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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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가 애정을 담아 그녀에게 말을 걸거나 몸을 만지면, 그녀는 그를 외면하고 내면으로 숨어 들어가 아무 말 없이 견디기만 했다. (107쪽)

 

하지만 고든 핀치의 사무실을 나선 순간부터 그는 알고 있었다. 존재의 작은 중심에서 자라난 무감각한 공간 속 어딘가에서 자기 인생의 일부가 끝나버렸음을. 자신의 일부가 거의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이라서 다가오는 죽음을 거의 차분한 태도로 지켜볼 수 있을 정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300-1쪽)

 

 

 

스토너, 나는 스토너가 행복하기를 얼마나 바랬던지.

나는 스토너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그의 행복이 조금 더 지속되기를 바랬다. 그가 혼자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를 괴롭히는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랬다. 마지막에는, 마지막에라도 그가 편안하기를 바랬다.

나의 소원, 스토너에 대한 나의 소원은 한 가지만 이루어졌다. 스토너의 행복은 금방 끝나버렸고, 결국에 그는 혼자였으며, 마지막까지 그의 고통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졌는데, 결국에 스토너는 편안해졌다. 그는 편안하게 잠들었다.

우리의 인생이 스토너의 인생과 같다고 말할 때, 우리 모두가 ‘한 사람의 스토너’라고 말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 모두는 스토너가 아니기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스토너의 것과 닮아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최고점을 찍고, 최저점을 찍는 삶.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삶. 슬픔과 아픔이 있는 삶. 그럼에도 지진하게 계속되는, 그런 삶 말이다.

갸름하고 섬세한 얼굴에, 날씬하다 못해 부러질 것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 이디스와 결혼했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자신을 만지는 스토너를 외면했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얌전히 책을 보며 스토너에게 가장 편안한 미소를 선물했던 그레이스는 마지막 순간에 그의 눈빛을 모른척했다. 스토너를 문학의 길로 이끌어준 슬론 교수는 마르고 가여운 사람이 되어 스토너의 울음을 뒤로 하고 떠나 버렸다. 평생 동안 우정을 쌓아온 고든은 정신을 잃고 오래전 전사한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스토너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스토너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에 사로잡힌 로맥스는 평생 스토너를 괴롭혔다. 암과의 사투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찾아왔다.

캐서린.

캐서린과의 시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한 때였지만, 그 시간은 정말 한 때였다. 두 사람은 한 몸처럼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아꼈으며, 서로를 통해 완전해졌지만, 하지만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유치한 결론을 고대하는, 그런 결론만을 갈구하는 나에게, 이 진지하고 우아한 소설은 인생 그 자체를 보여준다. 사랑하고, 불화하며, 애정을 갖고, 무관심해지며, 우정이 있었지만, 그 우정도 언젠가는 사그라들고, 불화하고 복수를 일삼으며, 사투를 벌이며, 고통 받는,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삶, 그 자체를 말이다.

해피엔딩에 집착하는 나는, 김연수의 산문집에서 읽었던 이 구절을 떠올리며, 스토너를, 스토너의 인생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혹시나 이뤄질지도 모를 어떤 삶이 내 인생의 목적지가 아니라 어쩌면 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 현실이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지일지도 모른다고. (251쪽) 

 

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현실의 어느 한 지점에 반드시 도달하기 원한다. 하지만, 내게 남겨진 시간 속에서, 내가 원하는 어떤 현실에 끝까지 도달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은 5월이라 이 소설을, 올해 최고의 소설,로 꼽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한데, 이 소설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오래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 소설은 자주 자주, 생각날 것이다. 나는, 책장에서 이 소설을 꺼내서는,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시 읽게 될 것이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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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5-13 1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맨 밑에요, 인용하신 32쪽.
스토너가 문학과 사랑에 빠진 바로 그 순간, 그 때부터 저도 이 책이 좋아졌더랬어요.

단발머리 2015-05-13 14:51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는 스토너 같은 사람이라 스토너의 이런 상태, 문학과 사랑에 빠진 이런 상황을 빨리 눈치채지 못했어요. 그 증세를 읽고 보고 하면서도 말이지요. @@

아무개 2015-05-13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토너는 제 스타일이 아닐꺼라고
알라딘에서 귀여움을 담당하는
어느분이 제게 하신 말씀때문에
망설이고만 있습니다요 (-_ど)

단발머리 2015-05-13 15:00   좋아요 0 | URL
아하하~ 그 분이 그러셨군요~ 사실 저는 `필립 로스` 소설만 연달아 읽던 중에 이 소설을 읽었는데요. 시작이 `옛날~ 하고 먼 옛날~` 이런 식으로 차분하게 나와요~ 끝까지 차분합니다~ 차분한 스타일도 괜찮으시다면 추천하고 싶지만 알라딘 귀여움 담당이신 분이 아무개님 취향을 잘 파악하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ㅋㅋㅋ

다락방 2015-05-13 15:17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도전해 보세요. 도전!! ㅎㅎ

단발머리 2015-05-13 16:04   좋아요 0 | URL
그 분이 아무개님에게 말합니다.
도전해 보세요~~~~~!!!ㅋㅎㅎㅎ

CREBBP 2015-05-13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계속 서재에 올라와도 안사고 버텼었는데.. 어쩔 수 없군요. 잘 읽었습니다.

단발머리 2015-05-13 15: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guiness님 반갑습니다~ 저도 알라딘서재에서 계속 눈팅하다가 읽게 됐어요. 알라딘은 책을 부르는 회오리바람 @@ 아니던가요?ㅋㅎㅎㅎ

CREBBP 2015-05-13 15:11   좋아요 1 | URL
북풀이 더욱 부채질하고 말이죠. 읽지 않고 쌓이둔 책도 많은데 말이죠.

참, 둘러보니 필립로스 광팬이신듯.. 저도 좋아해요. 포트노이의 불평을 재밌게 읽으셨다니 방가방가

단발머리 2015-05-13 16:05   좋아요 0 | URL
ㅎㅎ 북플은 우리 공동의 적인가요? 저는 필립 로스 광팬은 아니구요~~
제가 많이 좋아합니다, 필립 로스. 그 사람
ㅋㅎㅎ호

AgalmA 2015-05-14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진지한 작품 말씀하시는 자리면 포카칩을 치우고 사진을 찍으실 만도 한데, 이 글은 포카칩 사랑 인증도 하시는 걸로....
(엉뚱한 걸 보는 이 주책...)

단발머리 2015-05-14 07:3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제가 어제 이 글 올릴때는요, 너무 배가 고파서 포카칩이 그리 사랑스럽게 보이더라구요.
Agalma 님 댓글 읽어보니 진짜 글이랑 사진이랑 안 어울리는 것 같아, 내심 마음이 혼란스럽군요. @@

북극곰 2015-05-19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필립 로스 떠올렸는데, 저는 필립 로스가 더 좋았어요. ^*^

단발머리 2015-05-19 14:27   좋아요 0 | URL
헤헤헤~~ 정말이요? 북극곰님~ 우리 앞으로 필립로스 이야기 많이 많이 같이 나누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