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영어 공부를 한다. 책만 펴면 얼마나 졸리는지. 순식간에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하게 된다. 너무 졸려서 자리에서 일어나 서가를 돌아다닌다. 매해 벽두마다 두근두근 심정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뭘 준비해야 하나. 딥시크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용되지 않고 나 자신을 고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해서 숙련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란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까. 돈을 받고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가 앞을 서성인다. 눈에 띄는 책을 뽑아 든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딱 하나만 선택하라면, 책

유물론

완벽하지 않을 용기

나르시시즘의 고통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Diary of a Wimpy Kid 『The Meltdown』

재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책으로만 6권을 골랐다. 그래도 우치다 책이 내가 가려는 그 어딘가에 제일 근접해 보인다.

이 장면은 약간, 아니 많이 알라딘스럽다. 혹은 알라딘틱하다. 알라딘의 리뷰, 알라딘의 페이퍼가 대부분 이렇지 않은가 싶다. 흠~ 좋았어. 아, 진짜 좋았어~의 동력으로는 리뷰를, 페이퍼를 쓰게 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어머, 어떡해. 와, 진짜 이 책 짱인데! 의 감상이 있어야만 리뷰를 그리고 페이퍼를 쓸 수 있다. 여러분~~ 여러분을 부르는 외침. 내 말 들려요?! 의 물음이야말로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곳에는 눈 밝은 독자이자 귀 밝은 독서가들이 계시기에 읽고 쓸 수 있다. 여러분!! 여기 진정한 걸작이 있어요!


























이 페이지도 남겨 두고 싶어 사진을 찍고 여기 박제해 둔다. 읽은 책이 보이면 반갑고 즐겁다. 『파이 이야기』, 『노인과 바다』 안 읽은 거는 억울하지 않고, 『작은 것들의 신』, 『조이 럭 클럽』이 보이니 마냥 신난다. 두 번째 페이지는 읽은 책이 더 많은데 그중에 제일 반가운 건 『레 미제라블』, 『유혹하는 글쓰기』 그리고 『쥐』다.

아침에는 영어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책을 조금 읽는다. 저녁에는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읽고, 다시 또 읽는다. 이력서를 양식에 맞춰 고쳐 쓰고, 자기소개서를 한 번 더 읽고, 문장을 한 번 더 고친다.

길게 쓰고, 더 길게, 혹은 아주 길게 쓰는 일이 어렵지 않은데, 나를 소개하는 일은, 나를 증명하는 문장을 쓰는 일은 이렇게나 고되다. 예상보다 어렵고, 생각보다 난감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면접/면접들. 옷깃을 여며도 바람은 차고, 나는 또 나를 설명해야 한다.

오늘 아침에는 여유롭게 집을 나섰고, 엄마와 만나 그간 밀린 토크를 나눴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반대여서 엄마가 타신 초록색 버스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바람이 한없이 매서웠다. 패딩 모자를 덮어쓰니 한결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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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8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5-02-18 21:48   좋아요 0 | URL
네네~~ 그럼요! 완전 찬성합니다!

공쟝쟝 2025-02-18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돈을 많이 번다면 단발님을 취직시켜 드릴텐데....ㅜ_ㅜ 아직 제 사업장이 협소합니다...

단발머리 2025-02-19 08:39   좋아요 0 | URL
쟝쟝님이 많이 잘못하셨네요ㅋㅋㅋㅋㅋ얼른 넓직한 사업장의 사장님이 되시어 저를 고용하셔야지~
4대 보험, 주휴수당, 연차, 독서지원금 이런 거 주셔야지요, 쟝쟝님이...
근데 쟝님이 나 고용했는데 나 할 줄 아는 일이 하나도, 없으면 어쩌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2-19 0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제가 행운 좀 놓고 갑니다. 이거 가져다 쓰세요!!

단발머리 2025-02-19 08:40   좋아요 0 | URL
에구에구, 이 귀한 행운을 여기에 두고 가셨네요. 어머나! 포장지도 너무 예뻐요, 리본도 예쁘고요.
아껴서 잘 사용할게요. 오늘 하루는 종일 좋은 일만 생길거 같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nine 2025-02-19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윔피 키드 시리즈를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아들이 어렸을때 좋아했고 그래서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한구석에 가지고 있는 책인데. 저 멜트다운은 없어요. 저 단어가 요즘 아주 눈에 많이 뜨이더군요. 우리말의 멘붕이 딱 저 말이래요.

단발머리 2025-02-20 07:26   좋아요 0 | URL
저희집 아이들은 안 좋아했고요. 제가 좋아했는데, 주인공이 저 같은 캐릭터라서 그런걸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도서관에 가니 저 시리즈가 주르륵 있어서 딱 뽑아들었는데 딱 우리 상황 맞는것 같아요. meltdown...

han22598 2025-03-06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단발머리님. 여전히 알라딘에 계셔서 너무 좋아요. 취업준비중이신가봐요? 화이팅입니다 ^^

단발머리 2025-03-09 09:07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han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저 여전히 알라딘에 있습니다ㅋㅋㅋㅋ 취업준비 중이고 일단 올해는 해결했습니다^^ 화이팅 감사해요~
앞으로 자주 오실 거라 믿고 있겠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미국의 미혼모, 신생아 입양, 강요된 선택>이다. 저자 자신이 미혼모로서 강압에 의해 자신의 딸을 빼앗긴 일을 시작점으로 미국의 '입양 산업'에 대한 '폭로'를 적어내려간 글이다.


