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맨 만큼 내 땅이다
김상현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11월
평점 :
예약주문


와...제목 봐라...헤맨 만큼 내 땅. 제목에 꽂혀 사게 되는 책들은 거의 실패가 없었다. 제목을 그 정도 뽑을 정도면 얼마나 그 텍스트를 끌어안고 고군분투했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좋은 책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일단은 눈이 가고 손이 가고 마음이 열린다. 헤맨 만큼 내 땅이라잖나.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5-11-2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제목에서 미국 서부개척시대 땅따먹기가 생각날까요? ㅎㅎ
 
책, 읽는 재미 말고 - 솔직히 다 읽으려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조경국 지음 / 유유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왓, 재밌겠다! 진짜로 책 좋아하고 진짜로 책 많이 읽고 진짜로 책을 많이 사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 진짜로 그런 사람들은 진짜로 그런 사람들을 알아본다.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사다 보면 책갖고 별짓 다하게 된다. 그 재미를 책으로 다 쓰다니. 이분이야말로 책의 고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서사 교유서가 어제의책
오카 마리 지음, 김병구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쓰는 나는, 이 책을 읽고 '기억'에 관한 생각을 바꾸었다.


기억은 내게, 과거일 뿐이었다. 

과거를 가져오는 방식. 그게 내겐 ‘기억’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기억이야말로 현재를 사는 적극적인 활동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접근에서 단순히 '기억'의 정의를 바꾸는 게 아니라

기억의 작동 방향을 뒤집었다.


나는 기억을 ‘내가 취사선택해 꺼내오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책은 정확히 반대로 말한다. 


기억을 데려오는 건 내가 아니라, 기억이 때로는 나를 찾아온다고. 


기억은 뇌의 서랍에서 꺼내는 풍경이 아니라, 

불시에 신체를 건드리고 현실을 비트는 사건의 생존 방식이라고. 


“‘기억’이란 때때로 나에게는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의 신체에 습격해오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 p. 29


이 관점은 나의 소설 쓰기와 읽기 모두에 결정적인 압력을 행사했다.

뒤집기.


소설에서 기억은 흔히 과거 설명을 위한 자료로 취급된다.

태반의 소설이 그렇다.


소설가가 그리 다루었을 수도 있고,

독자가 그리 읽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을 통과하면 그 태도가 더는 성립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기억은 논리적 설명의 전 단계,

말하자면 ‘원인’이 아니라 '현전(現前)'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다.

우리가 불러내기 전에 기억이 우리에게 도착한다.

우리가 기억을 끄집어 낸도 생각하지만 실은 기억이 우리를 방문하는 것이다.

불시에 습격하고, 통고 없이 무단 침입한다.


소설에서도 그렇다.

기억은 인물이 불러내기 전에 먼저 인물을 찾아온다.

인물이 그것을 끄집어내기 전에 이미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 준비되어 있다.

예정된 도착이다.


그래서 소설가에게 중요한 것은 인물이 '무엇'을 기억하는가보다, 

그 기억이 언제, 어떤 결로, 어떤 틈을 타고 현재에 당도해 

인물의 현재에 진동을 일으키는가...


그것 아닐까 싶다.


소설에서 '기억'만큼 서사를 끌고 가는 힘이 좋은 것도 없다.

인물의 의도나 자기 이해보다 서사를 뚫고 이동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래서 기억은 두서가 흐리다.

독자가 '난해하다', '모호하다'고 느끼는 지점, 거긴 대부분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 앞 뒤 안 맞는, 비논리적인 돌출이 오히려 소설의 긴장을 만든다. 

뭔가 여백이 느껴지는, 그래서 '좋은' 소설이라고 기억되게 한다.


따지고 보면, '예술'은 '여백'이 아니던가.


소설에서 기억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려 들면 서사는 시들해진다.

고루하고 전형적이고 작위적이 되기 쉽다.


그런데 기억이 ‘날 찾아오는’ 순간을, 그걸 받는 느낌 그대로 포착하면 

이야기는 서사적 사건이 된다.


이 책은 소설가에게서 추천 받았다. 너무나도 당연했다.

이 책이 특히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 또 소설을 읽는 사람에게 유용한 이유는, 

기억을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관계적 형식으로 본다는 점이다.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기억'에 대한 태도가 다시 한 번 뒤집어졌다. 

“‘사건’의 기억은 어떻게 해서든지 타자, 즉 ‘사건’ 외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갖지 않으면 안 된다.” — p. 111


더없이 맞다. 이걸 이제 알다니.

공유되지 않은 기억은 침묵 속에 굳어 버릴 뿐이다. 


소설 읽기 역시, '기억의 공유' 그 과정의 일부다. 

독자는 인물이 가진 기억의 자료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다.

