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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절친 - 예술가의 친구, 개 문화사
수지 그린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21년 8월
평점 :
나의 절친
(예술가의 친구, 개에 대한 이야기와 개 문화사가 담긴 책이다.)
똘망이 단골 수의사 선생님은 참 선한 분이다. 진짜 동물들을 좋아하시고, 과잉진료는커녕 주변보다 적게 나오는 진료비에도 좀 민망해하신다.
수의사 선생님은 자신을 동물에 빗대는 걸 좋아하신다. 조금 익숙하고 친해진 후에 선생님은 내게 자신이 어떤 동물을 닮았냐고 물어보셨다.
“음.. 세인트 버나드 닮으셨어요.”
그 말에 수의사 선생님은 굉장히 기뻐하셨다. 다시 찾았을 때는 목에 수통을 달까요 하는 썰렁한 농담을 하고 본인이 더 즐거워하셨다. 왠지 죄책감이 들었다. 수의사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세인트 버나드는 이렇게 발랄 귀여운,
하지만 내가 떠올린 세인트 버나드는 뭉크가 그린 그의 친구 밤스 였다. 강아지계의 절규라 불리는
수의사 선생님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데도 내게 복수를 하셨다. 굉장히 진지하게 내게 누렁이를 닮았다고 하셨다. 원래 누렁이들이 순하고 귀엽다며 순수하고 좋은 의도로 말씀하셨지만 남편은 아주 좋아했다. 누렁이 .....내가 누렁이라니.
개는 인류의 삶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잠자리를 내어주고 함께 걸으며, 사냥하고 노동한다. 비상식량이 되기도 하고, 인간의 욕망을 위해 온갖 고문 끝에 묘하고 특이한 모습으로 종자가 개량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개는 인간에 대한 충성과 선함으로 오늘날까지 최고의 친구라 불리지만, 여전히 필요에 의해 친구도 되고 실험견도 되고 유기견도 되고 악세사리가 되기도 한다.
감정의 기복이 봄날씨처럼 변덕스럽다는 혹은 감수성이 예민하다는 말로 포장되기도 하는 예술가들의 곁에서 신의를 지키던 개들은, 모델로도 많이 등장한다. 그런 예술가들의 친구를 그림으로 만나 볼 수 있다. 그림을 보면 화가가 강아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이 투영된 이 작은 동물에게 참 많이 기대고 위안 받음이 그림에 묻어난다.
조로아스터교는 특히나 개에게 특별한 위치를 부여했다. 땅과 불과 물은 신성하기에, 시체로 오염시킬 수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냥 내버려진 시체엔, 파리형상의 악령 나수가 나타난다고 믿었기에, 개와 콘도르에게 시체를 처리하게 했다고 한다. 이슬람은 개를 불결하게 생각했기에, 조로아스터교의 개종증거는 개를 학대하는 것이었다.
아즈텍에서는 개는 죽은 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위험을 막고 인간의 영혼을 안내한다고 한다. 솔로톨은 개의 형상을 한 신으로 <코코>에 나오는 강아지 단테 또한 이런 역할을 한다.
죽은 지 4년이 지나도 잊지 못해, 자신의 개 루비도를 만테냐에게 그려 달라고 한 루드비코 콘차가,
자신이 키우는 개에게 미국초현실주의 사진작가인 만레이의 이름을 붙여 작품을 만든 윌리엄 웨그먼
제드존슨과 헤어지면서, 같이 키우던 아치와 아모스를 주일엔 볼 수 없어 슬퍼했던 앤디워홀(주중엔 앤디워홀이, 주말엔 제드 존슨이 기르기도 했다고. )
시베리아 양치기 개 루시를 사랑했던 프란츠 마르크.
원래 데이비드 던컨의 개였으나, 피카소 집에 놀러갔다가 그 곳에 눌러앉기로 결정한 럼프는, 피카소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을 재해석 할 때 중요한 뮤즈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럼프가 온 몸이 마비되었을 때, 던컨은 병원으로 데려가 오랜 치료 끝에 살려냈지만, 피카소는 순리를 어기는 일이라며 병원에 데려가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개의 상형문자엔 웃음이란 단어와 지혜, 좋은 설교란 의미도 담겨있다고 한다.
웃음이란 단어는 개에게 참 잘 어울린다. 팔랑거리며 달려오는, 혹은 내 다리에 기대며 눈을 굴리는 강아지를 보면 웃음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저 간식과 잠시의 산책만으로도 주인을 신처럼 생각하며 행복해하는 강아지들은 오늘도 누군가를 웃게 하고 위안을 준다.
애드윈 랜드시어의 <늙은 양치기의 상주>란 그림이다. 너무 통속적이라며 비평가들이 비난했다는 그림. 그렇지만 이 그림이 좋다. 늙은 양치기의 친구이자 동료로 비탈길과 비 오는 오솔길을 같이 걸었을 양치기개, 이제 그의 냄새도, 잘했어하며 거친 손으로 자신을 쓰다듬어줄 그 손길과도 이별이라는 것을 알까. 그저 그의 옆에 있고 싶은 마음, 예전 오랫동안 계속 그래왔듯 그의 옆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