장 알맞은 환경이라는 걸 알았어. 난 끔찍한 엄마가 됐을 거야. 참을성이 없었거든. 마야, 네가 두 살쯤이었을 때 나더러 뭘 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 내가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어서 네가 내 손을 찰싹 쳤는데, 내가 생각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너를 현관 밖으로 날아갈 만큼 세게 때렸지 뭐니. 널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야.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거지. 난 지금 사과하는 게 아니라 설명하는 거란다. 내가 너희를 키웠더라면 우린 셋 다 비참했을 거야.“(41)

 


전 세계 공통의, 특별히 흑인 여성에게 더 많이 강요되는 모성애에 대해 그녀처럼 솔직하게 반응하기는 쉽지 않다. 엄마도 인간으로, 여자도 사람으로 인식되는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어쩌면 그것도 여자들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여자는, 엄마는, 아직 사람이 아닐 수도…) 엄마는 인간이 아니라 초인으로 살기를 강요당한다. 그럴 수 없는데 그래야 한다고 요구 받는다. 마야의 어머니는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자신을 어린 자식들에게 고백한다. 난 준비가 안 된 엄마였어. 그 때 우리가 같이 살았더라면 우린 불행했을거야. 난 이 지점이 훌륭하다고 본다. 마야 안젤루의 어머니가 모성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 아니라, 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자신으로서는 최선의 선택,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점.

 

 


아쉬운 점을 쓸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렇게 쓴다. 옮긴이의 말이 좀 불편하다. 마야의 어머니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마야 역시 특별한 사람이다. 강하고 지혜로우며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넘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마야도 그의 어머니도 그런 류의 사람들이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더라도 성공했을 사람이다. 마야 안젤루는 자신의 어머니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찬사를 들을 만하다.

 

하지만 마야 안젤루의 어머니가 어떠해서 마야 안젤루가 이런 사람이 되었다고, 될 수 있었다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은 후, 더 정확히는 이 책을 번역한 후, ‘자신의 아이를 끝까지 응원하는 엄마가 되겠다'는 옮긴이의 결심이 나는 좀 부담스럽다. 모성이 부족한 사람으로서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는 말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냥 내가 삐뚤어진 엄마여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난 그런 결심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모든 엄마가 그런 결심을 해야한다고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마야 안젤루의 책을 마친 후 읽게 된 옮긴이의 말은 마야 안젤루의 원래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전체적으로는 어머니 비비언 백스터에 대한 이야기인데,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자신이 지금 이런 여자로 성장하게 된 것은 사랑하는 할머니와 흠모하게 된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한다.(10)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며, 다리가 불편한 아들과 부모가 키울 수 없다고 해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손자, 손녀를 키우고 있는 흑인 할머니가 자신의 손녀를 사랑하는 법을 묘사한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일부러 그 문단을 옮겨 적지 않았다. 감동을 반감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 시간이 넉넉치 않아 이 책을 다 읽을 수 없다면 프롤로그 두세쪽이라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필요로 하고, 그 사랑은 꼭 엄마가 아니어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할머니여도 되고, 외할머니여도 된다. 외삼촌 혹은 이모, 고모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한 명, 적어도 이 드넓은 우주에서 한 명은, 아이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느낀다. 너는 똑똑한 아이야. 너는 특별한 아이란다. 네가 그런 아이라는 걸 난 알아. 난 그런 네가 자랑스럽구나.

 

엄마라면 좋겠지만 항상 엄마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랑 사이가 안 좋은 사춘기 때는 이모가, 외할머니가, 교회 삼촌이,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여도 좋지만, 엄마 아닌 사람도 사랑을, 충분한 사랑을 전해줄 수 있다.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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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5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7-15 11:58   좋아요 0 | URL
후회 없는 선택일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다락방 2020-07-15 1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항상 저희 엄마를 볼 때마다 생각하거든요. 물론 살면서 엄마를 원망한 적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엄마가 된다면 우리 엄마의 절반도 못할거다‘란 생각을요. 저희 엄마는 제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최상의 엄마라는 생각을 해요. 엄마는 저에게 너무 좋은 엄마에요. (아 근데 이 말 쓰는데 왜이렇게 눈물이 날 것 같죠?)