그 기억이 언어로 건너오는 순간의 떨림을 몸으로 받고 진동한다.


오래 남는 소설은 바로 그 '여진'이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문장으로 '사건'을 설명하려 했다.

설명하는 기억-.


그게 아니라 내가 할 일은 독자에게 인물을 찾아온 기억의 떨림을 전하는 것임을 알겠다.


이 책은 소설과 관련해 또 하나 중요한 것을 가르친다. 


기억은 완결된 세계가 아니라 아직 미완성인 세계라는 점이다. 

우리가 기억을 다룰 때 종종 범하는 오류는, 

그것을 ‘재현 가능한 과거’로 오해하는 것이다. 


과거=기억


말하자면, 기억 나는 대로, 떠올라지는 대로.

그리고 우리는 그게 'fact'라고 믿는다.


나를 믿기에.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기억은 원래 불완전하고, 비대칭적이고, 언제나 현재와 충돌한다.

그래서 기억은, '새로' 쓰인다.


그렇다.

기억은 언제나 새로 쓰인다. 


즉 기억은 과거 안에 칩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지금 여기에서 어쩌면 새로운 사건으로 터뜨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에 한 글자만 붙인다면...


재+발생.

re-happen.

re-occur


이제 나는 소설을 쓰면서 '기억'에 관해 조금 감을 잡는다.


잘 찍은 한 장의 풍경 사진처럼 고정된 기억을 그대로 가져와 풀어놓는 게 아니라

인물이 '지금' 흔들리는 순간을 포착하고 잘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


기억은 거기 깃들어있다는 것.


인물이 흔들리는 떨림을 소설 쓰는 내가 먼저 느껴야 한다는 것.

그 진동의 진원지를 잘 따라가며 인물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


소설 속 인물의 기억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인물에게 찾아온다는 것.


이 책을 덮으며 정리되는 건 이러하다.


기억은 엑셀 쉬트로 잘 정리된 일목요연한 데이터가 아니라 압력이다.

인물의 현재를 흔들어놓을 힘을 지닌 압력.


그리고 소설에서 기억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출현해야 한다.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돌발적으로 튀어나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물의 기억은 개인적이지 않다.

인물의 지극히 사적인 기억조다 '관계'에 얽혀 들어간 것이다.


소설을 쓰면서 기억을 정리하기에 바빴다.

인물의 기억이 현재를 어떻게 흔드는지, 이제 그걸 내가 먼저 느껴보려 한다.


지금 장편 소설을 집필 중인데 이 책을 읽기 잘했다.

장편이다 보니 '기억'이 절반도 넘는다.

아직 내가 대가는 커녕, 중견도 아니라서 그렇겠지만.


인물의 기억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인물과 관계를 맺으려 한다.

내가 인물의 기억을 공유하려 한다. 내가 먼저 떨리려 한다.


이제부터 나의 소설 쓰기는,

그 진동을 독자에게 전하는 것으로 완성될 것이다.


잘 될 지는 모르겠다.


머리로 아는 것과, 그걸 몸으로 실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내가 머리로는 수영의 기법을 마스터했지만 물속에서 숨쉬기 한 번 못하니까.


그래도, 난 오늘도 물속에 뛰어든다. 

소설이란 물속으로. 기억의 대해로.


풍덩.


----------------------------------------------

이 리뷰를 쓰고 나서 어떤 신간을 보게 되었다.

거기 들어있는 문장이다.

이다지도 'hyper-text'적이라니!


내가 문장으로 기억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 스스로가 문장이 되는, 서술 방식을 찾아가는, 그런 글을 쓰려 한다는 의미를 담아서. 여기 묶은 글들을 쓰면서 나는 기억을 겪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겪었다기보다 문장이 쓰여지는 그 질감으로 겪었다.


텍스트 기억 연습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5-11-19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억은 희미한 밑그림. 우리가 사물을 볼 때 단순히 그 사물만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이나 편견 또는 어떤 추억을 밑바탕으로 해서 사물을 보는 것이기에 기억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시각이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승우 작가와 니체의 글에서 본 것을 제가 짜깁기해서 쓴 것 같아요.^^

2025-11-19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20 0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20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20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널 보낼 용기 - 딸을 잃은 자살 사별자 엄마의 기록
송지영 지음 / 푸른숲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어보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 죄책감도 느꼈다. 그래도 우린 살아야겠지. 먼저 떠난 분의 죽음이 의미를 찾는데 터럭만 한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기여가 이 책을 ‘읽음‘이라고 여겨진다. 그 의미의 수혜자가 ‘나‘라는 데서 느껴지는 거였어. 이 죄책감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딜런 유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 십 년 사이 접한 책 제목 중 가장 구미 당기는! 안 살 수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