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장편소설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7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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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가를 먹이를 찾는 야수처럼 배회하고 어느 창녀를 외지의 모텔로 데리고 가는 이야기는 - 형에게로 - 그리고 그 속에서 튀어져 나오는 사유의 진한 뱉음과 그 둘을 의도된 반복과 머릿속의 사고 과정 자체를 그대로 풀어버리는 듯한 서사는 - 수사와 기교를 부리지 않은 듯 -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 이상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그리고 절정에 이른듯한 자극으로 책장을 넘기게 했다.

'나'와 '형', 형의 여자친구 '순미', '어머니', '아버지'들은 한 집안에는 있지만 종이 다른, 화분 속의 뿌리와 제각각의 시기에 필 꽃을 감추고 있는 식물들과 같이 자신들의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사랑의 보편성

진공상태로 포장되어 있는 사랑이란 없다.

모든 사랑은 상황 안에서의 사랑인 것이다. 모든 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 때문이다." p61


그리고 그 어울릴 수 없는 아니 같이 있기에는 -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포장해서 - 보편성을 무장한 세인들에게 비난을 면치 못할 것 같은 그들의 사랑은 동물들이 보기에는 생명은 있으나 활동할 수 없는데 왜 존재하는지 의아해하는 식물처럼 공존해 있다.

'꿈' 이라는 초현실을 빌려서야만 움직일 수 있는 그 식물들이 - 나무들이 - 일상에 믿을 수 없게 나타난 신들의 도움을 받아 움직이듯 그들 각자의 사랑을 풀어나가고 알아간다.


"문학이란 언제나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교란시키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p274 해설 (신형철)


우리들은 - 아니 최소한 나는 - '보편성'이라는 편리한 무장으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사고와 마음이 현화된 단어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뭉쳐져 있는 사회와 그 사회의 현상들을 바라본다. '판단' 이라는 행위는 그 '편리함'에는 걸맞지 않다.

이 책은 - 다른 많은 책들 그리고 그것이 속한 또는 포함한 문학 - 그 편리한 보편성 - 특히 사랑에 대한 - 을 불편하게 헤집어 준다.

열명이 모인 주간회의에서 끄덕끄덕 동의하는 - 그 동의하는 대상이 그 행동이 무엇인지 모를,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 사람들 속에서 소심한 의구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번역서에 맹목적이었던 나에게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에 이은 '식물들의 사생활'은 '모국어로 잘 쓰여진 책'을 읽게 독려해주고 이 책에 거론된 '변신 이야기'를 구매해서 책장에 놓이게 했다.


뜬금없지만, 지금은 연말이다. 이 책 속의 물푸레나무가 현화된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어도 멋질 것이고 그 사람의 곁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어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무엇을 해도 좋으니 그저 가만히 앉아 신의 조력으로 조금은 동물스럽게 움직이는 식물이 되어보면 좋을 것 같다. 자신에게, 타인에게.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소리나는 쪽으로 몸을 돌리는 그녀의 동작이 느린 화면처럼 p26

그녀는 마치 우리가 그곳에서 만날 약속이라도 되어 있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대꾸했다. 어찌나 태연한지 내가 잊어 먹은 약속이 실제로 있었던 게 아니낙 의아스러워질 지경이었다. p26

충동 앞에서 분별력은 열등하다. p27-28
충동은 분별력 보다 빠르다. p28

어둠이 완강했다. p42

형의 침묵이 너무나 단단했다. 나는 그의 기분을 보호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그 판단이 나의 두려움보다 우세했다. p44

사진을 찍는 자는 카메라의 앵글이나 초점을 통해 자신의 시각과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다.
윤리적 앵글이어야 하고 도덕적 초점이어야 한다. p52

사랑의 보편성
진공상태로 포장되어 있는 사랑이란 없다.
모든 사랑은 상황 안에서의 사랑인 것이다. 모든 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 때문이다. p61

우리가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상대방이 이미 고유한 배역을 맡고 있기 때문이며, 나 역시 고유한 배역을 맡은 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역할극의 무대다. 세상으. p81

