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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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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임경선'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한겨레 칼럼을 통해서였다. 기혼이 분명하고, 딸 아이도 하나 있는 듯 한데, ‘임경선의 남자들’이라는 고정칼럼 속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 거침없어서, 격주로 연재되는 칼럼을 재미있게 읽어 내려가는 한 주부 독자는 가슴 가득 뿌듯함을 느낌과 동시에, ‘근데 임경선씨 남편은 이 칼럼 안 읽나?’ 하는 의문이 종종 들었다. (읽지 않았다고 한다. 71쪽) 나는 그렇게 ‘임경선’을 알았다.

 

 

출판시장 경향에 대해서는 아는바 없는 문외한이지만,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요즘은 책의 ‘외양’, ‘표지’ 및 ‘외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것 같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속담이 여기에도 해당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쁜 책을 보면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더 일어나는 건 사실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렇다. 나는 예쁜 표지의 책을 좋아하고, 깔끔한 장정의 책을 사랑하며, 개정판을 기다리고, 새 책을 아끼는 사람이다.

임경선의 새 책은 작고 예쁘다. 환한 표지가 눈에 띈다. 왼쪽, 오른쪽, 앞태, 뒤태 모두 예쁘다. 적당한 두께의 첫 표지 역시 맘에 쏙 든다. 하지만, 산뜻한 그녀의 책, 쉽게 읽혀지는 그녀의 문장은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해 준다. 마냥 빨리 읽히지 않는다. 이렇게 예쁜 책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깨달음과 ‘음, 맞아, 그래.’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주위를 압도하는 두꺼운 장정의 책 속에서도 ‘재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하겠으나.

가능한가, 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을 화두 삼았으며, 마지막은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님과의 대담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그녀의 조언에 긍정한다.

인간관계도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는 것이라는 것. 새로운 친구가 생기고, 그리고 자연스레 멀어져가는 친구도 있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녀의 문장을 따라간다.

나도 예전에는 왜 이렇게 멀어졌을까 자꾸 분석하고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그 관계의 끈을 다시 이어보려고 애썼는데 돌이켜보면 그것은 나나 상대를 위하는 일이 전혀 아니었다. 단지 그 관계에서 내가 부족하거나 나쁜 사람이 아님을, 나는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님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102쪽)

 

친구를 ‘관리’하는 일은 내가 괜찮고 의리 있는 인간임을 세상을 공표하기 위한 전시용 우정 관계에 가깝지 않을까. 밀물과 썰물 사이에서 어느덧 내 곁을 여전히 자연스레 지키고 있는 그 사람이 지금의 내 사랑스러운 벗이다. (223쪽)

 

그래도 잘 모르겠다. 난, 그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귄 것처럼, 예전 친구와 소원해질 수도 있다는 그녀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데도. 나는 왜 죄책감이 드는 걸까. 나는 왜 미안할까. 왜 나는, 그 친구에게, 그 친구들에게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겠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그런 걸까. 도대체 왜.

결혼, 육아, 가사노동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남의 집안을 들여다 보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다. 가사 도우미의 도움을 받지는 않지만, 반찬은 좋은 걸로 구입해서 먹는다, 이런 부분 말이다.

또, 이 부분은 어떤가. 병원에서 수술받고 회복하며 홀로 누워있는 시간을 바란다는 그녀의 변태적 심리. 그 변태적 심리를 100% 공감하는 나의 변태적 심정.

 

 

 

이것 말고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신간평가단 리뷰 마감일이 내일이며, 아직 한 권 더 남아있는 관계로다가, 나머지는 다음 기회에...

마지막으로, 그녀의 에세이에서 제일 좋았던 혹은, 제일 인상적이었던 문장들을 적어본다. 나는 무려 이 문장들을 이 책 5쪽에서 발견했다.

