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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손바닥 정도의 작은 문고판인데다가 아주 얇다그런데 처음 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 어려웠다.(번역가들이 번역하기에도 난해한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그저 탄식할 뿐더할 나위 없는 걸작이라고 격찬을 했으며 문학가 마사무네 하쿠초 또한 인간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는 작품이라 감탄하였고나카무라 미쓰오는 일본 근대 소설 중 열 작품을 꼽으라 하면 반드시 들어가야 할 걸작이라는 호평을 했다이러니 호기심이 당길 수밖에.

 




 이야기는 오사카에 있는 묘지에서 시작된다화자는 절 안내인을 따라 슌킨의 묘 앞에 왔다슌킨의 본명은 모즈야 고토다경사면 중턱을 평평하게 만들어 조촐한 빈 땅에 지은 묘이다모즈야 집안은 이미 몰락해서 일족 중 한 사람이 참배하러 올 뿐이어서 집안의 고귀한 사람이라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는다그 옆에 작은 묘는 슌킨의 문하생이자 실질적인 부부였다는 사스케의 묘지가 있다이들은 영묘한 인연으로 얽혀 저녁 안개 아래동양 제일의 공업도시를 내려다보면서 영원히 잠들어 있는 것이다묘지가 여기에 위치하게 된 것은 사스케의 순정과 생전에 정해두었다는 설명도 들어있다. ‘는 슌킨의 무덤 앞에 예를 표하고 검교(檢校)의 묘석을 어루만지며 석양이 질 때까지 천천히 거닐었다.

 




 그 무렵 는 <모즈야 슌킨전>이라는 소책자를 접하고 슌킨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슌킨 3주기에 제자인 검교가 누군가에게 부탁하여 스승의 전기를 편찬하여 선물로 나누어 준 것이었다내용은 문장체로 엮어 있고 검교는 3인칭으로 써 있었지만 틀림없이 이 책의 저자는 검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말하고 있다어려서 춤을 배웠는데 스승도 혀를 내두를 만큼 영특하고 현명하고단정한 용모에 고아한 분위기의 마치 신과 같이 여겨졌다는 내용이 써 있었다겉보기에 나이도 37세라고는 해도 27,8세로 보였다.


 



 슌킨은 9살 때 불행하게도 눈병을 얻게 되고 양쪽 눈이 실명하게 된다부모는 비탄에 젖어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미워하게 된다부모로서 얼마나 고통스런 상황인가그때부터 춤을 그만두고 거문고를 배우게 되었다그녀는 응성받이로 자라서 교만한 구석이 있었지만 애교가 있고 아랫사람에 대한 배려나 붙임성이 있어서 형제 중에서도 사랑받았지만 막내에게 딸려있는 유모는 그녀를 미워했다고 한다검교는 혹시 유모가 그녀를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나 의심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맹인이 되고 나서 무용을 그만 두게 되고 거문고에 입문하게 된다스승은 그녀가 10세 때 그토록 어렵다는 [새벽 달](오사카 지방의 사미센 가곡(地唄). 미네자키(峰崎)고토(勾?)가 애 제자의 죽을 슬퍼하며 1주기를 추모하며 만든 곡으로 명곡으로 알려져 있음긴 간주곡이 특히 역작이라고 함.) 을 들려주었는데 혼자서 모두 외워 사미센으로 연주했을 정도로 음악에 선천적인 재능을 보여 놀라게 했다영혼을 불태우듯이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생계를 유지하기는 힘들었다그래서 오사카의 본가의 도움을 받는다.

 



 

 특별히 장래에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단지 열심히 기술을 갈고 닦을 뿐이었다스승은 엄격하게 대했지만 혼내는 일은 없었고 칭찬해줄 때가 많았다고 한다친절하고 상냥하게 가르쳐주어서 선생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열 세 살 사스케가 아홉 살의 슌킨과 만났을 때 이미 그녀는 실명을 해서 아름다운 눈동자를 볼 수 없었다하지만 만날 때부터 그랬으니까 사스케는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았고원래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얼굴로 생각했기에 오히려 행복했다고 한다.

 



 슌킨에게는 12살인 언니와 6살인 동생이 있었는데 그들보다 기량이 뛰어났다그리고 사스케가 슌킨을 사랑하게 된 것도 어쩌면 운명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는 그녀의 장애 때문에 연민과 동정이 생긴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모습에서 신기한 기운 같은 걸 느껴서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누군가 그게 아니라는 오해를 하고 수군거리면 그런 말은 어처구니없는 말이라며 반박을 했다하지만 사스케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처음의 불타는 듯한 숭배의 마음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면서 착실하게 섬겼기에 연애라는 자각이 없었고있다고 해도 상대는 천진난만한 딸이고누대에 걸친 주인의 따님이어서 그저 분부를 받들어 함께 길을 걷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던 것이다그런데 사스케만이 아니라 여자 하인이 시중을 들 때도 있었는데 슌킨이 사스케가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사스케가 14세였던 때부터 맡게 되었다고 한다그때부터 매일 검교의 집에 가서 공부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데리고 오는 일을 반복했다누군가 왜 사스케에게 시중을 들게 했느냐고 물으면 슌킨은 사스케다 온순해서 그랬다고 한다.




 영민하고 조숙한 그녀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된 후 제 육감이 더욱 예민해져 사랑을 인식했음에도 사스케에게는 털어놓지 않아서 처음부터 사스케를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그녀를 시중을 드는 일은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제멋대로인데다 맹인 특유의 고집이 있어서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신경 쓰지 못한 사이 그녀의 기분이 나빠질 때도 있어서 얼굴 표정이나 동작을 놓치지 않아야 했기에 신중함을 시험당하는 기분이었다슌킨은 사스케를 은근히 짖궂은 장난으로 괴롭히기도 했는데 그는 오히려 어리광을 부리는 듯 일종의 은총으로 여기며 즐거워했다그렇게 슌킨의 시중을 들면서 그녀가 연습하는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자연히 음악의 취미가 길러졌다.

 



 나중에 사스케도 맹인이 되어 슌킨의 명예를 얻어 검교의 자리를 얻고 음악을 했지만 슌킨이 높은 하늘만큼의 천재적인 재능이 타고 났다면 사스케는 엄청난 노력으로 인한 것이었다사스케는 14세에 변변치 않은 사미센 하나를 사서 동료들이 모두 잠든 심야에 연습을 했다. 5,6명의 종업원이나 견습생이 서면 머리가 닿을 정도로 천장이 낮고 좁은 방에서 그들이 잠자는 것을 방해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조건으로 비밀스럽게 부탁한 것이다불평을 하는 이는 없었지만 그들이 숙면을 취하기를 기다렸다가 벽장 속에 들어가 연습을 했다.