공개되지 않은 일부는 공개된 전부보다 항상 크다. p147

몸이 말했다. 몸이 가장 정직하고 가장 확실하게 말했다. 몸보다 정직한 말은 없었다. 몸보다 확실한 말도 없었다.
...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랬지, 사랑느 두 개의 몸이 최최의 하나의 몸을 찾으려는 욕망이고 추구라고,
...
플라톤이 향연에 썼지요. 처음에 사람은 얼굴이 둘이고 손과 발이 넷이고 눈이 넷이고 생식기가 둘이었지. 그런데 사람들이 신들에게 도전을 하니까 궁리 끝에 제우스가 사람들의 몸을 둘로 쪼갰다지. p159-160

난 언제나 한자리에 있을 거에요. p163

사랑은 모든 상황과 문제에 대한 유일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p195

모든 나무들은 좌절된 사랑의 화신이다. p218

이곳은 지상에 없는 곳이에요. p223

나무가 아니고 창녀가 아닐 때는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을 나무가 되고 창녀가 되어서 이루려고 한다. p224

문학이란 언제나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교란시키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p274 해설 (신형철)

`구축`이 아니라 `해체`의 에너지
사랑을 해체하는 사랑소설이었다. p275 해설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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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2-24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딩님이 글에 언급한 `변신 이야기`가 오비디우스가 쓴 신화집인가요?

초딩 2015-12-24 22:34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그래서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를 구했습니다. 즐거운 이브 되세요~
 
안나 카레니나 2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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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을 막 읽기 시작했는데, 예상하건대 2권이 가장 밑줄을 많이 그은 책이 될 것 같다.


죄와벌을 읽고 나서인지 톨스토이의 사건 전개는 무척 빠르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장이 끝날 때 마다 두터운 남은 페이지와 다음 권들을 보며 톨스토이는 무엇으로 그것들을 채워나갈 것인지 그의 동료처럼 걱정되었다. 저 페이지들을 어떻게 다 읽지라는 걱정과 함께 말이다.

1권에서 뿌려 놓은 씨앗들이 2권에서 - 아직 2권만큼 그리고 1권보다 더 두꺼운 3권이 남아있는데도 - 결실을 맺기시작한다. 2권의 중반이 되기도 전에 절정을 지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1권에서 제기되었던 러시아의 이 대문호가 내정한 주인공이 안나와 브론스키가 아니고 키티와 레빈이라는 의문이 2권에서는 확답을 얻은 것 같을 정도로 '레빈'에 대한 내/외적 서사와 그를 둘러싼 전개가 드라마적 요소를 잔뜩 품은 채 진행된다.

찔끔찔끔 거론되었던 1800년대 후반의 변화된 농업과 농민에 대한 고찰이 속 시원한 장대 장맛비처럼 몇장에 걸쳐서 레빈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가페적 사랑부터 자책적 사랑 알콩달콩 질투, 시기 가득한 사랑, 달콤한 사랑의 결실까지 온갖 사랑 또한 레빈과 키티를 통해서 다루어진다.

플라톤의 대화편보다는 진솔하고 인간적인 '대화'가 레빈과 그의 이복형 세르게이 사이에서 벌어진다. 아주 송곳같이.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의 그 죽음마저도 레빈의 형 니콜라이가 죽음으로써 결국 또 레빈에 의해서 다루어진다.


레빈, 레빈, 레빈으로 가득한 2권에서 그 얼마 남지 않은 부분마저도 백마를 타고 나타나, 자신의 성장 과정과 내면을 드러냄으로써 20살 연하의 아내를 둔, 일과 자기의 체면밖에 모르는 찌질하고 밴댕이 속을 가진 알렉세이 - 안나의 남편 -의 대변신으로 채워진다. 인기투표에서 동순으로 맨 아래에 있던 그가 레빈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최고의 남자'가 된다.

물론, 알렉세이의 그 성스로운 변신에 브론스키와 여행을 떠난 안나는 더욱 저열하게만 보일 뿐이다.


톨스토이 자신을 무척이나 이입시킨 레빈을 살펴보며 내가 지금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2권을 지나 3권에 몰두해 읽고 있다. 소설책이 이것이 처음이고 유일한 것처럼.

