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명의 과학

도서관에서 영어책 읽다가 너무 졸려서 일어나 서가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책이다. 다 읽지 않고 챕터 4, <보살피는 뇌>를 읽었다.

어떤 형태이든지 섹스는, 그리고 섹스에 대한 관심 결여조차도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 측면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통용되는 사회적 규범과 외부의 압박이 생물학적으로 깊숙하게 새겨져 있는 욕망과 경쟁할 수 있다. 이런 요인들이 미치는 영향력을 정교하게 분리하는 것이 현재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자기 고유의 개인 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측면 중에는 보편적으로 타고난 성적 지상명령sexual imperative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사랑에 빠질 때 경험하는 육체적 간절함,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보호하려는 맹렬한 욕구, 심지어는 사랑을 위협하는 사람을 향한 질투심 어린 적대감 등 이 모든 필수적인 감정 상태는 섹스와 육아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도록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한 격렬한 신경화학적 활동의 결과물이다. (142쪽)

성적 지상명령이라. 유전자의 힘, 생존을 가능케 하는 그 원대한 힘, 그 멈추지 않는 힘이 섹스를 중심으로, 그러니깐 섹스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순순히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러니까, 『여성성의 신화』가 개정되기 전, 『여성의 신비』로 읽히던 시절, 한글책 구하기가 원서 구하기 보다 훨씬 어려웠던 시절에 베티 프리단의 책을 처음 읽고, 나는 하염없이 흥분했다고 한다.

'프로이트'에 정면으로 맞선 것에 더해 '말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위대한 여성의 통찰은 가히 충격적이어서 그에 대한 존경심으로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야만 했는데. 여성주의 주장의 한 면이 본질주의일 수도 있다는 걸 발견하는 순간에는 이건 또 뭔가요?의 혼란이 어김없이 찾아왔으니. 남녀가 그렇게까지 다르지 않으며, 성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의 다른 면은 여성주의의 이론의 최전선(정희진쌤 표현)인 도나 해러웨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그냥 두고 나선다. 다만, 과학, 특히 근자의 뇌과학이 여남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한다.









2. 아주 작은 습관의 힘

8월이 다 지나고, 곧 9월이라니. 얼마 남지 않은 2005년에 작은 성과를 만들려면 어찌해야 하는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 변화나 성과, 혹은 성장과 성공이 정말 가능할까의 의문을 가진 채로. 일석이조를 예상하며 처음에는 영어로 읽었는데, 마음은 급하고 진도는 나가지 않아서, 결국 마무리는 한글책으로 했다.

실제 삶의 행로는 우리가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여정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수없이 많다. 굳이 하나의 시나리오에만 자신의 길을 맞출 이유는 없다. (47쪽)

를 모르지는 않는데, 이걸 제대로 인지하는가는 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결국 내가 제일 궁금해하고 나 자신에게 묻고 싶은 그것은 '성공'이란 무엇인가가 될 테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바라는, 내가 추구하는, 내가 꿈꾸는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이 정돈되어야만 이 '아주 작은 습관'을 통해 현재의 나를 갱신하고, 변화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는,

분명하게 만들어라. 매력적으로 만들어라. 하기 쉽게 만들어라. 만족스럽게 만들어라.

를 적용해야 할 대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혹은 나는 무엇을 이뤄내고 싶은가. 아주 작은 습관을 통해 내가 만들어내고 싶은 변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을 위한 변화인가.










3. 쓰기의 미래

서문의 '쓰기는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인가?'가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질문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해답은 '아니다'가 명확해 보인다. 이 책은 AI의 시작과 발달 과정, AI의 확산과 활용의 기술적 역사를 세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2004년 대학 작문 및 커뮤니케이션 회의 CCC는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모든 글은 그 목적이 무엇이든 인간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 기계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것은 쓰기의 기본적인 사회적 속성을 위반한다. 우리는 사회적 목적을 띠고 타인을 위한 글을 쓴다.

그런 정서는 조금도 낯설지 않다. 후일 찬사를 한몸에 받는 작문 교사가 될 에드 화이트는 1969년 이런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어떻게 쓸 수가 있겠는가?

(..) 어떤 이에게도 쓰지 않은 글은 도무지 글이라고 할 수 없다." (141쪽)

밑줄 긋고 싶었던 에드 화이트의 이야기는 오히려 '이상적으로' 들린다. 이미 오래전부터 AI는 신문 기사를 썼고,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했으며, 보고서를 작성하고, 에세이를 쓰고, 급기야 소설을 쓰기에 이르렀다.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 여겨지던 '창의성'은 이제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쓰는가. 왜 쓰려고 하는가.

<해제>에서 엄기호는 '셋이 추는 춤'을 제안한다. AI와 가르치는 자, 배우는 자가 함께 삶이 담긴 자기표현으로서의 쓰기를 지향하자는 것(550쪽)인데,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가르치는 자는 진즉에 외면당할 것 같고, 배우는 자 역시 쉽게 쫓겨날 것 같다. 남는 건 AI, 승자는 AI 다.

인공 지능의 가늠하기 어려운 발전상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서, 실체가 없는 이런 지적 능력이 '몸'을 갖게 된다면, 그에 더해 공감 능력이 배가된다면,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긴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실리콘에 새겨진 의식의 반란. 계산, 수리 능력에서 이미 인간을 압도하는 AI가 정보를 바탕으로 이 세계의 특정 사안에 대해 '판단'하겠다고 하면, 인간이 이를 제어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에 가까울 것이다. 'AI가 우리 종의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진화 경로를 바꾸는 데까지(『넥서스』) 도달할 때, '쓰기'는 오히려 사소한 문제가 아닐까. 출현 이후로 한결같이 지구를 파괴하고, 이 행성의 주인 행세를 했던 무도한 인류의 미래는 참으로 암담하다.










4. 금붕어의 철학

포스트-구조주의의 사상적 핵심으로서 반본 질주의

  1. 원본 없는 재현; 재현 이전의 현전은 없다

  2. 이성에 대한 불신; 기호의 유희

원래대로라면 나는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하면서 이 책을 읽어가려고 했다. 각 이론의 핵심 주장을 찾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요약하면서 읽기. 데리다의 이론을 정리한 김상환 님의 주장에 근거한 저자 배세진의 설명을 차근히 따라가며 이 책을 읽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쓰기의 미래』에 의하면, 책에 대한 정보를 가공하고, 지식을 정렬시키는 요약, 발췌는 모두 무의미하다고 한다. 이는 AI가 인간보다 잘할 수 있는 영역인데,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맡은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내용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보다는 텍스트를 끌어가는 저자의 '서술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더 주효한 읽기법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한단다.

<버틀러의 섹스-젠더 이분법 해체> 부분이 특히 흥미롭다. 버틀러는 데리다의 기호의 해방론을 젠더 문제에 적용해 확장하면서, 섹스와 젠더, 남성과 여성, 이성애와 동성애 간 이분법의 해체를 강조했다. '젠더 수행'이라는 측면에서 설득되고 동의되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여전히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건, 여자라는 '몸', 여성이라는 영토 속에 살면서 내가 느꼈던 한계와 절망의 기억 때문이다.

