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호랑이가 막 담배 피우고 그러던 시절의 일이다. 영어 이름이 필요했다. 완전 발음하기 쉬운 경우라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가능하면 영어 이름을 지어오라 했다. 영어 이름이라…

떠오르는 건 톰과 제인. 철수와 영희. 그 외에는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아… 어쩌나. 이제야 생각하면 내 이름의 음차를 생각하면 ‘제인’이 좋은 선택이기는 하다. 아, 제인이라니. 제인... 뭔가, 무언가 특별한 무언가를 찾고 싶던 나로서 ‘제인’은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였고. 그땐 '제니'라는 이름을 모를 때여서 ‘제니’를 쓸 수도 없었다. 알든 모르든 제니는 쓸 수 없다, 이제는. 제니는, 이제 이 지구상의 제니는, 오직 이 제니뿐이고.





외고 나온 친구들은 샤넌이라니, 이사벨라니, 부르기 쉽고 세련되고 예쁜 이름으로 속속 등장하는데, 시간은 흐르고 떠오르는 이름은 없고. 그때 갑자기 떠오른 사람이 당시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이 사람. 강하고 쎈 인상의 기자, 클락 켄트의 직장 동료, 슈퍼맨의 그녀. 그래, 그 이름으로 하자, 그 이름으로 해야겠어. Lois.



로이스로 정했다. 로이스로 하자, 내 이름을. 근데 내가 정하면 뭐 할까, 누구든 내 이름을 불러줘야 되는데… 아무도 안 불러줘, 내 이름을. 이름 정해오라던 교수는 내내 발음하기도 어려운 내 이름을, 이상한 발음으로 불러댔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를 많이 부르지는 않았다는 것. 로이스라 불리지 않은 채로 그렇게, 졸업을...













심사숙고해 고르고 고른 이름이었으나 불리지 못했던 내 이름 Lois가 <바닷가의 루시>에 나온다. 물론 전작(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오, 윌리엄!>)에도 나온다. 유일한 아이라 생각하고 자랐던 윌리엄은 70이 다 된 나이에, 누나의 존재를 알게 된다. 평생 동안 알지 못했던 어머니 캐서린의 비밀. 캐서린은 윌리엄의 아버지를 만나기 전, 동네의 농부와 결혼한 상태였다. 전쟁 포로로 캐서린의 동네에 잠시 머물게 된 윌리엄의 아버지에게 반해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녀가 떠난 것은 감자밭을 일구던 남편만이 아니라, 그와의 사이에서 낳았던 두 살 된 갓난 아기, 그녀의 딸아이 Lois였다. <오, 윌리엄!>에서 생전의 캐서린을, 그리고 남겨진 윌리엄을 만나길 거부했던 로이스는 <바닷가의 루시>에서는 윌리엄을 만난다. 코로나 상황의 그를, 자신의 동생을 걱정한다. 행복한 만남이, 따뜻한 재회의 시간이 이어졌다. 로이스는 동생을 끌어안고, 마침내 윌리엄은 누나를 발견했다.

지난주 토요일에 집회에 나가기는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짧게 찍고만 왔다. 매서운 바람을 모른 체하며, 차가운 바닥에 줄 맞추어 앉아 계신 분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거리에 나가면, "윤석열을! 파면하라!"을 몇 번이나 크게 외치고 나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졌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니깐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나를 위해,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다. 새로운 아침을 맞으면, 마음이 다시 무거워지고. 밤의 기도는 아침에도 이어졌다.


선고 날짜가 잡혀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이제 아무도 나를 로이스라 부르지 않을 테지만, 이제 나는 로이스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루시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크리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윌리엄이. 나는 윌리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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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5-04-01 2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흔치않은 이름이라 좋은데요..Lois~~
윌리엄누나 이름이었단건 까맣게 몰랐네요. 사실 관심이 없었어요.
루시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금요일엔... 꼭!
모두가 염원하는 결과가 나오길 저도 간절히 간절히 🙏 기도하고 싶네요. 저의 신이 없지만요!

단발머리 2025-04-01 21:06   좋아요 3 | URL
그럼 ㅋㅋㅋㅋㅋㅋ 은하수님께서 저를 ㅋㅋㅋㅋㅋㅋ 로이스로 좀 불러주시고 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저 요즘에 이 책 다시 읽고 있는데, 참 좋네요. 스트라우트 정말 최고에요.

금요일에는.... 우리가 다 아는대로, 염원하는대로
좋은 결과 나오기를 바랍니다. 저는 저의 신에게, 계속 기도할게요!

