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까 교양 100그램 10
고미숙 지음 / 창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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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로 ‘연결‘을 성취할 수 있다면, 하리. 못할 것 무엇이리. 열뼘 남짓한 책상 위에 한뼘 거리도 안 되는 책을 펼치기만 하면 되는 것을. 한뻠 거리 정도 되는 노트에 써나가면 되는 것을. 자판을 찍어대면 되는 것을. 그래서 연결된다면! 못할 것 무엇이리. 벅차온다. 거기다, 고미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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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의 순간 - 읽기와 쓰기 사이, 그 무용한 지대에 머무르는 즐거움
김지원 지음 / 오월의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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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에 관한 책을 왜 사나, 싶은데 ‘메모‘에 관한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는 사람이 여깄다. 메모는 그냥 하면 되는 건데. 그냥 수첩에, 책 여백에, 휴대폰에, 굴러다니는 종이에 하면 된다. 대관절 한권의 책이 될 만큼 말할 게 뭐 있단 말인지. 그런데, 그래서 솔깃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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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삶을 열다
정혜윤 지음 / 녹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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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내용 안 보고 쓴 사람 이름만으로 사는 책은 극히 드물다. 좋은 작가가 늘 좋은 작품을 쓰는 건 아니라서. 아무리 그(녀)라도 난 목차와 내용의 미리보기를 꼭 한다. 물론, 어디나 그렇듯 예외는 있다. 이승우 소설가와 더불어 비문학에서는 정혜윤이란 작가가 내겐 그 예외다. 바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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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조그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9
솔 벨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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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잡아라>를 읽었다면 솔 벨로에 매료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하나의 이미지로 만든 창끝으로 장편소설의 긴 서사를 뚫는 소설가. 그렇게 통과한 창끝에 단 1밀리의 상흔도 남기지 않는 소설가. 오죽하면 책 뒤 껍질을 매만져 봤을까. 거짓말 아니고 난 실제로 그랬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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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9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 오늘 신간으로 나왔던데 기대평인가요? 기대를 진짜 하게 되는데요. ^^

젤소민아 2025-09-23 02:2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저랑 같이 읽으실래요~~~ㅎㅎ 솔 벨로 진짜 훌륭한 작가!!
 
노인과 바다 (먼슬리 클래식) 먼슬리 클래식 9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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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마침내, 그리고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 없이 기운이 빠졌다고 직감했다.
고물로 돌아가 보니 부러져 들쭉날쭉해진 키 손잡이가 방향타의 갸름한 구멍에
그런대로 맞아 배를 몰아갈 정도는 되었다. 
노인은 어깨에 부대를 두르고 배의 진로를 잡았다.

이제 배는 가볍게 나아갔고 노인은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었다.

이제 보이는 모든 걸 지나치며 노인은 집이 있는 항구를 향해 
가급적 요령 있게, 기민하게 배를 몰고 갔다.
밤이 되자, 사람이 식탁에 흘린 빵 부스러기를 줍듯, 
상어 떼가 물고기 잔해에 덤벼들었다. 
그러나 노인은 상어 때에 눈길도 주지 않았고 배를 몰아가는 일 외에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배 옆구리에 붙어 있던 무거운 물고기가 없어졌으니 
배가 아주 가볍게 잘 달린다는 느낌만 있었다. 

배에는 아무 문제가 없구나. 

노인은 생각했다. 
배는 온전해. 
부러진 키 손잡이 말고는 상한 데가 없어. 
그거야 바꿔 달면 그만이지.



 <노인과 바다>를 드디어 리뷰한다.
이제 읽어서가 아니다. 사실은 오래 전에 읽었다. 초등학교 때.
청소년 버전으로. 정본은 고등학교 때 읽었지 싶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다시 읽었고, 어른이 된 지 한참 지나 또다시 읽었다.

그러고 바로 리뷰하지 못했다.
(전에 리뷰한 적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또 읽었다. 또 읽으면 또 새롭다. 
명작이라 그런 지도.)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거의 동시에 움켜쥔 명작이라 기가 죽어서만은 아니다.
이제껏 이 소설의 주제를 '한 노인의 불굴의 투지'로만 알고 있던 데서
벗어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노인만큼 나이가 들려면 한참 멀었으나
어느 정도 나이 든 지금 와서 보니, 이 소설에서 '투지'보다 더 도드라지게 만져지는
단어가 있다. 소설 속에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는 단어.

귀환.

지금의 내 나이로,
이 소설에서 가장 오래 붙잡힌 장면은, 

84일이나 고기 한 마리 못 잡던 노인, 산티아고가 드디어 거대한 고기를 낚아올린 순간이 아니다.


오히려 이 장면이다.


마침내 원했던 대형 물고기를 잡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에게 거의 다 뜯기고 마는.

그 통통하니 살 많던 고기가 참혹하니 뼈만 남는.


이 장면은 소설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전환점’이다.

이 소설의 주제를 '불굴의 투지'로만 읽는다면 상어를 잡는 것으로 끝나도 된다.


이 소설이 피어나는 지점은 바로, 물고기가 뼈만 남는 자리, 그곳이다.


왜냐하면, 노인의 (불굴의) 투지가 승리처럼 보이던 순간이 패배로 바뀌기 때문이다.


패배를 대하는 노인의 태도는 자못 다르다.

소설 속 인물의 '자못 다름'은 열이면 아홉, 아니, 열이면 열, 주제와 닿아 있다.