미혼모를 돕고 그들이 아이와 함께 있도록 도움을 주던 복음주의 기독교 여성 종사자들은 미혼모 분야의 전문가이자 입양 전공자라고 주장하는 입양 사회 복지사들이 미혼모 시설에 들어오게 되면서 현장에서 물러나게 된다(55쪽).

직업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 복지사들의 최종 목표는 '미혼모와 아이가 잘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었고, 아이를 다른 가정에 '입양 보내도록 미혼모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취약한 미혼모들은 사회 복지사들과의 접촉 시간이 많아질수록 입양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혼모와 아이들에 대한 정책이 '지원'에서 '입양' 중심으로 바뀐 것에 대해 비판하던 비평가들은 일부 입양 복지사들의 행동이 사기와 다름없다(64쪽)고 주장했다.

두 명의 호주 범죄학자에 따르면, 사기꾼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뉘우치지 않고 상대가 "바보 같다거나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사기당한 사람들을 비난하며 얄팍한 방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또한, 사기꾼들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축소하거나 "오만한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64쪽)

그러니까 도서관에서, 메가 커피 바닐라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내가 읽던 대목은 바로 여기였다. 사기. 사기꾼.

1초 안에 이 문장들은 이렇게 바뀌어버렸다.

두 명의 호주 범죄학자에 따르면, 사기꾼들(윤가와 내란세력)자신들의 행동을 뉘우치지 않고("비상계엄은 국민호소용이다") 상대(국민들)가 "바보 같다거나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사기당한 사람들(국민들)을 비난하며 얄팍한 방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또한, 사기꾼들(윤가와 내란세력)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축소("아무도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없다", "한밤의 해프닝이다")하거나 "오만한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64쪽)

사기. 사기꾼들. 대국민사기극 생중계 보기도 넘나 피곤한데, 헌재에서 탄핵심판 일정에 18일 추가 변론을 지정했다고 한다. 얼른 끝나야 할텐데. 얼른 끝나야 끝날텐데...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미혼모를 어려움에 놓인 어머니로 보지않고, 위험한 여성으로 보았다. 정신박약과 성적 방종이란 두개의 낙인을 사용하며 미혼모에게 입양에 치우친 서비스를 제공했다. 만약 어떤 미혼모가 "정신박약으로 보기에 너무 똑똑하면 "성적으로 방종한 여성"으로 진단하고 어머니가 되기에 결함 있는 여성으로 만들어 손쉽게 아기를 엄마로부터 떼어 놓았다. - P42

한편, 사회복지사들이 수행한 "양면적" 역할과 더불어 사회복지사들이 주로 여성이었다는 직업의 젠더적 특징이 주목받기도 했다. 웨거는 입양 복지사들이 일반적으로 인도주의적 동기에 고무되었지만, "좋은 엄마" 만들기에 관한 사회적 가정에 기초하여 미혼모를 다루었고, 게다가 전통적으로 여성이 하는 일을 평가절하했던 사회에서 여성 직업인으로서의 지위, 권위 그리고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미혼모 관련 정책을 만들었다(Wegar 2008[1997])고 주장했다. - P64

심리학 교수이자 여성학자인 필리스 체슬러는 관습을 따르지 않는 것을 죄악시한 점을 지적하며 엄마로부터 아기를 빼앗은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한다.

만약 미혼모의 유일한 죄가 관습을 따르지 않은 것이라면, 엄마의 양육권을 박탈하고 아기를 빼앗아 가는 것은 국가, 가족, 또는 아동 중 누구를 위해서인가? 누구를 위한 이익이 작동하고 있나? 미혼모가 어머니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은 양육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적 질서를 위반했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의 권리‘란 사실 ‘남성‘의 권리를 포장한 말이다. (Chesler 1986:361)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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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 우리를 분열시키는 이슈에 대해 말하는 법
아리안 샤비시 지음, 이세진 옮김 / 교양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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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백인도 인종차별당할 수 있나>와 9장 <불평등 구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인상깊었다.

부제는 <우리를 분열시키는 이슈에 대해 말하는 법>이다. 작가 소개에 쿠르드계 영국인이라 나오는데, 아버지가 아랍계이고, 어머니가 백인이다. 이 소개가 필요한 이유는 이러한 사실이 저자의 독특한 위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을 '유색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혹은 적어도 스스로 백인은 아니라고 여기는 것 같다. 49쪽에, 자신의 피부색이 밝아서 백인으로 오해받기도 하다는 에피소드가 이를 보여준다. 그녀가 자신을 백인, 백인 여성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 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 책은 백인 여성이라면 쓸 수 없는 종류의 책이다. 독특한 경험에서 나오는 분노와 그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에 대한 선명한 해답이 발랄하게 펼쳐진다.

역인종차별과 역성차별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먼저 인종차별, 성차별이 동성애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장애인 차별, 계급주의 등과 마찬가지로 억압(oppression)의 한 형태임을 강조하는데, 억압이란 세상이 혼란하거나 복잡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회 설계의 일부로서 작동하며, 이를 통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24쪽)한다. 특권과 억압이 가능한 것은 이러한 사회 구조를 통해 이득을 보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특정 집단의 종속과 착취가 사회의 존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임을 강조한다. 성과 젠더 위계 안에서는 남성이 특권을 누리고, 유색인종은 인종 위계 안에서 억압을 당한다(24쪽).