 



 이렇게 몰래 연습하곤 했던 일이 같은 방 동료 외에는 몰랐는데 어느날 새벽 슌킨의 어머니의 하녀가 화장실에 있을 때 []이라는 곡이 들려서 알게 되고 너도 나도 들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슌킨의 어머니까지 알게 된다하지만 사스케는 아직 모르는 줄 알고 대담해져서 일하다가 쉬는 짬이 생기면 연습하다가 나중에는 잠이 부족해지고 따뜻한 곳에만 있으면 졸음이 쏟아지게 된다그리고 새벽 세시에 빨래 말리는 곳에서 혼자 연습을 하다가 희미하게 동이 트기 시작하면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리하여 점포 지배인에게 불려가 호되게 야단을 맞고 사미센을 몰수당했지만 안에서는 어느 정도 칠 수 있는지 듣고 싶다는 의견이 나왔고생각지 않은 곳에 구원의 손길이 펼쳐졌는데 그 사람은 슌킨이었다이리하여 11세의 슌킨과 15세의 사스케는 사제의 연을 맺고 견습생 일을 하는 한편 일정 시간을 정해서 사미센 배우는 것을 허락받게 되었다하늘을 오를 듯이 기뻤음은 물론이다평소 신경질적이었던 슌킨이 어떻게 그런 혜택을 사스케에게 허락했을까궁금해 했는데 아마도 주위 사람의 의견이 전달되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알고 보니 고용인들이 신경질적인 슌킨을 시중드는 것이 힘들고 슌킨과 사스케가 같은 취미를 갖고 있으니 그쪽으로 유도해서 그 책임을 전가한 것이었다아마도 사스케가 신의 가호가 분에 넘친다고 기뻐할 것이라며 말이다결과적으로는 사스케가 큰 은혜를 입게 되었다어쨌든 영악한 하인들 덕분에 이렇게 둘의 운명은 시작되었다.

 



 이 둘은 주종(主從)관계도 아니고 동문(同門)도 연인 사이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2,3년 계속되다가 나중에 순쇼 검교가 죽고 나서 슌킨은 스승의 자리를 물려받는다그런데 어린 스승 슌킨은 네 살이나 많은 제자 사스케에게 어떻게 가르쳤을까야무지게도 슌킨은 바보이것도 외우지 못했느냐고 소리지르며 북채로 사스케의 머리를 때리는지 훌쩍훌쩍 우는 소리를 들은 고용인들을 놀라게 했다슌킨은 가학적인 면이 있었다그런데도 사스케가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있었던 것은 슌킨에 대한 순애보적인 사랑과 연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슌킨이 애지중지했다는 휘파람새와 종다리 이야기도 나온다가장 좋아하는 새는 휘파람새였는데 텐코’(우렛 소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침저녁으로 지저귀는 소리를 즐겼다슌킨의 재능을 샤미센칠현금만이 아니라 작곡도 할 줄 알았고 다양한 재능이 있었다거문고를 연주하면 휘파람새가 기뻐하며 지저귀고 함께 연주를 겨루는 듯한 분위기였다고 묘사하고 있다부자집에 태어나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다하고 살았던 슌킨에게 맹인이 된 것 말고도 시련이 있었으니 몰래 잠입한 흉한(兇漢)에게 끓는 물 세레를 받은 것이었다그 이후 슌킨은 얼굴과 머리를 거의 꽁꽁 싸매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썼다사스케는 이런 슌킨의 모습을 보기가 그렇게 괴로웠을까. 41세에 맹인이 된다세상에맹인이 되려고 작정하고.. 그 과정을 묘사하는 부분은 정말 섬뜩하다하녀의 방에서 몰래 경대와 재봉바늘을 가지고 나와서 자기의 눈을 찔러서... 그리고는 슌킨에게 자기도 이제 맹인이 되었다고 말한다물론 그 얘기는 하지 않는다단지 스승님을 지키지 못해서 그 빚을 갚기 위해 맹인이 되기로 했던 것 같다.

 



 글쎄 그 부분에서 의문이 들었다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고 빚 갚음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고 해도 멀쩡한 눈을 멀게 해서까지 할 수 있을까그런데 사스케는 그렇게 되고 나서 더욱 더 행복을 느꼈다고 묘사하고 있다눈이 보였을 때 못 보던 것을 맹인이 되고 나서 더욱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는 아이러니어쩌면 사스케가 맹인이 되고 나서 슌킨은 전보다 마음을 내주었던 것 같다동병상련의 정을 느꼈을까사스케는 슌킨을 관념적인 슌킨을 만들어내서 사랑하고 있었다그러니 그녀가 죽었어도 사스케의 마음 속에는 죽은 사람이 아니었다촉각의 세계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교감에 뭉클하고 안타까운 감동으로 일렁였다.

 

 



***** 상품 검색이 안 돼서 페이퍼로!

좀 아쉬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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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01 00: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모나리자님 진정 일본어 고수!준이치로의 일본어 문장은 미시마보다도 어려운(특히 한자!) 전 세설만 완독 했지만 준이치로 두여자와 고양이 읽다가 내실력으로는 ,,이라며 뒷걸음 쳤는뎅 ㅎㅎㅎ

모나리자 2021-07-01 10:59   좋아요 4 | URL
왓!! 정말 고수된 기분인 걸요.ㅋㅋㅋ 감사해요!
정말 큰 응원의 말씀이세요. 진짜 어려운 한자 많이 나오고 오사카 방언까지!
얇은 책 무시하면 안 된다니까요.
조루리 등 일본 전통 가극과 유파 이야기도 곁들여서 나오는데 사전 찾느라 시간 겁나게 많이 썼어요.ㅋㅋ 그만큼 뿌듯한 마음!!
7월도 화이팅 하세요~스콧님.^_^

새파랑 2021-07-01 00: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원서 보시는 분들 너무 부러워요 ㅜㅜ 근데 리뷰만 봐도 너무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일부러 맹인이된다는 건 어떤 마음이었을지 ㅜㅜ

scott 2021-07-01 00:50   좋아요 5 | URL
새파랑님 민음사 쏜살 문고에서 준이치로 ‘슌킨 이야기‘ 있습니다
준이치로 이 작품은 중국 현대 문학과 한국 소설가들에게도 깊이 깊이 영향을 준 작품 ^ㅅ^