그에게 말이란 눈으로 본 것으로부터 그 아름다움을 빼앗는 것이었다. p16

육체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내 성질은 아주 못쓰게 돼버린다. p29

난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p84

자기가 아무리 애써보아도 결국엔 자기 자신보다 강해질 수는 없으리라는 것 p115

만약 그가 이 소식을 들음과 동시에 단호하고 열렬하게 한순간의 주저도 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와 함께 가자고 말했다면, 그녀는 아들을 버리고 그와 함께 떠났을 것이다. p156

구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농민이 가난하게 되는 원인 그 자체에 있지 않은가 말이야. p200

교육이 민중의 복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복지야말로 교육의 발달을 위한 필수조건임을 증명하면서 사회의식의 발전에 대하여 쓰고 있다. p200

불행은 혼자 찾아오지 않는다. p250

결과를 바라는 자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법이니까요 p263

당,그,일,잊,수,있,그,용,수,있.
당신이 그때의 일을 잊어주실 수 있다면, 그리고 용서해주실 수 있다면.
p319


나는 다만 하느님이 용서의 행복을 내게서 빼앗아가지 않기만을 빌고 있습니다! p350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일어나서 간신히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젖먹이 옆으로 다가갔다. p362

자기가 무엇을 보고 그를 사랑하는지 그 이유까지도 설명했다. 그녀는 그에게 자기가 그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가 사랑해줄 것을 잘 알고 있고, 또 그가 사랑하는 것이 모두 훌륭한 것뿐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p410

당신의 그리스도는 신인이 아니고 인신이라는 겁니다. p464

그러나 불만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그 불만의 원인에 대해서 누군가 다른 사람을, 그중에서도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탓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p486

고통은 일정한 속도로 그 도를 더하면서 착착 자기의 일을 행하여 그를 죽음으로 이끌고 갔다. p518

아버지와 교사가 자기들의 물레방아를 돌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물은 이미 오래 전에 새어나가 다른 수로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p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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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2015-12-21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에야 완독했습니다. 갈수록 흥미가 생기는 책이네요 비록 정말 마음에 드는 인물은 없었지만요.. 혹시 스포가 될까봐 나중에 다 읽으시면 보세요~^^

초딩 2015-12-21 23:57   좋아요 0 | URL
3권 중반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인물이 많이 나와 백년의 고독 가계도가 그립습니다 ㅎㅎㅎ

방랑 2015-12-22 00:01   좋아요 1 | URL
러시아 소설은 읽다보면 등장인물이 정말 헷갈려요. 애칭으로도 부르고 알렉세이가 몇 명 나오기도 하죠.. 한 인물이 두 세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cyrus 2015-12-21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기하네요. 방랑님과 초딩님이 같은 날에,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책에 대한 글을 읽어보게 되는군요. 그런데 저는 아직 이 유명한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ㅎㅎㅎ

방랑 2015-12-21 22:03   좋아요 1 | URL
러시아 문학은 겨울에 읽으면 딱이지 않을까 싶어서 아껴두었다가 읽었습니다ㅎㅎ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여기저기 나오더군요,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라는 영화에서도요.

초딩 2015-12-21 23:58   좋아요 0 | URL
제가 시작할 때 즈음에 방랑님이 읽고 계셔서 깜짝 놀랍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읽다보니 문동 세계문학 첫권임도 알았습니다. :-)

AgalmA 2015-12-22 23:28   좋아요 0 | URL
저도 신기... 약속이나 한 듯이 그러셔서ㅎㅎ
두 분이 <안나 카레니나> 뿜뿌 제대로;;
 
안나 카레니나 1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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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인 안나와 브론스키보다 키티와 레빈 그중에서도 레빈에게서 가장 순.수.한 인간적인 면모를 보게 된다. 마치 이 두터운 책의 의도된 주인공처럼.  무의식까지 뿌리내린 감정을 덮기 위해 당장 둘러싼 현실에 몰입하지만, 단 한 순간에 무의식의 감정이 시험공부 중 외도한 취미 활동 - 평소 잘하지 않는- 을 일갈하듯이 키티를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한 레빈에게서 어린아이 같다는 연민도 느끼게 한다.

