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그리고 엄마』에 대한 내용이 많을 것 같아 이런 순서로 배치했지만, 제일 먼저 출간된 책은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1969)이고,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2010년에,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마야 안젤루가 발표한 일곱번째 에세이이자 고인이 되기 전 발표한 마지막 책으로 2013년에 출간되었다. 순위에 집착하는 사람이라서 (왜 그럴까, 진짜), 세 권 중에 제일 좋았던 책 한 권을 고르라 하면새장에 갇힌 새가… 』를 꼽고 싶다.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보니 내용이 서로 겹치기도 하고, 다른 책의 사건이 더 자세히 서술되기도 하는데, 마야 안젤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읽어봄 직하다.

 

나는 엄마니까 아무래도 엄마의 입장에서 읽게 된다. 부모가 자녀의 삶에 좋은 모범이 되면 참 좋겠지만 그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까이 지내다 보면 장점보다는 약점이나 단점이 더 잘 보이기도 하고, 모든 잔소리 ‘~ 해라‘~ 하지 마라를 종합할 때 부모는 자녀에게 억압이다. 부모도 완전한 인간은 아니기에 자신의 주장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 나는 그렇다. 마야 안젤루 어머니의 특별한 점은 여기에 있다. 솔직함. 자신의 실수 혹은 선택에 대해서 자녀에게 솔직하게 말한다는 점.

 

 

너희가 보고 싶었지만, 그곳이 너희에게 가장 알맞은 환경이라는 걸 알았어. 난 끔찍한 엄마가 됐을 거야. 참을성이 없었거든. 마야, 네가 두 살쯤이었을 때 나더러 뭘 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 내가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어서 네가 내 손을 찰싹 쳤는데, 내가 생각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너를 현관 밖으로 날아갈 만큼 세게 때렸지 뭐니. 널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야.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거지. 난 지금 사과하는 게 아니라 설명하는 거란다. 내가 너희를 키웠더라면 우린 셋 다 비참했을 거야.“(41)

 


전 세계 공통의, 특별히 흑인 여성에게 더 많이 강요되는 모성애에 대해 그녀처럼 솔직하게 반응하기는 쉽지 않다. 엄마도 인간으로, 여자도 사람으로 인식되는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어쩌면 그것도 여자들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여자는, 엄마는, 아직 사람이 아닐 수도…) 엄마는 인간이 아니라 초인으로 살기를 강요당한다. 그럴 수 없는데 그래야 한다고 요구 받는다. 마야의 어머니는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자신을 어린 자식들에게 고백한다. 난 준비가 안 된 엄마였어. 그 때 우리가 같이 살았더라면 우린 불행했을거야. 난 이 지점이 훌륭하다고 본다. 마야 안젤루의 어머니가 모성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 아니라, 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자신으로서는 최선의 선택,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점.

 

 


아쉬운 점을 쓸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렇게 쓴다. 옮긴이의 말이 좀 불편하다. 마야의 어머니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마야 역시 특별한 사람이다. 강하고 지혜로우며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넘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마야도 그의 어머니도 그런 류의 사람들이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더라도 성공했을 사람이다. 마야 안젤루는 자신의 어머니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찬사를 들을 만하다.

 

하지만 마야 안젤루의 어머니가 어떠해서 마야 안젤루가 이런 사람이 되었다고, 될 수 있었다고,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은 후, 더 정확히는 이 책을 번역한 후, ‘자신의 아이를 끝까지 응원하는 엄마가 되겠다'는 옮긴이의 결심이 나는 좀 부담스럽다. 모성이 부족한 사람으로서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는 말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냥 내가 삐뚤어진 엄마여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난 그런 결심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모든 엄마가 그런 결심을 해야한다고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마야 안젤루의 책을 마친 후 읽게 된 옮긴이의 말은 마야 안젤루의 원래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엄마, 나 그리고 엄마』는 전체적으로는 어머니 비비언 백스터에 대한 이야기인데,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자신이 지금 이런 여자로 성장하게 된 것은 사랑하는 할머니와 흠모하게 된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한다.(10)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며, 다리가 불편한 아들과 부모가 키울 수 없다고 해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손자, 손녀를 키우고 있는 흑인 할머니가 자신의 손녀를 사랑하는 법을 묘사한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일부러 그 문단을 옮겨 적지 않았다. 감동을 반감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 시간이 넉넉치 않아 이 책을 다 읽을 수 없다면 프롤로그 두세쪽이라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필요로 하고, 그 사랑은 꼭 엄마가 아니어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할머니여도 되고, 외할머니여도 된다. 외삼촌 혹은 이모, 고모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한 명, 적어도 이 드넓은 우주에서 한 명은, 아이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느낀다. 너는 똑똑한 아이야. 너는 특별한 아이란다. 네가 그런 아이라는 걸 난 알아. 난 그런 네가 자랑스럽구나.