모나리자 2021-07-01 11:02   좋아요 4 | URL
네. 감사해요. 새파랑님.^^
맹인 되기로 작정하고 그 장면을 묘사하는데 너무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어서 무섭더라구요.ㅠ 아마도 슌킨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어서 용감하게(?)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새파랑님도 곧 읽어보실테니... 직접 느껴보세요.
7월도 힘차게 화이팅 하세요.^^

모나리자 2021-07-01 11:05   좋아요 4 | URL
가와바타야스나리까지 칭송을 아끼지 않은 걸 보면 대단한 것 같아요.
정말 사스케의 순애보를 넘어 영혼의 사랑이었어요. 아무래도 처음에는 연민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붕붕툐툐 2021-07-01 17: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야~ 원서 독자에게서 풍겨 나오는 이 멋짐!!👍👍

모나리자 2021-07-01 2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툐툐님 좋은 말씀도 큰 응원이세요. 편안한 밤 되세요.^^

그레이스 2021-07-01 2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번역본으로 읽어 봐야겠어요^^

모나리자 2021-07-01 2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좋으실거예요~그레이스님 굿밤되세요.^_^
 
雪國 (改版, 文庫)
가와바타 야스나리 / 新潮社 / 1986년 7월
평점 :
품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원서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이렇다 할 줄거리가 없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며 서정성 뛰어난 문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주된 등장인물은 시마무라와 요코, 고마코 단 세 사람이다. 기차 안에서 남편인 듯한 환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요코를 만나게 된다. 시마무라에게 요코는 슬플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주인공으로 각인된다.

 



 시마무라는 요코가 처음 기차를 탈 때 서늘하고 찌르는 듯한 아름다움에 놀라서 눈을 내리뜨는 순간 요코의 손을 꽉 잡은 남자의 손을 보게 된다. 요코가 아픈 남자를 돌봐주는 모습을 바라본다. 둘은 끝없이 먼 곳에 가는 것처럼 여겨지고 슬픔을 보는 것 같은 괴로움 없이 영화 속 장면으로 생각한다. 저녁 풍경이 기찬 안에 비친 가운데 그들의 행위가 이 세상에는 없는 상징의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묘사가 정말 환상적이고 느릿느릿 움직이지만 아주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내용에서 보듯이 시마무라는 관찰자 입장으로 보인다. 기찬 안에 있는 요코의 모습과 저녁놀 풍경 분위기가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저녁 풍경의 흐름 속에 요코가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윽고 짙은 어둠이 깔리자 환상적 풍경이 사라지고 말았다. 요코의 얼굴에서 맑고 차가움을 새로 발견한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요코네와 같은 역에서 내리게 된다. 기차 안에서 훔쳐보았던 것이 부끄러워져서 기관차 앞을 얼른 건너간다.

 



 설국에 온 시마무라는 주변 풍경에 놀란다. 여관 지배인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나온다. 꽁꽁 싸맨 복장을 보면서 놀라고, 이렇게 심한 추위도 처음이다. 눈 색깔로 인해 집집마다 낮은 지붕을 한층 더 낮아 보이게 했다. 마을은 쥐죽은 듯이 바닥에 내려앉은 듯했다. 요코가 돌보는 남자는 시마무라가 만나러 온 여자의 아들이었다. 시마무라는 전날 보았던 저녁 풍경과 요코를 되새긴다. 그 저녁 풍경이 결국은 시간의 흐름의 상징이었을까, 하고 혼자 중얼거린다.

 



 부모의 재산을 받아 여유가 있어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는 추운 곳에 놀러왔다가 산에 다니기도 하고 게이샤를 불러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녀는 19세인데 도쿄에서 술 따르는 일을 하다가 설국에 와서는 일본 무용의 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1년 되었을 때 남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해서 시마무라를 놀라게 한다. 그동안 말 상대가 없어서 굶주렸나 싶을 정도로 수다에 열중하는 자신을 느낀다. 고마코는 화류계 출신 여자답게 격의 없는 모습이었고, 남자의 마음을 대강 알고 있는 것 같았다. 1주일이나 사람과 말을 건 적이 없었기에 반가움과 따뜻함이 넘쳐서 여자와 우정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함께 삼나무 숲으로 들어가 자연을 즐기기도 한다. 어느 날 밤 10시가 다 되었는데 고마코가 새된 목소리로 시마무라의 이름을 부르며 갑자기 쳐들어오듯 그의 방에 들어온다. 술에 취한 모습에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그녀를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시마무라에게 다가오고 싶은 고마코의 마음이었을까.

 



 장면은 바뀌어 시마무라가 회상하는 장면인가, 했는데, 다시 만난 상황이다. 다시 만난 지 199일째가 되었다고 하자, 일기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고 한다. 일기를 쓰고 소설을 읽고 제목이나 작가, 인물의 이름, 관계 등을 적은 노트가 10권이 넘는다는 놀라운 말을 듣는다. 그러면서 그건 헛된 일이 아니냐고 묻는데...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고요함 속에서 여자에게 매혹당한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 헛된 일만은 아닐 거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그녀의 존재에게서 순수함을 느낀다. 시마무라는 문득 자신이 외국 서적에서 사진이나 문자에 의지하여 서양 무용에 대해 몽상하고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가 아닐까, 동질감을 느낀다.

 



 이 작품은 한 마디로 그림 같다. 시마무라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자연의 모습이나 인물의 모습을 표현한 문장이 정말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주된 묘사는 하늘, 새벽, 밤의 모습 등의 묘사가 많이 나온다. 코마코의 발그레진 얼굴이 거울에 비친 눈 속에 떠오른 모습과 대비되어 형언할 수 없는 청결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시마무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들에게 매혹당하지만 동화되지는 못한다. 아마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허무주의가 반영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작품 전체의 느낌은 차가움, 아름다움, 정적인 느낌이다. 어렸을 때 이후 언제 들었는지 아련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 처마에 고드름이 햇빛에 빛나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은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번역본으로 한번 읽어보고 나서 다시 한번 음미하듯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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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02 21: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원서로 읽으시다니 일본어 능력자셨군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너무 아름다운 책~!!