이러한 억압이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경우, 이 모든 것은 '합법적'이다. 이를테면,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지배권. 1991년까지도 영국에서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강간죄는 '성립될 수 없다'라는 것이 법적 견해(30쪽)였다. 2022년,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혀 임신부의 임신 중지 권리는 폐지되었다. 연방대법원 다수의견서에서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17세기 법학자 매슈 헤일을 인용하는데, 그는 마녀의 술수에 대한 책을 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마녀라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내렸던 사람(31쪽)이다. 억압받는 집단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구조적이다.

인종차별 역시 이러한 억압의 역사적 기준에 부합하는 실례라고 여겨진다. 아프리카인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백인들에 의해 납치되어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 다른 대륙으로 옮겨 살게 되고, 죽을 때까지 노동하며,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으로 삶을 끝냈던 바로 구조를 통해 유럽과 북미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충분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새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이것이다. 영국에서는 1833년 노예페지법으로 노예제를 종식시킨다. 인도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반란 등을 이유로 노예의 수익성이 떨어졌기 때문인데, 이를 위해 이제 더 이상 '합법적으로' 노예를 소유할 수 없는 노예 주인들에게 '재산'에 대한 보상을 하기로 한다. 재무부가 190억 달러 상당의 돈을 빌려 그 비용을 충당했는데, 2015년에야 이 부채를 다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노예의 노동은 온전히 주인의 것이어서 노예들은 일하고, 쓰러지고, 죽어 나갈 때도 무급이었지만, 이제 합법적으로 노예를 '소유'하지 못한 백인 주인들에게는 그 손해에 대한 배상이, 충분히, 넉넉하게 이루어졌다.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와 '화이트파워'를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와 '블랙파워'와 비교할 수는 없다. 이중 기준이 아니라 두 진술의 맥락이 터무니없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걸파워'와 '맨파워'의 즉각적이고 뚜렷한 차이를 생각해 보라.) 백인이라는 것 자체가 권력이다. 권력은 너무 자주 백인의 것이다.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백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중요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동어반복일 뿐이다.(147쪽)

9장에서 다루는 내용은 '실천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시작은 '신자유주의적 전환(neoliberal diversion)'이다. 환경 오염을 필두로 한 지구 파괴에 대한 문제는 구조적인 것인데, 자선 단체 기부, 공정 무역 초콜릿 소비, 친환경 세제 사용 등으로 화제를 전환함으로써 개인적 해결책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결함을 가리려는 시도를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사례로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의류 재봉사들은 그냥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유색인종 여성이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사망하거나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은 그냥 운 나쁜 사람이 아니라 주로 남반구의 유색인종이다. 남반구 인구, 저임금 노동자, 환경이 평가절하되는 이유는 경제가 그 평가절하를 바탕으로 삼아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 점이 이 시스템에는 자명하다. 세계의 공장들은 남반구에 있고 그곳의 인력은 주로 저임금 유색인종 여성 노동자다. 상황이 이렇게 지속되는 한, 북반구의 페미니즘 운동과 인종차별반대 운동은 겉치레에 불과하다.(350쪽)

겉치레에 불과하다.에 밑줄을 긋고 책상 위 펼쳐둔 책 위에 머리를 박는다. 겉치레에 불과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이가 공부를 안 한다고, 안 해도 너무 안 한다고 하소연하는 엄마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엄마들의 대화는 시작이 아이들 공부 이야기고, 반드시 공부 이야기로 수렴한다) 우리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중진국에서 자랐고, 이제 선진국에서 살지만, 얘네들은 선진국에서 태어난 얘들이에요. 뭐든 가졌고, 이제 더 필요한 게 없어요. 우리는 제 1세계에요. 우리나라 GDP 좀 떨어졌던데, 그래도 세계 13위에요. 세계 13위. 세계 13위 국가의 수도 서울에 사는 아이들이 어떨 거 같아요. 돌아가자.

북반구의 페미니즘 운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챕터가 '고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럴 줄 알았지만, 역시나.

토지 사용에 초점을 맞춰보자. 세계는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1) 육류를 적당히 먹는 국가들. 모두가 이러한 식생활을 한다면 농지가 지금보다 덜 필요할 것이다. (2) 육류를 많이 먹는 국가들. 모두가 이러한 식생활을 한다면 농지가 지금보다 더 필요할 것이다(경작지나 목초지를 더 만들기 위해 숲을 벌목해야 할 것이다). (3) 육류를 지나치게 많이 먹는 국가들. 세상 모두가 이렇게 고기를 많이 먹으면 무슨 수를 써도 농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을 것이다. 놀랍지도 않겠지만 이 분류는 국가별 국민 1인당 부(富)를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1)에는 태국, 중국, 스리랑카, 이란, 인도가 포함된다. (2)에는 독일, 영국, 멕시코, 한국이 들어간다. 그리고 미국, 아일랜드, 캐나다, 스웨덴,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뉴질랜드의 전형적 식생활이(3)과 맞아떨어진다. (332쪽)

육식만 문제일까. 하지만, 육식이 문제의 핵심인 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고. 내가 불편할 정도로 생활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꿔야만 한다. 구조적인 문제임을 알았고, 이것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실천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의 실천은 반드시 필요하다. 요는 실천할 게 너무 많다는 것.

