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구슬나무'
연보랏빛의 조그만 꽃들이 무더기로 피는 때면 잊지 않고 찾아보는 나무다. 꽃 하나하나도 이쁘지만 모여 핀 모습도 장관이다. 어디 꽃 뿐이랴. 향기 또한 그윽하니 더없이 좋다.


남도 국도변을 따라 드문드문 보이는 나무다. 공원에 몇그루씩 심어져 있기도 하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도 아니다. 박물관 뜰에서 보고 매년 꽃필때면 찾았는데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올봄에 내 뜰에도 한그루 심어볼 요량이다.


천연기념물 제503호로 지정 보호되는 나무도 있다.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에 있는 멀구슬나무가 그것이다.


"비 개인 방죽에 서늘한 기운 몰려오고
멀구슬나무 꽃바람 멎고 나니 해가 처음 길어지네
보리이삭 밤사이 부쩍 자라서
들 언덕엔 초록빛이 무색해졌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03년에 쓴 '농가의 늦봄田家晩春'이란 시의 일부다. 남도 땅 강진이니 그때도 사람사는 근처에서 함께 살아왔나 보다.


멀구슬나무라는 이름은 열매로 염주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목구슬나무'로 불리다가 이후에 '멀구슬나무'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겨울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있는나무라 쉽게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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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이 녹듯이ᆢ'
얼어서 얼마나 견딜 수 있으랴. 얼어 단단하게 보일지라도 녹아내리지 못하면 결국은 부러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닫아둔 마음이 늘 외롭고 쓸쓸한 이유다.

햇볕과 바람 앞에 고드름이 녹는다. 어는 것과 녹는 것이 얼핏 다른 이야기로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언다는 것은 녹아내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얼고 맺히고 닫힌 모든 것들은 녹고 풀어지고 열려야 깊어지고 넓어진다. 그렇게 깊어지고 넓어진 마음자리에 꽃이 피어날 틈이 생긴다. 걸어둔 빗장에 틈을 내 숨을 쉴 수 있도록 하자.

열고 맺힌 것을 스스로 풀어내는 마음에 정성껏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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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靑莊은 해오라기의 별명이다. 이 새는 강이나 호수에 사는데, 먹이를 뒤쫓지 않고 제 앞을 지나가는 물고기만 쪼아 먹는다. 그래서 신천옹信天翁이라고도 한다. 이덕무가 '청장'을 자신의 호로 삼은 것은 이 때문이다."

*박지원 연암집에 수록된 '형암행장'의 일부다. 박지원이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행장을 지으며 청장이라는 호를 쓴 이유를 밝혀 이덕무의 삶의 의미를 밝혔다.

눈 구경 나선 길에 징검다리를 마주한다. 그 끝자락에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백로 한마리를 보며 이덕무의 청장靑莊을 떠올려 본다. 사사로운 이득에 자신을 내몰지 않고 가난한 삶 속에서도 깨끗함과 향기로움을 잃지 않으려 했던 이덕무의 속내가 은근히 부러웠나 보다. 손에 든 책,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의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참으로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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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나무'
설날이면 노오란 색으로 옷을 입고 뜨거운 불판에서 갖나온 전을 조상보다 먼저 먹었던 그 색으로 기억된 나무다. 차례상에 오르기 전이지만 한개쯤은 기꺼이 허락했던 그 마음으로 할머니의 마음의 맛과도 닿아 있다.


무명저고리 그 하얀빛으로 꽃을 피웠을 치자가 열매를 맺고 겨울 찬바람에도 거뜬하게 매달려 있다. 온갖 곡식을 키워내며 궁핍한 날들을 버거워하던 사람을 살렸던 그 밭 언덕에 여전히 서 있다. 조그마한 손으로 일손이라도 돕고자 했던 마음에 밭둑을 서성이던 어린 그 마음에도 치자꽃은 예쁘기만 했다.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치자는 꽃 가운데 가장 귀한 꽃이며, 네 가지 이점이 있다. 꽃 색깔이 희고 기름진 것이 첫째이고, 꽃향기가 맑고 풍부한 것이 둘째다. 겨울에도 잎이 변하지 않는 것이 셋째이고, 열매로 황색 물을 들이는 것이 넷째다"라고 하여 치자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치자나무와 비슷하지만 잎과 꽃이 작고 꽃잎이 만첩의 여러 겹으로 된 것을 '꽃치자'라고 하는데 꽃치자는 향기가 너무 강하여 가까이서 버겁다. 은은한 향을 즐기려면 홑꽃을 달고 있는 치자를 심는 것이 좋다. 꽃말인 '순결', '행복', '청결'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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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쏟고난 하늘엔 별들이 총총하고 푸르고 깊은 밤이 아득히 멀어 보인다. 바람도 잠든 한밤중 뜬금없이 울리는 풍경소리에 그리운님 소식인양 서둘러 격자문 열고 토방 아래 내려섰다.

눈 길을 따라 뜰을 지나 골목 끝 가로등 아래서 섰다. 봄부터 가을까지 할머니들의 놀이터인 채마밭 너머로 밤은 깊어가는줄 모른다. 여전히 잠들지 못하는 산등성이 너머를 향하는 발길을 억지로 붙잡고 돌아서는 등굽은 내그림자가 유난히 짧아 보인다.

뎅그렁ᆢ.
눈빛에 놀란 처마밑 풍경이 스스로 울리는 밤이 사뭇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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