모나리자 2021-05-03 10:52   좋아요 3 | URL
앗! 아직 능력자는 아니구요. 능력자이고 싶은 사람입니다!ㅎㅎ
첫 문장은 너무도 유명한 문장이라 이 작품 읽지 않아도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요.
5월도 화이팅입니다. 새파랑님.^^

바람돌이 2021-05-02 22: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원서로 읽으시다니..... 저에게는 이 책 정말 묘사가 끝내주는, 하지만 내용은 재미없는 책이었는데 원어로 읽으면 좀 다를까 싶어지네요. ^^

모나리자 2021-05-03 10:54   좋아요 3 | URL
아직 어렵네요.ㅎ 정말 원문으로 만난 문장들이 너무 좋았어요.
줄거리가 없는, 사람의 심리와 배경 묘사에 치중한 작품이라 그것에 집중하며 읽어야 작품의 멋을 느낄 수 있대요.
번역본을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볼빨간레몬 2021-05-02 23: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의 첫머리가 잊을 수 없는 문장이었어요. 어릴 땐 이게 뭐지 싶은 책이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생각나더군요. 원서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정말 궁금해요.

모나리자 2021-05-03 10:56   좋아요 4 | URL
눈 많은 고장의 풍경을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추운 겨울에 읽으면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scott 2021-05-03 00: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야스나리 문장에는 음표가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산소리‘ 문장에서는 바람부는 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개울물흘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설국은 사미센 연주 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들정도!

소세키작품ㅇㄹ 비롯해 야스나리 원문도 한자어가 어려워서 읽기 쉽지 않을텐데
모나리자님 대단!!


모나리자 2021-05-03 11:00   좋아요 4 | URL
맞아요. 이 작품에도 청각적인 묘사가 꽤 나와요. 그리고 밤의 색깔 묘사도 멋지고요.

확실히 소세키 작품이나 오래된 작품은 한자가 어려워요. 요즘 잘 쓰지 않는 단어들도 많이 나오더라구요. 아직은 단어 찾느라 시간이 많이 걸려서 힘들어요.ㅎ 일단 술술 읽을 정도가 되는 것이 목표!! 입니다.
감사해요! 스콧님의 격려 말씀에 불끈 힘이 나네요.ㅎ^^!
5월도 멋지게 화이팅입니다~^^
 
坊っちゃん (新潮文庫) (改版, 文庫)
나쓰메 소세키 / 新潮社 / 1950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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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의 번역본을 읽은 지 꽤 되었고 짤막한 감상만 적어두었기에 내용은 가물가물해졌는데 다시 읽으면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백 년도 훨씬 전에 쓰인 이야기라 그런지 어려운 단어도 많다하지만 작가가 쓴 원문 문장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어조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점은 참 매력적이다무뚝뚝해 보이는 소세키 특유의 성격이 그대로 전해져 웃음짓게 만들었다이 작품은 1906년 4월 39세에 발표한 작품으로 그가 마쓰야마의 시골 중학교에서 근무한 체험이며 10년쯤 뒤에 쓴 소설이다.

 


 인삼을 심고 위에 볏집을 깔아 둔 남의 밭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밭을 밟아 뭉개는 등 개구쟁이 악동이었던 를 아버지는 별로 귀여워하지 않았다어머니가 돌아가시기 2,3일 전에는 부뚜막에서 장난을 치다가 늑골을 다치기도 했다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형은 너 때문에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셨다고 때리기도 했다형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 10일 한번은 싸웠다장기를 두다가 싸우다가 말을 내팽개쳐서 형의 미간을 다치게 하기도 했다그것을 전해 들은 아버지는 의절한다는 말까지 꺼냈는데... 키요가 울면서 대신 사과한 덕분에 아버지의 분노를 풀 수 있었다. ‘를 아껴주는 유일하게 사람은 하녀 키요 한 사람이었다심지어 에게 좋은 성품을 타고났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그런데 는 그 말이 이해되지도 않고 사탕발림으로 말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키요는 더욱더 를 귀여워해 주었다왜 그렇게 자신을 귀여워해 주는지 헌신적인 키요가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추운 밤에 먹을 것을 갖다 주지 않나 먹을 것만이 아니라 연필 필기장 등 온갖 것을 나를 위해 챙겨주었다.

 


 키요는 도련님이 집을 갖고 독립하게 되면 따라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고지마치가 좋으냐 아자부가 좋겠느냐 하면서 그네도 준비할 거라는 등 멋대로 계획을 늘어놓았다그래서 서양식 집이건 일본식 집이건 갖고 싶지 않다고 하니 키요는 그래서 도련님은 욕심이 없어서 마음이 깨끗한 거라고 칭찬을 한다키요는 뭐라고 말해도 칭찬해 주었다어머니가 돌아가시고 5,6년 동안 이런 상태였다아버지에겐 혼나고 형과는 싸우고 키요에게는 과자를 받고 때때로 칭찬을 받았다

 


 어머니 돌아가신 6년째 아버지가 돌아가신다그 당시 나는 중학교 졸업을 한다형은 큐슈로 떠나면서 재산을 정리하자는 말을 꺼낸다섣불리 형의 보호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사이가 좋지 않아서 싸우게 되고 머리를 숙여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면서 둘은 갈라졌지만 키요의 거취가 문제였다키요는 아내를 얻을 때까지 도련님과 함께 있겠다고키요에게 조카가 있었지만 오랫동안 있던 집이 편하다면서.

 


 형은 큐슈에 가기전에 재산 정리를 해서 장사든 공부든 하라고. 600엔을 나에게 준다그리고 형과 신바시 정류장에서 헤어진 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나는 그것을 1년에 200엔씩 3년간 사용해서 공부를 하기로 한다어느 날 물리 학교 앞을 지나가다가 학생 모집 광고를 보고 입학 수속을 밟는다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것도 부모로부터 대물림한 앞뒤 안 가리는 무모한 성격 때문에 일어난 실수라고 한다.

 


 그리고 3년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빨리 지났고 졸업을 하게 된다어느 날 교장이 불러서 가보니 시코쿠 주변에 있는 중학교에 수학교사가 필요한데 월급은 40엔이지만 가면 어떠냐고 묻는다하지만 나는 사실 교사가 되는 것도 시골에 가는 것도 생각해 본 적 없다그렇다고 무엇보다도 교사 외에 무엇을 하려는 목표도 없었기 때문에 그 상담을 받아들여 가겠다고 즉석에서 대답했다이것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무모함이 빌미였다.

 


 지금까지 3년간 작은방에 칩거하면서 잔소리를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싸움하지 않아도 되었다내 생애 동안에 비교적 평온한 시절이었다그런데 시코쿠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찹하기만 하다지금까지 도쿄를 떠난 적이 없다도쿄 외의 땅을 밟은 적은 친구와 가마쿠라에 소풍을 간 것뿐이다멀고 지도에서 보아도 바늘 끝으로 찌를 만큼 작게 보인다어떤 마을인지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모른다갈 수밖에 없지만귀찮은 생각이 든다.