나의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얼마나 고기를 잘 먹던 사람인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의 식단 변화에 놀랄 수밖에 없다. 나도 놀랐다. 이게 실천할 수 있을 줄 몰랐다. 불균형한 식단으로 작년 건강검진에서는 빈혈 판정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더 먹어야만 했는데, 다행히 초등학교 식단에는 고기가 많이 나와서 점심시간을 고기 먹는 시간으로 정했다. 우리 집에 육식인간은 1인이고, 그 1인조차 양이 적은 편이라 그 어느 집보다 '고기 안 먹는 집'이 되었다.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마리아 미즈는 고기, 새우, 유제품, 그중에 치즈를 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치즈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마음이 아프다. 지난주에 마트에 나가보니 칵테일 새우가 특가 세일이어서 가격이 저렴했는데, 다음에 사자 하고 미뤄두었다(요리하기 싫어서 아님). 마리아는 고가의 사치품, 화장품의 사용을 자제하라 말했다. 특히 립스틱을 사지 말 것을 권고했다(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에게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권합니다) 근데 저번 주에 립글로스 너무 이쁜 거 발견해서 참다 참다 결국 하나 샀다. 다 못 쓴 립스틱 많은데, 많은데... 하면서 샀다.

어디 그뿐일까. 옷 사지 않기.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고 장바구니 가지고 다니기. 지역 물품 이용하기.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기. 전력/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기. 이걸 말고도 너무 많아 여기에 신경 쓰다 보면 다른 일을 못 하게 될 지경이다. 그런데도 지구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호소를 기후 변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유럽에서 이 비율이 낮아지고 있는 유일한 국가는 핀란드인데, 수도인 헬싱키만 봐도 노숙자가 크게 줄었다. 핀란드의 '주거 우선' 정책은 주거권에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는다. 사람은 일단 살 곳이 안정되면 다른 문제(이를테면, 약물 중독)도 해결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자선 단체와 지방 의회가 변화를 꾀하기 위해 열심히 로비를 했더라도 결국 법안을 제정하고 수만 명의 삶을 순식간에 변화시킨 것은 정부의 힘이다. 노숙자들을 방치하는 것은 정치적 선택이고, 변화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339쪽)

정치적 선택과 정부의 책임. 정부는 정치적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다. 장관과 각 기관장에 대한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다. 3,000명이라고 했던가, 5,000명이라고 했던가. 그 이외에 정부 외 정부 출연기관까지 합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그 일을 수행하게 된다. 대통령은 자신과 비슷한 정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을 그 자리에 임명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들의 작태를 보라. 윤석열의 인권을 보호하랜다. 자신과 국가의 존망이 달린 탄핵 심판을 헌법 재판소에서 받으면서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는 위인의 인권을, 국회 연설 때 국회의원들이 무시하고 박수 안 쳐서 비상계엄 발동했다는 위인의 인권을, 계엄군이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라 도리어 시민들이 계엄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말하는 위인의 인권을.... 보호하랜다. 아이고야. 정치 이야기는 이제 그만! 정치 묻히기 이제 그만!


하지만, 정치다. 변화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게 있고, 정부는, 행정부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민이 원하는 삶', 다수가 바라는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 일한다. 일해야 한다. 우리가 주는 세금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 화석 연료 사용을 최소화하고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한 새로운 에너지 수급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라에서 주는 보조금(40여만 원)에 5만 원을 더해 앞 베란다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문정부 때였다. 지금은 태양광 기업이 모두 중국기업이라 그 사업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이 크게 들린다. 윤정부 시대다. 식료품이 이동한 거리는 탄소발자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아보카도보다 사과를 먹는 것이 지구를 위해, 나를 위해 나은 선택이다. (가끔은 먹을 수도 있다, 나도 아보카도를... 좋아한다) 내가 혼자 한살림을 이용하는 것과 학교 급식 물품이 한살림 물품인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개인이 할 수 없는 영역, 미미한 영역에 기업과 정부가 개입하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자연을 살리고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성과를 낼 수 있다.

겉치레에 불과한 페미니즘, 백인 중산층 페미니즘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발전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그럼 너는?'이라는 비판에 더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가정 폭력 피해 여성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러는 너는? 제3세계 아동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이슬람 세계 여성 인권 문제는? 무분별한 자연 파괴에 대해서는, 너는 할 말이 없어? 그것만 중요한 문제라는 거야? 딱 그것만?"이라 묻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온 세계에 산재된 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자신이 없다면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그 헛소리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오늘, 바로 오늘의 실천을 이어가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으면서, 절망하지 않으면서, 이 상황이나 현실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정치의 역할에 대해서 더 깊은 성찰과 논의가 필요하다. 일단 탄핵 인용의 날에, 박수 기다리던 위인에게 큰 박수 보내드리고, 그리고 나서 시작하자. 바로. 그리고 나서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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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5-02-13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좋아요 일빠 💋 읽기는 점심 먹고난 후

단발머리 2025-02-13 12:09   좋아요 0 | URL
🥙🥗🥘🫕🍣🍜🍱🥟차린거 없지만 많이 드세요~~

다락방 2025-02-13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오 글 너무 좋습니다. 이 책을 얼른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한편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책을 읽고싶다!‘는 생각이 들게하니, 얼마나 좋은 리뷰인가요!