 

엄마라면 좋겠지만 항상 엄마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랑 사이가 안 좋은 사춘기 때는 이모가, 외할머니가, 교회 삼촌이,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여도 좋지만, 엄마 아닌 사람도 사랑을, 충분한 사랑을 전해줄 수 있다.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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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5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7-15 11:58   좋아요 0 | URL
후회 없는 선택일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다락방 2020-07-15 1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항상 저희 엄마를 볼 때마다 생각하거든요. 물론 살면서 엄마를 원망한 적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엄마가 된다면 우리 엄마의 절반도 못할거다‘란 생각을요. 저희 엄마는 제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최상의 엄마라는 생각을 해요. 엄마는 저에게 너무 좋은 엄마에요. (아 근데 이 말 쓰는데 왜이렇게 눈물이 날 것 같죠?)

그리고 여동생이 조카와 있는 모습을 보면 또 좋은 엄마 같아요. 실제 여동생의 자식들이 제엄마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너무나 이상적인 엄마인 거에요. 그래서 동생을 볼 때마다 ‘나에게 애가 없는건 저런 엄마가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 합리화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래서 저는 제가 이모인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저한테 가장 잘 맞는 역할이 이모가 아닌가 싶어요. 때로는 엄마인 적 없고 엄마일 수 없다는 게 삶에서 무언가 놓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하지만, 그러나 제가 제일 잘 할수 있는건 이모인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그거 너무 좋잖아요. 한 생명이 태어나고 그 생명이 아기에서 어린이로 청소년으로 그리고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옆에서 함께 겪는다는거요. 저는 그것이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너무나 커다란 축복이 아닌가해요. 그래서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양육자도 성장할 수 있는 것일테고요. 저는 비록 이모이지만, 그래도 조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직 마야 안젤루 한 권도 안읽었는데, [엄마, 나 그리고 엄마]도 살래요. 읽어보기도 전부터 어쩐지 울것같지만 말예요.

잠자냥 2020-07-15 13:24   좋아요 0 | URL
이 댓글은 웬만한 포스팅보다 좋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0-07-15 19:08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댓글 읽다가 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다락방님 어머님도 생각나고, 다락방님 동생분도 생각나고, 물론 저희 엄마도 생각나고요.

좋은 엄마를 만나고, 그 엄마와 친밀한 관계를 오래오래 맺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인것 같아요. 저는 다 그런 줄 알았어요. 대학에 가서야 저의 엄마가 오히려 특별한 경우라는 걸 알았어요. 한편으로는 한국의 진정한 어머니 상과 같은 엄마에게 많이 미안하고요. 엄마의 희생 때문에 오늘 내가 이렇게 편하게 산다 생각할 때가 많아요. 사실이 그렇기도 하구요.

저는 제가 엄마니까.... (사실 아직도 어색해요. 제가 엄마라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좋은 엄마가 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어렴픗 알것 같아요. 사랑에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하지만 이제는 큰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엄마를 행복하게 해드릴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되요. 그래서. 저는 엄마한테 자주 가요. (응?!?)

모든 이모가 좋은 이모는 아니거든요. 근데 다락방님은 좋은 이모에요. 앞으로도 타미는 다락방님을 통해서 다른 세상, 다른 세계에 대해 배우게 될 거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게 될 것 같아요. 좋은 이모, 좋은 고모, 좋은 외할머니, 좋은 할머니, 삼촌, 할아버지가 아이에게는 필요한 것 같아요. 한 인간이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데요.

제 친구는 전업주부인데 같은 동네 사는 고등학교 친구의 아이를 오후 시간에 돌봐줘요. 특별히 뭐를 해 준다기 보다 안전하게 지켜주는 거죠. 같이 있어주고요. 만날 때마다 제가 훌륭하다고 칭찬을 해요. 그 친구는 혈연적으로 연결된 것도 아닌데 그 아이의 이모가 되기로 한 거니까요. 우리 사는 세상이 이렇게 확장되는구나 감동이 되요.

이 책은 너무 좋은 책이라 뭉클한 구석이 많으니 특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0-07-15 19:07   좋아요 0 | URL
그래서, 다락방님 댓글은 따로 페이퍼로 나와야한다고 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