 


 약속 날짜가 다가와서 키요에게 갔더니 키요는 감기에 걸려서 누워 있다언제 집을 갖게 되느냐고 물으니 당분간은 갖지 못한다시골에 가야 한다고 하니 아주 실망한 모습이다그래서 가기는 가지만 곧 올테니까 갖고 싶은 걸 선물로 사주겠다아니 에치고의 엿(조릿대 잎으로 싼)이 먹고 싶다고 한다내가 가는 곳의 시골에는 그게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꽤 아쉬워 하는 눈치다떠나는 날 아침부터 키요는 와서 치약이나 손수건을 직물 가방에 넣어준다그리고 이제 이별일지도 모른다면서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어머니 대신 애정을 주었던 키요와 이별 장면이 짠했다.

 


 시골 중학교로 가기 위해 배를 타야 한다기선에서 내리고 거룻배를 탔는데 사공은 벌거벗은 알몸에 훈토시를 매고 있다야만의 장소다에도에서 태어나 자란 화자의 눈에 비친 모습은 정말 야만이라는 말 외에 어울리는 말이 없을 것 같다벌써 이 장면부터 시골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떻게 살아 갈까 싶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중학교는 여기서 기차를 타고 2리를 가야 한다고 한다학교에 가서 교장과 만난다눈이 큰 너구리 같은 남자라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직원을 소개하는 등 긴 설교를 한다교장이 말한 대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나 같은 성격의 사람을 잡아두고 학생의 모범이 되고 학교의 사표(師表)로서 우러러보게 해야 한다는 등 학문 이외에 개인의 덕화(德化)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교육자가 될 수 없다는 등 주문을 한다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월급 40엔을 받자고 먼 시골까지 왔단 말인가선생들의 별명을 짓는다너구리 같이 생겼다며 교장에게 타누키라고 부르며험악한 얼굴을 한 수학교사 홋타를 히에이잔(比叡山)의 악승같다면서 야마 아라시(山嵐)’라고 부른다교감은 희한하게 빨간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몸에 약이 되고 위생을 위해서 일부러 맞추었다는 말을 듣고 아카샤츠(빨간 셔츠)라는 별명을 붙인다.

 


  어쩔 수 없이 학교에 오긴 했으나 교장도 그렇고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월급 40엔을 받으면서 요구하는 건 많다고 생각한다속아서 왔다고 포기하고 거절하고 가버리려고 생각했다그런데 숙소 대금을 5엔을 내고 나니 지갑 속에는 9엔 밖에 없다. 9엔으로 도쿄에 돌아갈 수 없다찻값을 쓰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며 후회를 한다.

 


 학교에서 첫 수업을 하고 나니 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분위기를 파악하게 된다공부를 해야 할 학생이 틈새 시간을 이용하여 청소 학교에 붙들려 있는 것을 보고 법이 있는 것인가 생각한다그렇게 느낀 것들을 야마 아라시에게 호소했더니 그는 아하하하웃으면서 학교에 대한 불평이 있으면 나한테만 말하라고 한다.

 


 악동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부분이 참 안쓰러우면서도 웃겼다첫날 수업을 마치고 밖을 돌아다니다가 소바가게에 갔다가 덴뿌라(튀김)을 네 그릇이나 먹게 되었다그런데 미리 와 있던 학생들과 마주쳤다다음날 교실에 들어가니 칠판에는

 


선생이 한 가지의 덴뿌라를 네 그릇이나 먹었다는 소문이다‘ ’

다만 웃지 말 것

 


 이라고 써 있다그 다음날은 스미타(住田)에서 아주 맛있다고 소문난 집에 단고를 먹으러 갔는데학교에 가보니 ’단고 두 접시 7이라고 써있다또 온천을 좋아해서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탕에서 수영을 했었는데어느 날 갔더니 수영하지 말 것이라는 말이 붙어 있어서 단념했다다음 날 여지없이 칠판에는 탕에서 헤엄치지 말 것이라고 써있는 게 아닌가왠지 학생들이 나 한 사람을 정탐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악동들의 장난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비좁아 터진 시골에 온 자체가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다예의도 모르는 학생들에게도 실망했지만 교장을 비롯한 선생들도 마찬가지다교장과 교감을 제외한 나머지 선생들은 숙직을 해야 한단다왜 타누키와 아카샤츠는 예외냐고 했더니야마 아라시는 ’might is right’(힘이 정의다)는 말을 끌어 그게 바로 강자의 권리라고 말한다. ‘강자의 권리와 숙직은 별문제다빨간 셔츠와 타누키가 강자라고 한다면 누가 인정할 것인가. 40엔 속에 숙직해야 한다는 조건이 들어있다면 참을 수밖에 없겠지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며 분노한다.

 


 숙직을 하는 날 수업이 끝나고 시간도 있고 해서 밖에 나갔다가 타누키와 마주친다그는 오늘 숙직 아니냐고 묻는다또 다시 걷다가 이번에는 야마 아라시를 만난다이렇게 좁은 곳에서는 가다가 반드시 누군가와 마주친다바로 전에 교장을 만났다며 경고 비슷한 이야기를 하니 일단 학교에 돌아간다숙직실에 들어가 잠을 청하려고 들어갔는데 까칠까칠한 게 느낌이 이상해서 이불을 걷어보니 갑자기 5,60 마리의 메뚜기가 뛰쳐나온다모기장에 부딪히고 아수라장이 되자 화가 나기 시작한다정말 못 말리는 악동들이다.

 


 메뚜기 세례를 받은 다음에는 왠지 또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아 잠을 잘 수가 없다이런 녀석들에게 당하다니 자신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도저히 해낼 수가 없다며 신세타령을 하기 시작한다멀리 떨어져 와 보니 키요가 생각나고 교육도 받지 못하고 신분도 없는 하녀지만 인간으로서 우러러 보인다먹고 싶다는 에치고에의 사사아메(조릿대로 싼 엿)를 일부러라도 사다 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늘 자신을 칭찬했지만 칭찬받아야 할 사람은 키요 본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서구문물이 도입되기 시작한 일본 사회에서 예전의 도덕률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시기에 강직한 성격의 도련님인 와 빨간 셔츠를’ 대비하며 그 교활함과 허식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결국 부조리한 사회를 응징하지도 못했다소세키의 작품 태풍의 시라이 도야가 겹쳤다나쁜 선생들이 학생들을 선동해서 도야 선생을 괴롭혀서 쫓아낸 과정이 비슷해서 짠한 마음이 느껴졌다.