저는 밑에서 두번째 단락이 참 특히나 좋네요. 뭔가 하겠다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비판을 쉽게 하는것 같아요. 뭔가 하지 않으면 비판 받을 일도 없는데 말입니다. 뭔가 하지 않는 사람들은 완벽하기 위해 안하는게 아니잖아요. 그냥 안하는거지. 하여간 저도 제가 생각한 길을 뚜벅뚜벅 가는 걸로..

그나저나 저는 육식도 육식이지만 탄소발자국에 대해 죄인입니다.

단발머리 2025-02-13 12:38   좋아요 0 | URL
이 리뷰가 좋은 리뷰였으면 좋겠지만서도 이 책이 참말로 좋은 책입니다. 저는 제가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무척 논리적이고 신중한 스탠스인데, 이걸 실제에 응용하려면 한 번 더 읽어야겠다, 그런 생각입니다.

밑에서 두번째 단락은, ‘흑인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대부분 백인들)의 반응‘인데요. 인종차별에 대한 부분 읽다보면 페미니즘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작동하는 방식이, 어쩔 때는 ‘똑같다‘라고 여겨질 정도잖아요. 사람들은 ‘옳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 왜 ‘말‘만 하냐고 그러잖아요.ㅋㅋㅋㅋ 옳은 ‘말‘이라도 한다는게 중요한데 말입니다. 그러면 ‘나쁜 말‘을 하라는 건지. 자신들의 나쁜 말을 옹호하는 그 자세야말로 더 비윤리적인데 말이지요.

9장 <불평등 구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 보편화 가능성>의 두 번째 챕터 제목은 이렇습니다. ‘탄소 발자국’이라는 사기극.
사기극이라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psyche 2025-02-13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도 공감 백배!

단발머리 2025-02-13 12:49   좋아요 1 | URL
저도 알라딘서재지기 잠자냥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어요. 좋은 선택이 되실거라 믿습니다.
저는 기립박수 준비했습니다. 같이 하시죠~~ 👏👏 👏👏👏

은하수 2025-02-13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 정말 작은거라도 실천이 중요하단걸 다시 깨닫게 되네요.
이 글 읽으면서 저도 마리아 미즈 생각했는데... 언급해주시니 또 한번 더 실천하겠다는 의지...경각심을 가져야겠다 생각하는 계기가 되구요.

이노무 정치... 정말 중언부언 말도 안되는 논리로 헌법재판소에서 변론하는 거 보면 속이 터져요.
검찰총장 시킨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진짜 원망했어요. 그거 안했으면 대통령 안나왔을텐데... 하면서요.
거두절미하고...
제발 우리나라에도 의식있고 무식한 말고 ˝유식한˝ 대통령이 좀 나왔으면 좋겠네요!

단발머리 2025-02-13 19:34   좋아요 1 | URL
저도 오늘 한 가지 실천하고요 (부끄러워 비밀로), 저녁은 냉파했습니다.

저도 문재인 대통령 원망 많이 했습니다. 원칙을 지키는 건 좋은 거지만, 아.... 온 나라가 아주 난리법석 ㅠㅠㅠ
유식한 대통령, 똑똑한 대통령, 말 통하는 대통령 나왔으면 좋겠어요. 일단은.... 탄핵 심판 마저 하고요.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비극은 원자론의 위로를 거부합니다.” 


내 책 아니어서 밑줄 못 긋고, 대신 마음에 밑줄 쫘악!





그런데도 왜 누군가의 죽음은 항상 일종의 불상사가 되는 걸까요? 왜 이 정상적인 사건이 그것을 목격하는 이들에게 그토록 호기심과 전율을 자아내는 걸까요? 죽어가는 인간이 존재해 온 지 그토록 오래되었는데도, 어째서 죽을 인간들은 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언제나 우발적인 사건에 아직도 익숙지 않은 것일까요? 우리는 왜 산 자가 사라질 때마다, 마치 처음 일어난 사건이기라도 한 듯이 놀라는 걸까요? - P17

한 인간이 결정적으로 소멸되는 것이, 그저 뭔지 모를 어떤 형이상학적 중력법칙에 따르는 일일 뿐일까요?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비극은 원자론의 위로를 거부합니다. - P19

우리는 이제 그 중요성을 더 잘 가늠하고 사건의 실제 무게를 더 잘 평가합니다. 부모님의 죽음은 우리가 이전부터 알고 있던 것 외의 어떤 것도 실질적으로 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 문제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무릇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소중한 이도 이인간들 중의 하나니까 아무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보통의 생명체들보다 말 그대로 조금도 더 알고 있지 않습니다. - P28

상을 당하거나 병에 걸리는 경험에서 비로소 우리의 지식이 실제적인 것으로 승격되는 것입니다. 이미 앞서 알고 있던 것을 깨닫는 것은,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한채 알고 있던 것을 체험된 앎으로 문득 알게 되는 일, 뜨거운 감동과 강렬한 열정을 지닌 구체적인 인식으로 알게 되는 일입니다. - P30

그리고 노령이라고 다를 것도 없습니다. 노인도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경황이 없고, 무심코 있다가 허를 찔려 불시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끝이 오는 것을 볼 시간이 충분히 있었을 텐데도 말이죠. 스토아 철학자는 말합니다. "상늙은이들이 몇 년이 더 오기를 기도하며 간구한다. Decrepiti senespaucorum annorum accessionem votis mendicant" 사실,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든 자신의 종말은 놓쳐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노령이라 해도 언제나 너무 일찍 죽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누구나 요절하는 것입니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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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2-10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두께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시작도 못하고 있었는데 인용해 주신 글들 읽으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리 노령이라 해도 언제나 너무 일찍 죽습니다.˝ 이 문장 완전 공감 가요.

