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브라질 캄포 베르텐데스 카투아이 허니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만 이상한가? 브라질 원두는 피해야겠다. 올해 최악의 원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내가 먹은 것들이 담겼던 용기들을 까만 바다에 씻었다

바다는 창문 만하다

까맣게 채워진 네모

무언가의 타는 향에 묻혀 비릿함은 닿지 않고 

낮 동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인

그 까만 물에 오늘의 흔적을 지워 나갔다

하루치 성실을 보상받기 위해

바다에 씻었다

내일은 내 몸을 바다에 씻자


이만한 크기의 바다에 어디까지 헹궈내고 개운한 착각에 빠질 수 있을까

자꾸 까맣게 흐려지는 바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자

아무도 답을 모르니 괜찮다는 대답을 내가 해버리자


내일의 태풍을 같이 견디고 여전히 창문만한 바다에 의문을 덜어내고 내일을 씻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년, 젊은 작가상 대상을 받은 이미상 작가의 글은 소설집에서 먼저 읽었지만 인터뷰가 궁금해서 샀다. 

인터뷰어 '이소'의 질문이 정말 좋았고 좋은 질문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이미상 작가의 말이 좋았다. 

이야기의 강렬함에 비해 쉽사리 외워지지 않아 '모험'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제목이었는데 닮은 네모들이 

굴러가고 있는 모양으로 보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젠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과연 모난 부분이 있고 덜커덩 굴러가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기차의 형상인 거 같아 내 마음에도 들었다. 

인터뷰 글의 전형적인 고루함을 싫어하는 나에게 이 인터뷰는 좋고 또 좋았다. 

좋다는 걸 나열하는 건 지루하고 게으른 글로 보여 싫어하지만 내가 써보니 확실해지는 마음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글쓴이인 나에게만큼은. 

그래서 다들 좋음을 전시하겠지. 지겨울만큼


이미상 작가의 단편들 중 '여자가 지하철 할 때' 

이건 내 취향 아니었고 지루했다. 전부를 좋아할 순 없다. 


홈스쿨링으로 소설 공부하고 썼다는 이미상 작가만의 독특함을 요즘 가장 좋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클라이밍 위픽
김원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마음에 남겨주는 게 결국은 소설이라는 걸 산산이 부서질 듯한 눈썹달이 뜬 밤 목격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절판


<먼 북소리>에서 하루키가 말했다. 관광객도 아니고 소속도 없이 그저 머물기 위한 유럽 생활에서 ‘상주하는 여행자’였다고. 수많은 여행 에세이들 중 내가 직접 경험하고 자란 만큼 낡아버린 이야기는 버려졌다. <먼 북소리>는 남아 내가 모르는 이곳까지 따라왔다. 언젠가 다시 읽고 싶어지는 순간이 올 거라 믿었고 10년이 흘렀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마음에 품고 지내면서 한낮의 꿈을 꿨다. 낯선 것들에 둘러싸여 매일의 새로움에 감탄하는 삶은 막연한 허상이었다. 나는 현실 안주에 더욱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인지라 멀리 가지 못하고 맴돌았다. 반복되는 모퉁이에서의 삶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꿈을 꾸었고 하루키의 문장들을 사랑하면서 계속해서 책을 읽었다. 순간순간 필요한 조언들은 모두 세상의 책들에 있었다. 잊힌 것들이 더 많지만. 


뜨거운 여름날, 아무도 우리를 알지 못하는 남해의 바다로 이주했다. 이국의 땅으로 떠나온 것은 아니지만 영어보다 낯선 사투리, 처음 목격하는 곤충과 조류, 바다 풍경은 충분히 새로웠다. 형체 없던 어떤 기운이 피부에 달라붙어 끈적이는 기분으로 걷는다. 


호기심과 당혹감이 버무려져서 알 수 없는 맛을 느끼는 시간 속에서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었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라서 그런지 서울을 향한 그리움은 지난 6개월 동안 없었지만 나에게 도시라는 공간은 떠나오니 더 궁금해지는 곳이었다. 의식하지 못한 채로 당연한 기준으로 여겨졌던 많은 것들은 여기의 낯섦과 겹치면서 의문을 만들고 어떤 자국으로 남았다. 자국의 모양은 계속 변하고 있다. 매일의 파도와 풍경이 바뀌듯이 말이다. 


내가 떠나온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시골의 생활이 외롭지 않은지, 서울이 그립지 않은지, 넘치도록 자유로운지, 고립감에 괴롭지 않은지, 서로 다른 기대를 품고 묻곤 한다. 

그때 답해주고 싶은 문장이 있었다. “도시건 시골이건, 어디에 있어도 상황은 바뀌지 않아요. 나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옮겨다닐 뿐이니까.” (P.287)


어디에 있든 불안과 안정 모두를 끌어안고 있고 고요한 채로 소란한 마음을 토닥이며 긴 밤을 흘려보내고 있다. 


다시 한번 비 내리는 바다를 머릿속에 그려보기로 한다. 그 고요한 풍경이 지나치게 왕성한 성욕을 조금은 가라앉혀줄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다. 하지만 바닷가의 이미지가 좀처럼 뇌리에 되살아나지 않는다. 나의 의지와 성욕이 각기 다른 지도를 손에 들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기분이다. (P.81)


어느 방향이 맞는지 모르기에 혼란스러운 기분이 이 장면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밤이 가장 긴 절기라는 동지. 오늘 오렌지색 석양과 파삭 깨질 듯 파란 하늘의 경계가 선명했다. 밥그릇 모양으로 뜬 반달은 뻥 튀겨진 별처럼 밝아 까만 물의 표면에 노란 비단길을 만들었다. 바다는 까맣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밤, 바다 너머 멀리에 작고 반짝이는 건물과 다리,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이 있다. 조금 멀리 놓여있는 크리스마스트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반짝이는 오너먼트들처럼. 창을 사이에 두고 달과 마주한 밤. 내 앞의 벽이 ‘부드러운 젤리층’처럼 말캉말캉, 흐물흐룰해지는 상상을 한다. 

그럼 내가 벽을 통과할 수 있을까. 


벽이 했던 말이 또 들린다. 

“너희는 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설령 하나를 통과하더라도 그 너머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다. 무슨 짓을 하든 결과는 똑같아.” (P. 206)


<먼 북소리>에서 37살의 하루키가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극심한 피로로 들었던 환청과 같다. ‘아무리 멀리 가도 소용없어, 붕붕붕붕. 어디로 가든 우리는 끝까지 따라갈 거야. 그러니까 당신은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머릿속 벌들이 날아다니며 하는 말이다. 젊은 날의 질문과 부정적인 대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불안에 조금 더 세심하게 답해주는 73살의 하루키 목소리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이야기 속에 살아있다. 변하지 않은 하루키를 여전히 좋아한다. 매순간의 풍경과 닮은 공간에서 충분히 상상 가능한 나의 이야기였고 결국 ‘유효한 조언’이었다. 


나의 반복적인 읽기와 쓰기, 오래 응시하기 위한 산책, 있는 그대로의 사건들 틈에서 나를 상대화하는 시도, 반복과 의식으로 쌓이는 하루, 모두 ‘헛일’이 아니라는 아주 긴 조언과 응원을 받은 기분으로 잠에 빠져들 것이다.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내일이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