정리의 필요를 가볍게 떨치고 분홍 형광펜을 그어가며 재미있게 읽고 있다. 사실,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은데, 저자가 완전 신나서 설명하는 게 단어와 문장 너머로 완연히 느껴진다. 그래서 나도 재미있게 읽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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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25-09-01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책 하나 만만해 보이는 게 없네요! ㅎ 저는 세번째 책, 쓰기의 미래라는 책이 특히 궁금합니다. 일할 때 챗지피티를 쓰곤 하거든요. 교재 내에 코너 정할 때나, 항목별로 분류할 때 넣어보기도 하는데, 오류도 잦습니다. 아예 ChatGPT는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는 재차 확인하세요. 이게 하단에 꼭 붙잖아요 ㅎㅎ) 그럼에도 너무 똑똑해서 흠칫흠칫합니다. 지금도 쓰기의 미래를 검색어로 넣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을 넣었더니.. 쓰기의 주체, 목적, 형식, 운명으로 챕터를 나눠서 답을 주더라고요. ...그 중에 쓰기의 목적을 옮겨와 보면,,,예전에는 설득, 기록, 자기표현이 글쓰기의 핵심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AI가 대량으로 텍스트를 생산하는 시대에는, “차별성”이 쓰기의 본령이 될 듯합니다. 곧, 왜 네가 써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글은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글은 기계와 다른 고유한 결―즉 체온, 망설임, 주저, 불완전함―을 품을 때만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라고 답하네요. 금붕어 철학 책 표지는 색감이 딱 제 스타일이네욧!!

단발머리 2025-09-02 08:23   좋아요 1 | URL
아~~ icaru님은 일할 때 챗지피티(채경이)를 이용하시는군요. 맞아요~~ 실수가 종종 있더라구요. 저는 읽었던 책에 대한 줄거리 확인할 때 많이 씁니다. 이걸 왜 채경이한테 물어볼까요. 저도 아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쓰기의 미래, 검색 결과도 솔깃하네요. 만약에 대학생이 챗지피티를 이용해서 거기에 좀 덧붙여서 리포트 쓰면 일단 중간 이상으로 혹은 오~ 잘 썼는데! 이런 평가를 받을 거 같고요. 왜 써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니, 생각보다 똑똑한 녀석이네요.

제 고민은, AI가 인간의 고유한 결, 체온, 망설임, 주저, 불완전함을 쉽게 복사해 내면서, 인간보다 훨씬 더 인간다워지지 않을까, 하는 거에요. 전, 지금의 기술 발전이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어떤 선을 약간 넘지 않았나 싶거든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금붕어는 icaru님 스타일에 더해 딱 제 스타일입니다. 안 읽고 보기만 해도 흐뭇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5-09-01 1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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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2 08: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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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1 1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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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2 08: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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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2 1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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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2 2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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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2 2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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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2 2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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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2 2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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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3 09: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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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01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회의 할 때 녹음앱 켜놓고 하면 알아서 회의내용 요약정리해주더라구요. 회의록 결재 올릴 때 문장만 찔끔 다듬으면 됩니다. 그러나 책을 보고 정보를 가공하는건 딱히 의미가 없다는 말이 일면 공감이 되기도 하는데, 근데 다시 생각하면 이건 원해 그런거 아니었다 싶기도 해요. 수학문제 풀 때 정답이 도출되는 논리과정을 추출하는게 진짜 중요하잖아요. 글쓰기나 책읽기나 뭐 원래 서술방식, 논리추론의 과정을 이해하는게 중요한것도 똑같은듯요.

근데 단발머리님 읽은 책은 왜 힌권도 만만해보이는 책이 없습니까? 저는 요즘 만만한 독서가 좋아요. 이것도 지적 게으름이 분명하지만 반성 안 할래요. ㅎㅎ

단발머리 2025-09-02 08:34   좋아요 1 | URL
아.... 그런 앱이 있었군요. 진짜 잘 활용하면 기계의 발전이 인간에게는 이렇게나 도움이 될 수 있는데...

바람돌이님 말씀해 주신 그 지점에서 말이에요. 책을 보고 정보를 가공하는 것이 점점 더 의미가 없어진다면, 그 효과가 덜 중요해진다면, 어쩌나 하는 그런 생각을 요즘 자주 하게 됩니다. 서술방식과 논리추론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그래서 더 와닿는 거 같아요.

첫번째 책이 뇌에 관련된 책이라 술술 읽힙니다. 어려운 내용이 없구요 10대의 뇌, 케일이냐 도넛이냐, 이런 부분은 익히 아는 내용들이 많아서요. 두 번째 책은 실천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ㅋㅋㅋㅋㅋ 역시나 술술 읽힙니다.
4번째가 제일 어려운 책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어제는 프리다 맥파든을 만나고 왔습니다^^

다락방 2025-09-02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아직도 만나야 할 프리다 맥파든이 남아 있습니까?!

단발머리 2025-09-02 20:46   좋아요 0 | URL
네, 남아 있다고 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어제 한 권 더 읽어서요, <The Crash>. 이제 10권 채웠고요. 아마존에는 아직도 17-8권 있는 거 같아요. 제가 프리다 좀 몰아서 읽으려고 킨들 언리미티드 신청했거든요. 이게 더 이득인지 어쩐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읽어가고 있습니다.

이승우 작가님도, 리 차일드도 다락방님 덕분에 알게 됐고, <레 미제라블>도 다락방님이 읽어서 따라 읽었잖아요, 제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해 여름의 큰 선물 프리다 맥파든 감사해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난티나무 2025-09-02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I가 인간보다 인간다워지지 않을까 , 라는 단발머리님 위 댓글 내용에 동감입니다. 부정적 감정도 훨씬 쉽게 복사하겠죠. 실제로 인간의 프로그래밍을 거부하고 스스로 명령을 수정해버린 일례를 sns 에서 봤습니다. 선을 넘었다는 말씀에도 같은 생각이에요.ㅠㅠ

단발머리 2025-09-02 20:48   좋아요 1 | URL
인간의 프로그래밍 거부하고 명령을 수정하던 AI가 실제로 인간, 인류의 멸망을 모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아무래도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읽어야할 때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된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AI라~~~ 그것도 참 걱정이네요.

난티나무 2025-09-02 22:00   좋아요 1 | URL
파운데이션??? 찾아보러 갑니다!!!!

단발머리 2025-09-02 22:11   좋아요 1 | URL
파운데이션 7권이라고 하네요. 허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5-09-03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사회과학 맛집^^ㅋㅋㅋ
다 어려워 피하고 싶은 책들인데 희한하게도 제가 읽은 책이 눈에 띄네요.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요.ㅋㅋㅋ
근데 단발 님은 원서로 읽기 시작하셨군요?
요즘 원서 많이 읽으시는군요.
그렇다면 영어원서 맛집.ㅋㅋㅋ
저도 <쓰기의 미래>저 책이 좀 궁금합니다.
요즘 sf소설을 읽고 있어서인지 매우 흥미롭네요. 다음엔 저도 파운데이션 찾아봐야겠습니다요.
근데 제가 단발 님의 지령을 받들어 산책 페이퍼 글쓰기 오랜만에 했거든요.
근데 페이퍼가 당최 올라가질 않네요?
글자 수 제한이 있는 건지?
책을 링크를 걸어서 버그가 온 건지?
내 핸드폰 용량이 달리는 건지?
글은 안 올라가고 계속 로딩만.ㅜ.ㅜ

단발머리 2025-09-06 08:41   좋아요 0 | URL
우앗! 저 사회과학 맛집이네요? 신난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시작은 원서로 마무리는 한글로ㅋㅋㅋㅋㅋㅋ 원서가 울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쓰기의 미래>는 쓰기와 관련된 역사가 많이 나오고요. AI가 발전해온 역사도 잘 정리되어 있어요. 왜 쓰는가...가 제일 주요한 이야기일 거 같은데, 인간이라서 쓴다~ 이런 이야기도 나오고요.