단발머리 2025-02-10 16:24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blanca님~ 압도적인 두께이고 글씨가 작은데 행간도 좁습니다.
제가 많이는 아니어도 ‘죽음‘에 관련된 책을 쪼금 읽어봤는데 이 책은 좀 다르네요. 나의 죽음, 너의 죽음, 삼인칭의 죽음까지 읽었어요. blanca님 혹 읽게 되시면, 리뷰 꼭 남겨주시어요~~~~

수이 2025-02-10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 그은 문장들 담아갑니다, 근데 배고파 🙄

단발머리 2025-02-10 17:51   좋아요 1 | URL
밥 먹어요! 밥밥비바밥! 🍚

수이 2025-02-10 17:52   좋아요 1 | URL
민이가 배고파 미칠 거 같대, 그래서 호떡 먼저 ㅋㅋ

단발머리 2025-02-10 17:55   좋아요 1 | URL
우리 동네 서울호떡도 맛나요 ㅋㅋㅋ이제 호떡도 프랜차이즈다!

수이 2025-02-10 20:13   좋아요 0 | URL
호떡집 이름을 까먹음;;;

바람돌이 2025-02-10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음을 700페이지 넘게 말하다니... 이거 다 읽으면 힘들거 같아요. ㅠ.ㅠ

단발머리 2025-02-11 16:16   좋아요 1 | URL
그래서 오늘은 잠시 쉬어갑니다ㅋㅋㅋㅋㅋㅋ 다른 책 읽고 내일 만나려고욬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5-02-12 2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 키워드가 ‘죽음‘이기도 합니다.
이런 책이 있었군요. 첨 보는 책이에요.
죽음과 오미자!
죽음은 오미자의 맛이려나요?
시고 쓰고 맵고 달고 짜고…
전 좀 쓴 맛에 가까운 듯합니다만…

단발머리 2025-02-13 11:54   좋아요 2 | URL
이 책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정희진쌤의 <21세기 최고의 책> 선정 10권 리스트에 들어간 책으로서, 저도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700페이지 넘는데다가 쉽지 않은 내용이라 완독을(완독만이라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오미자는 ㅋㅋㅋㅋㅋㅋ 큰아이가 좋아하는 음료라 한살림 갈때마다 2개씩 사오고 있어요. 저는 오미자의 맛을 아직도 모르겠는데, 큰아이는 좋아하네요.
쓴 맛에 가까울 것 같지만, 저 상품이라면, 달콤한 맛이 더 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 쓰다가 길어져서 따로 씁니다. 제가 주목한 부분은 여기예요.

그리고 이 목적 없는 우주에서 신의 사랑으로 지어진 이 존재가요. (신이 인간을 사랑해서 아들을 수직적으로 내려 보내주었사온데) 신의 사랑을 감히 수평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연애의 발명, 띠로리…. 17세기 유럽에서 태어난 것이랍니다. 더 놀라운 점은. 그리하여 그 궁정 연애의 본질은. ‘유일성’‘(오로지 한 사람만을 연모하는데)’에 있다고 하는데.. 단발님께서 평소 주장하고 계시는 지론들이 지독한 기독교 교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인가 의심하게 되는 나는… 계보학을 좋아하는 푸코빠입니다. 메롱!

신이 인간을 사랑해서 아들을 수직적으로 내려보내 주셨습니다(메리 크리스마스 & 해피 뉴이어!). 신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수평적 실천은 맞는데, 그게 연애의 발명, 낭만적 사랑으로 둔갑하게 될 때 다른 경로도 있었으니까요. 이미 잘 아시는 바와 같이ㅋㅋㅋㅋㅋㅋ그래도 다시 써보자면.











인류 초기, 집단의 생존을 위해 가장 먼저 사유재산화된 대상은 여성입니다. 재생산이 가능한 여성은 집단의 존속을 위해 가장 소중한 '자원'이었죠. 거다 러너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오자면, 사유재산의 첫 번째 전유는 재생산자인 여성의 노동력에 대한 전유로부터 시작(『가부장제의 창조』,91쪽)되었으니까요. 사물화된 여성의 재생산권은 남성의 통제 아래 들어갑니다. 높은 계급의 남성들은 특별히 자신의 관리'하'에 들어온 여성들의 '성'을 통제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실제로 인류 역사에서 일부일처제는 매우 짧은 기간에만 '현실'이었습니다. 능력 있는 혹은 형편이 가능했던 모든 남자들은 일부다처제를 실천했구요. 일처다부제를 실천했던 여성들은 극소수인데, 얼마나 극소수냐면 지배계급에서도 최상위에 속한 여성만이 이런 실천이 가능했습니다. 아내가 물질해서 돈을 벌고, 아내가 물질해서 번 돈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아내가 텃밭을 가꾸고, 아내가 가사를 도맡을 때, 아내가 물질해서 번 돈으로 제주도 남성들은 육지에, 다른 도시에 '작은 각시'를 얻었잖아요. 오랫동안 인류는 일부다처제 사회였습니다. 당연히 남성특권이구요. 일부다처제가 존속되는 지역에서는 그 제도로 인해 여성들이 얻는 '이익'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이 있을 테고요. 또한 일부일처제가 결혼제도 안에서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해악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유일성의 문제로 돌아가자면.

