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rrogate Mother』를 읽었다. 읽는 시간은 참 즐거웠는데,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들고. 아무튼 그랬다. 이때쯤 한 번 만나주는 맥파든 랭킹.
쉽게 싫증을 내는 편이라 한 작가의 책을 연달아 읽지는 않는데, 프리다 책은 연거푸 읽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 재미있어서인데, 안 좋은 점이라면 이어서 읽다 보니 각 작품의 주인공들이 서로 섞여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 각각 다른 캐릭터지만, 성격, 행동, 특히 외모가 비슷해서 한 사람으로 수렴된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이 리스트는 어디까지나 내가 좋았던 작품 순이기는 한데, 살짝 돌아보니 첫 번째 책을 제외하고는 최근에 읽었던 책들이 앞쪽으로 배치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란 건 단순히 '최근에 읽은' 책이란 말인가.
1. The Housemaid
"Who has the time?"
I bite back any kind of judgemental response. Nina Winchester doesn't work, she only has one child who's in school all day, and she's hiring somebody to do all her cleaning for her. (5p)
프리다 맥파든 월드의 시작을 알리는 책이다. 표지를 특히 칭찬하고 싶은데, 작품 전체의 느낌을 잘 살려내었다. 콩쥐처럼 니나에게 당하는 작품 속 화자가 아니라, 팥쥐처럼 못된 니나에게 감정이입하는 나를 지켜보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2. The Surrogate Mother
프리다 맥파든의 9번째 책이다. 표지 선호도는 하우스메이드 1권에 버금갈 정도였는데, 읽으면서 제일 힘들었다. 구약성경 <창세기>의 '사라/아브라함/하갈'의 구조가 그대로 차용되었다. 이 이야기와 관련해서는 다락방님의 보석 같은 페이퍼 '하갈이 오만하다는 말입니까?'(https://blog.aladin.co.kr/fallen77/16509349)를 참고하시면 되겠다.
이 책은 이 기본 구조 속에서 '사라'의 입장에서 쓰여졌다. 아이를 그렇게나 간절히 원하는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어렴픗이 알 것도 같아, 그러니까 정확히는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아 괴로웠다. 남편의 아이를 가진 여자, 자신과 비슷한 용모이지만 자신보다 열 살이 어린, 젊고 아름다운 임신한 여성을 바라보는 화자의 심정 역시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아 심기가 불편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맴도는 질문은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의 물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어떻게, 사랑이.... 사랑은 변한다. 사랑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마음도 변하고 외모도 변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장내 세포들도 한 달 반에서 두 달 사이에 새로운 세포로 변한다. 변한다. 결국에는 변한다.
그의 마음이 변할 것인가에 대해 화자가 가진 두려움과 걱정. 사랑도 변하고, 우정도 변하고, 신뢰가 사그라들고, 그리고 나 자신도. 막을 수 없는 엄연한 사실과 겹겹이 쌓여가는 진실들, 그리고 우주적 법칙 앞의 나. 답은 역시나 '받아들임'이던가.

3. The Locked Door
읽는 중에 마음이 제일 간절해졌던 작품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람마다 부족함이 있고, 말할 수 없는 각각의 비밀을 가지고 있지만, 노라가 의지하고 비밀을 털어놓을만한 딱 한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이 소설의 끝이 해피엔딩이길 간절히 바랬다.
4. Never Lie
좋아한다고 고백하면서, "You don't have to say it back."이라고 남주가 말해서 좋았다. 실상은 과도한 열정과 집착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되 강요하지 말 것. 고백하되, 강제하지 말 것.

5. The Wife Upstairs
자신의 몸을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이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말을 빼앗긴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 말하기를 부정당한 사람은 어떻게 그 권리를 찾아올 수 있을까. 이 소설의 다른 한 축은 현재 언어를 빼앗긴 사람의 기록이다. 일기는 강하다. 일기는 힘이 쎄다.

6. The Housemaid's secret
미래를 함께 하고 싶은 사람, 함께 살고 싶은 사람에게 고백할 수 없는 내 비밀. 말할 수 없고, 고백할 수 없는 비밀에 대한 이야기다.
7. The Coworker
Caleb believes I'm a better person than I am. He can never know the truth. (<The Coworker>, 353/361)
나를 믿어주는 그 사람을 위해, 나를 더 나은 나로 믿고 있는 그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8. The Housemaid is watching
이웃집 여성의 과감한 플러팅이 과한 면이 적지 않다. 핫한 남편과 사는 여성의 괴로움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9. The Housemaid's wedding
결혼한다. 하우스메이드가 결혼한다. 저기 저 멀리 수상한 사람이 보이고... 하우스메이드는 결혼한다.
책장을 한참 뒤지고 나서 샐리 루니의 『Beautiful World, Where Are You』가 집에 없다는 걸 발견했고, 알라딘과 교보 구매 내역을 확인해 보니, 없는 게 아니라, 구매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백 년 뒤를 약속한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에 광화문 교보에 잠시 들렸는데, 아하하. 그 책 없는 거 실화인가요. 국내 최대 규모의 서점에서 샐리 루니 책이 없다니요. 샐리 루니 자리에 다른 책만 있고, 내가 찾는 책 없다니요. 터덜터덜 돌아서기 직전에 한 바퀴 돌아보는데, 사이좋게 모여있는 프리다 맥파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프리다 맥파든 이어서 읽는 사람 나밖에 없는데. 아, 프리다 책이 이렇게 전시된 거는 광화문 교보에서 처음 본단 말이지요. 나를 위한 것입니까. 진정, 이건 나를 위한 것이란 말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