안나, 브론스키, 알렉세이 (안나 남편), 오블론스키 (안나의 오빠), 돌리 (오블론스키의 아내이고 키티의 언니) 등 수 많은 인물들은 한쪽 극의 첨단에 점철되어진 인물들이다. 또는 그 극으로 잘못 치우친 그래서 비극과 갈등을 가진 인물들이다. 그런 인물들에게서 아직은 어느 한쪽 꼭지에도 덜 물들은 키티와 레빈에게 우리는 주인공다움을 애써 느낄지도 모른다. 특히 이미 백지장에 그림과 낙서가 많이 그려진 사람들은.

문학동네가 세계문학전집의 그 첫 번째 책으로 삼은 안나 카레니나 1,2,3. 1800년대 후반의 급변하고 있는 러시아 사회에서 - 1800이란 숫자는 2015년이든 2020년이든 어떤 것으로도 바뀔 수 있는 - 그려지는 인물들에서, 나를 또 누군가를 대입시켜보기도 하고 아직은 백지장 같은 레빈과 키티를 동경도 해가며 나는 2권을 읽고 있다. 톨스토이라는 대문호가 자신을 실험해가며 쓴 이 역작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찾고 싶지 않지만 레빈처럼 그것을 덮을 수도 없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p7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p11

우리에겐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권리가 없어...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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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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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덕으로 모두가 사진작가가 된 세상에 꼭 읽어볼 만한 책. 사진작가뿐만 아니라 사상가에게 끊임없이 레퍼런스되는 뭘 좀 아는 세계적인 사상가의 비문이 셔터를 누르는 손과 사진을 보는 눈을 파르르 떨게 만들어줍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칼날 같은 사유의 절정에 푹 빠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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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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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의 인간이 창조한 괴물이나 로봇이 제재가 된 소설, 영화 등에 소재 자체뿐만 아니라 창조주와 - 어리석은 인간을 말할 때가 많은 - 피조물과의 갈등 그리고 작품 전체에서 던지고 싶은 철학적 메시지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프랑켄슈타인'.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인 줄 알았다. 특히 역사각형의 넓은 이마와 - 그래서 덜 지적이고 잔인함이 느껴지는 이마 - 용도를 알 수 없는 양쪽의 그로테스크한 나사못 그리고 사람이라면 참을 수 없었을 것 같은 크게 꿰맨 자국이 괴물이 남겨준 강한 인상이었다.


무심결에 넘겨본 첫 페이지는 영화에서 자극적으로 포장된 괴물의 인상을 일갈해버렸다.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고?

- 실낙원"

p5, 페이지 번호가 없던 최초의 페이지들 중에서


그리고 곧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고 그것을 만든 영특한 과학자였음을, 그리고 괴물은 넓은 이마도 나사못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흑발은 출렁거렸고,"

p72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가난과 낭만으로 가득한 유랑생활을 한 메리 셸리가 20대 초반에 쓴 이 책은 - 1818년 책으로 출간 -,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서간 형식으로 회상되어지는 것을 쫓는 것도 재미있지만,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일곱개의 뺨' 처럼, 덮어둘 수만은 없는 '문제'들에 대해 송곳 같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구중의 자물쇠를 채운 금고에 꽁꽁 숨겨둘 비밀 일기가 - 하지만 이것도 영원히 온전한 비밀을 약속할 수 없을 것이다 - 아닌 이상, 창조자의 창작물은 창조주 이외의 사람들과 관계되어질 것이다. 또한 그 산물을 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문학이든 과학이든 그 산물 자체에 인격을 부여할 만큼 그 '산물' 자체의 희로애락도 논하게 만든다. 불이 뜨거운지조차 모르는 '갓난아기' 같은 '괴물'이 창조되자마자 세상에 버려지고 홀로 성장해, 창조주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그 창조주가 자신을 외면했음에 분노해서 위해를 가하는 고뇌하는 괴물을 보면 '연민'의 감정마저 생긴다.

