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년 8개월 28일 밤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평점 :
세상의 광기들을 잘 빚은 후, 마족이란 달걀물을 묻혀먹음직스럽게 구워낸, 이성이란 이름의 동그랑땡 같은 소설. 너무 유치한 비유인가 사실 동그랑땡이 먹고싶어서 이따위 생각을 했나보다. ㅎㅎㅎ
첫 페이지엔 고야의 <로스 카프리초스(변덕)>동판화집 43번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이성에 버림박은 상상력은 불가사의한 괴물을 낳는다. 이성과 하나로 결합한다면 상상력은 모든 예술의 어머니가 되고 경이의 근원이 된다.”라고 쓰여 있다.
고야의 판화집인 <로스카프리초스>는 서민들의 힘든 삶이나 부패하고 더러운 성직자들의 모습과 정치인들이, 괴기하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는 267부를 출판하고 광고도 했지만, 며칠만에 240부를 회수하고 동판화와 더불어 왕실에 자진헌납을 한다. 아마도 종교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고야도 스스로 알고 있다. 세상은 더럽다는 것을, 그럼에도 박차고 일어나 용감하지 못했던 건, 그런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괴물로 변한 자신을 <검은 그림>속에 가두려 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을수록 고야의 그림과 문구를 되새기게 된다.
두니아란 여마족의 엄청난 힘과 귓불 없는 그녀의 자손들이, 세상으로 퍼져나가며 광기들을 잠재운다.
귓볼없는 어벤져스팀!
최신기계보단 날아다니는 항아리를 타고 다니는 등, 아이언맨보다 뽀대는 안 나지만 이야기는 훨씬 짜임새있다. 동화인듯 마술인듯 삶의 이치를 담은 듯, 뻔한 세상을 다 아는 듯 술술 풀리는 이야기들이매력적이다.
마족 세계와 현실세계의 틈이 벌어지면서,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스러운 여마족 공주 두니아와 그녀가 사랑한 철학자 이븐루시드의 후손들이 흑마족과 싸우게 되고, 그 후 두니아는 승리를 거둔 후, 그 틈을 완전히 메우기 위해 희생한다. 그렇지만 진짜 희생일까? 연기처럼 사라진 두니아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듯 보이지만 세상 어디에도 있다. 거꾸로 된 세상과 현실이 통하는 문이 열리고, 그 문을 닫으려 애쓰고 희생하던 < 기묘한 이야기> 의 엘이 생각났다. 원래 엘의 이름은 11. 이 이야기 속 1001을 소인수분해하면 7과 11과 13이다.억지스럽지만 왠지 두니아와 엘을 연결시키고 싶다. 둘은 강력한 힘을 가진 여마족, 세상을 구하고 난 뒤, 한 명은 사라지고 한 명은 능력을 잃는다.
두려움이 인류를 광신의 길로 내몰 수 있을까. 두려움으로 어쩔 수 없이 꿇은 무릎에 신에대한 경배와 존경이 있을까. 종교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말도 안 되는 폭력과 어둠을 흑마족의 행위라 치부하며 그 모든 악행을 간단하게 뚜껑달린 그릇에 담아 봉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렇게 마족과 인간계가 봉인된 후 아무도 꿈을 꿀 수 없는 세상이 된다. 꿈을 꾸는게 꿈인 세상, 책을 덮음으로서 끝나느 게 아니라, 책을 덮고나서도 한참을 고민하게 하는 고약하기도 한 책이다.
주의사항)
이 책을 읽고나면 뚜껑 달린 그릇들이 위험해 보일 수 있음 ㅎㅎ
(램프 속 지니는 흑마족일까 ?! )
작가님의 작품들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이 책이 영화화되면 정말 재미있겠단 생각을 했다.
번외편)
그러다가 두니아가 사랑한 이븐 루시드를 라파엘로의 <아네테 학당>에서 찾게 되었다.
교황 율리우스2세의 서명실을 꾸미기 위해 그려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란 그림이다.