책나무님 산책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가끔 알라딘이 그렇게 안 될 때가 있더라구요. 다 썼는데 안 올라가면 너무 짜증나요. @@
저는 다른 곳에 써두었다가 복사해서 올려요. 소듕해서요 ㅋㅋㅋㅋㅋㅋㅋ 날리면 안 됩니다!
 











방학이 끝났다. 세상에ㅠㅠ 이럴 수가. 휴가도 못 갔고, 많이 놀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책도 맘껏 못 읽은 거 같은데. 방학이 끝났다. 월요일 개학 기념으로 방학 중 최고의 이벤트였던 '스피박 실물 영접 후기'를 써보자.




강연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게 되면 앞에 앉는 편이다. 앞쪽에 앉을 때, 가운데 앉는다. 스피박 강연 때도 그랬는데, 앞쪽 두 줄이 초대석이었다. 나도 신청하고 간 건데, 맨 앞줄의 저 초대석은 신청 안 하고 '초대된' 사람들이 온 걸까 궁금해하면서 앞에서 4번째 줄, 초대석 더해서 6번째 줄에 앉았다. 더 앞쪽으로 갈까도 싶었는데, 가운데 쪽이 좋아 그 자리에 앉았다.

무사히(?)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앞쪽, 즉 초대석에 앉은 사람이 손을 들었다. 앉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키가 큰 남자, 말 그대로 서백남이었다.

강연도 자주 가지 않거니와, 강연에 참석한 경우에라도 질문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강연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강연을 마친 후에 질문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조금 서운하지 않을까 싶어, 용기 내어 손을 들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비슷한(?) 마음을 느끼곤 한다. 첫 번째 질문자는 그 대학의 교수였다. 질문을 시작했는데, 아... 질문의 배경에 대한 설명 혹은 언급이 끝나지 않는 거다.

그때 갑자기, 스피박님께서 손을 내저으시고는 청중을 향해 물으셨다. "질문이 상당히 긴데.... 여러분, 이 질문 다 이해하고 있는 거죠? 지금, 잘 따라오고 있는 거죠?" 청중은 긍정의 의미로 제각각 웃었다. 행사 진행과 부총장의 축사, 스피박님의 강연이 전부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까지의 과정을 함께한 청중들이라면 그 질문을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스피박님의 의도는 명확했다. 질문을 하시오. 기다리고, 기다려도 질문은 등장하지 않았고, 결국 돌아오는 선생님의 역공. Go to the question.

그다음 질문 역시 초대석의 서백남이었고, 역시나 교수였다. 이 교수는 앞 교수의 교훈을 오늘에 되살려 최대한 짧게 질문하려 했으나, 역시나 돌아온 스피박 선생님의 역질문. What is your question?


그 이후의 질문 시간도 마찬가지였는데, 인도에서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 온 젊은 여성이 유일하게 스피박님에게 좋은 질문을 했다며 칭찬을 들었다. 서발턴은 아이덴티티로서가 아니라 포지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 그에 대한 그람시의 해석 등등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질문 그 자체라기보다는 질문하는 사람들의 모습,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의도에 대해서라면 알 수 없다. 외모로 판단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스피박님의 강연을 들으러 온 그 소중한 자리에서 열심히 질문하는 모습과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그 질문들이 얼마나 어이없는가에 대해, 혹은 필요 없이(정확히는 쓸데없이) 장황했는가에 대해 나는 오래오래 생각했다. 세계적인 석학인 스피박님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같이 강연을 들었던 자신의 학생들에게 강렬한 모습을 남기고 싶었던 건 아닐까. 확언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지만, 나는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게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 이렇게 길게 쓸 수 있는 이유는 이 일이 남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고, 내가 그런 사람이란 걸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생일 즈음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그 노력이 완전히 실패했다고는 할 수 없는데, 깊은 인상을 남기기는 했다. 나쁜 쪽으로 혹은 안 좋은 쪽으로. 이불킥과 머리 쿵쿵의 시간이 얼마큼 지나고, 말복이 지나도 찬바람이 불지는 않았지만, 나는 조금씩 제정신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런 혼란의 순간에 김건희의 말이 떠오른 건 또 무슨 일일까. 무수한 학력 위조와 의도적 조작이 드러났을 때, 김건희는 말했다. 돋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랬습니다. 아, 그 마음을 알겠는 내 마음. 이내마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픈 마음. 스피박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 강연자들에게 은근한 찬탄을 받고 싶은 마음. 학력을 위조해서라도 돋보이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 이내마음.









자기 증명과 인정 투쟁의 그 지긋지긋한 정글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악셀 호네트의 책 두 권을 대출해 왔다. 자세히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목차로 살펴보기에 내가 궁금해하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보다는 '인정투쟁을 정체성 인정을 넘어 물질적 재분배까지도 획득해 내는 운동으로 발전시키려는 악셀 호네트의 시도'(알라딘 책소개)가 펼쳐진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승자는 에밀리 디킨스와 프란츠 카프카이다. 그리고 소설 속 인물로는 주커먼. 과거의 내가 필립 로스를 그렇게나 좋아했던 이유를, 나는 이제야 알 것도 같다.










나는 만찬회 같은 데도 참석하지 않고 영화 구경도 가지 않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 휴대전화나 VCR나 DVD 플레이어나 컴퓨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계속 타자기의 시대를 살고 있고, 월드와이드웹이 뭔지도 모른다. 선거 같은 것도 더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대개 밤늦게까지 글을 쓰며 보낸다. 독서도 하는데, 주로 학생 때 처음 접했던 책들을 읽는다. (『유령 퇴장』,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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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8-28 1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저는 강연 잘 다니지는 않지만 가끔 가면 꼭 질문 시간에 남자들은 대부분 질문이 아니라, 질문을 가장해서 자기 지식자랑을 하더라고요. 그것도 한 줌의 알량한 ㅋㅋㅋㅋ
그건 한남이나 서백남이나 똑같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절레절레*

단발머리 2025-08-28 10:47   좋아요 1 | URL
서백남 질문하는 거 자주 못 봐서~~ 우아, 말이 많더라구요. 저는 질문을 가장해서 자기 지식자랑하는 남자들도, 그런 여자들도 자주 보았습니다 ㅋㅋㅋㅋㅋㅋ요약하는 사람도 있어요. 자기가 보기엔 뭐뭐뭐가 중요한 거였대요.
그 중요한 거를 강의한 사람 앞에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우앗 웃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열정적인 강의 감사합니다. 선생님을 직접 뵙고 이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아까 설명해주신 ‘Re-thinking Globality‘에 대해 조금만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5-08-28 1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질문하는 시간이 돌아오면 참 난감하죠. 저도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누구라도 질문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왜 그리 좌불안석인지…누구라도 손을 들어주는 것에 휴..안도하게 되는데 질문의 의도나 수준이 떨어질 땐 또 내가 질문한 것마냥 또 부끄러워지는…질문 시간은 늘 난감한 것 같아요.

