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가 지적했듯이 노동윤리는 개인화의 담론이다.(90) 





우리는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청교도 윤리에 근거한 답을 내놓는다. 일하지 않는 먹지도 말라.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는 혜택과 권리의 많은 부분을 자신의 노동이 담당했다고 쉽게 생각해 버린다. 





다시 말해, 도덕적 책임은 이제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에게 놓인다. 부자든 빈자든 똑같이일하지 않고서는 먹어서는 된다”.(159-160) 명제는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임금노동이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서 널리 적용되었다. 또한 명제는 먹고사는 일의 규범이 가장 아니라 모든 성인 시민에게 요구되는 점점 보편적인 규범이 되면서 더욱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합당한 경제적 또는 정치적 의존의 사례가 점점 들어들면서남아 있는 의존은 무엇이든 개인의 잘못으로 해석될 있었다.”(Fraser and Gordon 1994, 325) 독립은 사람이 처한 관계의 유형에 달린 것이라기보다는 개인 인품의 자질에 달린 것이 된다.(322) 따라서탈산업화 시대의 의존 점점 합당치 못한 것이 되면서, 동시에점점 개인화되었다.(325) (90)  





위에 따르면 일하지 않고 먹는 자들은 비난 받아야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난은 종국적으로 그들 자신의책임이라는 일부 부자들의 주장이 더욱 힘을 받게 된다. 



2016, 기본 소득에 대한 스위스 국민투표는 76.9% 반대로 부결되었다. 국민의 근로의욕 저하와 국가경제 잠식, 높은 금액의 기본소득으로 이민자들의 스위스 유입에 대한 우려, 세금 증가 등의 이유가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일하지 않고 지급받는공짜 대한 저항감이 컸다. 핀란드, 네덜란드 등지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혹은 지방 정부를 통해기본 소득 대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해야만, 일한 후에야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서 그것도 아주적은 만을 원하고 있다. 오직 노동의 대가로서만 임금을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인간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활동들이 존재한다. 모든 활동을 의무, 여가활동 또는 없는 사람들의 소일거리로 규정했을 , 모든활동 결과물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만 한다. 일례로 4 가족, 남성 외벌이의 경우, 가정의 주된 수입원은 일하는 남성이다. 가정의 생성, 존속 또는 유지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오로지 가정, 개인이 감당한다. 성실한 노동자가 다음날 직장에 출근해 맡겨진 일을 있기 위해 필요한 정서적, 물질적 지원은 그의 월급에 포함되지 않는다. 회사는 오로지 그가 직장에서 노동한 시간, 일한 시간만을 계산해 지급할 뿐이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돌보고, 아이를 가르치는 일을 모두 개인의선택으로만 단정하는 극단의 현실은존속과 유전자 전달 숙명을 가진 유전자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인류 출현 최초로 가장 강력한 비율의 저출산 현상이 대두되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람과 기쁨을 얻는 근간이 오로지’, ‘직업뿐이라고 단정할 , 우리의 많은활동 쓸데 없는 일이 된다. 병원에 입원하신 큰어머니를 방문하거나 5 조카와 놀아주는 . 우울한 기분에 빠져있는 친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오후 햇살을 받으며 아이 손을 잡고 함께 공원을 거니는 . 새로 생긴 맛집에 가족과 함께 가거나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 처음으로 악기 연주를 시작해보는 .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소중하고 멋진 일들은월급 받을 없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이라고 정의하는활동 범위를 극단적으로 확대하지 않는 , 이전의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 , 많이 일하고, 열심히 일해서, 내가 돈으로 생활하겠다, 소박한 소망은 장시간 노동, 위험한 근로환경, 저임금으로 되돌아올 밖에 없다. 




가사노동은 젠더화되어 있다. 여성이 주로 맡고 있는 영역의 직업군에 저임금이 흔한 이유다. 영유아 어린이집 교사, 간호사, 전문 간병인 등의 돌봄 노동자, 가사 노동자들의 일이 중요하지 않거나 힘이 적게 들어서가 아니라, 주로 여성들이 일을 맡고 있기 때문에 노동 강도에 비해 저임금이 지급된다. 사랑과 희생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가사노동은 말할 것도 없다. 




기본소득은 가사임금 요구를 계승하는 기획(229)으로서 의미가 있다. 





기본소득은 개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가족이나 가구 구성, 다른 소득 여부, 과거와 현재, 미래의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되는 소득이다.(van Parijs 1992, 3) 기본소득은 소득이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게끔 바닥 수준을 정립하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많은 이들이 임금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할 수는 없더라도 지금의 조건과 상태에 의존할 있게 것이다. (217)  