돌이켜보면 커오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잔소리나 설교를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부모님은 진로나 이성 문제에 대해서도 개입을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사소한 것부터 중대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선택은 나의 몫이었고 실천과 책임은 그에 따른 당연한 의무였다. 부모님은 자식의 자율성과 창의성 배양을 위해 일부러 그랬다기보다 그저 자신들의 삶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5쪽)

 

내가 추구하는 부모상이 이렇다. 너무 바빠서, 자신들의 삶에 집중하느라 선택의 많은 부분을 자식에게 양도하는 부모. 그런 엄마, 내가 추구하는 어머니상이다. 어머니는 무슨,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하는데.

엄마, 이게 내가 추구하는 엄마상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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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5-21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부분 맘에 들어요. 너무 바빠서 자신들의 삶에 집중하느라 선택의 많은 부분을 자식들에게 양도하는 부모.. 결코 방치가 아님을 본인들은 알죠~~이런 부모이고 싶어요.

단발머리 2015-05-21 15:1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삶을 추구하기는 하는데 가끔 폭풍 잔소리가 휘몰아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잔소리하는 내 자신도 혼미하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인생 선배`이고 싶어요. 따뜻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인생 선배요. 내 아이다, 하는 순간 잔소리 폭풍이~~ 휘리릭!!!

cyrus 2015-05-21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미혼이라서 부모님의 입장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만약에 부모라면 어느 선에서 아이의 삶에 개입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5-05-22 13:46   좋아요 0 | URL
저도 그게 많이 고민이예요.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지나치지 않도록, 아이의 삶에 욕심내지 않도록 하려 합니다.
사실, 어려워요~~~

AgalmA 2015-05-22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병원에 있는 게 좋아서 맛없는 밥을 참으며 눈치보며 굳이 병원에 더 있었다는-,-)...내친 김에 호텔을 갈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아프니까 사치다!하며 그러나 나는야 환자;;
임경선씨 부모님이랑 제 부모님 닮은 꼴ㅎ;; 방임형 자유를 주신 제 부모님을 원망한 적 많았어요. 단발머리님도 신중하심이...

단발머리 2015-05-22 13:49   좋아요 0 | URL
임경선씨 부모님 같은 캐릭터는 사실 흔하지 않은데, Agalma 님도 그런 특별한 환경에서 자라셨군요.
아... 어느 점에서 부모님께 원망이 들었는지, 저 좀 알려주세요. 참고하고 싶네요~~ 신중하고 싶습니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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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가 애정을 담아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만지면, 그녀는 그를 외면하고 내면으로 숨어 들어가 아무 말 없이 견디기만 했다. (107쪽)

 

하지만 고든 핀치의 사무실을 나선 순간부터 그는 알고 있었다. 존재의 작은 중심에서 자라난 무감각한 공간 속 어딘가에서 자기 인생의 일부가 끝나버렸음을. 자신의 일부가 거의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이라서 다가오는 죽음을 거의 차분한 태도로 지켜볼 수 있을 정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300-1쪽)

 

 

 

스토너, 나는 스토너가 행복하기를 얼마나 바랬던지.

나는 스토너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그의 행복이 조금 더 지속되기를 바랬다. 그가 혼자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를 괴롭히는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랬다. 마지막에는, 마지막에라도 그가 편안하기를 바랬다.

나의 소원, 스토너에 대한 나의 소원은 한 가지만 이루어졌다. 스토너의 행복은 금방 끝나버렸고, 결국에 그는 혼자였으며, 마지막까지 그의 고통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졌는데, 결국에 스토너는 편안해졌다. 그는 편안하게 잠들었다.

우리의 인생이 스토너의 인생과 같다고 말할 때, 우리 모두가 ‘한 사람의 스토너’라고 말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 모두는 스토너가 아니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스토너의 것과 닮아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최고점을 찍고, 최저점을 찍는 삶.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삶. 슬픔과 아픔이 있는 삶. 그럼에도 지진하게 계속되는, 그런 삶 말이다.