그리고 여동생이 조카와 있는 모습을 보면 또 좋은 엄마 같아요. 실제 여동생의 자식들이 제엄마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너무나 이상적인 엄마인 거에요. 그래서 동생을 볼 때마다 ‘나에게 애가 없는건 저런 엄마가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 합리화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래서 저는 제가 이모인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저한테 가장 잘 맞는 역할이 이모가 아닌가 싶어요. 때로는 엄마인 적 없고 엄마일 수 없다는 게 삶에서 무언가 놓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하지만, 그러나 제가 제일 잘 할수 있는건 이모인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그거 너무 좋잖아요. 한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이 아기에서 어린이로 청소년으로 그리고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옆에서 함께 겪는다는거요. 저는 그것이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너무나 커다란 축복이 아닌가해요. 그래서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양육자도 성장할 수 있는 것일테고요. 저는 비록 이모이지만, 그래도 조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직 마야 안젤루 한 권도 안읽었는데, [엄마, 나 그리고 엄마]도 살래요. 읽어보기도 전부터 어쩐지 울것같지만 말예요.

잠자냥 2020-07-15 13:24   좋아요 0 | URL
이 댓글은 웬만한 포스팅보다 좋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0-07-15 19:08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댓글 읽다가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다락방님 어머님도 생각나고, 다락방님 동생분도 생각나고, 물론 저희 엄마도 생각나고요.

좋은 엄마를 만나고, 그 엄마와 친밀한 관계를 오래오래 맺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인것 같아요. 저는 다 그런 줄 알았어요. 대학에 가서야 저의 엄마가 오히려 특별한 경우라는 걸 알았어요. 한편으로는 한국의 진정한 어머니 상과 같은 엄마에게 많이 미안하고요. 엄마의 희생 때문에 오늘 내가 이렇게 편하게 산다 생각할 때가 많아요. 사실이 그렇기도 하구요.

저는 제가 엄마니까.... (사실 아직도 어색해요. 제가 엄마라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좋은 엄마가 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어렴픗 알것 같아요. 사랑에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하지만 이제는 큰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엄마를 행복하게 해드릴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되요. 그래서. 저는 엄마한테 자주 가요. (응?!?)

모든 이모가 좋은 이모는 아니거든요. 근데 다락방님은 좋은 이모에요. 앞으로도 타미는 다락방님을 통해서 다른 세상, 다른 세계에 대해 배우게 될 거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게 될 것 같아요. 좋은 이모, 좋은 고모, 좋은 외할머니, 좋은 할머니, 삼촌, 할아버지가 아이에게는 필요한 것 같아요. 한 인간이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데요.

제 친구는 전업주부인데 같은 동네 사는 고등학교 친구의 아이를 오후 시간에 돌봐줘요. 특별히 뭐를 해 준다기 보다 안전하게 지켜주는 거죠. 같이 있어주고요. 만날 때마다 제가 훌륭하다고 칭찬을 해요. 그 친구는 혈연적으로 연결된 것도 아닌데 그 아이의 이모가 되기로 한 거니까요. 우리 사는 세상이 이렇게 확장되는구나 감동이 되요.

이 책은 너무 좋은 책이라 뭉클한 구석이 많으니 특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0-07-15 19:07   좋아요 0 | URL
그래서, 다락방님 댓글은 따로 페이퍼로 나와야한다고 전 생각합니다^^
 
뉴턴의 아틀리에 -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김상욱.유지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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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술작품에서 과학을 보는 물리학자 김상욱과 과학에서 예술을 읽는 타이포그래퍼 유지원의 협업으로 만들어어졌다. 내용과 형식의 기묘한 조합은 글자모양 폰트로 구체화되었다. 본명조 레귤러의 김상욱과 아리따부리 미디엄의 유지원은 다른 이야기를 다른 글씨로 말한다. (이 글은 알라딘 돋음체로 쓰여졌다) 신선하고 도전적인 시도이어서 책 읽는 시간 내내 호기심이 일었지만, 특히 작가 유지원의 매력이 대단했다. 읽고 있는 글을 쓴 사람이 유지원이 아니라 김상욱이 아닌가 싶어 앞으로 돌아가 글쓴이를 확인하고는 했다.

 

양자역학 전문가인 김상욱의 글 중에는 <친애하는 마그리트 작가님께>가 기억에 남는다.

 





양자역학에 중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존할 수 없는 두 상태가 공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파리에 있으면서 동시에 브뤼셀에 있는 것이지요. 당신의 작품 <표절>을 보면 실내에 꽃병이 하나 있는데, 꽃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건물 밖의 나무가 존재합니다. <빛의 제국>에서는 하나의 장면 속에 낮과 밤이 공존하고 있죠. 저는 이런 그림이 양자 중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당신이 저의 이런 해석을 달가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83)

 



저자는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의 작품이 양자역학의 중요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양자역학과 초현실주의에 일천하지만, 마그리트의 그림과 함께 양자역학의 중첩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되면, 무엇인가 딱 떨어지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듯 착각에 빠진다. 1920년대 유럽이라는 시공간에서 양자역학과 초현실주의의 동시 탄생에 대한 저자의 학문적 의심에 자기도 모르게 동의하게 된다.


