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도시 - 대규모 전염병의 도전과 도시 문명의 미래
스티븐 존슨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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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님의 리뷰를 읽고감염도시』를 찾아 읽었다. 리뷰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blanca님의 리뷰는 그 자체로 훌륭한 한 편의 글이어서 그 글에 무언가를 더하거나 뺄 필요가 없다. 완벽하게 잘 정돈된 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글을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 책을 읽어봐야겠어. 나도 그 책을 읽어봐야지. 따라읽기로의 행복한 초대.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854, 당시 세계 최고의 도시였던 런던에서 콜레라가 발생한다. 불과 열흘 만에 진원지로부터 반경 225미터 이내에 거주하던 사람들 중 500명이 쓰러지고, 특히 브로드 가에서는 열 명 중 한 명 꼴로 사망자가 속출했다(302, 옮긴이의 말). 당시에는 악취가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는 독기론이 우세했는데, 의사 존 스노와 브로드가 교구 목사 헨리 화이트헤드는 콜레라에 대한 특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비전문가, 아마추어였음에도 죽음의 도로를 오가는 끈질긴 추적 끝에, 콜레라가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된 수인성 전염병임을 밝혀냈다. 저자는 그들이 완성해낸 감염지도의 탄생과정을 따라가며, 새롭게 탄생한 거대도시가 가진 한계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도시민들의 분투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지어낸 이야기인 소설 속에서 독자들은 감동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소설 아닌 실제 사건의 소설적 재구성이 소설보다 더 큰 혹은 소설만큼의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런데 몇 안 되는 이동 경로를 통해 근근이 살아남으며 무수한 나날을 보낸 끝에 콜레라균이 행운을 맞았다. 사람들이 역사상 유래 없이 높은 인구 밀도를 보이며 도시 지역에 몰려 살기 시작한 것이다. 4층짜리 건물에 50명이 끼어 살고, 1에이커 땅에 400명이 몰려 살기 시작했다. (59)

 


역사상 유래 없는 인구 밀도를 보이며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런던은 사람들의 분뇨로 가득찼다. 대도시 공간의 필연적 겹침 현상으로 상수망과 하수망이 마구 얽히기 시작했고, 콜레라균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기 복제와 재생산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마구 쓰러져갔다. ‘… 꺼지지 않는 생생한 빛을 내며, 영혼은 시체 속에 갇힌 채 공포에 질려 밖을 본다.’(51)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화이트헤드의 마음속에는 펌프 손잡이를 제거하던 날 세인트루크 교회에 모였던 과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야 왜 그들이 해를 면했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인들이 죽은 자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해서도 아니고, 체질이 강건하거나 생활 습관이 위생적이어서도 아니었다. 여인들의 공통점은 나이 들고 허약하며 혼자 산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물을 길어다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208)

 

질병의 원인이 악취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일면 이해되기도 한다. 못 볼 것은 눈감으면 되고, 고개를 돌리면 피할 수 있지만, 냄새는 피할 수가 없다. 저자의 주장대로 악취로 인한 불쾌감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이기 때문에, 악취가 질병을 불러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여러모로 쉽고 편리한 방법이었다. 이에 더해 가난한 사람들의 청결하지 못한 생활환경을 그들의 게으름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불결-악취-질병의 연결고리는 더욱 견고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높은 유병률을 손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1866 6월 말, 이스트런던은 다시 끔찍한 콜레라에 휩싸였다. 1853년에서 1854년의 참상 이후 최악의 상태로 8월말까지 무려 4,000명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윌리엄 파라는 사람이 나서서, 스노가 주장했던 대로 콜레라 사망자들이 이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상수원을 신속히 찾아냈고, 사망자 대다수가 이스트런던 상수회사의 고객임을 확인했다. 곧 이스트런던의 여과 체계를 살펴보는 역학 전문가가 투입되었고, 콜레라 발생지를 찾을 수 있었다. 존 스노의 선구적 연구는 윌리엄 파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내가 궁금해하는 지점을 저자는 자세히 설명해준다. 정보를 관리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모형을 만들어낸 존 스노와 화이트헤드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들 모형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원칙은 무엇일까. 첫번째 원칙은 아마추어와 비공식적 지역 전문가들의 중요성을 믿는 것이고, 두번째 원칙은 학제의 벽을 넘어 사방으로 아이디어들을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도심의 공공장소나 커피숍은 전문 분야와 관심 영역에 따라 엄격하게 나뉜 공간이 아니다. 대학이나 회사 조직과는 다르다. 다양한 직업이 뒤섞이고, 다채로운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디어와 기술을 교환하는 공간이다. 스노는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이었다. 스노가 독기라는 미망을 쫓아낼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분야에 걸쳐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업 의사이자 지도 제작자, 발명가, 화학자, 인구통계학자였으며, 의학 탐정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재다능한 배경을 갖고 있었어도 전혀 다른 종류의 기술을 남에게서 더 빌려 와야 했다. 지적이라기보다는 교분에 바탕한 기술, 헨리 화이트헤드의 토박이 지식이라는 기술 말이다. (264)  

 


서로 다른 배경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도심 공간이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스노라는 인물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런던으로의 인구 집중과 밀집 현상이 콜레라의 창궐을 불러왔지만, 도시인 스노는 콜레라에 맞서 싸워 결국에는 콜레라를 이겨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성의 힘을 통해서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스노의 감염지도로 막아낼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에겐 긴급 문자 메시지와 확진자 동선만이 주어진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다면 이기는 게 좋겠다. 아주 오래는 아니지만 조금 더 살고 싶다. 그렇다면, 이제 스노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비공식적 지역 전문가들의 지혜를 빌리고, 학제의 벽을 뛰어넘어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커피숍에만 자주 가지 말고, 살아있는 커피숍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쓰던 중에 나는 거의 20년간의 내 발자취가 바로 이 책을 쓰기 위한 준비였음을 깨달았다. 계기는 전염병에 대한 문화적 대응을 주제로 대학 논문을 쓰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몇년 뒤 대학원을 다닐 때는 빅토리아 시대의 도시 소설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당시 작가들이 런던이라는 너무나 압도적인 존재를 표현하는 데 얼마나 큰 상상력의 한계를 경험했는가 하는 대목에 관심이 있었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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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16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제 자기전에 [야밤의 공대생 만화]를 읽었거든요. 거기에 ‘폰 노이만‘이라는 천재학자가 나와요. 그는 순수수학, 응용수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경제학, 통계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대요. 위키피디아에 그의 업적을 검색하면 어마어마하다고요. 저랑은 너무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저는 본 적조차 없는 엄청난 천재인데요, 오늘 아침 밥 먹으며 단발머리님의 이 리뷰를 읽다가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같은 스노에 대한 부분을 읽고 이 세상엔 천재가 정말 많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

아무튼 저도 이 책 읽고 싶어 내내 보관함에 넣어두었는데 조만간 사서 읽어야겠어요!

단발머리 2020-07-16 09:24   좋아요 0 | URL
가끔 그런 사람이 있더라구요.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천재적인 사람이요. 전 마야 안젤루 책 읽으면서 검색해보니 그 분도 천재시더라구요. 마지막 설명이 르네상스적 인간이다. 이렇게 되어 있더라구요. 전 그 분들의 업적을 감탄하는 사람이 되어도 참 좋은데,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같은 인간.... 이런 묘사 들을 때는 다락방님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는.... 하하하!

다락방 2020-07-16 0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ㅜㅜ

단발머리 2020-07-16 09:2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커피숍 같은 사람이라니..... 키햐, 근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