만약 오늘 당장 기본소득이 시행된다면 어떤 사람들이 가장 먼저 혜택을 받게 될까. 성인을 기준으로 경우, ‘남편 돈으로 편하게 놀고 먹는다 전업주부와 이미 십여 전에 자식과의 모든 연락이 끊겼지만 복지혜택 사각지대에 엄연히 존재하는 독거노인과 가족 사람이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어 그를 돌봐줘야 하는 사람, 취업 준비생, 휴직 상태에서 이직을 꿈꾸는 사람, 원치 않은 권고사직을 당한 새로운 인생후반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무상 급식,이라는 당연하고 정당한 요구에도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국민들을 갖가지 말로 위협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흐름은 확고하다. 작년 하반기부터 고등학교 3학년 무상 급식이 시행되고 있고, 올해부터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확대된다. 고교 무상 교육은 지원자가 적어 운영이 어려운 특성화고를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델라 코스타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매점도, 보육시설과 세탁기, 식기세척기도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권을 원하기도 한다. 우리가 원할 소수의 사람들과 사적으로 식사하는 , 아이들과 어르신들과 아픈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언제 어디에서 할지 선택할 있기를 원한다.” 선택권을 가지려면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시간을 갖는 적게 일하는 것을 뜻한다.(Dalla Costa and James 1973, 38) (199) 






완벽한 외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삶에 연결되어 있다. 예상할 없는 일들로 인해 삶이 총체적 위기에 처했을 돕는 손길이 필요하다. 친구의 불행은, 친척의 슬픔은 내게도 영향을 미칠 밖에 없다. 일을 개인의 일로만 남겨두어서는 된다. 4 혁명으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로봇이 우리가 했던 많은 일들을 대신하게 , 남겨진 간에 우리는 무엇을 것인가. 생산만 소비하지 않는 로봇이 경제에 어떠한 활력도 제공할 없을 , 인간 이외에 누가 소비의 주체가 것인가. 때에 가서야 노동과 생산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상의 정립을 시작한다면 그건 너무 늦은 아닐까. 



노동 시간 축소, 일자리 확대 그리고 기본 소득. 그에 더해 일하지 않아도, 당장 버는 일을 하지 않아도먹어도 된다 생각. 이렇게나 오래, 열심히 일하는 사회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있게 하는 열쇠가 바로 이것들이다.  






정치 이론에서 일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로 짚어 둘 만한 것은 최소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내가 ‘일의 사유화˝라고 부르는 현상 때문이다. 서두의 두 인용구에서 보듯이, 사람들은 일과 가정 모두에서 그 권력관계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데 대체로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는 흔히 고용관계를 - 결혼관계에서처럼 - 사회제도로서가 아니라 독특한 개별 관계로서 경험하고 상상한다. 이는 결혼관계와 마찬가지로 고용관계의 사적 측면을 보장하는 사유재산 제도를 통해 일부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일을 사유화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 역시 짚어 보아야 한다. 13

노동윤리가 설파하는 노동신화에 기대지 않고, 페미니즘은 무급 형태로 이뤄지는 재생산노동이 폄훼되고 주변화되는 것에 어떤 식으로 맞설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는 단순히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혹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일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여성화된 무급노동의 가치를 재고하는 데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런 노력 탓에 여성의 무급노동이 신성화되는 것에도 반기를 들어야 한다. 29

노동 거부의 결정적 핵심이자 본질적 연결 고리는 사유재산도, 시장도, 공장도, 창조적 역량의 소외도 아닌, 바로 노동을 자본주의적 관계의 제1의 기초로, 시스템을 지탱하는 접착제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어떤 의미 있는 전환도 노동의 조직화와 사회적 가치에 대폭적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159

라파르그는 ˝유용함이라는 자본주의 강령˝을 멸시하고 노동시간이 3시간으로 단축되면 그제야 노동자는 ˝게으름의 미덕을 실천하기 시작할 수 있을것이라고 주장한다.(41, 32) ˝오, 게으름이여, 예술과 고귀한 미덕의 어머니여˝(41)라는 열정에 찬 라파르그의 헌사는 말할 것도 없이 콜라코브스키와 같은 겉보기에 보다 진지한 마르크스 연구자들과는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161

이 책에서 더 많은 일보다 더 적은 일을 선호하는것이야 명백할 것이다. 더 많은 일에 대한 요구는 개인이 생계를 해결하는 유일한 수단이 일일 때에는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적은 일에 대한 요구 역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더 적은 일과 더 나은 일에 대한 요구 사이의 관계, 그리고 어째서 적어도 상대적으로 후자를 무시하면서 전자에 초점을 맞추는지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이 긴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168

페미니즘에 대한 학술 연구의 영역에서 보자면, 하나의 페미니스트가 다른 페미니스트에게 물려주는 유산은 쌓아 놓은 저술이라기보다는 일생의 작업이다. 이런 주체화된 틀에서 저자는 저술에 우선한다. 유산은 정치적이며 동시에 개인적인 것이며, 개인적 저술의 패러다임을 상회하는 이론과 전략, 전망이 아니라 의식과 경 험, 욕망, 특정 개인의 헌신으로부터 생겨난다. 변증법 모델이 과거를 현재로 이끄는 단계 또는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취급한다면, 가족 모델은 과거에 경의를 바친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존경해야 할 어른, 보존해야 할 유산으로 여기는 것이다. 186

가사임금 관점이 호소력을 주는 주된 요인 중 하나는 말할 것도없이 그 탈자연화 효과에 있다. 여성의 본성에 뿌리 내린 자발적 욕망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여성이 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인지부조화를 낳는다. 가사임금 요구의 가치를 이런 측면에서 강조했던 사람도 있었다. ˝이 요구로 우리 본성이 끝나고 우리 투쟁이 시작된다. 205

