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남편 만들기~ 이 남자가 네 남편이냐!
~ 1564년 백씨 부인의 생존전략~ 이란 부제가 붙은 역사소설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으며, 각자가 지지하거나 억울하다고 느껴지는 이에 대해 애정을 갖고 써져 있어, 판본이 조금 다양하다고 한다.
때는 명종시절, 대구의 수성부(수성구)에 거주하는 사족인 달성 유씨 집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유예원집안의 장남인 유유는 백씨와 혼인하나, 삼년이 지나도 후사가 없는 등의 일로 아버지에게 혼이 난 후, 집을 나가버리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그 후 유유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떠돌았고, 유예원과 그의 아내는 그 사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둘째아들인 유연이 장남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유유와 전혀 닮지 않은 채응규란 자가 한양에 거주하면서, 자신이 유유라고 주장을 한다. 거기다 유연의 누이의 남편인 이제가 여기 유유라 주장하는 이가 있다며 알아보라고 수성부의 유연에게 서신을 보낸다. 그래서 유연은 오랜 세월 유유와 같이 했던 노비들을 확인차 보냈고, 노비들은 유유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채응규 또한 자신은 유유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유유의 아내 백씨와 서신을 주고받더니 자신이 유유라고 주장했다. 결국 유연은 형을 만나러 가고, 거기서 채응규를 대구로 데려오게 된다. 데려오는 과정에서 자신의 형이 아님을 직감하고, 채응규를 집이 아닌 대구부로 이감한다. 채응규는 자신이 유유라면서, 백씨와의 첫날밤 구체적 이야기를 풀어내며 증거로 주장한다. 그 와중에 병보석으로 풀려난 채응규는 도망을 가게 된다. 그러자 유유의 처 백씨와, 채응규의 첩 춘수가 유연을 살해혐의로 고발한다. 재산에 눈이 멀어 형을 죽였다는 것.
증거도 아무 것도 없다. 채응규는 가짜임을 나타내는 증거는 많았다. 그럼에도 형을 죽인 동생이란, 유교에서 가장 중죄인 강상죄에 대한 선비들의 분노와 혐오로 너무나 쉽게 유연은 서울 한성부로 옮겨져 능지처사를 당한다. (대부분 극심한 고문으로 자백을 하게된다.)
이 시기 엄격한 장자상속으로 인해 주로 차남들은 제대로 상속받기가 힘들었다. 흥부와 놀부는 사실 그 시대상을 사실적 묘사와 희망을 잘 표현한 작품인 것.
먼저
1. 채응규는 유유의 주변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소상하게 알고 있나?
채응규는 떠도는 유유와 잠시 같이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유유의 첩인 비녀(비녀는 첩이지만 외부에 남편을 둘 수 있다.)와 결혼관계였기에, 유유의 신체적 특징등에 대해 소상히 알 수 있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유유의 아내 백씨가 서신을 통해 중요정보를 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첫날밤 사건 등은 그 당시 사족으로서는 입 밖에 내거나 일기로 남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발도 작고 여성스러웠던 유유와 달리 채응규는 남자답고 발도 컸으며 수염도 많고 덩치도 큰 편이었다.
2. 그러면서 왜 백씨부인은 가짜 유유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였을까를 추리한다.
일단 채응규가 도망가고, 가짜라는 것이 밝혀지면, 첫날밤의 일을 어찌 채응규가 아는가에 대해 추궁 받게 된다. 불륜은 죽음이다. 또한 이 당시 자식 없는 과부는 시동생 등에게 쫓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곤 했다. 재산도 없고, 개가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과부개가금지법) 거기다 백씨부인은 남편이 행불되었을 뿐 과부도 아니다. 그녀의 처지는 바람 앞의 등불, 그러나 채응규가 진짜 유유이고 살해당했다고 주장하면, 그녀는 과부가 되며 양자를 들일 수도 있다.
잘 지켜지진 않지만, 과부에겐 봉사권(제사주도권)과 후사지명권이 주어진다. 결국 그녀는 채응규와 첩 춘수 사이의 아들을 자신의 양자로 삼는다.
그런데 진짜 유유가 돌아온다. 이 사건은 다시 재심을 하게 되고, 재산을 노린 유연의 사촌 삼륭과 누이의 남편인 이제와 백씨부인과 사기꾼 채응규의 음모로 밝혀진다. 이 부분도 의문이다. 이들이 처가의 재산을 탐할 만큼 욕심을 부렸다거나 하는 모습은 없다. 거기다 이제는 그저 유유라 주장하는 이가 있으나 한 번 보라고 한 죄밖에 없다. 그들은 대부분 사형을 당한다.
그러나 백씨 부인은 추궁조차 당하지 않는다.
왜일까.
유유는 여성스러운 몸매와 여성스런 말투를 가졌으며(아마도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으로 살고자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성불구자였다. 백씨 부인의 입에서 사족인 남자의 성불구 능력이 밝혀지는 것은 유교적 가부장제에 어긋나며 수치였다. 결국 그들의 체면이 몇몇 사람들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이 조선의 사족들의 모습이었다.
백씨 부인은 가부장제의 최고 피해자이자, 최고 수혜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멋모르고 성불구인 남편을 만나, 생과부가 되고, 그리고 죽음을 불사하고 사기꾼과 공모하지만, 결국 그 시절의 왜곡된 가부장제와 체면이 그녀를 살린 것.
이 책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바로 <마르탱 게르의 귀향> 때문이다. 비슷한 소재와 실화라는 점, 그리고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16세기 프랑스에서 조선 명종 때의 유유사건과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14살에 마르탱 게르는 결혼을 하지만 자식이 없다. 유유와 마찬가지로 그는 성불구자였다. 다행이 마르탱은 아들을 하나 낳게 되지만,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나간다. 8년 후 완전히 다른 모습의 마르탱이 돌아오는데, 그는 섬세하고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렇지만 3년 후 아내는 그를 가짜라며 고발하고, 오히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진짜라고 주장한다. 진짜 마르탱이 돌아오면서 가짜 마르탱은 사형을 당한다.
이 사건에서 가짜 마르탱은 진짜 마르탱과 외모가 닮았고, 마르탱에 대해 아주 많은 정보를 가진 인물이다.
두 사건 모두, 시대적 배경과 관습에 따라 비극적 결혼이 시작된 것,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의 역할과 남편이기에 앞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고 그 무게에서 도망친 두 남자와 아내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남은 여인들, 백씨 부인이나 마르탱의 아내나 자신의 가정과 안위를 위해 그 시대에선 드물게 주체적이며 적극성을 보였다. 누구는 백씨 부인이 악녀라지만, 악녀라기보단 죽지 않기 위한 몸부림? 그리고 마르탱의 아내는 가짜남편에 속은 어리석은 부인이 아니라, 가짜 남편을 용인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정을 재편성하고자 했던 주체적인 여인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나면 지방 사족들의 모습을 알 수 있고, 백씨부인 사건에 대해 각자 다양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재판과정과 고문, 다양한 인물들이 이 사건에 대해 쓴 글 -특히 이항복이 이 사건에 대해 쓴 글-을 통해 여러 가지 시선으로 이 사건을 살펴볼 수 있어 더 좋았다. )
결국 가부장제의 모순, 유교의 폐쇄성, 성에 대한 억압, 고문과 비합리적 사법제도 등이 만든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