제가 평소에 주장하는 지론들이(그게 뭘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지독한 기독교 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지적에는 가차 없이 동의합니다. 저는 사랑의 여러 속성 중에 '배타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보는데 말이지요. 사전 찾아보는 친절함ㅋㅋㅋㅋㅋㅋㅋㅋ을 또 가차 없이 선보입니다.

배타성: 하나의 물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의 권리가 성립하면, 같은 대상에 관하여 다른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일. 하나의 물건 위에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내용의 권리가 두 개 이상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는 뜻으로, 물권과 채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그 배경은 당연히 성경입니다. 오늘의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34장 14절. 너희는 다른 신에게 절을 하여서는 안 된다. 나 주는 '질투'라는 이름을 가진,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왕과 백성, 목자와 양, 아버지와 아들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러한 비유 중의 하나가 남편과 아내입니다. 하나님이 남편이고, 인간이 아내입니다. 아내된 인간에게 하나님은 '전폭적인 사랑'을 요구합니다. 다신교가 대세였던 이집트를 탈출하여, 다신교가 대세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유랑하던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이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습니다. 그들 주위의 모든 민족들이 '여러 종류의 신들'을 '동시에' 섬겼습니다. 신들끼리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형제자매가 되고, 친척이 되었습니다. 서로의 범위를 구획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했습니다. 이 신은 달랐습니다. 이 신은 자기 말고 다른 신은 모두 거짓이라 말했습니다. 안 된다고요. 나눌 수 없다고요. 너의 섬김을, 너의 사랑을, 너의 마음을. 나눌 수 없다고 말입니다. 몽땅 달라고 했습니다. 전부요. 네 마음을, 네 사랑을, 너의 전부를.




쟝쟝님이 좋아하는 이준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준혁과 한지민의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단 한 사람임을 알게 됐고요. 오래오래 함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 두 사람 앞에 쟝쟝님이 나타납니다.




캔디 부럽지 않은 명랑함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 그리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천상계의 지성미로 이준혁은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준혁의 인생책은 바로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고, 쟝쟝님은 본투비 푸코빠였다는 것을요. 이준혁은 더더욱 쟝쟝님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더 많은 시간을 쟝쟝님과 보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윳빛깔 한지민의 완벽한 일처리와 이에 버금가는 귀여운 허당미 역시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어찌하란 말입니까. 이 사랑을, 이 슬픔을.












이때의 고뇌와 슬픔은 샐리 루니의 『친구들과의 대화』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닉(개새)이 허둥지둥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나는 여러 번 닉에게 전치 4주의 중경상을 입혔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고요.

글쎄요. 저는 이것이 여남 사이의 낭만적 사랑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세 명 있고요. 커피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 앞의 그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만 눈을 맞추고, 그의 말에만 응답하며, 내가 이야기할 때마다 핸드폰을 들여야 본다면, 그 세 사람이 친구 사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나이가 마흔이 넘어도,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두고 경쟁합니다. (그러지 않은 분이라면, 그러지 않는 가정이라면 참말로 부럽습니다) 엄마는 우리 엄마이지만, 또한 영원히 내 엄마라서, 그 어떤 사람과도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공유하고 싶지 않아요.

소유에 집착하는 유아적 사고의 총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그런 면이 있다는걸, 인정합니다. 제 사고가 편협되고, 그리고 제한되어 있다는 것도요. 저는, 제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래오래 모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 부분에 대한 쟝님의 지적은 참 맞는데, 저의 그런 생각은 그런 편협하고 배타적인 기독교의 사상과 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미 저의 일부이기도 하구요. 느닷없이 생각나는 노래는 엉뚱하게 이 노래네요.


이소라가 부릅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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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5-02-09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웃겨. 준혁아. 그냥 가라.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필요 없다 나는.

저는 기독교가 유치하다고 생각한 적 없고요. 그 종교 참 종교입니다ㅋㅋㅋㅋㅋㅋ 내가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출처는 라깡이고요 ㅋㅋㅋ (기독교만이 참 종교일세ㅋㅋㅋ) 일단 저는 이 기독교 유일신앙에 대해서 좀 알아봐야하겠습니다. 소유에 집착하는 유아적 사고라는 말은 제가 생각조차 한 적 없으니 단발님이 찔리신 거 같아요. 유아 단발!! 유치 뽕짝! 그치만 다 그런 거 아닐까요? 저는 굳이 종교를 비판한다면.... 인민의 아편.. 쪽이며.... 좋은 아편은 좋은 것이다.....(응?) 아편을 원하는 그 사람들에게 좀 다양하고 다른 아편을 제공하는 몫을 정치가 했어야 했지 않은 가. 그러나. 그리고. 그런데?

