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읽지 않은 책을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이 책을 꺼낸다.
나는 무력하고 우주는 내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생각과, 나는 독재자이며 모든 사람이 나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무력한 신체, 자기애, 유아기적 나르시시즘의 조합이 그 모순을 만들었다. (106쪽)
혐오의 기저에 두려움이 존재하고, 이것은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인간 아기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보복 없이 저항하는 분노, ‘이행 분노’에 대해 읽는다(124쪽) .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거부한 검찰총장의 행태가 직무 정지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는 법원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종편 방송을 주로 보시는 아버지는, 너는 아무 것도 모른다 하시고, 포털만 보는 아이는 엄마가 틀렸다고 말한다. 김어준의 뉴스 공장과 김종배의 시선 집중을 보는 나는, 그냥 말을 안 한다. 어떤 검찰인가. 어떤 검찰총장인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고, 박근혜를, 이명박을 구속시킨 검찰 아닌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날카로운 칼을 자신의 조직을 위해서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그런 검찰 아닌가. 중립의 의무를 위반한 채 피의자에게 여권인사의 이름을, 여권인사의 이름만 대라,고 말하는 검찰 아닌가.
보수 쪽 인사가 정치 프로그램에서, 검찰 개혁이 일반인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했다. 맞다. 검찰 개혁이 지금의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난 검찰에 불려갈 만큼 큰 사고를 칠 만한 사람도 못 되는데. 하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미쳐 날뛰는 검찰과 검찰 받아쓰기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언론을 보면서 검찰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진실을 왜곡하는데 언론이 얼마나 열심인지를 새삼 알게 됐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아무나 욕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무도 좋아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중도라는 자리에 있으면 좋을 텐데. 국정 농단일 때는 박근혜를 욕하고, 박원순 시장 사건 때는 박원순을 욕하고, 방역이 잘 될 때는 잘한다 칭찬하고, 백신 문제가 불거지면 문재인을 욕하고. 그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는데. 2004년,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되지도 않는 이유로 탄핵했던 세력이 야당이었다면, 이제 검찰이 그렇다는 걸,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거스르고 있다는 걸, 기껏해야 자신의 명예를 위해 공부하고 사시에 합격한 한 줌의 검사들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는 걸. 나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분노한다고, 내가 걱정한다고 바뀌는건 없는데. 그런데도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동지가 지났어도 밤이 길다.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