강연을 경청하는 저 사진을 보니 스피박 님도 멋있고 대단해 보이시지만 제 눈엔 강연을 들으시는 분들도 참 멋져 보입니다.
저는 언제부턴가 집중력이 떨어져 강연을 오랫동안 듣는 것이 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좀 피하게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저런 자리에 앉아서 듣는 중년들의 집중력을 경탄하게 되었어요. 저 자리 6번째 줄 그것도 가운데 자리에서 집중력 발사하신 단발머리 님!
스피박 님이 칭찬 많이 하셨을 거에요.ㅋㅋㅋ

단발머리 2025-08-28 17:25   좋아요 1 | URL
저는 진짜 질문하는 사람들한테 고맙거든요. 그 질문이 어떻든간에 그 행동 자체는 질문한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요. 그러나 스피박님은 그 핵심을 짚어주셨죠. 질문이란 무엇인가. 당신의 질문은 무엇인가요. 어디 가나요, 질문을 말하세요 ㅋㅋㅋㅋㅋ

저도 간만에 참석한 강연인데 큰애가 알려줘서 굳이 ㅋㅋㅋㅋ굳이 다녀왔습니다. 물론 중간 시간에 졸리기도 했구요. 저도 집중력 부족한 중년으로서 😉 아시죠? ㅋㅋㅋㅋㅋㅋ

망고 2025-08-28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엥 왜 통역이 없어요 무서운 강의네요😤 스피박 잘 모르지만 어렵다고 들었는데, 영어로 강의도 들으시고 넘 멋진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25-08-28 22:15   좋아요 1 | URL
제가 이 강연 소식 듣고 나서 들려온~~ 소식에.... 이 강연이 통역 없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비난 + 비판이 많이 있었던 듯 합니다. 처음에는 스피박님을 감히ㅋㅋㅋㅋㅋㅋ 통역하겠다는 교수가 아무도 나서지 않은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요.
가서 보니깐 영문학과의 한 파트(비교문학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행사라 그런지.... 돈이 없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기본 중의 기본인 물이랑 필기구 정도도 제공되지 않은 행사여서요.

영어로 들었지만, 사실 들은 건 아닙니다. 들렸습니다만 들은 건 아니구요. 부끄럽네요 ㅎㅎ

다락방 2025-08-28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무려 스피박 강연에 통역이 없다고요? 무섭...

그리고 그 질문자들 빡치네요. 그런데 니 질문이 뭐냐고 되물어주시는 스피박 님, 역시 스피박 님이십니다. 괜히 단발머리 님과 한글자 같은게 아니네요. (응?)

음, 잘 보이고 싶은거 그거 누구한테나 있는 욕망이잖아요. 그러나 모든 욕망이 그렇듯이 그게 지나치면 오히려 화를 불러 일으키고요. 강연에서 서백남들의 그 질문들처럼 말이죠. 단발머리 님이 이불킥할 만한 행동을 하실 분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지만, 그건 제 생각이고요. 당사자에겐 당사자의 기쁨과 후회와 자책 같은게 있으니까요.

저도요, 단발머리 님. 돋보이고 싶어서 했던 말과 행동들이 잇고, 그래서 후회하기도 합니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 그냥 솔직한게 제일 좋다, 서로에게. 라는걸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지나친 어떤 욕망이 잘못 새어나오려고 합니다. 인간은 계속계속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깨달아가는 존재인가 봅니다.

단발머리 2025-08-28 22:1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무서운 강연이었습니다. 왜 불을 끄나요?ㅋㅋㅋㅋㅋㅋㅋ전 아직도 그게 이해가 안 돼요. 불을 끄더라구요. 밑에 노트가 안 보이는 ㅠㅠㅠㅠㅠ

사실 이 페이퍼의 핵심은ㅋㅋㅋㅋ 제 마음의 핵심은 다락방님이 적어주신 바로 그 부분이에요.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이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요. 쓸데없는 질문을 길게 길게 하면서 잘난척 하고 싶은 그 마음이요.
인간은 계속계속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깨닫는 존재라고 적어주신 그 부분이 그래서 딱 마음에 와닿구요. 제 의문은ㅋㅋㅋㅋ 왜 계속 그러느냐는 거예요. 왜 그럴까. 자기가 가진 것으로, 자기 양껏 혹은 맘껏. 저는 이게 생존의 욕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직 잘 모르겠어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렇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증명하고, 설명하고, 포장하지 않으면, 내 생존의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까요. 아무튼 신기하고 놀랍고 즐거운 밤이었습니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거 같은 밤이요^^

icaru 2025-08-28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단발머리님 진짜!! 찐으로다가 멋지심 ㅎㅎ) 알라딘서재에 백만년만에 (빌게이츠가 어제 유퀴즈에 나왔는데, 추천한 책 검색해 보려고 말이죠) 들어왔다가 댓글 보고 다다다 달려왔습니다!

단발머리 2025-08-28 17:06   좋아요 0 | URL
도대체 어디 계세요? icaru님!!! 🥹🤩😍

icaru 2025-08-28 17: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모르지만 인정투쟁과 유령퇴장에 반색을~~~ ㅎㅎㅎ 유령퇴장은 단발머리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5~6년전에 읽었고, 인정투쟁은 예전에 사놓기만 한 책이 있어라우~~

단발머리 2025-08-28 17:05   좋아요 0 | URL
icaru님의 다정하고 용기 팍팍 댓글 있어야 제가 신나서 훌라춤을 추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쓸 수 있단 말입니다!
제발 플리즈 자주 좀 오소서!!!!!!!!!!!

젤소민아 2025-08-29 0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강연이네요. 부럽습니다!

단발머리 2025-08-29 09:17   좋아요 0 | URL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막 방송국에서 카메라 들이밀고 그런 강의는 아니었지만...
네, 멋진 강연이었고,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젤소민아님^^

거리의화가 2025-08-29 0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경험하고 오셨네요. 강연을 듣거나 하면 별별 사람이 다 있더라구요ㅎㅎ 주로 질문하는 사람만 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인가봅니다^^; 덕분에 저도 스피박을 간접적으로나마 보고 이야기도 듣네요.

단발머리 2025-08-29 09:24   좋아요 0 | URL
네네. 어디가나 똑같고, 동서고금 남녀노소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소~~ 젊은 사람 혹은 아이들의 질문이 오히려 발랄하고 진지하고 진솔하고 그런 거 같아요.

사실 스피박님 후기라서 스피박님 이야기 많이 써야하는데 말이지욬ㅋㅋㅋ 제가 딱 한 번 먼발치로 뵌거라 단정해서 말하는게 좀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분인데도, 뭐랄까요~~ 그 웃음소리가 딱 동네에서 들어봤을법한 그런 웃음소리였어요.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과하지 않고요. 강의안을 읽다가 설명이 필요할 때는 안경을 벗으셨는데요. 특정 부분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실 때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약간 분위기가..... 진짜 대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하는 듯한, 강연이라기 보다는 제자들에게 개념이나 예시를 설명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무튼, 뭔가, 오늘 이거 하나는 꼭 배워가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구요.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복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좋은 시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헤헤!