그저 가사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 본성의 표출로서의 일을거부하는 것을 가리키며, 그리하여 자본이 발명한 바로 그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Federici 1995, 190) ˝여성성과 동일시되는 행위에 대해 가사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탈동일시의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가사임금을 요청하는 것조차 이미 우리가 곧 그 일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Edmond and Fleming 1975, 6) 그리하여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적 동일시를 깨뜨리는 힘을 얻는 만큼˝ 여성들은 적어도 ˝우리가 누군가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다.(1976, 8, 강조는 저자 추가) 206

노동 거부의 정치와 연결되려면, 가사임금 요구에서도 그랬듯이, 보장되는 소득이 충분히 커서 임금노동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일 가능성에 가까워질 수 있어야 한다.(다음을 참조. McKay 2001, 99) 기본적 필요를 채울만큼 충분한 소득이 보장된다면, 임금노동을 완전히 거부할 수 있거나, 추가 소득을 원할 대부분에게는 더 나은 고용 조건을 협상할 수있는 더 우세한 지위가 주어질 것이다. 보장되는 소득이 임금에 더해지는 소액에 그친다면, 불안정 고용을 지원하고 현재의 임금 시스템을 정당화해 줄 위험이 있다. 기본생활소득으로서 그 돈으로 생활하기에 적절한 수준일 때, 기본소득은 현재 노동사회의 조건에 실질적인 파열을 일으킬 것이다. 218

페미니스트들은 매일의, 그리고 다음 세대의 유급 ˝생산˝노동을 가능케 하는 대체로 무급인 ˝재생산˝노동이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노동임을, 고로 이 노동을 둘러싼 관계들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본질적 일부임을 주장했다. 여가eisure라고 분류되어 왔던 것이 실은 일이었다. 그리고 여성의 본성이 자연스럽게표출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 실은 숙련된 활동이었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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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22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짝짝짝짝 (기립박수)

멋진 글 적어주셔 감사합니다, 단발머리님. 기본소득에 대한 부분을 얼른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짐작하신대로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어지나요??(초롱초롱)

그리고 인용하신 부분들의 페이지수를 보니, 제가 오늘 소설책을 들고 나온게 살짝 민망해지는군요. 흐음...
저도 이 소설책만 다 보는대로 다시 1월의 도서로 돌아가, 단발머리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글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곧 2장,3장에 대해 글을 적겠다던 겟타님은 왜 소식이 없으실까요?

단발머리 2020-01-22 15:07   좋아요 1 | URL
멋지지는 않지만 아무튼 하나의 페이퍼를 완성했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짐작한대로 뒤로 갈수록 재미있어지고 읽기도 훨씬 수월해집니다. 정확히는 <3장 일하기의 요구 : 가사임금부터 기본소득까지> 179쪽부터입니다. 전 아무래도 전업주부다 보니 가사노동, 부불노동에 대한 부분이 관심이 많아서 더 쉽게 느껴지는 것 같구요.

다락방님의 글도 기대하고 있을께요.

겟타님은.... 흐흠.... 일단 제가 그 방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블랙겟타 2020-01-22 15:41   좋아요 0 | URL
갑자기 제가..언급이.. ㅋㅋㅋ
저의 시간 속의 ‘곧’이랑 여러분이 생각하는 ‘곧’의 차이가 조금은 있어요..(변명 아닌 변명...)
근데 결국은 이렇게 언급된 관계로 제 생각보다는 빨리 쓸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20-01-22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때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어요. 지금도 가지고 있긴 하지만요. ㅋㅋ
그래서 이 책에서도 기본소득이 언급이 되는게 반가웠어요.
잘 읽었습니다. 단발머리님 :)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생각을 좀....(・-・))

단발머리 2020-01-22 16:39   좋아요 1 | URL
잘 이해한 건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글을 썼네요.
겟타님 글을 기다리면서 이제 좀 쉬어볼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부담은 갖지 마시구요^^
 




















다시 강조하자면, 책은제목 그대로 아니다. 물론 결론이 그렇게 났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결론은결혼해도 괜찮아이다. 하지만, 결혼의 역사,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소수민족에게서 결혼의 의미, ‘결혼이라는 구속에 기꺼이 헌신하려는 현대인,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과 반드시 이혼하려 애쓰는 사람들, 법적인 결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성소수자들에 이르기까지, 저자는결혼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학술적으로 파헤치고자 한다. 



물론 개인적인 사건사고가 있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그도 동의했기에 사람은 결혼하지 않으면서 평생 함께하는 그들만의 생활을 꿈꾸어왔던 터였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댈러스 공항에서 입국 불허를 받으면서 그들이 함께할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서 결혼을 선택할 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가 말한대로 책은 결혼하기 싫지만 결혼해야만 하는 스스로에 대한설득 바탕으로 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제목에 대해서만 쉴드 일이 아니다. 결혼이 싫은 사람, 결혼이 지긋지긋한 사람이라면 책을 읽지 않는 좋겠다. 더해 결혼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은 사람도. 