그는 상어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상어에 감정의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상어 떼가 출현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상어들도 저 깊은 바다 아래서 피 냄새를 맡고 따라붙었을 뿐이다.

노인이 그러했듯, 생존의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물론, 상어에게 뜯겨나간 저 아름다운 물고기는 아깝기 그지 없다.

노인도 뜯겨나간 살점을 놓고 돈으로 환산하며 아까워한다.


그러나 곧, 노인은 '자못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제 노인 산티아고에겐 뼈만 남은 물고기가 무거운 '짐'이 되었다.


전환의 연속이다.

전환의 유지다.


헤밍웨이가 말하고 싶어 점화한 불꽃이 바로 이 전환점에서 발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한때 노인 생의 목표요, 희망이었던 물고기는 살점 하나 없는 짐이 되었다.

보통 사람에게는 이런 '전환'이 대단히 힘들다.

놓친 것, 실패한 것, 아까운 것을 우리는 잘 놓지 못한다.

그래서 끈덕지게 거기 들러붙어 같이 살아가려 한다.

두고두고 후회하며, 두고두고 곱씹으며, 두고두고 자책하며, 두고두고 남탓하며...

혹자는 평생토록.


그런데 바다에서 생의 본질과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투지를 익힌 노인은 

이런 '전환'에 긴 시간과 큰 노력을 요하지 않는다.


노인은 ‘집착의 대상’을 자기 삶의 서사에서 지운다.

꽤 빨리, 쉽사리, 고통 없이.


그 대신 노인은 '자못 남다른' 생각과 행동을 한다.

바로, 자기 배를 살피는 일이다.
배가 무사한지 확인하는 일이다.


물고기 살을 다 파먹은 상어보다

그래서 뼈만 남은 물고기보다

지금 노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배의 무사함이기 때문이다.


곧 ‘귀환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철저히 현재와 귀환에 초점을 맞춘다.


많은 소설에서 우리는 인물이 잃은 것에 매달리는 장면을 장황하게 읽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과거에 휘말려 어쩔 줄 몰라하는 인물의 고군분투를

내 일처럼 공감하며 읽게 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란 불후의 명작에서

‘상실’이 일어남과 거의 동시에 ‘귀환’을 교차한다.


이를 우리 삶에 넣어본다.


우리의 지난, 그 화려했던 청춘에 두었던 미련이나 놓친 기회, 끝난 관계는 

이미 ‘뜯긴 고기’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우리에게 단지 무거운 짐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우린 빨리 그 짐을 벗고, 현재 우리가 타고 있는 '배'의 상태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자리로 뱃머리를 돌려야 하는지 모른다.


소설 속 이 장면이 소설의 서사 방향을 바꾸는 긍정의 기술로 작용했듯,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는 긍정의 힘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 삶에 상어 떼는 늘 존재한다.
우리 삶에 상실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상어와 싸우면서 모든 힘을 소진하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노인이 그랬듯, 상실을 무사히 통과해 귀환을 준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기서부터 우리의 삶은 다시 걸어갈 방향을 얻을 테니까.


내게 <노인과 바다>에서 명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이 전환점이다.


노인이 아바나의 불빛을 따라 

방향키는 그래도 남은 뱃머리를 돌리는 장면.


어쩌면 우리 인생의 긍정은 획득이 아니라, 상실 이후의 시선 이동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큰 고기를 잡는 것(우리가 인생의 목표/희망/꿈이라 여겼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돌아갈 배를 지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린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나.


혹시, 잃어버린 무언가에 전전긍긍하느라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감지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우리의 배는 멀쩡하다. 잃어버린 것은 이미 떠내려 가 버렸다.

노인은 말한다.


무거운 물고기가 치워지니 배가 가볍게 잘 나가는군.


우리의 배도 가벼워질 수 있다.

아쉽지만 지난 것은, 

아깝지만 잃은 것을 '자못 다르게' 떠내려 보낸다면.


괜찮다.

배는 멀쩡하지 않은가.

부러진 데는 고치면 그만.

방향 키는 멀쩡하지 않은가.


키를 잡자.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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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8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등학교 때 읽고 그 이후로 안 읽어서 노인의 허무함만 기억속에 남았네요. 집착의 대상을 자기 삶의 서사에서 지운다는 표현 너무 멋지네요. 뭔가 명언으로 기억해야 할 거같은 느낌이에요. 우리가 나이들어서 다시 읽으면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이런 장면을 포착해내는걸 아무나 하지 못한다는데서 이 글에 좋아요 한 백개쯤 보내고 싶습니다.

젤소민아 2025-09-19 08:15   좋아요 1 | URL
아욧, 바람돌이님 칭찬에 어깨춤이 절로 나네요~들러주시고, 이렇게 격려 댓글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참 따스해집니다. 관계의 따뜻함은 물리적인 거리에 있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더 느껴요. ‘노인과 바다‘가 그 단순할 수 있는 문장과 구조에도 왜 불후의 명작인지는, 읽을 때마다 실감하게 돼요. 이 소설을 쓸 때 헤밍웨이도 몸이 그렇게 아팠다지요. 40가지 정도의 질환을 품고 있었다고요...그런 가운데서도 이렇게 슬픈듯하면서도 희망찬 노년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추앙하고 싶습니다. 꼭 다시 읽어보세요~~바람돌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