갸름하고 섬세한 얼굴에, 날씬하다 못해 부러질 것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 이디스와 결혼했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자신을 만지는 스토너를 외면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얌전히 책을 보며 스토너에게 가장 편안한 미소를 선물했던 그레이스는 마지막 순간에 그의 눈빛을 모른척했다. 스토너를 문학의 길로 이끌어준 슬론 교수는 마르고 가여운 사람이 되어 스토너의 울음을 뒤로 하고 떠나 버렸다. 평생 동안 우정을 쌓아온 고든은 정신을 잃고 오래전 전사한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스토너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스토너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에 사로잡힌 로맥스는 평생 스토너를 괴롭혔다. 암과의 사투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찾아왔다.

캐서린.

캐서린과의 시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한 때였지만, 그 시간은 정말 한 때였다. 두 사람은 한 몸처럼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아꼈으며, 서로를 통해 완전해졌지만, 하지만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유치한 결론을 고대하는, 그런 결론만을 갈구하는 나에게, 이 진지하고 우아한 소설은 인생 그 자체를 보여준다. 사랑하고, 불화하며, 애정을 갖고, 무관심해지며, 우정이 있었지만, 그 우정도 언젠가는 사그라들고, 불화하고 복수를 일삼으며, 사투를 벌이며, 고통 받는,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삶, 그 자체를 말이다.

해피엔딩에 집착하는 나는, 김연수의 산문집에서 읽었던 이 구절을 떠올리며, 스토너를, 스토너의 인생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혹시나 이뤄질지도 모를 어떤 삶이 내 인생의 목적지가 아니라 어쩌면 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 현실이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지일지도 모른다고. (251쪽) 

 

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현실의 어느 한 지점에 반드시 도달하기 원한다. 하지만, 내게 남겨진 시간 속에서, 내가 원하는 어떤 현실에 끝까지 도달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은 5월이라 이 소설을, 올해 최고의 소설,로 꼽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한데, 이 소설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오래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 소설은 자주 자주, 생각날 것이다. 나는, 책장에서 이 소설을 꺼내서는,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시 읽게 될 것이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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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5-13 1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맨 밑에요, 인용하신 32쪽.
스토너가 문학과 사랑에 빠진 바로 그 순간, 그 때부터 저도 이 책이 좋아졌더랬어요.

단발머리 2015-05-13 14:51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는 스토너 같은 사람이라 스토너의 이런 상태, 문학과 사랑에 빠진 이런 상황을 빨리 눈치채지 못했어요. 그 증세를 읽고 보고 하면서도 말이지요. @@

아무개 2015-05-13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토너는 제 스타일이 아닐꺼라고
알라딘에서 귀여움을 담당하는
어느분이 제게 하신 말씀때문에
망설이고만 있습니다요 (-_ど)

단발머리 2015-05-13 15:00   좋아요 0 | URL
아하하~ 그 분이 그러셨군요~ 사실 저는 `필립 로스` 소설만 연달아 읽던 중에 이 소설을 읽었는데요. 시작이 `옛날~ 하고 먼 옛날~` 이런 식으로 차분하게 나와요~ 끝까지 차분합니다~ 차분한 스타일도 괜찮으시다면 추천하고 싶지만 알라딘 귀여움 담당이신 분이 아무개님 취향을 잘 파악하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ㅋㅋㅋ

다락방 2015-05-13 15:17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도전해 보세요. 도전!! ㅎㅎ

단발머리 2015-05-13 16:04   좋아요 0 | URL
그 분이 아무개님에게 말합니다.
도전해 보세요~~~~~!!!ㅋㅎㅎㅎ

CREBBP 2015-05-13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계속 서재에 올라와도 안사고 버텼었는데.. 어쩔 수 없군요. 잘 읽었습니다.