숨은 그림 찾기로 자주 쓰이는 그림.
계단 위에는 철학자가 아래는 수학자들이 그려져 있다.
이 시대에는 철학이 모든 학문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제일 중앙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라파엘로가 존경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아무리 천재라도 탈모는 ㅠㅠ)
그 옆 손을 땅으로 향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발 밑에 헐벗게 옷 입으신 디오게네스 (여기서도 여전히 광합성중이시다.)
그리고 플라톤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칙칙한 옷 입으시고,
역시 중앙은 탈모, 그 옆에 푸들 귀처럼 곱게 옆머리 모으신 소크라테스는 풀색옷을 입으셨다.
그 옆에 투구 쓴 분은 알렉산더 대왕
중앙에 상자에 팔을 괴고 고민하시는 분은 헤라클레이토스(만물의 근원은 불,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본인의 얼굴도 그려넣었는데, 제일 왼쪽 구석에 갈색 모자를 쓴 젊은이다. 탈모도 아니고 피부도 곱다, 라파엘로는...
그리고 이제 계단아래의 수학자들은.
먼저 콤파스로 원을 그리는 유클리드,아ㅠㅠ 이 분도 ㅠㅠ
그 옆에 하늘색 옷의 여성 수학자인 히파티아(광신도들에 잡혀 잔인한 고문끝에 죽임을맞이한다. 진리와 결혼했다면 독신을 고수하기도 했다.)
유클리드 옆에 지구의를 든 프톨레마이어스
반대편에 커다란 책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피타고라스
그 뒤에 터번을 두른 갈색빛의 아랍인은 바로 이븐 루시드!!! 바로 이분이다. 두니아가 반한 그의 지성!
마치 이븐 루시드, 즉 아랍인이 뛰어난 그리스의 수학을 염탐하러 온 산업스파이처럼 그려져 있다. 이븐 루시드는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을 배웠고, 뛰어난 의학자였고 철학자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부정적이며 마치 염탐자처럼 그려진걸까?
그러나 이건 진실과 완전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피타고라스의 스승은 탈레스다. 그는 탈레스의 주선으로 이집트에 가서 기하학과 천문학을 배웠다. 중간에 페르시아 포로가 되어 바빌로니아로 끌려 간 적이 있는데 이미 거기에선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알고 있었고 쓰이고 있었다. 60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만물의 원리는 수,만물은 모든 수를 모방한다며, 피타고라스의정리를 책으로 남기게 된다. 아랍과 이집트는 수학에서도 그리스에 영향을 주었다.)
이븐루시드는 아리스토텔레스연구에 매진했다.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주해서를 26권 넘게 남겼다고 한다. “이성과 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많은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진리는 진리와 모순되지 않는다”
그의 책은 라틴어로 저술 번역되었고, 라틴어식 이름인 “아베로에스”로 유럽에 알려지게 된다. 그 후 아베로에스파가 생겼고 그의 제자들은 “종교는 실천적 기능을, 철학은 이론적 기능을 담당한다”며 철학과 종교를 독립시켰다. 결국 이븐루시드의 철학은 유럽에도 영향을 끼쳐,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신은 해방자가 아니라 파괴자니까요. 십계명을 내려주지도 않습니다. 그럴 단계는 지났어요. 노아 시대에도 그랬듯이 우리한테 넌더리가 난 거죠 신은 본때를 보이고 싶어해요 우리를 멸망시키고 싶어한다고요.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이야기 속에 갇힌 수감자 신세, 모든 가족은 가족사의 포로, 모든 공동체는 또 그들만의 이야기 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고, 모든 민족은 자신들이 기억하는 역사의 피해자가 된다.
너무 비참해서 나는 아버지가 딸을 멸시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건강한 상태라고 오히려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게 재앙이라고 믿었어. 그런데 이제야 진실이 드러난 거야. 아버지는 탈이 나셨고 나는 멀쩡해. 아버지를 중독시킨 독이 뭐냐고? 아버지 자신이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