그레이스 2025-09-09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참,,,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먹고,,, 많이 공부해도,,, 인간은 여전히 어떤 부분에서는 치기 가득하고, 서툴러요^^

단발머리 2025-09-13 09:17   좋아요 1 | URL
헤헤헤.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레이스님 말씀처럼 그런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부족하고, 치기 가득하고요. 티가 안 나면 좋을텐데요 ㅋㅋㅋㅋㅋㅋ 어떻게든 티가 나네요^^
 


『The Surrogate Mother』를 읽었다. 읽는 시간은 참 즐거웠는데,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들고. 아무튼 그랬다. 이때쯤 한 번 만나주는 맥파든 랭킹.

쉽게 싫증을 내는 편이라 한 작가의 책을 연달아 읽지는 않는데, 프리다 책은 연거푸 읽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 재미있어서인데, 안 좋은 점이라면 이어서 읽다 보니 각 작품의 주인공들이 서로 섞여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 각각 다른 캐릭터지만, 성격, 행동, 특히 외모가 비슷해서 한 사람으로 수렴된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이 리스트는 어디까지나 내가 좋았던 작품 순이기는 한데, 살짝 돌아보니 첫 번째 책을 제외하고는 최근에 읽었던 책들이 앞쪽으로 배치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란 건 단순히 '최근에 읽은' 책이란 말인가.











1. The Housemaid

"Who has the time?"

I bite back any kind of judgemental response. Nina Winchester doesn't work, she only has one child who's in school all day, and she's hiring somebody to do all her cleaning for her. (5p)

프리다 맥파든 월드의 시작을 알리는 책이다. 표지를 특히 칭찬하고 싶은데, 작품 전체의 느낌을 잘 살려내었다. 콩쥐처럼 니나에게 당하는 작품 속 화자가 아니라, 팥쥐처럼 못된 니나에게 감정이입하는 나를 지켜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2. The Surrogate Mother

프리다 맥파든의 9번째 책이다. 표지 선호도는 하우스메이드 1권에 버금갈 정도였는데, 읽으면서 제일 힘들었다. 구약성경 <창세기>의 '사라/아브라함/하갈'의 구조가 그대로 차용되었다. 이 이야기와 관련해서는 다락방님의 보석 같은 페이퍼 '하갈이 오만하다는 말입니까?'(https://blog.aladin.co.kr/fallen77/16509349)를 참고하시면 되겠다.

이 책은 이 기본 구조 속에서 '사라'의 입장에서 쓰여졌다. 아이를 그렇게나 간절히 원하는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어렴픗이 알 것도 같아, 그러니까 정확히는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아 괴로웠다. 남편의 아이를 가진 여자, 자신과 비슷한 용모이지만 자신보다 열 살이 어린, 젊고 아름다운 임신한 여성을 바라보는 화자의 심정 역시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아 심기가 불편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맴도는 질문은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의 물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어떻게, 사랑이.... 사랑은 변한다. 사랑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마음도 변하고 외모도 변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장내 세포들도 한 달 반에서 두 달 사이에 새로운 세포로 변한다. 변한다. 결국에는 변한다.

그의 마음이 변할 것인가에 대해 화자가 가진 두려움과 걱정. 사랑도 변하고, 우정도 변하고, 신뢰가 사그라들고, 그리고 나 자신도. 막을 수 없는 엄연한 사실과 겹겹이 쌓여가는 진실들, 그리고 우주적 법칙 앞의 나. 답은 역시나 '받아들임'이던가.











3. The Locked Door

읽는 중에 마음이 제일 간절해졌던 작품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람마다 부족함이 있고, 말할 수 없는 각각의 비밀을 가지고 있지만, 노라가 의지하고 비밀을 털어놓을만한 딱 한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이 소설의 끝이 해피엔딩이길 간절히 바랬다.











4. Never Lie

좋아한다고 고백하면서, "You don't have to say it back."이라고 남주가 말해서 좋았다. 실상은 과도한 열정과 집착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되 강요하지 말 것. 고백하되, 강제하지 말 것.











5. The Wife Upstairs

자신의 몸을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이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말을 빼앗긴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 말하기를 부정당한 사람은 어떻게 그 권리를 찾아올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다른 한 축은 현재 언어를 빼앗긴 사람의 기록이다. 일기는 강하다. 일기는 힘이 쎄다.














6. The Housemaid's secret

미래를 함께 하고 싶은 사람, 함께 살고 싶은 사람에게 고백할 수 없는 내 비밀. 말할 수 없고, 고백할 수 없는 비밀에 대한 이야기다.











7. The Coworker

Caleb believes I'm a better person than I am. He can never know the truth. (<The Coworker>, 353/361)

나를 믿어주는 그 사람을 위해, 나를 더 나은 나로 믿고 있는 그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8. The Housemaid is watching

이웃집 여성의 과감한 플러팅이 과한 면이 적지 않다. 핫한 남편과 사는 여성의 괴로움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9. The Housemaid's wedding


결혼한다. 하우스메이드가 결혼한다. 저기 저 멀리 수상한 사람이 보이고... 하우스메이드는 결혼한다.


책장을 한참 뒤지고 나서 샐리 루니의 『Beautiful World, Where Are You』가 집에 없다는 걸 발견했고, 알라딘과 교보 구매 내역을 확인해 보니, 없는 게 아니라, 구매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백 년 뒤를 약속한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에 광화문 교보에 잠시 들렸는데, 아하하. 그 책 없는 거 실화인가요. 국내 최대 규모의 서점에서 샐리 루니 책이 없다니요. 샐리 루니 자리에 다른 책만 있고, 내가 찾는 책 없다니요. 터덜터덜 돌아서기 직전에 한 바퀴 돌아보는데, 사이좋게 모여있는 프리다 맥파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프리다 맥파든 이어서 읽는 사람 나밖에 없는데. 아, 프리다 책이 이렇게 전시된 거는 광화문 교보에서 처음 본단 말이지요. 나를 위한 것입니까. 진정, 이건 나를 위한 것이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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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5-08-20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면 사랑 아닙니까?!

단발머리 2025-08-20 10:54   좋아요 1 | URL
참사랑 ㅋㅋㅋㅋㅋ😘😍🥰💕💙

수이 2025-08-20 11:03   좋아요 0 | URL
반사 😝

단발머리 2025-08-20 11:18   좋아요 0 | URL
😳😨😢🥺😤

수이 2025-08-20 11:26   좋아요 1 | URL
귀여운 반응이군요 흠 그렇다면 어디 한번?!

단발머리 2025-08-20 11:27   좋아요 0 | URL
성공이다! 😆🤩😎

수이 2025-08-20 14:07   좋아요 0 | URL
교보 달랑 1권 방금 없어졌네 🥵 인기가 어마무시

단발머리 2025-08-20 14:35   좋아요 0 | URL
알라딘 페이퍼백 글씨가 작다고 독서괭님이 알려주셔서 하드커버 주문하려니 9월 1일에 온대요. 혹시나 하고 아마존 갔더니 1.91달러라고 해서 일단 킨들에 넣어두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샐리 루니 이야기하는거 맞죠? ㅋㅋㅋㅋㅋㅋ

수이 2025-08-20 15:37   좋아요 1 | URL
샐리 루니는 아예 없음 ㅋㅋㅋ

바람돌이 2025-08-20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우스 메이드 결혼한다구요. 설마 결혼이 호러인건 아니죠? 표지의 저 핑크빛 심상찮아요. 요즘 맥파든 인기 좋으니까 오늘부터 빌어봅니다. 빨리 번역 돼라
ㅎㅎ 저는 맾차은 책 번역된 건 다 읽었어요. 그래서 원서 보는 단발머리님 막 부럽지만 그게 또 영어 공부하고싶을 정도로 부럽지는 않습니다. ㅎㅎ
우리나라 교보문고에 원서가 저렇게 쫙 깔린것도 이채롭네요.

