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1. 저성장 불황의 시대를 사는 법

그 때가 좋았어, 라고 모든 어르신들은 말한다. 이제 막 4땡의 세계에 진입한 나도 그렇게 자주 말한다. “아~ 나 대학 다닐 때는 진짜 좋았는데.” 그건 그냥 ‘지난 시절’이 좋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때는 진짜 좋았다.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20대들에게 사랑과 위로를...) 말 그대로 그 때는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후로는 만고땡의 시절이었다. 학점은 좋아야 하지만, 학점이 좋지 않아도 괜찮았고, 수업에 들어가야 하지만,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큰 지장은 없었다. 영어 점수가 필요하긴 했지만, 요즘같이 어마 무시한 점수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나만 기억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대학 생활과 제일 가까운 단어는 ‘낭만’이나 ‘CC' 또는 ’동아리‘가 아니라, ’알바‘, ’대출금‘ 그리고 ’취업준비 스터디‘ 정도일 테다. 세상이 변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만약 제가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냥 여름 훈련에 참가하고 장교로 임관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뭐든 됐겠지만 아마 작가는 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에는 분명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제성장률이 10퍼센트를 넘나드는 시절이라 다들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거든요. ... 원래 부모님은 제가 공인회계사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원하셨고 작가가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들이 끝내 밥을 굻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던 듯합니다.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뭐 굶어죽기야 하겠어?’ 그런 마음으로 부모님께 빌붙어 몇 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 지금 같은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면 저도 20년 전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이 있고, 안정적인 직장이 없는 부모 또한 아파트 담보 대출을 떠안고 그걸 매달 갚아나가야 하는 처지였다면, 저 역시 습작보다는 취업에 뛰어들어야만 했을 겁니다. (18-9쪽)

 

지금 같은 시절이었다면, 작가의 길을 가지 못했을 거라는, 습작의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거라는 작가의 말은 그 동안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지금이 얼마나 암울한 상황인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말한다.

이제는 열심히 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 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23쪽)

비관적 현실주의는 인상을 쓰고 침울하게 살아가자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관적 현실주의에는 개인주의가 필수적입니다. (24쪽)

많이 벌고 많이 쓰고 많이 저장하는 삶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비관적 인식하에 지금 여기에서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를 개인적으로, 독자적으로, 개별적으로,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29쪽)

 

돈을 쓰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돈을 벌면서,라고 쓰면 더 좋겠지만, 당장은 가능하지 않으니, 일단은 돈을 쓰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야겠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2. 친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20대,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런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기울이고 영혼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38-9쪽)

 

한국 사회,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문화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만약, 내가 이 이야기를 했다면,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내 친구들은, 같은 반 엄마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모두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김영하는 말한다.

친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이런 정도의 이기심, 이런 정도의 자기애가 없다면, 그런 사람은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항상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소설가를 생각해 보라. 전화하면 언제나 콜!을 외치는 시인을 생각해 보라. 괴팍한 성격의 작가만을 상상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사람 좋은 작가도 사실 상상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다.

다시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작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해야 내가 정상적으로 보일 거라 믿지만)고 하더라도, 친구에게만 인간관계에만 집착하는 것도 그리 권장할 것은 아닌 듯 싶다.

적어도 나는 우리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친구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와 똑같은 톤과 강도로, 그럼에도 친구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가족은 너무나 소중하고, 가족으로 인해 얻게 되는 기쁨과 안정감은 어디에도 비길 데 없다. 하지만, 그런 가정에서조차, 즉 남보기에 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생활에서조차 갈등과 어려움은 존재할 테고, 그럴 때는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가장 안전한 가정에 있을 때조차 사람들에겐 친구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건 사람일테지만, 그것을 이겨낼 위로 역시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책상 서랍에 숨겨놓을 수밖에 없는 글

 

선생님이 쓰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쓸 때, 아이들은 전혀 즐거움을 느낄 수 없죠. 그렇다면 결국 금지된 것을 써야 해요. 선생님이 쓰지 말라는 것을 써야 합니다. 저는 가끔 학생들에게 그렇게 얘기했었습니다. 책상 서랍에 숨겨놓을 수밖에 없는, 그런 글을 써라. 부모가 보면 안 될 것 같은 글. 반대로 말하자면, 부모한테도 보여주고 싶고 선생님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글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죠. (136쪽)

 

 

 

 

위의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보았던 것인데, 보여줄 수 없는 글에 대해서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자기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 희열을 느끼는 글쓰기에 대해서 말이다.

