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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낸 시간만큼 오래 곱씹었을, 그만큼 조심스러웠을 비밀의 누설이 속도감 있게 숨가쁘게 읽힌다는 건 무슨 아이러니일까. 하나의 물줄기만을 최대한 집요하게 들여다본 그는 지겨울만큼 느린 그 물의 흐름이 정지되어 썩어가는 건 아닌지 상념에 휩싸였다. 너무 오래 지켜본 후 결국 먼지를 훌훌 털면서 잠시 일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 자신이 본 바를 전했다. 사실의 조각이기도, 오해이기도, 마모된 거짓이기도, 반듯한 이해이기도 한 이야기를.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이야기의 마침표를 만나고 나는 마치 물에 빠진 기분이란 걸 깨달았지만 젖은 채 우두커니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물기가 마르는 동안 생각했다. 미쳐버릴 정도로 느렸다고 들었던 물줄기가 나에겐 왜 폭포수가 된건지를. 그 비밀은 뭔지를. 멀리 가지 않고 주위를 맴돌 것이다. 결국은 바삭하게 말라버린 몸으로도 결코 잊지 못하는, 내가 목격한 그의 표정과 풀풀 날리는 먼지의 정체에 대해서를. 내가 여전히 물줄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파편적으로 남은 기억을 만지작거리면서 또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건 분명하다는 믿음을. 









구술 문학의 문체를 지닌 영화감독 샹탈 아케르만의 자전적 소설. 

인터뷰이의 자리를 서로 경쟁적으로 차지하려고 드는 여러 여자들의 목소리는 거미줄처럼 직조된다. 아니 그 거미줄안에 모두 갇혀있는 꼴이다. 자리 바꿔보기는 너무 뻔하고 그 한계가 명확해서 지루하기까지 한데 샹탈의 문장은 끊김으로서 리듬을 만들고 읽어내게 한다. 한 문장 안에서 발생하는 기이한 읽기의 중단은 삶의 고비마다 발생하는 단절과 닮았다. 단절 속에서 서로를 닮아가는 가족의 모습은 너무 괴기하고 평범하다. 


한 자리에 앉아 글을 쓰기보다는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만들었던 샹탈 아케르만의 첫 소설은 짧고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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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콩가 아메데라로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11월
평점 :
품절


묵직한 단맛으로 시작해서 입을 씻어내는 산뜻한 허브차를 마신 기분으로 끝난 오늘의 커피. 내일도 기대되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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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인 모든 일들을 겪어냈고  우리는 그 시간을 함께 견뎠다. 

이미 모두가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 내 생애 가장 짜릿하고 쫄깃했던 결말이 여기 있다. 


통쾌한 4월 4일 저녁,

할머니가 뚝닥 연탄불에 구운 생선과 돌솥밥을 내어주는 밥집에 갔다. 

우리가 반찬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먹는 동안

벽에 걸린 티비에서 '파면' 멘트가 반복해서 들렸다. 할머니는 그 말에 답하듯 재깍 채널을 돌려버렸다. 

속내가 궁금했다.

나와 다를지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내가 할머니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 나를 감싸고 있었으니까. 

이제 결정문도 어제의 밥처럼 맛있게 씹어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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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 안에서 조용하게 일어나는 반항으로 인해 만들어진 확신의 흔적이다. 어제보다 선명하다 여겼다가 쓱쓱 없애기 위한 의미 없어보이는 반복이다. 습관처럼 읽고 쓰는 건 흔적을 만들기 위한 방편 중 하나일 뿐이다. 산책 중의 우연한 만남처럼, 오늘의 커피를 마시면서 이어지는 헝클어진 생각처럼. 나만 아는 수치심을 지워나가기 위한 멀고 먼 길이다. 형체 없는 믿음을 끌어안는 일은 손톱을 물어뜯는 막막함과 같다.  


한 사람을 봤다. 삶은 언제나 다양한 종류의 불안으로 가득하지만 어떤 종류의 두려움은 스스로 없앨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안도했다. 그건 어떤 거창한 해방도 대단한 풍요로움도 아니라고 했다. 그저 두려움의 일부를 없애나가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인생을 긍정하는 방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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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변화 시키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대체로 싫어한다. 귀찮아서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진 않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어가거나 글쎄,라는 말로 냉소를 표한다. 긍정의 단계에서 나는 조금 변한다. 엄청난 변화일지도 모르지만. 냉소로 넘어가는 지점에 대해 고민한다. 그건 확률적 현상들의 집합이라 언제나 분명하지 않음으로 끝나는 쳇바퀴다. 


끈적이는 감정의 연속선 위에서 내 기억의 파편들은 불쑥 튀어나오고 재구성을 반복한다. 지금의 나는 누구에게 감정이입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넘어가는 일이 소설을 읽는 재미라 할 수 있다. 나는 언젠가 또 변할 것이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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