단발머리 2025-08-21 15:41   좋아요 1 | URL
결혼은 호러가 아닌데, 식장 가는 길에 ㅋㅋㅋㅋㅋㅋ 이런 저런 일들이 있더라구요.
영어 공부하고 싶을 정도로 부럽지 않다고 하시니 무척 분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바람돌이님의 다종다양한 도서 선택과 고퀄 페이퍼가 많이 부럽단 말입니다!!!

책읽는나무 2025-08-20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교보에 원서가 저렇게나 많이 있나요?
번역서만 세 권 읽은 저로선 아직 순위를 매기기 힘드네요. 그래도 1위는 저도 역시 저 파란색 표지 책이에요. 근데 제가 첨 읽었을 당시 별 네 개를 줬더라구요. 다섯 개로 고치고 싶은데 지난 일이라 수정하는 게 구차하여 놔뒀네요.ㅋㅋㅋ
이상하게 읽을수록 별점이 자꾸 높아지는 맥파든의 소설들이에요. 그래도 마음 속 1위는 파란색 하우스 메이드.ㅋㅋㅋ
근데 저 핸디맨이 3위까지 올라가 있어 놀랍네요? 아직 저 책은 안 읽었는데 기대가 됩니다.^^
그나저나 하우스메이드가 결혼을 한다구요?
정말요? 와…축하한다고 전해 주….근데 표지를 보니 축하할 일이 아닌 것도 같고?🙀
결혼한다는 저 책이 제일 궁금합니다. 번역해 주세요. 단발 님.^^

단발머리 2025-08-21 15:49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 1위도 파란색 표지군요. 반갑습니다! 읽을수록 별점이 높아지는 신기하고 놀라운 맥파든 월드! <핸디맨>은 읽으면서 저는 그 여주가 너무 안 됐더라구요. 쓸쓸한 외톨이.... 그래서 3위의 위업을 ㅋㅋㅋㅋㅋㅋㅋㅋ

사진의 저 자리가 원서 자리입니다. 제가 교보 갈 때마다 한 번씩 훑어보는데 제가 마지막으로 갔던 게 6월이거든요. 그 때 맥파든 소설 매대에 깔린게 한 권도 없었는데, 이번에 보니 이렇게나 많더라구요. 맥파든 대풍년입니다!

다락방 2025-08-21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이 하우스 메이드 읽으실 때만 해도 프리다 맥파든 전작.. 하실 줄 몰랐는데요. 그나저나, 아니 교보에 프리다 맥파든 무슨일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프리다 맥파든 난리났네요. 제가 몇해전에 외국에 있는 서점 갔을 때 딱 저렇게 콜린 후버가 있었는데요. 아, 저 싱가폴에서 큰 서점 갔는데 거기에도 프리다 맥파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앤드류한테 프리다 맥파든 사줄까, 하다가 아니야 잭 리처 사주자 하고 잭 리처 사줬습니다. 아, 맞다 싱가폴 서점에 리 차일드도 많아요!!

그나저나 하갈과 사라 이야기라니, The Surrogate Mother 겁나 읽고 싶네요!! (사버려?)
저도 어제 싱가폴 아마존으로 샐리 루니 주문했습니다, 단발머리 님!! 이제 열심히 책 일겠어요!! 라고 다짐하지만, 오늘 하루종일 수업 들었더니 에너지 고갈입니다. 저는, 괜찮은걸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단발머리 2025-08-21 17:30   좋아요 0 | URL
저는 맥파든 전작을 할 생각을 없었는데 말이지요.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맥파든 전작 하게 되겠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교보에 프리다 맥파든 대풍년입니다. 한국에서도 콜린 후버 많았잖아요. 그제 보니 두세권 밖에 안 보이더라구요.
앤드류에게 잭 리처는 참 좋은 선택일거 같아요. 많이 먹고 운동 안 해도 건강하고 튼튼한 잭 리처!

The Surrogate Mother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샐리 루니도 이북으로 샀어요 ㅎㅎ
내내 수업 듣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어제는 제육볶음이었고, 오늘은 뭘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어공주>를 검색했다. 내가 찾는 건 '인어공주'를 각색한 책 아니고, 안데르센판 '인어공주'. 제일 판매가 많이 된 책이 있어 책 소개를 따라 내려가는데, 헐. 여기에서 만나는 <시크릿가든>.












재벌 총각과 가난한 집(혹은 평범한 집) 처자의 만남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변용이 일반적이었던 때에, 김은숙 작가는 인어공주 서사를 가지고 온다. 백화점 재벌(현빈)은 가난한 스턴트우먼(하지원)에게 네가 마음에 든다고, 사귀자고 말한다. 그렇게 신나게(?) 사귀고 난 뒤에는 인어공주가 그랬듯 거품처럼 사라져 달라는 조건을 앞세우면서 말이다. 하지원이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자, 현빈은 그럼 자기가 인어공주가 되겠다고 말한다. 네 곁에 머물다가 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겠다고, 인어공주처럼.

갑자기 인어공주를 찾아보게 된 건, 그 밤에 보았던 발레 <인어공주>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 왕자를 만나기 위해 인어공주는 다른 세계로 넘어온다. 물이 아닌 땅의 세계, 물고기가 아닌 인간의 세계, 지느러미가 아닌 다리의 세계. 걸을 때마다 칼로 베이는 듯한 고통을 겪게 되지만, 인간 세상에 동화되기 위해 그들 중 일부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하지만, 인어공주의 어색함은 어린아이의 행동으로 이해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된다. 그 모든 것은 왕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것인데, 왕자 역시 인어공주를 그런 식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언어 없이' 표정, 몸짓 그리고 음악으로 전달되는 인어공주의 애달픔. 왕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처절한 노력. 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왕자는 이웃나라 공주, 그를 구해준 사람이라 짐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

인어공주는 바다에 몸을 던져 물거품이 된다. 인어로 돌아가기 위해 왕자를 죽이느니, 차라리 자신이 죽기로 선택한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사람마다 대응하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고통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는다. 생명의 은인인 인어공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눈썰미 없는 왕자를 원망하거나, 왕자를 구하지 않았음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이웃나라 공주를 원망하는 것이다. 외부에 대한 미움이 강고해질 때, 이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발현될 수 있다. 반대로 그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을 수도 있다. 왕자를 구해 주었던 그 순간에 자리를 비웠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거나, 바닷속 마녀와 잘못된 계약을 맺은 자기 자신을 원망할 수도 있다. 내부로 향하는 원망과 후회는 우울로 수렴될 수 있다.