단발머리 2015-05-13 15: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guiness님 반갑습니다~ 저도 알라딘서재에서 계속 눈팅하다가 읽게 됐어요. 알라딘은 책을 부르는 회오리바람 @@ 아니던가요?ㅋㅎㅎㅎ

CREBBP 2015-05-13 15:11   좋아요 1 | URL
북풀이 더욱 부채질하고 말이죠. 읽지 않고 쌓이둔 책도 많은데 말이죠.

참, 둘러보니 필립로스 광팬이신듯.. 저도 좋아해요. 포트노이의 불평을 재밌게 읽으셨다니 방가방가

단발머리 2015-05-13 16:05   좋아요 0 | URL
ㅎㅎ 북플은 우리 공동의 적인가요? 저는 필립 로스 광팬은 아니구요~~
제가 많이 좋아합니다, 필립 로스. 그 사람
ㅋㅎㅎ호

AgalmA 2015-05-14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진지한 작품 말씀하시는 자리면 포카칩을 치우고 사진을 찍으실 만도 한데, 이 글은 포카칩 사랑 인증도 하시는 걸로....
(엉뚱한 걸 보는 이 주책...)

단발머리 2015-05-14 07:3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제가 어제 이 글 올릴때는요, 너무 배가 고파서 포카칩이 그리 사랑스럽게 보이더라구요.
Agalma 님 댓글 읽어보니 진짜 글이랑 사진이랑 안 어울리는 것 같아, 내심 마음이 혼란스럽군요. @@

북극곰 2015-05-19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필립 로스 떠올렸는데, 저는 필립 로스가 더 좋았어요. ^*^

단발머리 2015-05-19 14:27   좋아요 0 | URL
헤헤헤~~ 정말이요? 북극곰님~ 우리 앞으로 필립로스 이야기 많이 많이 같이 나누어요*^^*
 
잊지 않겠습니다
416가족협의회 지음, 김기성.김일우 엮음, 박재동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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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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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성장 불황의 시대를 사는 법

그 때가 좋았어, 라고 모든 어르신들은 말한다. 이제 막 4땡의 세계에 진입한 나도 그렇게 자주 말한다. “아~ 나 대학 다닐 때는 진짜 좋았는데.” 그건 그냥 ‘지난 시절’이 좋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때는 진짜 좋았다.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20대들에게 사랑과 위로를...) 말 그대로 그 때는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후로는 만고땡의 시절이었다. 학점은 좋아야 하지만, 학점이 좋지 않아도 괜찮았고, 수업에 들어가야 하지만,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큰 지장은 없었다. 영어 점수가 필요하긴 했지만, 요즘같이 어마 무시한 점수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나만 기억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대학 생활과 제일 가까운 단어는 ‘낭만’이나 ‘CC' 또는 ’동아리‘가 아니라, ’알바‘, ’대출금‘ 그리고 ’취업준비 스터디‘ 정도일 테다. 세상이 변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만약 제가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냥 여름 훈련에 참가하고 장교로 임관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뭐든 됐겠지만 아마 작가는 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에는 분명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제성장률이 10퍼센트를 넘나드는 시절이라 다들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거든요. ... 원래 부모님은 제가 공인회계사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원하셨고 작가가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들이 끝내 밥을 굻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던 듯합니다.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뭐 굶어죽기야 하겠어?’ 그런 마음으로 부모님께 빌붙어 몇 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 지금 같은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면 저도 20년 전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이 있고, 안정적인 직장이 없는 부모 또한 아파트 담보 대출을 떠안고 그걸 매달 갚아나가야 하는 처지였다면, 저 역시 습작보다는 취업에 뛰어들어야만 했을 겁니다. (18-9쪽)

 

지금 같은 시절이었다면, 작가의 길을 가지 못했을 거라는, 습작의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거라는 작가의 말은 그 동안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지금이 얼마나 암울한 상황인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말한다.