 


도쿄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키요를 만나러 간다그렇게 반겨주었던 키요현관이 딸려 있지 않은 집이라도 지극히 만족했던 키요는 폐렴에 걸려 죽고 만다봇짱(도련님봇짱 부르던 키요는 그렇게 갔다도련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겠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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魂の退社―會社を辭めるということ。 (單行本)
稻垣 えみ子 / 東洋經濟新報社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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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번역본 제목은 <퇴사하겠습니다>이다. 책 소개에 아사히 신문기자 이나가키 에미코가 28년간 잘 다니던 철밥통 같은 회사를 그만두고 쓴 이야기라 호기심으로 읽어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는데, 우리 집에 이 책 원서가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우리 큰 아이가 언제 사다 두었는지도 몰랐는데... 참 센스 만점이다!! 어떻게 그렇게 신의 직장을 박차고 나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의 혜택으로 둘러싸여 있다가 처음으로 무직자가 되어 세상을 바라본 광경은 웃음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녀는 긍정의 마음으로 똘똘 뭉쳐있었던지 전혀 불안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인이 되어 자신을 돌아보고, 돈과 일 자기다운 삶에 대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담담하고 유쾌한 입담으로 들려준다. 하지만 멋져 보인다고 해서 무턱대고 따라 하면 안 된다. 저자는 40세에 퇴사를 결심하고 10년간 준비했단다.




아프로 헤어(뽀글뽀글 아줌마 파마로 개그맨 윤택 모습을 떠올리면 되겠다.)를 한 모습에 웃음이 난다.

 


 어느 날 오사카부 경시청에 방문했을 때 경찰관과 담당 기자들과 간친회 모임에서 돌 아다니다가 아프로 가발을 발견하고 돌아가면서 써보는데 작가가 쓴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한참 지나 아직 젊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중년의 나이를 실감하고 회사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는 등 뭔가 변화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미용사를 설득해도 잘 알려주지 않자, 혼자 롯트를 말아서 가만히 6시간을 기다리니 둥그런 아프로 헤어가 탄생한다. 그리고는 이전에도 없던 인기몰이를 하게 되는데... 음식점에서도 덤을 주고 싶다며 관심을 보이고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소문을 듣고 구경하러 오는 손님까지 생긴다. 동성의 어떤 여성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등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즐거운 비명이다. 모히칸이나 Dread록스 머리를 한 사람에 비하면 큼직하고 둥근 머리에 친근감을 느낀 건 아닐까 짐작한다.

 


 보통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간다. 열심히 노력한 것에 대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바라지만, 세상일이 수학 공식처럼 언제나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니어서 실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인생은 끝나는 게 아니냐고 저자는 묻는다.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를 모색하기도 해야지 그냥 타성에 젖어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을 하는 것 같다.

 


 인생의 전환점이 목전에 가까이 온 38세에 시코쿠의 카가와 현 다카마쓰 총국으로 발령이 난다. 생각지도 못한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이었다. 그곳은 입사 초에 근무한 적이 있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였지만, 나이가 들어서 다시 되돌아가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도 하듯이 [시마 나가시](섬으로 전근을 간 일)로 인해 인생의 지혜를 얻었다. 그 결과 돈을 쓰지 않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돈이 모이기 시작한다. 다른 지방에 갔다 해도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동과 저축의 상관관계를 말하는 얘기가 재미있었다. 다카마쓰는 규모도 작아서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일본에서 가장 저축액이 높단다. 이것은 이곳 사람들이 돈을 잘 쓰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사누키 우동으로 유명한 지역인데 우동 값이 매우 저렴해서 무엇엔가 돈을 쓰려 해도 우동값을 상기하며 가늠하다 보니 테마파크 같은 시설들은 경영난으로 고전을 면치 못한다. 도시에서 일할 때는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고 돈을 물 쓰듯이 썼다. 밤에는 동료들과 스트레스를 풀며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녔고 비싼 화장품, 구두, 옷 등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가 시코쿠에 오니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놀러 가고 싶어도 돈을 쓸만한 장소가 없고 자연히 등산을 다니면서 순례자를 만나고 농산물 시장을 구경하며 삶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코쿠에서 2년을 보내고 본사로 와보니 전 직원이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혼자서 아사히 신문을 바꾸는 모임을 만들어 마감시간을 1시간 앞당기자는 제안을 하며 좋은 직장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을 다한다.


 

 그러다가 도쿄로 전근을 간다. 칼럼 데뷔 직전에 아사히신문이 2건의 오보를 인정하고 사죄를 해야 하는 사건이 발발하면서 회사가 위기에 빠지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퇴사하겠다는 시점이 가까워지자 이참에 그만둘까 생각도 하지만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데 이런 상황에 혼자만 빠져나가는 건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며 1년만 <죽을 각오로 열심히 하자>며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리고 1년간 그렇게 뛰어다니다가 퇴사를 선언한다. 철밥통 같은 미래의 희망이 보장된 직장을 그만두고 나오다니 참 대단한 사람이다. 개인에게 회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을 얘기하고 있어서 생각 거리를 안겨주었다. 돈과 인사(인사이동, 승진) 때문에 평생을 매달리는 일에 회의를 느낀 듯하다. <회사원>에서 <정년기>로 끝난다면 너무나 난폭한 기어 체인지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이 말은 전에 종교철학자가 인도인은 인생을 4단계로 나누는데 그중 3단계인 숲에 산다는 의미의 林住期에 강한 인상으로 남았고 나이가 들면서 자꾸 되새기기 시작한다.

 