유일함. 전 기본적으로 순간에 집중력이 좋은.. 실은 멀티가 안되고 나눠쓰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궁정식 연애에 대해서 낭만적이며 좋다라고 생각합니다만, 음. 우리 인생이 또 길고... 사랑은 계속될터이니, 경제적 이해관계만 좀 클리어하다면 결혼 제도란 이제 좀 낡아가지 않은 가 하는 주장에 손을 슬며시 든다 하여도 나는 낡은 제도에 진입하지 못했기에 신포도이며 그래서 돌싱 이준혁은 두번 결혼을 하게 될까요? (보다 말았음)

감시와 처벌 이준혁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러나 제 최애는 성의역사 1권 입니다.

단발머리 2025-02-09 22:10   좋아요 1 | URL
기독교만이 참 종교라고 말했다고요? 라캉이? 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사람 참, 난사람일세. 뭔가 아는 사람이에요.
소유에 집착하는 유아적 사고라는 말은 저의 셀프인식 맞고요ㅋㅋㅋㅋㅋㅋㅋㅋ화성 이사를 계획하고, 딥시크 시대에 천국과 지옥이라니 ㅋㅋㅋㅋㅋㅋ좋은 아편을 속아서 먹는 거라는 해석/비판도 저는 달게 받습니다. 분석과 측정,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으로 설명되지 않는 세상이 있거든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혼제도의 낡음에 대해서는 동의하구요. 다른 삶의 형태, 가족의 형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기초인 사랑에 대해서는 저 역시 나눠쓰는 것은 좀.... 좀 그렇습니다.
두 번 결혼하게 됩니다. 이준혁은 ㅋㅋㅋㅋㅋ 한지민이랑 결혼하고. 너무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은 사귀라는 압력을 받고 있지요. 어떤 사람은 최정훈이 불쌍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한 사람만 불쌍하고 많은 사람은 행복하자 말하기도 하구요.
둘이 너무 잘 어울리네요. 항상 행복하지는 않을텐데 넘나 행복해 보인다는 ㅋㅋㅋㅋㅋㅋㅋ저거 다 뻥이야!!!!!

단발머리 2025-02-09 22:39   좋아요 0 | URL
아.... 아까비.... <성의 역사> 1권이라고 썼다가 고친건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한 번 알려드리자면, 이준혁이 제일 좋아하는 책은 <성의 역사> 1권 이랍니다.

공쟝쟝 2025-02-09 22:44   좋아요 0 | URL
☺️준혁씌를 알고 싶다. 앎의 의지! 저도 사랑 궁금해요. 그리고 신의 사랑 덕분에 여기 있다! 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2-09 22:55   좋아요 1 | URL
준혁씨 작품 많더라구요. 차기작도 다 정해졌다 하고요.
근데 저는 그 캐릭터를 좋아하는지라 다른 작품에서의 준혁씨는 안 좋아할 예정ㅋㅋㅋㅋㅋ 따라서 종영과 함께 바잌ㅋㅋㅋㅋ

공쟝쟝 2025-02-09 23:01   좋아요 1 | URL
저두 다정한 비서 이준혁이 좋습니다! 역할(작가의 판타지)을 좋아하지 배우자체를 좋아하게 되진 않더라고요. 여전히 로맨스 최애 남주는 시크릿가든의 현빈 (나한테 집착하고 나를 위해 죽어야함 ㅋㅋㅋㅋㅋ) ㅋㅋㅋ 였는데 나완비 보면서 모처럼 흡족했닼ㅋㅋㅋ 그래서 암튼 유튜브 주요장면 몰아보기 중간까지만 한 사람(ㅋㅋㅋ)인데 저…
배우 안좋아하신다면서 차기작 꿰는 단발님은. 정말로 유일한 사랑을 아시는 분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2-09 23:36   좋아요 0 | URL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이준혁 이야기 쫌만 더할게요 ㅋㅋ현빈 이야기랑 ㅋㅋ💕

공쟝쟝 2025-02-09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참 이 연애의 발명에 대해서는 앤서니 기든스의 (정희진 추천책) 친밀성 구조의 변동?!? 책을 조만간 읽도록 해요. 요 자유연애 보편화가 한국에서는 80-90-00-10 년 길게 잡아 40년 정도의 유효성을 가졌던 것으루 ^^,,,, 사랑 이제 돈으로 사게쓔ㅓ!

단발머리 2025-02-10 10:12   좋아요 0 | URL
제가 영원히 사랑하는 최고의 남주는 로버트 레드포드(영화: 추억, The way we were)와 현빈(시크릿가든)입니다. 여러번, 아주 여러번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현빈이 아니라, 현빈에게 이런 대본을 써준 ‘김은숙‘ 작가라고 생각했어요. 역시 언어가 중요하다ㅋㅋㅋㅋㅋㅋ 인간은 언어의 동물. 배우도 중요하죠. 작가와 감독이 실현하고 싶은 이상을 1초만에 보여주니깐요. <시크릿가든> 캡처로 만든 책(2권) 집에 있다고요. 필요하면 빌려드리리~~

어떤 책을, 조만간 읽기로 해요,의 약속은 하지 않기로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무서운 것입니다. 친밀성의 구조 변동이 부제인거 같아요. 제목은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현재 품절 ㅋㅋㅋㅋㅋ중고 판매중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