이제는 열심히 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 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23쪽)

비관적 현실주의는 인상을 쓰고 침울하게 살아가자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관적 현실주의에는 개인주의가 필수적입니다. (24쪽)

많이 벌고 많이 쓰고 많이 저장하는 삶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비관적 인식하에 지금 여기에서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를 개인적으로, 독자적으로, 개별적으로,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29쪽)

 

돈을 쓰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돈을 벌면서,라고 쓰면 더 좋겠지만, 당장은 가능하지 않으니, 일단은 돈을 쓰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야겠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2. 친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20대,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런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기울이고 영혼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38-9쪽)

 

한국 사회,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문화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만약, 내가 이 이야기를 했다면,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내 친구들은, 같은 반 엄마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모두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김영하는 말한다.

친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이런 정도의 이기심, 이런 정도의 자기애가 없다면, 그런 사람은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항상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소설가를 생각해 보라. 전화하면 언제나 콜!을 외치는 시인을 생각해 보라. 괴팍한 성격의 작가만을 상상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사람 좋은 작가도 사실 상상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다.

다시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작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해야 내가 정상적으로 보일 거라 믿지만)고 하더라도, 친구에게만 인간관계에만 집착하는 것도 그리 권장할 것은 아닌 듯 싶다.

적어도 나는 우리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친구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와 똑같은 톤과 강도로, 그럼에도 친구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가족은 너무나 소중하고, 가족으로 인해 얻게 되는 기쁨과 안정감은 어디에도 비길 데 없다. 하지만, 그런 가정에서조차, 즉 남보기에 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생활에서조차 갈등과 어려움은 존재할 테고, 그럴 때는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가장 안전한 가정에 있을 때조차 사람들에겐 친구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건 사람일테지만, 그것을 이겨낼 위로 역시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책상 서랍에 숨겨놓을 수밖에 없는 글

 

선생님이 쓰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쓸 때, 아이들은 전혀 즐거움을 느낄 수 없죠. 그렇다면 결국 금지된 것을 써야 해요. 선생님이 쓰지 말라는 것을 써야 합니다. 저는 가끔 학생들에게 그렇게 얘기했었습니다. 책상 서랍에 숨겨놓을 수밖에 없는, 그런 글을 써라. 부모가 보면 안 될 것 같은 글. 반대로 말하자면, 부모한테도 보여주고 싶고 선생님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글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죠. (136쪽)

 

 

 

 

위의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보았던 것인데, 보여줄 수 없는 글에 대해서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자기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 희열을 느끼는 글쓰기에 대해서 말이다.

‘문학’이 도덕적 판단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면 어떨까. 문학의 내용과 형식이 모두 교훈적이고, 모두 실용적이며, 모두 합법적이라면 어떨까. 인생의 많은 부분이 그러해야 한다고 말하고, 사실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할지라도 문학마저, 문학 너 마저 그러하다면 우리네 인생은 참,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선생님이 쓰지 말라는 것, 부모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쓰게 될 때, 그 때야 비로서 ‘글쓰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김영하는 말한다. 이 시점에서 잠깐 생각해본다. 보여줄 수 없는 글, 보여주기 싫은 글에 대해서 말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게도 그런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그런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에 대해 쓸 수 있을지, 아니면 마음에만 간직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건 서랍에 넣어두어야겠다. 책상 서랍 속에 잘 넣어두어야겠다.

김영하,라는 이름이 익숙해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은 줄 알았는데, 소설 2권과 산문집 1권을 읽었을 뿐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검은 꽃』,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다음은 2단계 도전리스트다. 언제 만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다리시라. 개봉박두. 

 

                           

 

 

 

 

『너의 목소리가 들려』, 『빛의 제국』,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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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2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관보다 해석 or 결론의 유보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겁이나 우유부단이 되지 않도록 다방면을 살피는 직시가 필요한 터라 이또한 쉽지 않더군요.
비관 자체의 단어를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너무 한면만 생각한다고도 볼 수 있더군요. 니체를 비관주의, 염세주의라 보지만 그걸 도약판으로 종국엔 무엇을 보려 한건가가 중요한 것인데 말입니다.
김영하씨는 비관을 발판으로 현실주의...평소 김영하씨에게 느끼건 이미지와 잘 부합됩니다.

