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7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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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가를 먹이를 찾는 야수처럼 배회하고 어느 창녀를 외지의 모텔로 데리고 가는 이야기는 - 형에게로 - 그리고 그 속에서 튀어져 나오는 사유의 진한 뱉음과 그 둘을 의도된 반복과 머릿속의 사고 과정 자체를 그대로 풀어버리는 듯한 서사는 수사와 기교를 부리지 않은 듯 -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 이상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그리고 절정에 이른듯한 자극으로 책장을 넘기게 했다.

'나'와 '형', 형의 여자친구 '순미', '어머니', '아버지'들은 한 집안에는 있지만 종이 다른, 화분 속의 뿌리와 제각각의 시기에 필 꽃을 감추고 있는 식물들과 같이 자신들의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사랑의 보편성

진공상태로 포장되어 있는 사랑이란 없다.

모든 사랑은 상황 안에서의 사랑인 것이다. 모든 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 때문이다." p61


그리고 그 어울릴 수 없는 아니 같이 있기에는 - 가족이라는 테두리로 포장해서 - 보편성을 무장한 세인들에게 비난을 면치 못할 것 같은 그들의 사랑은 동물들이 보기에는 생명은 있으나 활동할 수 없는데 왜 존재하는지 의아해하는 식물처럼 공존해 있다.

'꿈' 이라는 초현실을 빌려서야만 움직일 수 있는 그 식물들이 - 나무들이 - 일상에 믿을 수 없게 나타난 신들의 도움을 받아 움직이듯 그들 각자의 사랑을 풀어나가고 알아간다.


"문학이란 언제나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교란시키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p274 해설 (신형철)


우리들은 - 아니 최소한 나는 - '보편성'이라는 편리한 무장으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사고와 마음이 현화된 단어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뭉쳐져 있는 사회와 그 사회의 현상들을 바라본다. '판단' 이라는 행위는 그 '편리함'에는 걸맞지 않다.

이 책은 - 다른 많은 책들 그리고 그것이 속한 또는 포함한 문학 - 그 편리한 보편성 - 특히 사랑에 대한 - 을 불편하게 헤집어 준다.

열명이 모인 주간회의에서 끄덕끄덕 동의하는 - 그 동의하는 대상이 그 행동이 무엇인지 모를,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 사람들 속에서 소심한 의구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번역서에 맹목적이었던 나에게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에 이은 '식물들의 사생활'은 '모국어로 잘 쓰여진 책'을 읽게 독려해주고 이 책에 거론된 '변신 이야기'를 구매해서 책장에 놓이게 했다.


뜬금없지만, 지금은 연말이다. 이 책 속의 물푸레나무가 현화된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어도 멋질 것이고 그 사람의 곁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어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무엇을 해도 좋으니 그저 가만히 앉아 신의 조력으로 조금은 동물스럽게 움직이는 식물이 되어보면 좋을 것 같다. 자신에게, 타인에게.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소리나는 쪽으로 몸을 돌리는 그녀의 동작이 느린 화면처럼 p26

그녀는 마치 우리가 그곳에서 만날 약속이라도 되어 있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대꾸했다. 어찌나 태연한지 내가 잊어 먹은 약속이 실제로 있었던 게 아니낙 의아스러워질 지경이었다. p26

충동 앞에서 분별력은 열등하다. p27-28
충동은 분별력 보다 빠르다. p28

어둠이 완강했다. p42

형의 침묵이 너무나 단단했다. 나는 그의 기분을 보호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그 판단이 나의 두려움보다 우세했다. p44

사진을 찍는 자는 카메라의 앵글이나 초점을 통해 자신의 시각과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다.
윤리적 앵글이어야 하고 도덕적 초점이어야 한다. p52

사랑의 보편성
진공상태로 포장되어 있는 사랑이란 없다.
모든 사랑은 상황 안에서의 사랑인 것이다. 모든 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 때문이다. p61

우리가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상대방이 이미 고유한 배역을 맡고 있기 때문이며, 나 역시 고유한 배역을 맡은 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역할극의 무대다. 세상으. p81

공개되지 않은 일부는 공개된 전부보다 항상 크다. p147

몸이 말했다. 몸이 가장 정직하고 가장 확실하게 말했다. 몸보다 정직한 말은 없었다. 몸보다 확실한 말도 없었다.
...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랬지, 사랑느 두 개의 몸이 최최의 하나의 몸을 찾으려는 욕망이고 추구라고,
...
플라톤이 향연에 썼지요. 처음에 사람은 얼굴이 둘이고 손과 발이 넷이고 눈이 넷이고 생식기가 둘이었지. 그런데 사람들이 신들에게 도전을 하니까 궁리 끝에 제우스가 사람들의 몸을 둘로 쪼갰다지. p159-160

난 언제나 한자리에 있을 거에요. p163

사랑은 모든 상황과 문제에 대한 유일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p195

모든 나무들은 좌절된 사랑의 화신이다. p218

이곳은 지상에 없는 곳이에요. p223

나무가 아니고 창녀가 아닐 때는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을 나무가 되고 창녀가 되어서 이루려고 한다. p224

문학이란 언제나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교란시키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p274 해설 (신형철)

`구축`이 아니라 `해체`의 에너지
사랑을 해체하는 사랑소설이었다. p275 해설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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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2-24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딩님이 글에 언급한 `변신 이야기`가 오비디우스가 쓴 신화집인가요?

초딩 2015-12-24 22:34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그래서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를 구했습니다. 즐거운 이브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