서곡 2025-04-01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로이스님 설마 오늘 만우절 장난으로 선고 기일 발표한 건 아니겠지요??? (만우절 농담이고요)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좀 편히 자고 싶습니다 ㄷㄷㄷ

단발머리 2025-04-01 22:28   좋아요 1 | URL
설마하니 헌재가 만우절 장난을 ㅋㅋㅋㅋㅋㅋ 그러진 않겠지만, 사실 처음에는 속보 보고 저도 눈을 의심했다는.....

오늘밤은 편히 잘 수 있을 거 같아요. 진정한 평화는 금요일 11시 20분에 누릴 수 있겠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4-01 22:45   좋아요 1 | URL
로이스 호명 ㅋㅋㅋㅋ 감사합니다! 🥰

복있는사람들 2025-04-0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밤에는 찬물 마시고
속 풀고 잘 예정...
도대체 50년을 후퇴시킨 이들은 부끄러움을 알까...

유부만두 2025-04-02 08: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로이스님!
제가 알던 로이스는 더 기버 작가 하나였는데 이제 두 명이 되었어요!

단발머리 2025-04-03 12:14   좋아요 0 | URL
크흐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때, 로이스 로리 떠올리는 분은 유부만두님 뿐인가 하노라 합니다!
저도 그런 면에서.... 로이스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네요. 두 명 중 하나가 저 맞지요? ㅋㅋㅋㅋㅋㅋ

2025-04-03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4-03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4-03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5-04-03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어 이름이 필요한 순간이 올 것 같은데 아직 영어 이름이 없습니다. 내심 그런 날이 온다면 ‘에미‘ 로 하자, 고 하고 있긴 합니다만... ‘올리브‘ 로 할까요? 갑자기 올리브가 좋게 느껴지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식의 흐름: 흠, 영어 이름 지어야 하는 순간이면 걍 에미로 하자 -(단발머리 님 글을 읽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의 소설 속에 등장한 이름이었구나, 음, 그랬지, 음,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좋으니까 그러면 엘리자베스는 어떨까, 음, 너무 길어, 올리브, 올리브로 하자!

이렇게 된건데 여기까지 쓰고 나니 ‘루시‘ 로 할까, 하는 생각이 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4-03 12:27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영어 이름 꼭 필요합니다. 생각보다 시간 많이 드니깐요 ㅋㅋㅋㅋㅋ 심사숙고하시기를 바라오며.
한글 이름처럼 영어 이름도 자기한테 어울리는 이름이 있는거 같아요. 저는... 제 이름이 중성적이어서(사실은 남성적) 참 좋거든요. 여성적인 이름이 어울리지 않게 생겼잖아요, 제가 ㅋㅋㅋㅋㅋㅋ 근데 영어 이름도 나름? 중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찜했던 이름 중에 ‘레이첼‘이 있는데, 미드에서도 그렇고, 성경에서도 레이첼이 예쁜 여자 이름의 상징 같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못 썼거든요. 요청하지 않으셨지만 추천 이름 놓고 갑니다.

1. 에미 : 저는 이 이름이 좋아요. 특이하고, 다락방님하고도 잘 어울리고요. 여기에 3표 드리고요.
2. 엘리자베스 : 베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냥저냥.
3. 올리브 : 올리브도 괜찮은데, 그... 제가 좋아하는 애덤 나오는 소설에서 여주 이름이 올리브구요. 친구들은 ‘올‘이라고 부릅니다. 올리브에 2표.
4. 루시 : 뭐랄까... 약간 소극적인 느낌? 이 이름도 0표이구요.
5. 수잔, 레이첼, 수지, 벨라, 샐리.... : 등등이 지금 생각나는 이름입니다.

다락방 2025-04-03 12:36   좋아요 1 | URL
저 안그래도 올리브가 키터리지 말고 또 있었는데 하다가, 아 그 로맨스!! 교수랑 사랑한다!! 그러면 이거 할까, 나도 교수랑 사랑 한 번 해보게? 이런 의식의 흐름까지 이어졌더랬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4-03 12:55   좋아요 1 | URL
그 로맨스 ㅋㅋㅋㅋㅋㅋㅋ 교수랑 사랑합니다! 애덤이랑 올리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락방님이 교수랑 사랑하는 거 절대 찬성하기는 하는데요. 아.... 교수가, 그니깐 애덤이 7살 연상이에요.