단발머리 2015-04-26 07:3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Agalma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실이 암울한게 사실이더라도 `해석`과 `결론의 유보`가 더 적절하다고 믿어요.
다만 `비관적 현실주의`의 김영하가 ˝아프니까 청춘이야˝거라 ˝네 노력이 부족해서 네가 힘든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더 마음에 들어요.
약간 냉정한 듯 보이기는 해도요^^

에이바 2015-04-2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디 인터뷰에선가 김영하씨가 지금의 젊은 세대였다면 작가가 되지 못했으리라 한 기억이 나요. 그런 사회를 살아가며... 비관적 현실주의와 개인주의가 함께 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지금은 그 안에서 최대한 즐겁고 의미있게 사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모두 공감합니다. 이런 현실이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사회가 경직될수록 우리의 감성은 부드러워야 하지 않나, 그렇지만 노력하기도 전에 말라간다는 생각에 씁쓸하네요. 이런 얘기도 김영하이기에 좀 더 귀기울여 듣고 공감대를 얻어가는 거겠지요. 지식인들이 좀 더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단발머리 2015-04-26 07:4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에이바님.
그런데 암담한 20대, 당장 취직을 해서 대출금을 갚아야하는 20대들이 책을 손에 들만한 시간이 있을지, 마음의 여유가 있을지, 그런 생각을 하면 참 답답하기는 합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아르바이트생이 돈을 아껴 책을 사서 사장님에게 선물했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사장님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책을 선물해야 한다면서요.

김영하처럼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나서줬으면 하는 마음, 저도 동감입니다.

해피북 2015-04-2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글 읽으니 이 책이 읽고싶어지네요 아직 소설 한 권도 안읽어봤는데 도전해보고 싶어졌어요^~^

단발머리 2015-04-27 12:38   좋아요 0 | URL
네~ 테드 강의랑 다른 곳에서의 강의를 묶어놓은 거라서 아주 슉슉 읽힙니다.
저도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읽은 책 두 권 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구요.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옥수수와 나`가 아주 색다르게 야하면서 재미있습니다.
추천합니다.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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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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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유일한 전기는 ‘스티브 잡스’의 것이다. 창의성과 기괴함의 조합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잘 보여주는 책이다. 그 두꺼운 책을 읽고 결심한 건 의외로 소박했다. “그래, 나도 꼭! 아이폰을 사고야 말겠어!” 

내가 읽은 유일한 정본 자서전은 ‘김대중 자서전’이다. 굴곡의 한국 현대사와 함께 한 김대중 대통령님의 삶은 말 그대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이전부터 김대중 대통령님을 좋아했는데,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더해, 탁월한 식견, 국가와 국민,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정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번에 읽은 자서전은 ‘살만 루슈디’의 것으로, 나는 20세기 최고의 문제작 ‘악마의 시’의 작가라는 소박한 설명만으로 장장 824페이지, 1240g으로의 대장정을 떠났다가, 이렇게 피폐해졌다. (T.T)

 

 

 

 

부커상을 세차례나 수상한 『한밤의 아이들』의 저자 살만 루슈디. 행복한 인생의 한 시절을 보내고 있을 즈음, 1988년 발표한 『악마의 시』라는 소설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출판 직후부터 예언자 무하마드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이슬람권의 격렬한 비난을 받게 되고, 급기야 이슬람 시아파 루홀라 호메이니가 루슈디에게 처형을 요구하는 종교명령 ‘파트와’를 선포한다. 그에게 현상금이 걸리고, 그는 끝모르는 도피생활을 하게 된다.

이 책의 제목 <조지프 앤턴>은 도피생활 중 필요에 의해 그가 지은 자신의 새 이름이다. 조지프 앤턴.