역사상 가장 효율적인 전체주의 경찰이었던, 동독 공산당의 비밀경찰도 새벽 시에 가정집에서 오가는 비밀스러운 대화는 엿들을 없었다. 누구도 불가능했다. 베갯머리에서 어떤 사소하고 진지하고 점잖은 이야기가 오가든 간에 고요한 시간은 오로지 함께 있는 사람만의 것이다. 어둠 속에 누워 있는 연인들 간의 대화야말로프라이버시 정의 자체라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프라이버시는 섹스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복적인 일면, 친밀함 뜻한다. 세상 모든 연인들은 시간이 흐르며 둘만의 작고 고립된 나라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3자는 참견할 없는 자신들만의 문화, 자신들만의 언어, 자신들만의 도덕 법규를 만드는 것이다. (339) 





길버트의 사진을 전면으로 내걸고(혹은 전면으로 내걸고 싶어서) 얼마전에 <진실하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 여자 뿐인가?>라는 글을 썼다. 글의 요지는 하나의 질문이다. 낭만적 사랑의 극단적 유효성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영원한 사랑을, 사람과의 친밀함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대체 ,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파시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 동독 공산당, 소련과 20세기 중국의 공산당 모두 결혼 제도 이외의 새로운 사회 체제를 수립하려고 했다. 결혼을 말살하려 했고, 후에는 통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만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반항을 이겨내지 못했다.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결혼을 버리고 금욕을 택하라고 노골적으로 독려하고 지시했지만(341), 결국에는 실패하고 오히려 결혼 제도와 관련된 까다로운 조건을 만드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저자는 이렇게 쓴다.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원하지 못하도록 막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특별한 사람과의 친밀감을 원했다. 친밀감에는 반드시 프라이버시가 포함되기에, 사람들은 연인과 단둘이서만 있고 싶은 단순한 욕구를 가로막는 사람이나 사물은 무조건 심하게 밀어냈다. 역사를 통틀어 정치 세력들은 욕구를 억누르려고 했으나 결국은 포기할 밖에 없었다. 인간들은 법적으로,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다른 영혼과 연결되고 싶은 권리를 계속 주장하기 때문이다. (343) 




다른 영혼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마음은 생기는 건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건지, 근원이 궁금하기는 한데, 적어도 가지는 확인하게 됐다. 다른 영혼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그녀/그와의 친밀함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 




다음의 문단은 긴데, 그래도 인용해 보겠다. 책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문단이고, 기억하고 싶은 문단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여성으로서 저자는 자신이이모 연대 속한다고 말하는데, 아래의 문단은 그런 자랑스러운 이모, 고모, 숙모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의 아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남겨진 아이를 사랑으로 돌봐 주었던 멋진 여성들. 이모, 이모들. 놀라운 이모 연대.   





작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해보자. 레오 톨스토이와 트루먼 카포티, 브론테 자매들 모두 친엄마가 죽었거나 친엄마에게 버림받고, 자식이 없는 여자들의 손에 자랐다. 톨스토이는사랑의 도덕적 즐거움 가르쳐준 투와넷 숙모가 자신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본은 어려서 고아가 후로, 자식이 없는키티 이모 손에 자랐다. 레논을 키운 미미 이모는 그에게 언젠가 훌륭한 음악가가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이모 애너벨은 그의 대학 등록금을 내주었다.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처음으로 공사를 의뢰한 사람은 이모인 제인과 넬이었다. 사랑스런 독신녀들은 위스콘신주 스프링그린에서 기숙학교를 운영했다. 어릴 고아가 코코샤넬을 거둬준 사람은 가브리엘 이모였다. 그녀는 샤넬에게 바느질하는 법을 가르쳤는데, 그것이 샤넬에게 매우 유용한 기술이었음은 다들 인정할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캐롤라인 고모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퀘이커 교도이자 독신이었던 고모는 평생을 자선 사업에 몸담았고, 성령의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훗날 울프가 회상했듯이현대의 예언자같은 사람이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유명한 마들렌을 베어 물던, 문학사에 길이남을 중대한 순간을 기억하는가? 순간, 프루스트는 어린 시절의 향수에 압도당해 책상 앞에 앉아 방대한 양의 대서사시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Remembrance of Things Past)』를 수밖에 없었다. 해일처럼 밀어닥친 노스탤지어의 도화선이 것은 프루스트가 사랑하는 레오니 고모에 대한 기억이었다. 고모는 매주 일요일마다 예배가 끝난 , 어린 프루스트와 함께 마들렌을 나눠먹곤 했다.



그리고 피터팬의 모델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피터팬의 창조자인 J.M. 배리는 1911년에 이미 질문에 답했다. 세계적으로자식이 없는 많은 여성들의 얼굴에서 피터팬의 이미지와 정수, 행복한 기운을 발견했노라고.

이것이 바로 이모 연대다.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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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1-21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레논을 키운 미미 이모와의 이야기를 우연히 영화를 보고 알게 되었어요. 먼저 세상을 뜬 이모부가 아주 다감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더군요. 엄마는 밝고 자유분방한 여성이었는데 이모는 엄격하고 심지가 깊은 분이더군요. 저도 이모이자 고모인데 조카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네요. 이모 화이팅ㅎㅎ

단발머리 2020-01-22 16:40   좋아요 0 | URL
전, 존 레논을 비롯한 이런 이모 연대 이야기를 이번에 처음 들었어요. 아, 제인 오스틴 이야기는 들은 것 같기도 하구요.
엄마 없는 아이들을 돌봐주었던 이모들 정말 멋지죠! 전 이모도 고모도 아니어서요 ㅠㅠ
그래도 외쳐봅니다. 이모, 고모 화이팅!!!