 퇴사를 결심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입은 재앙의 근원이라면서, 자신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선포했던 일을 마치 실행에 옮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욱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한 번뿐인 인생 남은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고 실감하면서 변화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진지해 보였다. 승진이나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웠고 명단에 없을 때는 동요되기도 했다. 성차별이 없는 회사였지만 자신의 이름이 빠지면 의심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과정도 퇴사 결심을 하는데 어느 정도 이유는 되었을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든든한 배경이 되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회사로부터 무한의 은혜를 받았지만, 그 빚을 돌려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퇴사를 준비하면서 돌아보니 일하는 내내 월급과 지위에 연연했고, ’받는 것뿐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회사를 그만두고 살 수 있을까, 여러모로 실험해 본다. 인구감소와 빈집 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안하기도 한다. ’절전 이노베이션계획도 놀라웠다. 동일본 지진을 목격하면서 전기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을 하다가 결국 전기제품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오감이 예민해지고 바람소리, 벌레들 울음소리 등 풍류를 즐기고 보이지 않던, 보려고 하지 않던 세계를 보기 시작한다. ‘없다는 것 속에 사실은 무한 가능성이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전기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튜브에 연결된 채 살아가는 중병환자나 마찬가지라고 일침을 놓는다. 필요한 약이나 영양을 공급받지만, 스스로 일어나서 자유롭게 움직여 돌아다니는 것은 하지 못한다고. 자신은 그런 튜브를 하나씩 빼는 일을 함으로써 [절전]하는 행위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있으면 좋겠다]에서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직접 실험함으로써 진짜 자유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막상 퇴사를 하고 나서 부딪히는 세상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다. 무직이 되어 셋방을 얻으러 부동산에 갔는데 수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심문을 받는 듯한 온갖 질문에 시달린다. 무직이 되니 카드도 못 만들고 퇴직금에 세금이 있는 걸 몰랐고, 실업 보험(우리로 말하면 실업급여인 것 같다)을 못 받는 것에 분개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권고사직일 때만 받을 수 있는데 일본은 다른 모양이다. 이것은 취직하지 않고 혼자 자립을 하려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처사이며 실업급여란 다시 회사로 몰아넣으려는 시스템이라며 제도의 불합리함을 제기한다. 기자의 직업정신이 어디 가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휴대폰을 구입하는 과정에서는 온갖 사탕발림으로 혼을 빼놓고 이것도 해라 저것도 해야 한다 해서 결국 사서 나와 보니 다른 가게가 더 싼 가격이 걸려있다. 처음으로 겪는 세상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세상 물정을 몰랐는지, 그동안 회사의 은혜를 얼마나 크게 입고 있었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퇴사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자신이 직접 겪은 불편함은 사회의 불합리로 이어지고, 경제성장의 결과에서 비롯되었다고 꼬집는다. 예를 들면 회사에 매달려 열심히 일을 한 결과 국가는 성장을 하고 개인은 열심히 번 돈으로 소비를 한다. 평생 살아가면서 사용하는 물건은 한정되어 있는데 <있으면 편리하다>는 광고를 부추기면 거기에 동조되는 소비자의 심리 등. 결국 국가가 경제성장을 이루었더라도 손해를 보는 건 국민이라고 말한다. 국가가 <회사 사회>(회사 중심 사회의 의미)를 이끌어가는 주범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신문기자 일 외에는 전혀 돈을 버는 능력이 없는데 30년 가까이 일을 계속하면서 [쓰는 일]은 습관처럼 할 수 있었기에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원고료는 천문학적으로 너무 싸다며 너스레를 떤다. 모든 것이 보장되는 따뜻한 온실 같은 회사에서 나와 세상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 같다. 요리가 취미라서 음식점에서도 일을 하고 싶고, 일본 주()를 좋아해서 주점에서 술을 데워주는 일, 간호에 관련된 일도 해 보고 싶다고 한다. <회사 사회>를 부추기는 국가를 일본이라는 황야라고 깎아내리다가도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할 일이 넘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회사와 의 관계, ‘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력 있는 생각을 볼 수 있어서 인상 깊었다. 회사란 수행의 장소이지 의존하는 장소는 아니라는 얘기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언젠가는 누구나 회사를 졸업하는 날을 맞이할 테니 자립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들어가라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몸담고 있다 나와서 사업을 하다가 퇴직금을 몽땅 날렸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곤 한다. 공부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랫동안 자신을 키워주었던 회사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언제나 똑같은 업무를 보면서 일이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까. 사실 이럴 때가 중요할 것이다. 저자는 전기제품을 하나씩 없애면서 튜브를 제거하는 일이라고 했다. 의존하게 되는 끈 같은 것이었다. 결론적인 메시지는 편안하게 돌봐주는 직장에 속해 있을 때 나중을 위해 준비하라는 얘기다. 어쩌면 보통사람들이 용기를 낼 수 없는 일이어서, 배경이 되어주는 든든한 직장을 박차고 나와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어서 더 멋져 보였던 것 같다. 오늘도 조직의 든든한 울타리 안에 있는 여러분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 해보는 시간도 의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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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2-24 2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스타일이 아프로 헤어군요~그녀는 스타일도 배짱도 남다른것 같아요. 10년이나 준비했다는 것도 놀랍고 이 책 원서를 모나리자님 큰아이가 사다두었다는것도 멋져요. 가족들이 함께 책을 사랑하는건 더 특별한 일인듯^^♡

모나리자 2021-02-24 20:54   좋아요 3 | URL
네, 저도 처음 알았어요.ㅎ 그런데 정말 편할 것 같지 않아요? ㅋㅋ 우리나라 같으면 엄청 멋부리고 스타일리쉬하게 다닐 텐데.. 좀 예외적이기도 하고 보는 사람은 참 재밌을 것 같아요.

그렇게 호화롭게 살다가 전기제품을 쓰지 않고 삶의 변화를 단호하게 실천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겨울에 추워서 어떻게 사는지... 난방도 안 되는 나라인데... 어쨌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용감해 보였어요. 감사해요. 미미님.^^ 굿밤 되세요~^^!
 
九十歲。何がめでたい (單行本)
사토 아이코 / 小學館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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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는 백 세 넘은 시인의 시집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구십 세를 넘긴 노작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역시 장수의 나라인 일본 답다. 모르고 읽다가 검색을 해보니 일본에서 꽤 유명한 작가였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신문에 실린 인생상담 이야기를 에피소드와 곁들이거나 각종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 잘못된 문제를 꼬집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일이 다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가장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몇 가지를 얘기해 보려고 한다.

 


こみあげる憤怒孤独( 치밀어 오르는 분노의 고독)

 


오래 산다는 건 큰일이다, 라는 말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 자신의 몸이 여기저기 고장을 일으키는 걸 보고 딸이 한 말이란다. 딸의 나이가 50을 넘긴 건 아는데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자신의 나이도 91세인지 92세인지 잘 모르고 숫자를 세는 일이 왠지 귀찮다고 한다. 사람의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렇단다.

누군가 자신에게 나이를 물으면 나이를 세다가 몇 개월, 몇 일 날짜를 세다가 헷갈려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곤 만다. 이제 백세를 향해서 건강하게 사시라는 축하의 말을 들으면 겉으로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뭐가 경사스러워? 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이 되겠다.

 


노인의 꿈

 

90넘은 작가의 이야기라서 몸의 여기저기가 문제가 생기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TV를 보고 있는데 딸이 왔다가 음량이 너무 크다고 핀잔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확실히 잘 안 들리다 보니 자꾸 볼륨을 높이게 된 것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자신의 귀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인들과 이야기하다가도 잘 듣고 공감한 척하는 부분이 나와서 우스웠다. 동갑인 친구의 꿈은 덜컥 죽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아무런 고통 없이 가고 싶다는 것이다. 아래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젊은 사람은 꿈과 미래를 향하여 전진한다.