루슈디는 자기가 사랑하는 작가들을 떠올리고 그들의 이름을 이것저것 조합해보았다. 블라디미르 조이스, 마르셀 베케트, 프란츤 스턴. 그런 식으로 짝을 지어 목록을 만들어 보았는데 모두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우스꽝스럽지 않은 조합을 발견했다. 나란히 적어보았다. 콘래드와 체호프의 이름. 바로 그것이 앞으로 11년 동안 쓰게 될 이름이었다. “조지프 앤턴.” (219쪽)

 

루슈디에 대한 살해 위협은 자극적인 선동에 의해 이루어졌고, 강력하고, 지속적인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라디오로 들었다. 

 

자신의 책이 불타는 광경을 바라보며 루슈디는 자연스럽게 하이네를 떠올렸다. (그러나 점잖은 체하든 노발대발하든 브래드퍼드에 모인 남자들과 소년들에게 하인리히 하이네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이름이었다.) 책을 불태우는 나라는 결국 사람도 불태우기 마련이다. 나치가 화톳불을 피우기 백여 년 전 [알만조어 Almansor]에 실린 이 예언적인 구절은 나중에 나치가 책을 불사른 베를린 오페라 광장 바닥에 새겨지기도 했다. (176쪽)

 

작가에 대한 적의와 작품에 대한 증오로 인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많은 나라에서 『악마의 시』는 금서로 지정되었고, 이를 번역하던 일본의 이가라시 히토시 교수가 살해당했으며, 노르웨이의 출판사 사장도 공격을 받아 부상을 당했다.

루슈디는 영국의 도움으로 도피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는데, 그를 경호하는 런던경찰청 특수부 A부대의 요원들 뿐만 아니라, 많은 문학계 인사들이 그를 도왔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수전 손택’과 ‘이언 맥큐언’이다.)  자신들의 집에 그를 초대하고, 지방의 별장들을 빌려 주었다. 그는 전화를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를 외면하고, 심지어 성난 군중에 기대어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그를 도왔다.

 

케블라 방탄조끼를 입어보라는 제안도 받았다. 거절했다. 그리고 차문에서 건물 입구로, 혹은 그 반대로 걸어갈 때마다 의식적으로 천천히 걸었다. 종종걸음을 치진 않으리라. 고개를 높이 들고 당당히 걸어가리라.

그는 이렇게 다짐했다. “경호원들이 말하는 이 세상의 현실에 굴복하면 영원히 그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된다.” 경호팀의 세계관은 이른바 최악의 상황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길을 건널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트럭에 치이는 일이고, 그렇다면 길을 건너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날마다 길을 건너는데도 트럭에 치이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불안전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길을 건너야 할 테니까. (233쪽)

 

이 책은 일반적인 자서전의 형식을 따르지 않았는데, 먼저는 본인을 ‘그’의 3인칭으로 지칭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일반적인 자서전이 부모 혹은 조부모부터 시작해서 출생, 성장, 결혼등의 순서로 진행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사건, 즉 살해위협이 시작된 때부터로 시작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기술된다는 것이다.

『악마의 시』를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슬람의 분노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들의 상상력이 지나친 건지, 루슈디의 상상력이 지나친 건지에 대해서 말이다. 작가의 손을 떠난 『악마의 시』는 그래서 아직도 제멋대로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책은 작가를 벗어났다. 작가의 도피생활이 언제 끝나게 될지 이 유명한 책은 알고 있을까.

 

책은 작가의 세상을 떠나면서 변모한다. 아무도 단 한 구절도 읽지 못했을 때부터, 글쓴이 말고는 그 누구의 시선도 스치기 전부터, 책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킨다. 이제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니 더는 작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책이 자유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말해도 좋다. 책은 제멋대로 세상을 여행할 테고, 작가가 간섭할 방법은 없다. 작가 자신도 문장 하나하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제 남들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문장 하나하나가 달라 보인다. 책은 이미 세상으로 나아갔고 세상은 책을 바꿔놓는다. (129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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