‘문학’이 도덕적 판단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면 어떨까. 문학의 내용과 형식이 모두 교훈적이고, 모두 실용적이며, 모두 합법적이라면 어떨까. 인생의 많은 부분이 그러해야 한다고 말하고, 사실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할지라도 문학마저, 문학 너 마저 그러하다면 우리네 인생은 참,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선생님이 쓰지 말라는 것, 부모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쓰게 될 때, 그 때야 비로서 ‘글쓰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김영하는 말한다. 이 시점에서 잠깐 생각해본다. 보여줄 수 없는 글, 보여주기 싫은 글에 대해서 말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게도 그런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그런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에 대해 쓸 수 있을지, 아니면 마음에만 간직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건 서랍에 넣어두어야겠다. 책상 서랍 속에 잘 넣어두어야겠다.

김영하,라는 이름이 익숙해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은 줄 알았는데, 소설 2권과 산문집 1권을 읽었을 뿐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검은 꽃』,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다음은 2단계 도전리스트다. 언제 만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다리시라. 개봉박두. 

 

                           

 

 

 

 

『너의 목소리가 들려』, 『빛의 제국』,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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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2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관보다 해석 or 결론의 유보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겁이나 우유부단이 되지 않도록 다방면을 살피는 직시가 필요한 터라 이또한 쉽지 않더군요.
비관 자체의 단어를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너무 한면만 생각한다고도 볼 수 있더군요. 니체를 비관주의, 염세주의라 보지만 그걸 도약판으로 종국엔 무엇을 보려 한건가가 중요한 것인데 말입니다.
김영하씨는 비관을 발판으로 현실주의...평소 김영하씨에게 느끼건 이미지와 잘 부합됩니다.

단발머리 2015-04-26 07:3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Agalma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실이 암울한게 사실이더라도 `해석`과 `결론의 유보`가 더 적절하다고 믿어요.
다만 `비관적 현실주의`의 김영하가 ˝아프니까 청춘이야˝거라 ˝네 노력이 부족해서 네가 힘든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더 마음에 들어요.
약간 냉정한 듯 보이기는 해도요^^

에이바 2015-04-2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디 인터뷰에선가 김영하씨가 지금의 젊은 세대였다면 작가가 되지 못했으리라 한 기억이 나요. 그런 사회를 살아가며... 비관적 현실주의와 개인주의가 함께 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지금은 그 안에서 최대한 즐겁고 의미있게 사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모두 공감합니다. 이런 현실이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사회가 경직될수록 우리의 감성은 부드러워야 하지 않나, 그렇지만 노력하기도 전에 말라간다는 생각에 씁쓸하네요. 이런 얘기도 김영하이기에 좀 더 귀기울여 듣고 공감대를 얻어가는 거겠지요. 지식인들이 좀 더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단발머리 2015-04-26 07:4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에이바님.
그런데 암담한 20대, 당장 취직을 해서 대출금을 갚아야하는 20대들이 책을 손에 들만한 시간이 있을지, 마음의 여유가 있을지, 그런 생각을 하면 참 답답하기는 합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아르바이트생이 돈을 아껴 책을 사서 사장님에게 선물했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사장님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책을 선물해야 한다면서요.

김영하처럼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나서줬으면 하는 마음, 저도 동감입니다.

해피북 2015-04-2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글 읽으니 이 책이 읽고싶어지네요 아직 소설 한 권도 안읽어봤는데 도전해보고 싶어졌어요^~^

단발머리 2015-04-27 12:38   좋아요 0 | URL
네~ 테드 강의랑 다른 곳에서의 강의를 묶어놓은 거라서 아주 슉슉 읽힙니다.
저도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읽은 책 두 권 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구요.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옥수수와 나`가 아주 색다르게 야하면서 재미있습니다.
추천합니다.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