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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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수험생에게 냉동밥 먹인 엄마니, 말 다 했다. 엄마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눅 드는 건 1인분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면에서가 아니라, 엄마를 기능하는 나를 돌아볼 때, 나는 1인분이 못 된다. 중간치에도 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툭하면 미안한 일들이 생기고, 가슴 철렁한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12월 3일 계엄의 밤에서부터 이어진 일기장에서 나는 여기 황정은의 문장이 너무 애달팠다.

'한강진 대첩'과 '키세스단'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아침뉴스를 통해 그들을 보았다. 서울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 사람들 몸을 덮은 은박 담요 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전날처럼 또 누군가는 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많은 이들이 그런 모습으로 밤을 보낼 줄은 몰랐다. 그렇게 다시 서로를 돕고 살피며 밤을 보낼 줄은.

남태령 이후로도 이런 사건을 목격했다는 것은 이 나라 구성원으로서 내가 누리는 복일까.

도대체 이 마음을 어떻게 글이나 말로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미안하고.

놀랍고.

고맙고.

그리고 미안하고.

고맙고. (87쪽)

나 역시 남태령의 소식을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들었다. 체념과 탄식을 넘어서서 눈앞의 벽과 같은 장애물에 강인하게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놀랐다. 대단한 사람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계엄의 밤이 지나고 그다음 날 아침, 전날처럼 출근을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마다 종이 울리고,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평소와 똑같았다. 종이접기와 오리기를 도와주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랬다. 일상은 조용하고 편안했다.

계엄 이후 식구들이 모여 앉아 그 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황당함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제일 심각한 사람은 학교에 자주 가지 않는 큰애였다.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더라면 학교를 다니지 못했을 거라고 큰애가 말했다. 당연히, 당연히 그렇게 되었을 거라 말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높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불법적인 계엄에 저항할 것이고, 국민에 대한 통제와 억압의 시작점은 대학이 될 게 분명하니까. 대학에 다니던 아이는 학교를 마치지 못할 것이 뻔했고,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고 있는 아이는 어느 대학에든 갈 수 없을 수도 있었다. 예상하고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멈춰버리는 상황. 그런 상황이 몇 년이나 지속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몇십 년을.

비상계엄 뉴스를 듣고 집에서 입던 옷에 슬리퍼를 신고 패딩을 걸치고 여의도로 달려 나간 사람들이 대략 오천 명에서 만 명 정도라고 들었다. 그 사람들이 역행하려는 이 나라의 운명을 돌려세웠다고 생각한다. 남태령의 바람을 몸으로 막아낸 사람들이야말로 이 나라가 가진 혁명의 기운을 현실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은박지로 어깨를 두르고서도 활짝 웃는 그 사람들이야말로 이 나라의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출근을 하고, 아이들 밥을 먹이고, 아픈 친구를 만나 위로하는 이 모든 일상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자신의 일상을 넘어 기능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했기 때문이다.

1인분이 넘는 사람들.

3인분을 감당한 사람들.

50인분을 어깨에 맨 사람들.

100인분에도 불평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켜냈다.

황정은의 일기에는 원고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내가 해야 할 일, 해야만 하는 일을 어떻게든 이루려 애쓰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자세이다. 그 와중에 표현되는 미안함과 고마움. 미안한 마음 그리고 고마운 마음.