희생 말고 다른 답은 없을까. 자기희생 말고 다른 방식은 없을까. 나 자신을 다 불태우지 않고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내가 없어지지 않으면서, 그에 대한 내 사랑을 완성할 수는 없을까. 무위의 삶 이면에 사랑을 품고 있을 수는 없을까.


우리 동네, 우리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가 난리라는 <KPop Demon Hunters>(케데헌)의 마지막 장면도 그렇다. 진우는 루미에게 '미안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서, 마지막의 그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은 뭐라 말할까. 그 말은 '사랑해'가 아니라, '미안해'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은 '사랑해' 혹은 '고마워'가 아니라 '미안해'일 거라고.

루미를 보호하기 위해 귀마의 공격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내고, 자신의 영혼을 희생해 루미의 꿈을 완성한 진우의 최후는 희생일 수밖에 없는가. 완벽한 소멸 이외에 이 사랑을 완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정말,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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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7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어 공주도 슬픈데 단발머리님 글도 슬퍼요. 저는 죽을 때 제가 먼저 죽는다면 남편한테 미안해 말고 고마워 하고 죽을래요.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남편이 저한테 잘하게 채찍질을 야물딱지게 막 해야겠어요
ㅎㅎ

단발머리 2025-08-19 20:36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도 고마워~~ 하고 싶거든요. 하지만, 더 오래사는 거 어떠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님, 우리 오래오래 살아요! 천세만세 만만세!!!

다락방 2025-08-17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유명한 애니메이션을 제가 아직 보지 않았다는 소식 전해드립니다. 그런데 끝장면이 저렇다고요? 반드시 봐야겠어요! 그러나 싱가폴에서 저의 넷플릭스가 재생되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 저거 보러 한국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때로 어떤 선택은 딱 두 가지에서 주어지잖아요. 이거 할래, 저거 할래? 인어공주의 선택도 그래요. 왕자를 죽거나 내가 죽이거나. 꼭 그 방법 밖에 없는 걸까요? 왕자도 안죽이고 나도 살아가는 그런 방법은 없는걸까요? 저는 왕자를 죽이기도 싫지만 저도 죽기 싫거든요. 다른 방법은 정말 없는걸까요? 그걸 좀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요? 찾아보면, 열심히 찾아보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단발머리 2025-08-19 20:57   좋아요 0 | URL
저도 일부러 찾아봤어요. 외국에서 하도 난리라고 해서요. 저는 재미있게 잘 보기는 했는데 외국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지점에서 ㅋㅋㅋㅋㅋㅋㅋ 이 현상이 참 신기하게 느껴지기는 합니다.

저도 왕자도 안 죽이고 저도 안 죽고 싶기는 한데... 만약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인어공주가 왕자를 안 사랑했으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왕자를 구해줬다 해도 안 사랑했으면 되는데..... 그를 만나기 위해 인간 세계로 오지 않았으면 되잖아요. 바닷속 마녀와 다리와 목소리 교환하는 비합리적 계약을 맺을 필요도 없구요. 그러니깐 이 모든 괴로움의 시작은 사랑인 것입니다.

아...... 사랑.... 러브...

망고 2025-08-17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우는 오백살 넘게 살았으니 호상. 루미는 잘생긴 또래 만나서 다시 예쁜 사랑하길...ㅋㅋㅋㅋㅋ
죄송해요 이 아름다운 글에서 이런 몹쓸 댓글만 달아서요🤣

단발머리 2025-08-19 20:5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고님의 귀한 말씀 참으로 옳습니다!
그럼요. 갈 사람은 가야하죠. 진우씨 잘 가~~ 인사하고, 루미는 새로운 인생 시작하는 걸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5-08-18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최근에 초등학생들이 캐더헌에 나오는 노래를 떼창하는 장면(그것도 영어로) 을 보고 허걱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에 페이퍼로 적을 예정입니다.
시크릿 가든, 내용은 좀 그랬지만 재미는 있었습니다^^
저는 마지막에 절대 미안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미안한 일이 없어요 ㅎㅎ
아마 고마워라고 할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5-08-19 20:59   좋아요 1 | URL
저도 그 동영상 본 거 같아요. 시카고 버스 동영상 보셨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주 난리입니다. 흡사 분위기가 엘사 열풍과 비슷해요. 4세에서 8세까지의 모든 여자 아이들이 엘사였던 때가 있었잖아요.

미안한 일이 없어서 고마워~~ 라고 하실거라니 페넬로페님 너무 근사합니다. 저도 더 노력(?)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마워 파로 가보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5-08-18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데헌 봤었는데 ‘미안해‘라고 말 했었는지 전혀 기억에 없어 조금 당황스럽습니다.ㅋㅋ
안데르센 동화집 저 책 가지고 있는데 시크릿 가든에 저렇게 인용됐었다는 것도 금시초문이구요. 고백 대사를 읽으니 기억 날 듯, 말 듯 하긴 합니다만…ㅋㅋㅋ
헌데 단발 님 마지막 두 문단을 읽으며 잊고 있었던 기억은 정확히 떠오릅니다.
마지막 말 ‘미안해‘ 말 맞는 것 같아요.
저는 부모님 두 분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직접 듣진 못했지만 엄마가 아빠한테 그동안 섭섭하게 했던 일들 있었다면 다 잊어달라고 미안했다고…그리고 고맙다고 말을 남기셨다고 아빠한테 전해들었어요.
아빠는 저한테 고맙다고 한 번씩 말씀을 하셨어서 그게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마도 사랑해라는 말은 떠나보내는 사람이 하게 되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떠올려 보건대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은 고맙다, 미안하다 그 말이 맞아요. 단발 님의 통찰에 존경심이 이네요.^^

단발머리 2025-08-19 21:17   좋아요 1 | URL
예전에 제가 어디선가(출처가 기억이 안 나요ㅋㅋㅋㅋㅋㅋㅋㅋ) 들었던 말인데요. 식물에게 좋은 말, 나쁜 말 하는 실험을 했는데 ‘사랑해‘라는 말보다 ‘고마워‘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식물의 긍정적인 반응이 더 확연하게 나타났다...... 라고 그랬던 거 같아요.
사랑해‘보다는 ‘고마워‘가 나은 것 같고요. ‘미안해‘ 보다는 ‘사랑해‘가 나을 것 같습니다. 미안해 / 사랑해 / 고마워

책나무님, 미안해요. 책나무님, 사랑해요. 책나무님~~~~~~ 고마워요!!!

책읽는나무 2025-08-19 22:18   좋아요 0 | URL
미툽니다.^^🤭😍

단발머리 2025-08-19 22:22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 😘😍🥰
 
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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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수험생에게 냉동밥 먹인 엄마니, 말 다 했다. 엄마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눅 드는 건 1인분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면에서가 아니라, 엄마를 기능하는 나를 돌아볼 때, 나는 1인분이 못 된다. 중간치에도 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툭하면 미안한 일들이 생기고, 가슴 철렁한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12월 3일 계엄의 밤에서부터 이어진 일기장에서 나는 여기 황정은의 문장이 너무 애달팠다.

'한강진 대첩'과 '키세스단'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아침뉴스를 통해 그들을 보았다. 서울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 사람들 몸을 덮은 은박 담요 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전날처럼 또 누군가는 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많은 이들이 그런 모습으로 밤을 보낼 줄은 몰랐다. 그렇게 다시 서로를 돕고 살피며 밤을 보낼 줄은.

