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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ㅣ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수많은 단어들과 언어로 이루어진 한 남자가 있다. 명확하게 기억하고, 어디에서 그 단어가 빛을 발하는지 아는 남자. 그런 남자가 비 오는 어느 날, 자살하려는 한 여자의 낯선 언어에서, 이때까지 괜찮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에서 빠진 무언가를 느낀다.
제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주변에 그저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한 것들을 모아 인생이라 이름붙이고 성벽을 쌓은 것일까.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그는 기차에 오른다. 삶의 여정, 머물기만 하던 삶, 되풀이되던 언어와 단어들을 이제 기차역마다 떨어뜨린다. 버린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의미를 찾아 그 단어들은 그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되돌아온 글들엔 리스본의 의사 프라두의 삶이 묻어있다.
자살하려는 여자의 언어가 포르투갈어임을 알게 되고, 그 언어를 배우려다 우연히 손에 넣게 된 리스본의 의사 프라두의 책, 그 책은 그저 매일이 똑같았던 고대그리스어 교사인 그레고리를 새로운 곳으로 떠나게 한다. 그 곳에서 프라두의 삶의 흔적들을 쫓으며, 어쩌면 그레고리는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단어를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프라두를 쫓으며 자신을 되돌아본다.
삶은 여행이라고 기차를 타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차를 타고 덜컹거리며 많은 역들을 지난다. 누군가 내 옆에 앉기도 한다. 그 만남이 즐거울 때도 있지만 힘들고 지칠 때도 있다. 가끔은 혼자 있고 싶지만, 인생은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인생이란 기차는 언제 정차할지, 그리고 어느 곳이 마지막 역인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 덜컹거리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이제 내가 무엇인지, 어느 역에서 내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혹은 멍하니 햇볕을 쬐기 좋은 곳을 드디어 찾았는지 아무것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니 밤의 기차, 온통 깜깜한 창밖에서 자신을 향해 밝아오는 빛 하나를 발견한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일까.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삶에 대한 통찰과 관계에 대한 프라두의 글들은 삶의 깊은 곳을 건드린다.
“인간이 상처를 떨어낼 수 있기는 한 걸까? 우리는 과거로 깊숙이 들어간다. 푸라두가 남긴 글이었다. 이런 일은 깊은 감각, 다시 말해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라는 느낌은 어떤 것인지를 결정하는 감각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 감각은 시간을 초월하고 시간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난 대성당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유리창의 반짝임과 서늘한 고요함과 명령을 내리는 듯 한 정적이, 오르간의 물결과 기도하는 사람들의 성스러운 미사가, 말씀의 신성함과 위대한 시의 숭고함이 필요하니까. 나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예 못지않게 자유와 모든 잔혹함에 대항할 적대감도 필요하다. 한쪽이 없으면 다른 쪽도 무의미하다. 아무도 나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말기를”
대성당이란 단어 대신 각자의 인생에서 무엇을 써 넣을 수 있을까
난 신의 말씀을 경외한다. 시적인 그 힘을 사랑하므로, 난 신의 말씀을 혐오한다. 그 잔인함을 증오하므로, 이 사랑은 아주힘든 사랑이다. 말씀의 광채와 자만하는 신이 만드는 엄청난 예속을 끝없이 구분해야 하니까. 이 증오도 아주 힘든 증오다. 이세상의 멜로디인 말씀을, 우리가 어릴 때부터 경외하라고 배운말씀을 어떻게 증오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다음부터 우리를 봉화처럼 비추던 말씀을, 우리로 하여금 지금의 존재가 되도록 이끌어준 그 말씀을?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친자식 을 동물처럼 도살하라고 요구했음을, 이런 말씀을 읽을 때 느 끼는 분노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자신과 논쟁하려 한다고 욥을 비난하는 신은 도대체 어떤신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자기가 겪는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욥을? 욥을 그렇게 만든 게 누구던가? 신이 아무런 이유 없이 어떤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이, 평범한 사람이 그러는 것보다 덜 부당할 이유는 뭔가? 욥이 불평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았던가?
_분노라는 들끓는 독. 타인 때문에 그들의 뻔뻔함과 부당함,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 - 우리가 화를 낸다면 우리는그들의 권력 아래에 놓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고 자란다. 분노는 들끓는 독과 같아서, 부드럽고 우아하며, 평화로운 감정들을 파괴하고 우리에게서 잠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 불을 켜고, 우리를빨아먹고 기운을 빼는 기생충처럼 우리 안에 자리를 잡은 분에 분노를 터뜨린다. 우리가 입은 피해에만 분노하는 것이아니라 분노가 오로지 우리 안에만 퍼져간다는 사실에도 분노한다. 우리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감싸며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는 동안, 우리를 희생자로 만든 원인 제공자는 분노의 파괴력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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