다락방 2020-01-21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이모인 제가 몹시 좋아합니다. 흐흣.

단발머리 2020-01-22 16:41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다락방님 생각났어요. 타미 이모 화이팅!

수연 2020-01-2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인 동시에 이모일 수도 있을까.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지 싶고 하여 좋은 엄마 노릇은 좀 못해도 좋은 이모 노릇은 해보고싶단 생각을 문득!

단발머리 2020-01-22 16:42   좋아요 0 | URL
엄마면서 이모인 방법은.... 음.... 없을 것 같기는 해요.
저도 이모 쪽이 끌리기는 한데.... 어쩌죠. 엄마에요 ㅠㅠ

레와 2020-01-22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이모와 고모가 되고 싶어요.

단발머리 2020-01-22 16:43   좋아요 1 | URL
레와님은 좋은 이모, 좋은 고모 되실것 같은데요.
너무 오랜만이에요, 레와님~~~ 반갑습니다^^
새해에는 더 자주 뵈어요!!
 





















일단 책은 제목을 잘못 정했다. 결혼해도 괜찮아,라고 제목으로 버리면, 결혼해서 괜찮지 않은 사람들과 결혼해서 괜찮은 사람 모두에게 환영 받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표지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한글판의 제목을결혼해도 괜찮아라고 쓰겠다면, 어떤 식으로든 ‘committed’라는 원서의 제목이 도드라져 보여야 텐데, 내가 읽은 책에서는 절대반지 속에 새겨진 ‘committed’가 너무 은은하고 자연스럽. 그래서, 제목과 표지에서 각각 감점 5점하고 들어간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집필 직후, 아직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 ,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남자친구 펠리페와 약속한대로 세계를 오가며 함께 생활한다. 반복되는 재회와 이별, 장시간의 비행과 엄청난 항공비를 다소 지불하고 나서, 브라질 출신의 호주 시민권자인 펠리페는 필라델피아 근처에 집을 마련하고 입국, 3개월 체류, 잠시 외국 방문, 다시 입국의 생활을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 입국 심사 도중 펠리페는 국토안보부 직원들의 제지를 받게 되고, 미국에서 영구 퇴출당한다. 펠리페가 미국으로 입국할 있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길버트와의 결혼. 결혼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사람이었지만, 길버트는 펠리페와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국경 사고 이미 발생한 상태에서의 결혼은 당연히 의심받기 마련이어서, 사람의 입국 심사는 수개월에 걸쳐 계속 미뤄지고, 사람은 저렴한 돈으로 생활이 가능한 동남아시아 등지를 헤매고 다니며,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날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책은 쓰여진 책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지만, 결혼하고 싶지 않은, 그럼에도 그와 결혼하는 것이 최선인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들어가기 , 결혼에 대한 고민과 고찰. 



나는 결혼했으니, 아무래도 결혼한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 만약 내게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크게 보인다면, 결혼 생활을 이어갈 없을 테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지만, 나는 이혼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무 생각없이 결혼한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놀라고 실망했던 경험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혼 생활을 통해 기쁨과 안정감, 정서적 지지를 얻는다는 점마저 부인할 수는 없다. 




< F. 케네디 부류냐, 해리 트루먼 부류냐>에서는 부부간의 불륜을 연구한 심리학자 셜리 P. 글래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글래스 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건강한 부부 관계는 창문과 벽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창문은 부부가 세상에 공개하는 관계의 측면, 벽은 부부간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지키기 위한 신뢰의 장벽이라고 한다. 기혼자들이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지만, 문제가 생기는 지점은 바로 여기라고 한다. 




그런데 이른바 아무런 해악도 없는 우정이 지속되면서, 우리는 결혼 생활 안에 감춰야 은밀한 비밀들을 새로운 친구와 터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비밀가장 은밀한 욕망과 좌절들 털어놓고, 그렇게 털어놓았다는 사실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단단한 벽을 세워야 곳에 창문을 격이고, 이내 새로운 사람에게 심중을 털어놓게 된다. 괜히 배우자의 질투심을 부추기고 싶지 않기에 사소한 사실은 배우자에게 비밀로 한다. 이제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아무런 장벽도 없이 빛과 공기가 마음껏 순환되어야 하는 부부 사이에 벽이 생긴 것이다. (149) 





그녀의 외가 여성들의 이야기가 특히 감동적이다. 외할머니 모드 모르콤 여사는 구개 파열로 입천장에 구멍이 생기고, 윗입술이 찢어진 태어났다. 수술을 받았지만 얼굴 가운데 눈에 띄는 흉터가 남았고, 게다가 말을 빨리 하지 못했으니 그녀의 불행에 대해서라면 안타까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녀의 불운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작용했다. 그녀는 바로 이유 때문에 외가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정식 교육을 받을 있었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성적이 뛰어났고, 일을 하면서 학비를 버는 당시 미네소타 중부의 최대 돌연변이가 되었다.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자주적인 아가씨가 것이다(214). 