남태령 이후로도 이런 사건을 목격했다는 것은 이 나라 구성원으로서 내가 누리는 복일까.

도대체 이 마음을 어떻게 글이나 말로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미안하고.

놀랍고.

고맙고.

그리고 미안하고.

고맙고. (87쪽)

나 역시 남태령의 소식을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들었다. 체념과 탄식을 넘어서서 눈앞의 벽과 같은 장애물에 강인하게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놀랐다. 대단한 사람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계엄의 밤이 지나고 그다음 날 아침, 전날처럼 출근을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마다 종이 울리고,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평소와 똑같았다. 종이접기와 오리기를 도와주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랬다. 일상은 조용하고 편안했다.

계엄 이후 식구들이 모여 앉아 그 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황당함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제일 심각한 사람은 학교에 자주 가지 않는 큰애였다.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더라면 학교를 다니지 못했을 거라고 큰애가 말했다. 당연히, 당연히 그렇게 되었을 거라 말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높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불법적인 계엄에 저항할 것이고, 국민에 대한 통제와 억압의 시작점은 대학이 될 게 분명하니까. 대학에 다니던 아이는 학교를 마치지 못할 것이 뻔했고,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고 있는 아이는 어느 대학에든 갈 수 없을 수도 있었다. 예상하고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멈춰버리는 상황. 그런 상황이 몇 년이나 지속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몇십 년을.

비상계엄 뉴스를 듣고 집에서 입던 옷에 슬리퍼를 신고 패딩을 걸치고 여의도로 달려 나간 사람들이 대략 오천 명에서 만 명 정도라고 들었다. 그 사람들이 역행하려는 이 나라의 운명을 돌려세웠다고 생각한다. 남태령의 바람을 몸으로 막아낸 사람들이야말로 이 나라가 가진 혁명의 기운을 현실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은박지로 어깨를 두르고서도 활짝 웃는 그 사람들이야말로 이 나라의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출근을 하고, 아이들 밥을 먹이고, 아픈 친구를 만나 위로하는 이 모든 일상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자신의 일상을 넘어 기능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했기 때문이다.

1인분이 넘는 사람들.

3인분을 감당한 사람들.

50인분을 어깨에 맨 사람들.

100인분에도 불평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켜냈다.

황정은의 일기에는 원고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내가 해야 할 일, 해야만 하는 일을 어떻게든 이루려 애쓰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자세이다. 그 와중에 표현되는 미안함과 고마움. 미안한 마음 그리고 고마운 마음.

그러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충분히 표현될 때, 오래오래 기억될 때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발 지상주의자의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세상은 이렇게 자신의 몫에 더해 조금 더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져 간다고 생각한다. 춥고, 불편하고, 아프고, 괴롭지만. 그 일을 감당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일상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희망이라는 걸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단어를 쓰고, 문장을 다듬는 소설가 황정은의 이 일기 역시 그런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고마워하고 미안해하고. 다시 고마워하는 순간들의 기록. 이 순간을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기록한 작가 황정은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식구들 아침을 간단히 차려주며 어제 있었던 '광복 80주년 전야제'를 듣고 보았다. 나는 이 노래를 처음 들었는데, 가사나 그 장중함 때문에도 놀랐지만 멜로디가 특히 놀라웠다. 단어로, 문장으로, 투쟁으로, 긴 밤의 고뇌로 기록하는 순간들. 가사로, 멜로디로, 오케스트라로, 그리고 목소리로 모아지는 한 가지.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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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5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은 일기 읽으면서 수많은 고마움을 다시 느꼈습니다. 그리고 작은 소리지만 이렇게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기억하고 또한 아직인것들을 살피는 작가도 고마웠구요. 전 어젰밤에 광복절 전야제를 tv생중계로 봤는데요. 드론이 독립운동가들 얼굴을 만들어낼 때 좀 울컥했어요.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성독립군인 남자현님이 나올 때는 조금 더 감격했고요.
얼마 안되는 시간에 이 정도 준비를 한 사람들의 노고와 광복절이 진짜 국민의 축제에 장이 될수 있게 해준 지난 시간에도 감사했습니다

단발머리 2025-08-15 15:56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저는 황정은 작가의 고맙고, 그리고 미안하고, 고맙고..... 이 부분 읽는데 딱 제 마음이랑 같은 거에요. 이 순간을 기록한 작가가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매일 우리를 경악하게 했던 뉴스들이 일기에 나올 때, 와... 우리가 이런 시간을 겪어왔구나. 체포 영장 가지고 가서도 범인을 잡아오지 못할 정도록 법치가 무너졌구나... 그런 순간들이 기억나더라구요.
저는 아침에 다 보지는 못하고(중간에 광복절 경축식 보느라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전야제 돌아보는데 참 좋더라구요. 카메라에 잡히는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그것도 좋았구요.

책읽는나무 2025-08-15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샀답니다.
며칠 전에 받았어요.
띠지 문구를 읽고서 그날 내가 뭐하고 있었나. 를 떠올리며 조금 부끄러웠었어요.
다음 날 뒤늦게 알고서 며칠 잠을 못 잤었던 기억도 났었구요.
지금 이 시간. 그때 그 사람들 덕분에 내가 편하게 앉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한없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단발머리 2025-08-15 15:58   좋아요 2 | URL
저는 그 밤에 계엄이 해제되고 나서 바로 잠들었는데, 나중에서야.....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제가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는지 알게 됐어요. 그 날 밤의 수많은 우연과 도움, 하늘의 도움에 대해서, 저는 요즘도 자주 생각합니다.
그 날의 기록을 책으로 쓰는 것만큼 그 기록을 읽는 것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읽어야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우리 같이 읽어요, 책나무님^^

감은빛 2025-08-17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밤에 수많은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리에서 또 각자의 집에서 이게 착오나 거짓이기를 바랐었죠.

당시 국회가 일터였던 한 지인은 공교롭게도 그날 밤에 술에 취해 저에게 연락을 했었는데, 제가 피곤하다고 나가지 않았었고, 그는 다른 사람들과 술을 더 마셨는데, 계엄 소식에 그 취한 상태로도 택시를 타고 국회로 가서 담을 넘었다고 무용담을 들려주더군요. 특공대원들이 건물로 진입하는 장면들이 뉴스에 반복해서 나오면, 저기 뒤쪽에 자신이 있었다고 말하면서요.

누군가는 국회로 바로 달려갔지만, 또 누군가는 위험하니 나가지 말라고 말리는 가족 때문에 차마 뿌리치고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다른 사람들의 소식을 보느라 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고 하더라구요.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마음이 계엄을 무너뜨린 것이겠죠.

단발머리 2025-08-19 21:21   좋아요 0 | URL
네, 감은빛님! 그 밤에 많은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하고 염려했죠.

저는 ‘에휴~~‘하면서 잠이 들었는데, 나중에 뉴스를 통해 그 밤이 얼마나 위험했던지 듣게 되었습니다. 비상 계엄이 해제된 뒤에도 군에서는 여전히 비상 경계 근무를 서면서 계엄 관련 인사 조치가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큰 위기를 우리가 지나쳐 왔는지 생각할 때마다 다시 가슴을 휴.... 쓸어내리게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다행히 그 위기를 지나온 것에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