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로서의 서구」를 읽는다. 부제가 '가야트리 스피박의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 읽기와 쓰기'인데 중요한 점은 쓴 사람이 임옥희님이시라는 것.
탈식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스피박을 읽어야 한다. 아니, 읽으면 어쩔까 한다. 에드워드 사이드도 호미 바바도 안 읽었지만, 제가 꼭 순서를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아무도 안 시켰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도 안 시켰고, 아무도 검사 안 합니다.
스피박에 대한 책으로는 김은주의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의 스피박 부분을 읽었는데 다른 인물에 대한 부분도 그렇지만 너무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자주 꺼내 보는 아주 좋은 책이다. 스피박과 버틀러의 대담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을 읽었고, 스피박의 저서로는 『읽기』를 읽었는데, 그냥 '읽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 할 정도다.
어제 읽은 부분에서 눈에 들었던 문단은 바로 여기다.
그녀가 말하는 하위주체는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3세계' 토착 기층민중(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므로 정작 하위주체 여성들이 스피박의 난해한 글을 직접 읽을 기회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녀는 1세계 백인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할 때는 타자의 입장 혹은 '3'세계 하위주체의 입장을 보지 못한다고 끊임없이 비판하면서 페미니즘 내부의 이론적 편차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녀 또한 '3'세계 하위 여성 주체 혹은 토착 정보원들을 지식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위주체를 거론하지만 그녀의 난해한 글쓰기 전략은 결코 하위 여성 주체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타자로서의 서구』, 20-1쪽)
하위주체를 거론하지만 스피박의 난해한 글쓰기 전략은 결코 하위 여성 주체에게 가닿을 수 없다는 것.
나는 묘한 승리감을 느꼈다. 그러니까 이건 지식인과 대중 사이의 간극과 소통에 대한 문제 그리고 그 소통의 도구에 관한 문제일텐데, 이 부분 역시 탈식민주의 이론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오리엔탈리즘과 에드워드 사이드』를 읽고 나는 이렇게 썼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한계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인 사유에는 일면 동의하지만 저자의 주장에도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걸 덧붙이고 싶다. 저자의 주장대로, 사이드는 스스로를 ‘백인 중산층 서구인’으로 위치시키고 있지만, ‘앵글로 아메리칸 학계라는 특권 사회에서 정회원으로 사는 것은 망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치스러운 자기 정체성의 자리매김(114쪽)’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기 나라에서 쫓겨나 살 곳을 잃었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살라는 말인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앵글로 아메리칸 학계에 자리 잡지 않았다면, 도대체 누가 그의 주장에 귀 기울였겠는가. 평범한 젊은 학자였던 사이드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건, 그가 앵글로 아메리칸 학계의 정회원이어서가 아니라,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성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 아닌가, 라고 저자에게 묻고 싶다. (『오리엔탈리즘과 에드워드 사이드』, 단발머리)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구가 만들어낸 허구로서의 동양을 발견해 냈다. 젠더 문제에 관한 한, 그는 무지해 보인다. 그 역시 '백인 중산층 서구인' 더 정확히는 '백인 중산층 서구 남성'의 정체성의 한계 속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가 어디에 '자리 잡아야' 한단 말인가. 무슨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그 언어가 미국의 언어, 영어여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언어가 현재로서는, 미국의 언어인 영어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로 말해야 해석된다. 영어로 말해야 권위를 갖는다. 그 언어는, 영어다.
스피박은 하위 주체에 대해 쓴다. 그는 제1세계 백인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한다. 스피박의 주장은 옳다. 그의 말은 옳다. 그런데 그 말은, 그 언어는 누구의 것인가. 누구의 말인가.
그 언어는 누구의 것인가. 누구의 말인가. 라고 할 때 나는 자신감이 없다. 책을 읽는 건 저자와 맞짱을 뜨는 일이다. 아?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 때, 그 생각은 이쪽 혹은 저쪽으로 뻗어나간다. 내가 맞는 거 같아요, 당신 틀렸어. 아, 맞네. 당신 말이 설득력이 있네. 나는 항상 확신이 없는 쪽에 속하고, 저자를 믿는 쪽에 속하고, 저자에게 홀랑 넘어가는 쪽에 속하지만. 그런 내게 가끔 '어?'라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논리도 해석도 수사도 부족하지만 그걸 적어두면, 이렇게 긴요하게 기뻐질 타임이 있다.
내 생각이 맞구나. 아, 내가 제대로 읽은 거네. 이 기쁨을 누구랑 나누지?ㅋㅋㅋㅋ 임옥희 님과 나눠야지.
임옥희 님! 감사합니다. 2015년에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읽었을 때부터 팬입니다! 제가 에드워드 사이드를 읽고, 스피박을 읽고 그렇게 생각한 게 맞았어요. 너무 신납니다. '임옥희표' 탈식민주의 해석을 야무지게 착착착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