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낸 시간만큼 오래 곱씹었을, 그만큼 조심스러웠을 비밀의 누설이 속도감 있게 숨가쁘게 읽힌다는 건 무슨 아이러니일까. 하나의 물줄기만을 최대한 집요하게 들여다본 그는 지겨울만큼 느린 그 물의 흐름이 정지되어 썩어가는 건 아닌지 상념에 휩싸였다. 너무 오래 지켜본 후 결국 먼지를 훌훌 털면서 잠시 일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 자신이 본 바를 전했다. 사실의 조각이기도, 오해이기도, 마모된 거짓이기도, 반듯한 이해이기도 한 이야기를.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이야기의 마침표를 만나고 나는 마치 물에 빠진 기분이란 걸 깨달았지만 젖은 채 우두커니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물기가 마르는 동안 생각했다. 미쳐버릴 정도로 느렸다고 들었던 물줄기가 나에겐 왜 폭포수가 된건지를. 그 비밀은 뭔지를. 멀리 가지 않고 주위를 맴돌 것이다. 결국은 바삭하게 말라버린 몸으로도 결코 잊지 못하는, 내가 목격한 그의 표정과 풀풀 날리는 먼지의 정체에 대해서를. 내가 여전히 물줄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파편적으로 남은 기억을 만지작거리면서 또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건 분명하다는 믿음을.

구술 문학의 문체를 지닌 영화감독 샹탈 아케르만의 자전적 소설.
인터뷰이의 자리를 서로 경쟁적으로 차지하려고 드는 여러 여자들의 목소리는 거미줄처럼 직조된다. 아니 그 거미줄안에 모두 갇혀있는 꼴이다. 자리 바꿔보기는 너무 뻔하고 그 한계가 명확해서 지루하기까지 한데 샹탈의 문장은 끊김으로서 리듬을 만들고 읽어내게 한다. 한 문장 안에서 발생하는 기이한 읽기의 중단은 삶의 고비마다 발생하는 단절과 닮았다. 단절 속에서 서로를 닮아가는 가족의 모습은 너무 괴기하고 평범하다.
한 자리에 앉아 글을 쓰기보다는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만들었던 샹탈 아케르만의 첫 소설은 짧고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