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엄마랑 토끼랑
엄마랑 나란히 허리복대를 하고 화투를 쳤다. 점십원 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엄마에게 줄 돈이 13280원. 이래서 도박빚이 무섭구나싶다. 엄마는 야무지게 내 지갑에서 이만원을 꺼내가셨다. 거슬러달라니 어차피 몇 판 더치면 곧 당신 주머니에 올거니 굳이 귀찮게 오고가는 행위는 생략하자신다.
전기장판에 허리를 지지다가 가자미도 지져 보자는 울 엄마. ( 엄마는 생선조림을 항상 생선을 지져 묵는다고 하셨다 )
집으로 돌아와 다시 조리대 앞에 섰다. 콩나물을 무치고 생태탕을 끓인다. 남들은 쉽게 낸다는 그 시원한 맛이 영 애매해 고향의 맛을 한 숟갈 넣어본다.
밥이 되어가는 시간, 엄마전화다.
내일은 좀 더 일찍 오라는 당부.
왜 무슨 일 있냐는 말에 엄마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한 마디 하신다
행자가 전화가 왔는데 죽을 날 받았단다.
엄마의 동네 친구.
“친구야 내 이제 다 살았단다. 영혼이라도 있으믄 우리 다시 만나제 ”하며 전화하셨다고.
망할년 꿈자리 뒤숭숭하구로 하시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전화를 끊으셨다.
다음날 엄마 친구분의 따님과 연락해서 영상통화를 연결했다.
“ 있제 묘생아 우리 어디서든 꼭 다시 만나믄 또 같이 보리밥 비벼묵제. 내는 네랑 어릴 적에 보리밥 비벼 먹던게 그래 기억이 난다 ”
“ 입맛도 촌스러븐기. 알았다. 내 같이 묵어주꾸마. ”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텔레비젼 버튼을 누르신다. 부은 눈을 보면 어젯밤 아마 많이 우셨을거다.
엄마는 토끼해에 태어나 묘생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의 친구는 다섯명의 언니들처럼 끝이 자로 끝나는 흔한 이름이 붙여졌다.
그래서 엄마는 특별하고 예쁜 이름을 자식들에게 붙여주고 싶으셨단다. 귀하고 귀한 이름, 그래서 삶이 좀 더 평탄하고 아름다워질 이름으로.
그렇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단다. 큰딸과 아들이름은 집안의 어른이, 나머지도 아버지 마음대로였다고.
“ 엄마. 그래서 엄마가 붙이고 싶었던 이름은 뭔데?”
“ … 현숙이. ”
” 뭐! 너무 촌스럽잖아. 아빠가 작명센스는 나은데?“
” …우리 동네 제일 잘 사는 집 딸내미 이름이 현숙이였다. 가는 마산에서 여고도 댕기고 대학도 나와서 억수로 똑똑한 남자랑 결혼도 했다더라. “
엄마의 어린시절 가장 부러웠던 이름이었다고 한다. 그 현숙이가 방학때 내려와서 엄마랑 동네 친구들에게 가르쳐 준 노래가 있단다.
“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일 저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
엄마가 운다. 그 노래를 부르시며 운다.
그 시대 반갑지 않은 성별로 태어나 성의없이 붙여진 이름을 가지고 살았지만 당신들의 삶이 얼마나 특별했고 아름다웠는지 안다.
그러니 울지 마세요 묘생씨 그리고 행자씨도.
( 토끼띠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을 가진 엄마를 소개합니다.
올해는 검은 토끼해라니 울 남편 대번에 플레이보이 토끼를 떠올리는!! 몹쓸 !! 다들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북플님들 덕에 더 행복했던 2022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