1931, 외할머니는 진짜 미용실에서 진짜 미용사에게 커트를 하고, 멋진 파마를 했다. 200달러나 주고 진짜 모피가 달린 화려한 와인색 코트를 사서 입고 다녔다. 그랬던 그녀가 사랑에 빠졌고, 외할아버지와 결혼했다. 외할아버지의 농장에서 시아버지, 도련님과 함께 살았다. 남자를 위해 요리와 청소를 도맡아야 했고, 농장 일꾼들의 식사까지 준비하는 일이 빈번했다. 아이를 일곱 낳았다. 큰딸이 태어나자, 그토록 아끼던 와인색 코트를 뜯어서 새로 태어난 아기의 크리스마스 의상을 만들어주었다. 




내게 이야기는 우리쪽 사람들에게 결혼이 어떤 것인지 가장 보여주는, 효과적인 메타포였다. 여기서우리 사람들이란 우리 집안의 여자들, 특히 뿌리이자 근원인 외가 여자들을 말한다. 왜냐하면 자식을 위해 평생 당신이 소유했던 물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물건을 포기한 일은 우리 외할머니 세대의 모든 여성들(아울러 이전의 여성들) 가족과 남편, 자식을 위해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217) 





책을 집필하면서,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결혼에 대한 질문을 퍼부었던 저자가 외할머니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사시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어요, 할머니? 그녀는 외할머니가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미장원에서 머리를 손질하던 , 재단사가 맞춰준 와인색 코트를 입고 돌아다녔던 때였을 거라 예상한다. 외할머니께서 답하신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외할아버지와 신혼 생활 하던 때였어. 올슨 가족 농장에서 함께 살던 . 저자는 말한다. 나는 외할머니의 말을 믿었지만, 외할머니를 이해하지는 했다. 하지만, 2006 자신의 집으로 그녀와 남자친구를 초대한 젊은 부부 케오와 노이를 보며 그녀는 깨닫는다. 




외할머니는 어떻게 1936년에 행복할 있었을까? 2006년에 노이가 행복한 것과 같은 이유다. 자신이 누군가의 삶에 없어서는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동반자가 있고, 동반자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사람이 만들어나가는 미래에 확신이 있고,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219) 






자신만의 커리어를 가지고 직업적 성공을 이루기 직전, 남편의 비협조(이틀간의 휴가) 직장을 그만두었던 저자의 어머니의 역시 인상적이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어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자신이 누린 엄청난 혜택은 엄마의 희생이라는 유골을 바탕으로 했다 말을 지면을 통해 남기고 싶다는 저자의 말이 겹쳐져 들렸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어머니 사람으로서, 어머니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딸의 말이  딸의 말처럼 속에 울렸다. 딸이 그럴 같지 않아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만약 내가 후회한다면 인생의 17년이 모두 의미 없어질 테니까.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모순 투성이지만, 그렇다고 모순 자체를 인정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기는 한다. 만약 앞에 똑같은 선택지가 있다면 지금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어쩌면, 전업주부로서의 우주가 아닌, 다른 우주 속으로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우주 속에 존재한다면, 지금의 이런 생각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다른 생각, 다른 고민, 다른 갈등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밥을 엄청 많이 먹고, 뜨기 전에 일어나고, 하루 종일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애를 지금 앞에 데려다 놓는다면. 수영복, 발레복, 색색의 원피스, 핫팬츠, 옷에 맞는 니삭스에 깔맞춤 머리띠까지, 하루에 일곱 갈아입는 애를 지금 앞에 데려다 놓는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막대에 원숭이처럼 매달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고, 소화기 안전핀을 뽑고서 태연하게 거품을 만지는 아이를 지금 앞에 데려다 놓는다면. 그렇게 해준다면 우주는 우주와 같을 것이고, 나는 지금의 나일 것이다. 




하여, 이제 읽고 있는 , 읽다가 잠깐 멈춘 , 모른 하려했으나 서둘러 읽어야만 하는 책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8 25. 우주에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유럽 전역의 법정에서는 부를 경영하고 유지하려는 통제권을 더욱 강화할 목적으로 ‘일체(一體, coverture)‘라는 법적 개념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이는 여성이 시민으로서 갖는 존재가 결혼하는 순간 사라진다는 개념이다. 이 시스템하에서는 아내가 남편에 의해 적절한 ‘보호(cover)‘를 받게 되므로, 더 이상 자신만의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며 어떤 개인 재산도 소유할 수 없다. 원래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개념은 곧 유럽 전역에 퍼져 영국 불문법에 깊이 뿌리내린다. 심지어 19세기에 와서도 영국의 윌리엄 블랙스톤(William Blackstone) 판사는 법정에서 일체 개념을 옹호하며 유부녀는 법적이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여성의 존재는 보류된다˝고 썼다. 그런 이유로 블랙스톤은 설사 남편 본인이 원한다 해도 아내는 어떤 재산도 남편과 공유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것이 예전에 아내의 재산이었다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96

결혼은 교회의 강력한 이혼 방지 정책과 결합되어 13세기에 이르러서는 여성을 완전히 매장해버리는 제도가 되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상류층에서 심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재가 철저히 말소된 이 여성들이 얼마나 외로운 삶을 살았을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발자크 (Balzac)는 결혼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이 불행한 여인들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들은 권태에 시달려 종교나 고양이, 강아지, 혹은 신을 거스르는 다른 열망에 빠져들었다.˝ 97

