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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일
조성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9월
평점 :
언니가 우리 나이때는 마스크도 고운 걸 써야 한다며 꽃분홍 마스크를 내밀었다.
언니는 내게 꽃분홍과 진자주빛, 빨간 색의 마스크를 주섬 주섬 챙겨준다.
예쁘지? 하며 빨간색 마스크를 쓴 울 언니. 언니 얼굴에도 단풍이 물들었다. 빨간마스크 괴담을 모르는 울 언니, 기어이 내게도 빨간 마스크를 씌운다. 오늘 산책은 초등학교를 돌아서 가야겠다. 아기들 놀라면 큰일이니 ㅋㅋㅋ .
그리고
< 예술가의 일>을 읽었다.
사랑을 그린다고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 사랑의 추억만은 좀 더 남지 않을까. 그때 그 사람의 눈가의 세밀한 주름과 눈동자를 그리며 그 순간순간을 붙잡아 놓는 것이겠지. 물론 추상화가가 한 줄 주욱 그어 “너야”라고 한다면 좀 고민이 되겠지만.
(순간의 모습에서 그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얻을 때도 있다. 그런 사진 앞에선 괜시리 두 손을 모으고 겸허해진다. )사랑을 쓴다고 사랑을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옅어지고 얼룩이 지고 흩어져 사라지겠지, 사랑의 글도 그림도. 하지만 사랑이라 썼던, 사랑을 그렸던 그 순간을 햇빛에 비추어 보면 미처 지우지 못한 미련이 고랑처럼 파여있지 않을까. 그런 흔적들은 또 그렇게 누군가에게 공감을 눈물을 슬픔을 떠올리게 하겠지.
그래서일까.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붙잡아 그리고 써 놓은 일들엔, 많은 이들이 전염된다.
자신의 내면을 닮은 도시의 우울과 쓸쓸함을 찍은 사후에 알려진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
자신에게 유독 가혹했다 느낀 죽음의 그림자들을 그린 뭉크.
그 어떤 차별과 가혹함에도 절실했던 영화를 하고 싶었던 그 마음,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영화감독 박남옥.
세상의 고독을 그렸지만, 아내의 외로움과 상실은 외면한 에드워드 호퍼
조용히 골목길을 걸으며, 삶의 여유를 같이 즐기고 싶어했던 <고독한 미식가>의 작화가 다니구치 지로
모든 것을 그려서 세상을 놀라게 해 주고 싶었던 우키요에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
누구나 언젠가는 저무는 노을앞에 서서, 차가운 겨울을 맞이해야 함을 보여주는 <동경이야기>의 감독 오즈 야스지로
어느 쪽도 받아들여주지 않는 삶, 경계인의 삶에서도 조화로움과 화해를 자연을 닮은 건축으로 보여준 이타미 준
탄츠테아트(춤과 연극)장르를 개척해 몸의 언어로 서사를 만든 피나 바우슈.
좀비를 통해 오히려 좀비보다 못한 인간들의 군상을 보여 준 조지 로메로 등 다양한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예술가의 일>이란 제목을 보며, 도대체 예술가의 일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책에선 예술에 대해, 더 나아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진짜 그런 것들만이 예술가의 일이며 예술작품이라 불리는 걸까.
친구 하나가 자신은 아이가 그려준 그림이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피카소 그림이랑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천억인데? 그랬더니 잠시 생각 좀 해보겠단다.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좋으면 좋은 거다. 남이 좋아해도 좋은 거다. 그래 다 좋은 거다라고. 내 마음이 흔들리면 좋은거다 (시대와 삶을 관통하며 세상을 바꾸고 창조한 위대한 작품들에, 편견과 싸워 이겨낸 작품들에, 오랜 세월 인고한 그들에게, 오해와 비웃음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그들에게, 목숨마저 바친 열정을 가진 그들에게, 그러한 작품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고뇌에 경의를 표하며.)
*아래 사진은 비비안 마이어의 셀피, 그리고 이타미 준이 설계한 제주도의 수 박물관.
남성 화가들은 발라동을 사랑했고, 싫증 나면 내팽개쳤다. 시간이 흘러 발라동에게 권력이 주어졌을 때 그 역시 사랑을 취사선택했다. 발라동 곁을 스쳐 지나간 남자 중엔 가난한 무명 음악가도 있었다. 그는 시대를 너무 많이 앞서 태어난 천재 에릭 사티다. 발라동과 사티의 연애 기간은 6개월뿐이었다. 사티는 발라동과 헤어진 이후 죽을 때까지 연애하지 않았다. 사티가 발라동을 위해 작곡한 곡 중에 난 너를 원해(Je TeVeux)〉가 있다. 사티를 모르더라도 어디서 들어봤는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유명한 음악이다. 달콤하고, 감미롭고, 봄기운이물씬 풍기는 곡이다. 겨울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앞으로나가 봄을 맞이한 발라동을 닮은 음악이기도 하다.
나혜석은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모성은 저절로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라 얼마간은 사회의 강요가 만든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자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느끼는 아름다움을 부정하진 않았다. 피붙이와 교감할 때의 행복도 알고 있었다. 다만 출산으로 인한 육체 고통과 양육을 하며자신의 삶을 뒷전으로 미뤄야 하는 여성의 현실을 ‘모성‘ 두 글자로 묵살하는 사회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엄마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숭고한 모성애는여성을 옭아매기 위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했다. 조선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모(母) 된 감상기」가 발표된다음 날 같은 잡지에 반박 칼럼이 실렸다. 익명의 필자는 "임신은 여성의 거룩한 천직이며 여성이 존재하는 이유"라면서 나혜석을 꾸짖었다. 나혜석은 굽히지 않았다. 반박 글에 다시 반박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일부 여성들에게 공감을 얻으리라고 확신했다.
바스키아 작품에서 두 개의 키워드를 꼽자면 흑인과 죽음이다. 중산층에서 태어나 일찍 성공한 바스키아지만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았을 리 없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 손 잡고미술관을 찾아다녔던 바스키아는 십 대 때도 학교 대신 미술관을 드나든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미술관엔 흑인이 별로없네." 그는 찰리 파커, 지미 헨드릭스, 루이 암스트롱, 마일즈 데이비스를 그렸다. 각자의 분야에서 대가의 경지에 오른 흑인들이다. 바스키아는 그들의 머리 위에 왕관을 그려 존경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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