 

<벌거벗은 이름>에서 벌거벗는다는 것은 이름만 남고 그 대상이 남겨진 상태를 말하는데, 생물학에서는 대상의 묘사가 규정에 따라 적절하게 채워지지 않았을 때를 가리킨다(240). 반면 수학에서는 대상이 벗겨진 개념들에도 이름이 붙기도 하고, 물리학 역시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관념 자체가 환상이기에(239), 이름이란 결국 사람들 간의 소통과 합의가 분명해지도록 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에 느닷없이 외국어 공부의 효용성이 등장한다.     

 


하지만 대상에 이름이 한 번 밀착되면, 거기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멈추게 되기 쉽다. 대상에 들어붙은 이름을 벗겨 보는 데에는, 모국어나 익숙한 영어 아닌 다른 외국어가 도움이 된다. 거리를 벌려 놓으면 대상과 이름 사이에 넓어진 틈새에서, 감각을 확장한 관찰과 대안적인 사유가 활기차게 운신을 재개할 수 있다. 이렇게 느슨해진 공백은 사고가 완고해지는 일을 막아 준다. 다양한 언어를 경험한 정신의 과학적 효용과 묘미도 여기에 있다. (242)

 


국어, 그리고 잘하지는 못해도 익숙한 언어인 영어를 제외한 다른 언어, 완벽하게 낯설고 여타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외국어를 통해서, 외국어 공부를 통해서 사고가 완고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외국어 공부가 치매 예방에 좋다는 흔한 이야기의 과학 버전.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책을 언제 만나는가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전에는 게을렀던 나 자신과 흘러간 시간에 대한 후회가 많았다면, 변명일지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만날 책을 만날 때에 만나게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코로나19로 인해 도서관 휴관이 너무 길어질 것을 예상해 사두었던 책인데, 모두 다 그렇듯이 구입한 후에는 바로 읽지 않고 책상 한쪽으로 밀어 두었다. 요 며칠 심난한 시간들이 이어져 어떤 책도 읽고 싶지 않았는데 내용을 예상할 수 없는 이 책을 손에 든 순간, 잠시라도 고민과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내가 만난 문단은 이 문단이었다. 나는 이 문단이 내게 찾아왔다고 느꼈다. 내가 이 책을, 지금 만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별에서 온 원자들이 우리 몸으로 모였다가 다시 흩어진다는 과학의 진실을 안다. 인간은 필멸이라도 인간을 구성하는 원자는 불멸임을 안다. 이 사실은 위안을 준다. 그러나 필멸의 생명이란, 원자들을 기계적으로 단순하게 조립한 장난감에 불과한 것이 아님도 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주 속 유구한 생명의 흐름은 지속될 것을 알고도 개체의 소멸을 애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 명의 인간 개체는 생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경험과 지식과 기억의 온전한 집적체일진대, 그것이 죽음으로 스러지는 엄청난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견디어야 할까? 살아간다는 기쁨, 육체 감각의 강렬함, 억제하기 어려운 열망, 넘쳐흐르는 감정들은 어디로 가는가? (134)

 



전시장에는 오래된 책의 한 면이 펼쳐져 있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결정의 숲(Decision Forest)’ 전시였다. 펼쳐진 책에는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가 1837년에 발표한 논문 <우리가 거주하는 지구에, 우리의 말과 행동이 남기는 영구적인 각인> 중 한 대목이 담겼다. 그 부분을 읽어 보니 우리말 관용구 하나가 떠올랐다. "말이 씨가 된다." - P43

인간의 말소리는 공기를 진동시킨다. 이렇게 발생된 공기의 파동은 전 지구의 육지와 바다를 돌아다닌다. 인간의 말소리가 바꾸는 공기의 움직임을 지구상 대기의 모든 원자가 받아들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스무 시간이 채 안 되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이었다. 지구 위에서 생존해 온 인류의 모든 개체들이 남긴 소리와 숨결은 그렇게 공기 입자의 움직임 속에 영원히 기록된다는 것이다. 찰스 배비지는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구의 공기 자체가 전 인류의 태곳적 행적부터 기록된 ‘거대한 도서관’이라고. 그러니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지구의 공기에 진동의 씨를 남기는 셈이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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