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靑莊은 해오라기의 별명이다. 이 새는 강이나 호수에 사는데, 먹이를 뒤쫓지 않고 제 앞을 지나가는 물고기만 쪼아 먹는다. 그래서 신천옹信天翁이라고도 한다. 이덕무가 '청장'을 자신의 호로 삼은 것은 이 때문이다."

*박지원 연암집에 수록된 '형암행장'의 일부다. 박지원이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행장을 지으며 청장이라는 호를 쓴 이유를 밝혀 이덕무의 삶의 의미를 밝혔다.

눈 구경 나선 길에 징검다리를 마주한다. 그 끝자락에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백로 한마리를 보며 이덕무의 청장靑莊을 떠올려 본다. 사사로운 이득에 자신을 내몰지 않고 가난한 삶 속에서도 깨끗함과 향기로움을 잃지 않으려 했던 이덕무의 속내가 은근히 부러웠나 보다. 손에 든 책,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의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참으로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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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나무'
설날이면 노오란 색으로 옷을 입고 뜨거운 불판에서 갖나온 전을 조상보다 먼저 먹었던 그 색으로 기억된 나무다. 차례상에 오르기 전이지만 한개쯤은 기꺼이 허락했던 그 마음으로 할머니의 마음의 맛과도 닿아 있다.


무명저고리 그 하얀빛으로 꽃을 피웠을 치자가 열매를 맺고 겨울 찬바람에도 거뜬하게 매달려 있다. 온갖 곡식을 키워내며 궁핍한 날들을 버거워하던 사람을 살렸던 그 밭 언덕에 여전히 서 있다. 조그마한 손으로 일손이라도 돕고자 했던 마음에 밭둑을 서성이던 어린 그 마음에도 치자꽃은 예쁘기만 했다.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치자는 꽃 가운데 가장 귀한 꽃이며, 네 가지 이점이 있다. 꽃 색깔이 희고 기름진 것이 첫째이고, 꽃향기가 맑고 풍부한 것이 둘째다. 겨울에도 잎이 변하지 않는 것이 셋째이고, 열매로 황색 물을 들이는 것이 넷째다"라고 하여 치자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치자나무와 비슷하지만 잎과 꽃이 작고 꽃잎이 만첩의 여러 겹으로 된 것을 '꽃치자'라고 하는데 꽃치자는 향기가 너무 강하여 가까이서 버겁다. 은은한 향을 즐기려면 홑꽃을 달고 있는 치자를 심는 것이 좋다. 꽃말인 '순결', '행복', '청결'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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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쏟고난 하늘엔 별들이 총총하고 푸르고 깊은 밤이 아득히 멀어 보인다. 바람도 잠든 한밤중 뜬금없이 울리는 풍경소리에 그리운님 소식인양 서둘러 격자문 열고 토방 아래 내려섰다.

눈 길을 따라 뜰을 지나 골목 끝 가로등 아래서 섰다. 봄부터 가을까지 할머니들의 놀이터인 채마밭 너머로 밤은 깊어가는줄 모른다. 여전히 잠들지 못하는 산등성이 너머를 향하는 발길을 억지로 붙잡고 돌아서는 등굽은 내그림자가 유난히 짧아 보인다.

뎅그렁ᆢ.
눈빛에 놀란 처마밑 풍경이 스스로 울리는 밤이 사뭇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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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눈은 이렇게 내리야 제 맛이다. 

목화 솜 타서 솜 이불 누비는 할머니의 마음 속에 펼쳐놓은 그 포근함을 품으라고 눈은 이렇게 온다.

우선은 눈이 주는 이 평화로움을 마음껏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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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나무'
화사한 붉은 색의 꽃이 피는 날이면 늦봄에서 여름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열매의 알맹이와 꽃의 그 붉음이 서로 닮았다.


나무는 제법 오랜시간을 쌓았다. 나무만 보고서는 이름 불러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까. 말라버린 열매를 떨구지 못하고 있다. 늙은 나무는 더이상 많은 꽃을 피우지 못하지만 피는 꽃은 그 어느 나무보다 곱다. 꽃피는 때면 그 밑을 서성이게하는 나무다.


한국에는 이란에서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1400년대에 쓰인 양화소록 養花小錄에 석류를 화목9품 중 제3품에 속하는 것으로 쓴 기록이 있는 점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류나무 꽃의 아름다움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뭇 남성 속의 한 여인을 말할 때 쓰는 '홍일점'의 어원이다. '원숙미', '자손번영'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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