노인의 전진은 죽음을 향한다.‘


어쩌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에 마음이 짠해진다.

 


 

[소바픈] 이야기


 

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요리우리 신문에 고민 상담 이야기에서 작가의 동급생을 떠올리는 이야기다. 고인이 된 遠藤周作(엔도 슈샤쿠)의 별명이 소바픈 이었기 때문이다. 이 의미는 옆에(そば)가면 ふん[] 냄새가 난다고 하여 생긴 별명이다. 냄새란 옆 사람은 괴롭지만, 자신은 느끼지 못하는 양 의연한 채 지낼 수 있었기에 세계에 이름을 알린 작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회상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ながら不気味(나로서도 어쩐지 기분이 나쁜 이야기)

 


세타가야 구의 주택지에서 60년째 살고 있다는 작가는 동네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잘 짖는 개는 좋은 개이며 직분을 다하는 개이고 짖지 않는 개는 나쁜 개라나. 그러다가 어린아이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나 노래소리가 좋다고. 그런데 보육원 옆에 사는 노인들은 시끄럽다고 민원을 넣기도 하고 보육원 신설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고.

 


마을의 소리는 이런저런 소리가 섞인 편이 좋다고 한다. 시끄러운 쪽이 좋단다. 생활에 활기가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시끄럽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건 이 나라가 쇠약해지는 전조 같다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도 출산율이 떨어지는 추세여서 정말 공감할만한 얘기였다. 어린아이들 울음소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나라가 미래도 있다는 거다.

 

 


지장보살이 점지해 준 아기


 

홋카이도에 있는 우라카와 마을에서 여름을 보내곤 한 지가 40년이 되었단다. 그 마을을 그렇게 좋아한단다. 그러니까 40년이나 계속 그 마을에서 보냈겠지. 작가가 있는 아자토에이 마을에는 1백 가구 정도의 어부들 집이 모여있는데 그들과 마음이 맞아서 좋고 거기에 오면 마음이 놓인단다. 솔직한 성품이 동질감을 느끼고 정중한 인사가 필요하지 않아 편하다. 말하고 싶은 것을 부담 없이 할 수 있고 듣는 것도 기분이 좋다.

 


그 중 아베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하다가 아들이 태어났는데, 여기에는 탄생비화가 있다. 아베씨는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부 나카무라씨가 와서 말을 건다. 아베씨의 가게 옆 공터에 돌로 된 지장보살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아느냐고. 그 지장보살은 아이를 점지해주는 용한 보살이란다. 지장보살의 머리를 세 번 어루만지면서 아이들 갖게 해달라고 빌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카무라씨의 말대로 따라 했더니 기적처럼 아들 미키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홋카이도의 이 마을에 작가가 40년 동안이나 여름을 보내기 위해 피서를 간 모양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홋카이도 사투리인듯한 말이 나온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나카무라씨의 4번째 딸아이와 아베씨의 미키가 생월(生月)이 같다나. 작가는 이 이야기를 잡지에 썼고 아이가 없는 사람들이 지장보살을 만나러 오기 시작했다. 아베씨의 가게는 아이를 점지받으려는 지장보살 안내소가 된 것이다. 홋카이도는 물론이고 가고시마에서도 사람들이 오게 되자 아베씨는 가게 앞에 [아이를 점지하는 지장보살]이라는 글자를 새긴 기둥을 세운다.

 


지장보살이 점지해 준 아베씨의 아들 미키는 47세가 되었다. 그런데 며느리를 얻지 못해 안달이 난 아베씨와 달리 아들 미키는 결혼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에게 아들의 며느리를 구하는 이야기를 책에 써달라고 애원하기에 그 의리로 이야기를 책에 썼다는 이야기다.

 


늙어도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악몽


 

TV가 고장나서 (음성과 영상이 어긋나서) 오랫동안 알고 있던 전기 가게에 상담하니 본사의 직원이 찾아와 종종거리며 잠깐 리모콘을 만지더니 4500엔이라고 한다. 나중에 홋카이도 별장에서 도쿄에 돌아왔는데 전기요금이 8천엔이나 나와서 기겁을 한다. 또 팩스가 고장이 났는지 백지로 온 용지가 산같이 쌓였는데 수리비는 받지 않지만 출장비는 8천엔이라고 한다. 입만 열면 8천엔이라고. 이것이 무슨 합리주의 시스템이냐고 분노한다. 어떤 근거로 결정하는지도 모르고 그들이 하는 대로 우리는 따르고 있다는 말에 정신이 든다.


 

답은 찾지 못했다


 

중학3년생 소년이 기억에도 없는 도둑질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고등학교 추천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담임한테 듣고 자살을 했다는 참혹한 사건 이야기다.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이들 생일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데 어떻게 부모에게 아무 말 없이 돌연 죽을 수 있는지...부모자식간에 이렇게도 동떨어진 거리감이 생길 수 있는지 한탄을 한다. 결국 인간이라는 건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수 있기때문에 뭐라고 대답할 수 없다고.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의 인터뷰 내용은 마음이 짠해졌다. 작가 나름 대로 생각하는 고생스런 이야기가 들어있다. 아마도 인생의 말년을 맞은 작가의 이야기라 더욱 그런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물으니 흔한 이야기처럼 [사랑입니다] 또는 [감사입니다]라고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자신은 앞뒤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기에 실수도, 실패도 있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욱 누구 탓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했다. 자살하려던 아픈 상처가 있었나 보다. 그때 어떤 음식을 먹고 싶었느냐고 인터뷰어가 물으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끈질기게 물으니 [이못케]라고 대답한다.그런데 사전을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고로켓 처럼 보이지만 속에 고기가 들어가지 않고, 감자를 삶아서 으깨어 손으로 꼭 쥐어 모양을 만들어 튀긴 것이라고 했다. 남편의 사업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면서 자주 먹던 음식이란다. 가난한 시절 먹던 음식이 아무래도 많이 생각나겠지. 구십을 넘긴 노작가는 이제 귀도 잘 안 들린다고 한다. 지인들끼리 만나서 이야기하는 중에 잘 들리는 척하며 웃거나 맞장구를 치는 얘기가 정말 웃기고도 슬펐다고 할까. 우리는 누구나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런데 구십 세, 백 세를 넘긴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냥 좋은 일인 것 같지도 않다. 살고 죽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지금이 가장 젊을 때라는 생각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늘 즐겁게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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