당신에겐! 연하를 권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4-03 17:12   좋아요 1 | URL
에미 어울릴 것 같아요 다락방님.
저는 Karen 입니다. 불려보지 못한 이름이여..ㅋㅋㅋ

psyche 2025-04-04 02:25   좋아요 0 | URL
음... 영어이름을 정할 때는 제일 중요한게 발음이 아닐까 합니다.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 못하면 사람들이 못 알아듣거든요. 그래서 미국에 사는 동양 사람들과 그 아이들의 이름이 비슷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래서 엘리자베스 이런 이름은 어렵고요. 올리브는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에게는 뽀빠이의 여친을 떠올리게 되지 않나 싶고 (물론 우리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떠올리지만요) 요즘 흔하기는 하지만 올리브 보다는 올리비아가 낫지 않나 싶어요. 발음으로 보면 에미나 루시가 좋아요.

다락방 2025-04-04 08:50   좋아요 1 | URL
저 오래전에 김윤진 배우가 토크쇼에 나와서 영어 이름 정하는 얘기를 한 게 기억이 나는데요,
그 때 그 배우가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누군가에게 ‘사람들이 내 이름을 쉽게 발음할 수 있도록 이름을 지어야겠다‘ 라고 하자 듣고 있던 분이 ‘윤진, 네 이름을 쉽게 하려고 하지마, 네가 유명해지면 사람들은 네 이름이 어려워도 발음하게 될거야‘ 라고 하셨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윤진 이란 이름으로 활동하셨는데 정말 사람들은 윤진이란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대요. 그게 저는 안봤는데 아마도 <로스트>란 미드를 찍고나서였던것 같아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납니다. ㅎㅎ

저는 에미.. 로 확정할 생각이지만, 사실 ‘파멜라‘ 라는 이름도 좀 끌리긴 합니다. 그런데 프시케 님 말씀처럼 이건 또 나이 있는 사람들한테 육체파 배우 떠올리게 할 것 같아서... 역시 에미가 낫겠네요. 하하하하하.

다락방 2025-04-04 08:50   좋아요 1 | URL
오, 독서괭 님! 카렌 이란 이름도 너무 좋은데요?!

단발머리 2025-04-05 10:16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 근자에 듣는 이름 중에 젤 이뻐요. 카렌~~~
카렌님~~ 카렌님~~ 이름이 너무 이뻐서 자꾸 부르고 싶어요, 카렌님~~~

단발머리 2025-04-05 10:17   좋아요 0 | URL
프시케님 / 올리비아~~ 너무 좋네요. 역시 프시케님은 현지에 사시니까 그 이름의 느낌까지도 정확합니다!!

다락방님 / 우리 사이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ㅋㅋㅋㅋ 파멜라의 파멜라는, 제게 찰스의 파멜라라서.... 강력 반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에미 좋구요. 에미 좋아요!!

수이 2025-04-03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이스님, 제니라는 이름보다는 로이스가 훨씬 잘 어울립니다. 저도 지금 초콜릿을 까먹으며 이 댓글을 쓰고 있지만 말입니다 저 라떼에 초코케이크라니...... 가서 말려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해버렸습니다. 확연하게 아이스 커피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군요. 아이스 라떼 쪽쪽 빨면서 곁에서 수다 떨고 싶습니다 단발 아니 로이스님 곁에서. (나 욕해도 돼? 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4-05 10:19   좋아요 0 | URL
로이스 어울린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며칠 사이에 여러 이웃님들 댓글 받다가 특히 프시케님의 올리비아....에 쪼금 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리비아~~ 근데 안 되겠어요. 올리비아는.... 올리비아 핫세의 올리비아.......
수이님은 영어 이름 뭐에요? 수이님은 수이,라고 하시면 될 것 같기는 하네요. 미래를 내다보시는 분이신가요, 수이님? ㅋㅋㅋㅋ

psyche 2025-04-04 0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이스님 ㅎ
집회 다녀오셨군요. 수고하셨어요. 멀리서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을 보냅니다.
이제 오늘부터는 밤에 제대로 잘 수 있겠죠? 제발 그렇게 되기를!!

단발머리 2025-04-05 10:19   좋아요 0 | URL
멀리서 보내주시는 귀한 마음에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막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뉴스 보셨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시간이 왔네요. 너무너무 감사하고, 감동적입니다!

다락방 2025-04-04 0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제니 진짜 멋지지 않나요? 독보적인..

자, 우리 오늘 축하의 메세지를 서로 띄울 수 있기를 기도해봅시다!

독서괭 2025-04-04 08:55   좋아요 1 | URL
일찍 출근했는데 일이 손에 안 잡혀요~~🥹🥹🥹

단발머리 2025-04-04 08:59   좋아요 1 | URL
네네~~~ 우리 오늘 종일, 아니 일주일 동안 축하의 메시지 띄워봅시다.

그릇 5개 씻는데 계속 시계만 보고 있네요. 11시야~~ 우리 모두 기다린다. 얼른 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