이것은 심리학자들이 소위 ‘침입적 사고‘라고 부르는 상태로 이어지는데, 집착하는 대상 외에는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일단 사랑에 미혹되기 시작되면, 그 사람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것 외의 다른 모든 일, 대인 관계, 책임, 섭생, 수면에는 관심이 없어진다. 그 환상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떠오르고, 계속 반복되어 우리의 진을 빼놓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뇌의 작용까지 변해 마치 마약이나 자극제를 잔뜩 복용한 상태가 된다. 136

최근에 과학자들이 사랑에 미혹된 사람들의 뇌사진을 찍고 감정기복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상태가 마약 중독자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미혹 상태는 중독이고, 중독은 뇌에 상당한 화학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인류학자이자 미혹전문가인 헬렌 피셔(Helen Fisher) 박사는 사랑에 미혹된 사람들은 마약 중독자처럼 ˝마약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건강도 해치고, 치욕적이며, 심지어 신체적으로 위험한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136

하지만 실제로 심각한 경제 문제는 결혼 생활에 엄청난 압력을 가한다. 결혼 상담가라면 누구나 그 말에 동의할 것이다. 불륜과 폭력을 제외하고 가난, 파산, 빚보다 부부 관계를더 좀먹는 것은 없다. 199

나는 약자에게 병적일 정도로 감정이 이입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종종 펠리페에게 당하는 사람들의 편을 들곤 했는데 그로 인해 긴장감만 더 커졌다. 펠리페는 멍청하거나 무능력한 사람들에게 일말의 참을성도 발휘하지 않는 반면, 나는 세상의 모든 무능력한 바보들이 사실은 좋은 사람들인데 어쩌다 오늘 하루 운이 없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의 차이는 결국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평상시에는 거의 싸우지 않는 우리가 싸울 때는 대부분 이 문제 때문이다.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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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0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삿짐 정리 3일째. 실제로 하는 일은 없는거 같은데, 버릴 거, 가져갈 거 대답하는 일도 장난이 아니다. 이 인생 어느 지점에서는 반드시 미니멀리즘, 실천해 보리라, 다짐에 다짐을 더하지만 아직은 안 될것 같아. 짐이 너무 많다. 



아이들 책, 영어책 정리할 거 정리하고 줄 거는 주고 버릴거는 버리고 있다. 내 책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대충 봐도 내 책은 버릴 책이 없다. 하나도 없다. 모두 훌륭한 말씀이라 줄을 그었고, 색색깔 호화 찬란한 인덱스도 장난이 아니다. 내 책은 다 소장각이다. 




그 와중에 또 책을 산다. 이게 나의 가장 큰 사치, 가장 큰 호강이다. 

읽게 하소서! 부디 읽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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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1-18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하신 거에요? ㅎㅎ ˝내 책은 다 소장각이다˝에서 빙그레~ ^______________________^

단발머리 2020-01-18 22:08   좋아요 0 | URL
이사 전 준비 작업중입니다. 이사는 3월인데, 버릴게 너무 많아서 일찍 시작했어요. 목표는 구정전인데... ㅠㅠ
제 책은 다 소장각입니다. 아시면서~~~~~~ ^_________________________^

moonnight 2020-01-19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이사준비 너무 힘드시겠어요ㅜㅜ 암요 암요 단발머리님 책은 다 소장각이지요 그토록 열심으로 읽으시는데요.^^

단발머리 2020-01-20 20:56   좋아요 0 | URL
조금 힘들었어요. 앞으로 힘들 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저의 소장각을 인정해주셔서 감사해요., moonnight님!

무식쟁이 2020-01-1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 한 줄을 긋는 순간 그 책은 내게 특별해버림.. 버릴수 없는 변명 하나가 더 추가된다는.

단발머리 2020-01-20 20:57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전 도서관 책을 자주 읽는 편이라 구입하는 책이라면 정말 줄을 긋기 위해 구입합니다.
근사한 변명이지요^^

보슬비 2020-01-19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집에 제책만 있기 때문에 소장도 정리도 다 제몫이예요 ^^ 나중을 생각해서는 정리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ㅠㅠ

단발머리 2020-01-20 20:58   좋아요 0 | URL
헤헤헤. 전 제 책이 별로 없다고 항상 주장하는 편인데, 요즘에 정리하다 보니 제 책도 꽤 되더라구요.
조금씩 정리하고 있어요. 헉헉...
 


















2020 1 1일부터 『Eat pray love』 읽기를 시작했다. 친구가 운영하는 단톡방이라 살그머니 발을 담갔다. 그간의 학습과 경험과 실패를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외국어를 마스터하고 싶다면, 하루 18시간씩 6개월 이상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밀도있고 집중적인 학습, 그리고 어마무시한 학습량만이 눈에 띄는 성과를 도출해 있다. 그러니까, 나는 매일 하루 15분씩, 가랑비에 젖는 방식의 학습 방법에 극히 회의적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하루에 챕터씩 오디오북을 듣고, 따라 읽고, 단어를 찾아보고, 문단을 따라 써보는 공부방에 들어갔다. 지금 당장은 하루에 18시간씩 6개월, 영어를 공부할 의지도 열정도 없지만, 언젠가 갑자기 내게 그런 필요가 생겼을 , 그렇게 해야만 , 냅다 뛰어나가기 위해서. 낡았기는 했어도 제일 편한 운동화를 일단 신고, 신발끈을 묶고 있는 정도의 준비로서. 




