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가는 길'
오랜 기억을 되짚어 그 길을 걷고 싶었다. 다산이 혜장선사와 유불儒佛의 틀에서 벗어난 마음을 나누었던 길이고, 바다를 건너온 제주도 봄볕이 붉디붉은 그 마음을 동백으로 피었던 길이다.


"한 세월 앞서
초당 선비가 갔던 길
뒷숲을 질러 백련사 법당까지 그 소롯길 걸어 보셨나요
생꽃으로 뚝뚝 모가지 째 지천으로 깔린 꽃송아리들
함부로 밟을 수 없었음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송수권의 시 '백련사 동백꽃' 중 일부다. 모가지째 떨구는 동백은 아직 피지 않았다. 게으른 탐방객에게 한꺼번에 다 보여줄 때가 아닌 것이리라.


뱩련사 아름드리 동백나무숲 푸른 그늘은 시린 정신으로 열반의 문을 열었던 선사들의 넋도, 남도땅 끝자락까지 봄마중 온 이들의 상처투성이로 붉어진 마음도 품었을 것이다.


하여, 백련사 동백숲에 들 요량이라면 세상과 스스로를 향해 갑옷으로 무장했던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고 동백의 그 핏빛 붉음으로 물들일 준비를 마쳐야 하리라.


봄이 깊어질 무렵 그 동백꽃 "생꽃으로 뚝뚝 모가지 째 지천으로 깔린 꽃송아리들" 보러 다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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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 하늘빛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갇힌듯 하지만 그렇다고 답답함까지는 몰아가지 않으니 움츠린 가슴을 조금 펴고 평온함을 불러오기에 적당하다. 이 또한 상대적이라 여전히 지금 이 하늘빛 닮은 얼굴들은 땅만 보고 걷는다.

쉬어 가도 버거운 산길은 홀로 걷다 툭 터지듯 뱉은 숨 끝자락에서 눈맞춤 했다. 팔 벌려 겨우 닿을듯 말듯 지근거리지만 발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라 마음과는 달리 몸은 주춤거린다. 서걱거리는 겨울 숲의 마른 기운이 애써 키워가는 봄이 여기에 담겨 초록의 꿈을 꾸고 있으리라.

실바람도 멈춘 하늘은 해마져 삼키고 고요에 겨워 잿빛으로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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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잠잠하게 다독거려서일까 분주한 아침시간 마음이 몸보다 느려졌다. 산을 넘는 해와 찰라의 눈맞춤으로 깊은 하늘을 품는다.

깊다. 청연靑燕의 뜻을 품고 한번 만이라도 날자꾸나. 고요 속 하늘바다로 유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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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속離俗'
홀로 마시는 차를 속세를 떠났다는 의미의 '이속離俗', 둘이 마시는 차를 한가하고 고요하다는 '한적閑寂'이라하고, 셋이 마시는 차는 '유쾌愉快'라고 한다는데 여기서부터는 이미 고요한 차맛은 사라진다.

밤하늘 품이 많이도 줄어든 달이지만 그 밝기는 줄지 않았다. 달 한번 보고 한걸음 또 달 한번 보고 한걸음ᆢ. 한바퀴 걷는데 몇십보면 충분한 크기의 조그마한 뜰이지만 달빛이 가득하니 하늘처럼 넓다.

'이속離俗'
차 한잔 마련해 두고 깊어가는 겨울밤의 적막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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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나무'
나즈막한 산으로 둘러쌓인 곳에 넓은 운동장을 가진 연수원이 있다. 그 둘레에 큰키나무가 여럿있다. 이른봄 독특한 모양의 초록색의 넓직한 잎이, 초여름 등잔불 밝히듯 연두, 노랑 그리고 주황빛이 베어 나오는데 꽃이, 가을엔 붉은 단풍으로 겨울엔 열매로 사시사철 관심가는 나무다.


높이 30m 가까이 크는 나무라 유심히 보지 않으면 꽃이 핀지도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어쩌다 낮은 가지에서 피는 꽃을 보기 위해 나무둘레를 서성이곤 한다. 그 꽃을 보기 위해 내 뜰 가장자리에 한그루 심었다.


백합나무는 꽃이 백합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튤립나무라고도 하는데 영낙없는 튤립모양으로 하늘을 바로보며 핀다.


신작로가 나면서 가로수로 심기 위해 플라타너스(버즘나무), 양버들, 미루나무 등과 함께 도입된 나무라고 한다. 가로수로 박물관 정원수 등으로 그 흔적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높고 큰 나무가 주는 안정감에서 그 나무 품으로 파고들게 하는 나무다. '안정'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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