셸리의 과학적이고 천박하지 않은 기법은 '프랑켄슈타인'을 동정하지 않게 만든다. 읽는 이로 하여금 창작자의 항구를 떠나 '릴리즈'된 '창작물'이 자신의 예상과는 - 제대로 무엇을 예상 했는지도 모를 무책임한 창작자 - 다르다고 방기한 그를 비난하게 만든다. 지적호기심과 탐구심 그리고 그것에 대한 열정은 뜨겁지만 나약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유부단하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동정표 따위는 행사하기 힘들게 만든다.

나는 문학 작품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방망이를 깍듯이 무엇을 만드는 사람으로써 이 책은 편하게만은 읽히지 않았다.

언제든지 나의 창작물이 '괴물'이 되어 그것의 사용자에게 또 나에게 언제 위해를 가할지 모를 일이다 - 아니 이미 경험한 것 같다.


나는 내 창작물이 '괴물'이 되어가는 것을 '방기' 했는가?


"악마!"

p131


"나는 불행하기 때문에 사악하다."

p194


나는 내 창작물에 '연민'과 '공감'을 느꼈는가?

나는 도대체 '나'만을 위해서 구중의 자물쇠로도 꽁꽁 숨길 수 없는 창작물을 만들어 냈는가?


라는 질문들을 무수히 하며 읽었다.

그리고 강렬한 울림을 준 밀턴의 실낙원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


밀턴의 실낙원 p141





"결국 때가 되면 비탄은 필연이라기보다 일종의 자기만족이 된다."

p54


"지식의 획득이 얼마나 위험한지, 본성이 허락하는 한계 너머로 위대해지고자 야심을 품는 이보다 고향을 온 세상으로 알고 사는 이가 얼마나 더 행복한지를."

p65


"정말로 인간이란 그토록 강력하고 그토록 덕스럽고 훌륭한 동시에 그토록 사악하고 천박하단 말인가?"

p159


"폐인이 된 지금도 이토록 고아하고 신과 같은데 전성기 때는 어마나 영예로운 사람이었을까요."

p286


"많은 평자들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창조하는 과정이 신에게 도전하는 과학자의 과도한 야망을 보여줄뿐 아니라 작나가 예술가가 품는 창작의 불안을 투영하는 은유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괴물을 창조한 '불경한 기예 (unhallowed art)'에서 'art'라는 말이 기술과 예술 모두를 아울러 칭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p311 - 312, 해설


"괴물의 얼굴들은 모두가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

p312, 해설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고?
- 실낙원"
p5, 페이지 번호가 없던 최초의 페이지들 중에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흑발은 출렁거렸고,"
p72

"악마!"
p131

"나는 불행하기 때문에 사악하다."
p194

밀턴의 실낙원 p141

"결국 때가 되면 비탄은 필연이라기보다 일종의 자기만족이 된다."
p54

"지식의 획득이 얼마나 위험한지, 본성이 허락하는 한계 너머로 위대해지고자 야심을 품는 이보다 고향을 온 세상으로 알고 사는 이가 얼마나 더 행복한지를."
p65

"정말로 인간이란 그토록 강력하고 그토록 덕스럽고 훌륭한 동시에 그토록 사악하고 천박하단 말인가?"
p159

"폐인이 된 지금도 이토록 고아하고 신과 같은데 전성기 때는 어마나 영예로운 사람이었을까요."
p286

"많은 평자들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창조하는 과정이 신에게 도전하는 과학자의 과도한 야망을 보여줄뿐 아니라 작나가 예술가가 품는 창작의 불안을 투영하는 은유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괴물을 창조한 `불경한 기예 (unhallowed art)`에서 `art`라는 말이 기술과 예술 모두를 아울러 칭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p311 - 312, 해설

"괴물의 얼굴들은 모두가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
p312,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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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11-16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지와 낙심만 안고 돌아갑니다. 이런 부당함을 인내심으로 견디기 위해서는 제가 품은 것보다 더 많은 철학이 필요합니다.`(293p)

초딩 2015-11-19 12:48   좋아요 0 | URL
어떤 `무서운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생각할 꺼리들 논할 꺼리들을 많이 던져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답니다. 이 책을 읽게 해준 사람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

오늘도 맑음 2018-03-18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딩님~! 프랑켄 슈타인 특별판 광고에 초딩님의 평이 실렸어요^^ 꼭 읽어보도록 할 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