그러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충분히 표현될 때, 오래오래 기억될 때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발 지상주의자의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세상은 이렇게 자신의 몫에 더해 조금 더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져 간다고 생각한다. 춥고, 불편하고, 아프고, 괴롭지만. 그 일을 감당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일상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희망이라는 걸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단어를 쓰고, 문장을 다듬는 소설가 황정은의 이 일기 역시 그런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고마워하고 미안해하고. 다시 고마워하는 순간들의 기록. 이 순간을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기록한 작가 황정은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식구들 아침을 간단히 차려주며 어제 있었던 '광복 80주년 전야제'를 듣고 보았다. 나는 이 노래를 처음 들었는데, 가사나 그 장중함 때문에도 놀랐지만 멜로디가 특히 놀라웠다. 단어로, 문장으로, 투쟁으로, 긴 밤의 고뇌로 기록하는 순간들. 가사로, 멜로디로, 오케스트라로, 그리고 목소리로 모아지는 한 가지.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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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5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은 일기 읽으면서 수많은 고마움을 다시 느꼈습니다. 그리고 작은 소리지만 이렇게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기억하고 또한 아직인것들을 살피는 작가도 고마웠구요. 전 어젰밤에 광복절 전야제를 tv생중계로 봤는데요. 드론이 독립운동가들 얼굴을 만들어낼 때 좀 울컥했어요.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성독립군인 남자현님이 나올 때는 조금 더 감격했고요.
얼마 안되는 시간에 이 정도 준비를 한 사람들의 노고와 광복절이 진짜 국민의 축제에 장이 될수 있게 해준 지난 시간에도 감사했습니다

단발머리 2025-08-15 15:56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저는 황정은 작가의 고맙고, 그리고 미안하고, 고맙고..... 이 부분 읽는데 딱 제 마음이랑 같은 거에요. 이 순간을 기록한 작가가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매일 우리를 경악하게 했던 뉴스들이 일기에 나올 때, 와... 우리가 이런 시간을 겪어왔구나. 체포 영장 가지고 가서도 범인을 잡아오지 못할 정도록 법치가 무너졌구나... 그런 순간들이 기억나더라구요.
저는 아침에 다 보지는 못하고(중간에 광복절 경축식 보느라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전야제 돌아보는데 참 좋더라구요. 카메라에 잡히는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그것도 좋았구요.

책읽는나무 2025-08-15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샀답니다.
며칠 전에 받았어요.
띠지 문구를 읽고서 그날 내가 뭐하고 있었나. 를 떠올리며 조금 부끄러웠었어요.
다음 날 뒤늦게 알고서 며칠 잠을 못 잤었던 기억도 났었구요.
지금 이 시간. 그때 그 사람들 덕분에 내가 편하게 앉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한없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단발머리 2025-08-15 15:58   좋아요 2 | URL
저는 그 밤에 계엄이 해제되고 나서 바로 잠들었는데, 나중에서야.....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제가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는지 알게 됐어요. 그 날 밤의 수많은 우연과 도움, 하늘의 도움에 대해서, 저는 요즘도 자주 생각합니다.
그 날의 기록을 책으로 쓰는 것만큼 그 기록을 읽는 것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읽어야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우리 같이 읽어요, 책나무님^^

감은빛 2025-08-17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밤에 수많은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리에서 또 각자의 집에서 이게 착오나 거짓이기를 바랐었죠.

당시 국회가 일터였던 한 지인은 공교롭게도 그날 밤에 술에 취해 저에게 연락을 했었는데, 제가 피곤하다고 나가지 않았었고, 그는 다른 사람들과 술을 더 마셨는데, 계엄 소식에 그 취한 상태로도 택시를 타고 국회로 가서 담을 넘었다고 무용담을 들려주더군요. 특공대원들이 건물로 진입하는 장면들이 뉴스에 반복해서 나오면, 저기 뒤쪽에 자신이 있었다고 말하면서요.

누군가는 국회로 바로 달려갔지만, 또 누군가는 위험하니 나가지 말라고 말리는 가족 때문에 차마 뿌리치고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다른 사람들의 소식을 보느라 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고 하더라구요.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마음이 계엄을 무너뜨린 것이겠죠.

단발머리 2025-08-19 21:21   좋아요 0 | URL
네, 감은빛님! 그 밤에 많은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하고 염려했죠.

저는 ‘에휴~~‘하면서 잠이 들었는데, 나중에 뉴스를 통해 그 밤이 얼마나 위험했던지 듣게 되었습니다. 비상 계엄이 해제된 뒤에도 군에서는 여전히 비상 경계 근무를 서면서 계엄 관련 인사 조치가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큰 위기를 우리가 지나쳐 왔는지 생각할 때마다 다시 가슴을 휴.... 쓸어내리게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다행히 그 위기를 지나온 것에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