월요일의 단어는 androgynous였다. 발리의 심령치료사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에게 건넨 종이를 묘사할 나온 표현이다. 









Ketut said he could answer my question with a picture. He showed me a sketch he’d drawn once during meditation. It was an androgynous human figure, standing up, hands clasped in prayer. But this figure had four legs, and no head. Where the head should have been, there was only a wild foliage of ferns and flowers. There was a small, smiling face drawn over the heart. (29) 





습관대로 사전을 옮겨 적었다. 



















날의 공부를 마치고는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읽었다. 지난주여성주의 같이읽기친구들과 페미니즘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정리한 책은 어떤 있을까 댓글을 주고받다가 책을 추천했는데, 다시 펼쳐보니, 이번이 세 번째인데 그래도 재미있는 거다. 차근히 따라 읽다가, 이런 문단을 만난다. 





결국 (파이어스톤) 지향하는 바는 재생산을 중심으로 성차를 나누는 방식 자체를 소멸시킴으로써 여성해방을 이루자는 겁니다. 성차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면 이상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응시나 그에 의거한 문화제도적 제한과 억압이 사라질 테니까요. 



저는 이런 입장을 안드로지니'(androgyny) 동일한 인간성이라는 정체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분류했어요. 우리가 지렁이도 아니고자웅동체라고 번역하는 것은 부적절하겠죠? ‘양성적 인간이라고 하자니 성을 둘로나눈다는 비판을 받을 있고, 제일 적합한 말로동일한 인간성이라는 말을 골라 봅니다. (63)




나왔다. 안드로지니.


















잠자기 전에는 요즘 우리집에서 가장 핫한 ,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읽었다.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만난 놀람 포인트는 사제지간이자 연인관계였던 루스 베네딕트와 마거릿 미드, 사람 중에 루스 베네딕트가 연상이자 스승이었다는 . 책의 제목이 루스 베네딕트와 마거릿 미드 아니라,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인지 나는 아직 확인하지 했다. 두번째 놀람 포인트는 루스 베네딕트의 놀라운 미모. 사진으로 풍겨나오는 지적이고 고혹적인 아름다움에 한참이나 넋을 잃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저자 루스 베네딕트다. 







글자를 어깨너머로 던지지 않고, 조용조용 따라 읽는다. 36 그리고 37. 





잡지와 기타 저술을 물론이고, 베네딕트와 미드가 1922년부터 서로에게 보낸 수십 통의 편지 어디를 보더라도 사람은 자신이나 상대방을레즈비언’(lesbian)이라는 용어로 지칭하지 않는다. 1930년대에 이르러 미드가 가끔씩레즈비언이라는 말을 사용해 다른 여성들을 지칭하기는 했지만 베네딕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동성애자’(homosexual)이성애자’(heterosexual)라는 말을 썼다. 사람은 가끔씩도착자’(invert)변태’(pervert)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다. 물론 베네딕트가 변태라는 말을 대개 반어적으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1935 미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을 남녀양성’(androgyne)이라고 칭했다. (36-7) 





나왔다. androgyne. 단어의 가지 변형.   





나는 그냥 운동화를 신고 신발끈을 매었을 뿐인데, 사방에 널린 영어단어들은 각각 이런 저런 모양으로, 책에서, 화려한 몸짓과 신나는 음악으로 나를 맞이한. 뭐든열심히와는 어울리지 않는 나인데, 운동화를 신고 신발끈을 맸 뿐인데, 이제 단어들은 어쩔 없이(?) 확실히 알아버렸다. 하루에 만났는데도 모른 하면, 그건 인간의 도리도 아닐 싶고. 



그래서, 월요일의 단어는 androgynous, androgyny, androgy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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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1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근사한 페이퍼에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책들이 묘하게 얽혀있어요! >.<

단발머리 2020-01-20 20: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곧 부자가 되어 찾아뵙겠어요^^

hnine 2020-01-18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ndrogen 이 남성호르몬 명칭이니까 androgynous 도 비슷하게 ‘남성적인‘ 뭐 이런 뜻일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배워갑니다.

단발머리 2020-01-20 20:59   좋아요 0 | URL
전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hnine님 댓글보니 또 그런 것 같네요. 저 역시 배워갑니다 : )

공쟝쟝 2020-01-1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드로지니! 뭔가 어감도 이쁜단어네요, 신기해요!! ㅎㅎ

단발머리 2020-01-20 20:59   좋아요 0 | URL
안드로메다,가 전 제일먼저 떠올랐어요.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하하하!!!

다락방 2020-01-20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저 단발님께 땡투하고 며칠전에 [페미니즘의 역사] 구매했는데, 어젠가 그젠가는 이 책,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땡투하고 구매했어요. 단발님 이제 곧 부자될 준비 하세요. 제가 이렇게 팍팍 경제적으로 지원해드립니다. 빠샤!

단발머리 2020-01-20 09:4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서 보내신 소중한 땡투 야무지게 적립되었습니다. 다락방님의 물질적, 정서적 지원에 전 조만간 큰 부자가 될것 같습니다. 그 후의 즐거운 일들도 기대해도 좋습니다. 빠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