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坊っちゃん (新潮文庫) (改版, 文庫)
나쓰메 소세키 / 新潮社 / 1950년 1월
평점 :
이 작품의 번역본을 읽은 지 꽤 되었고 짤막한 감상만 적어두었기에 내용은 가물가물해졌는데 다시 읽으면서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백 년도 훨씬 전에 쓰인 이야기라 그런지 어려운 단어도 많다. 하지만 작가가 쓴 원문 문장의 행간에서 느껴지는 어조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점은 참 매력적이다. 무뚝뚝해 보이는 소세키 특유의 성격이 그대로 전해져 웃음짓게 만들었다. 이 작품은 1906년 4월 39세에 발표한 작품으로 그가 마쓰야마의 시골 중학교에서 근무한 체험이며 10년쯤 뒤에 쓴 소설이다.
인삼을 심고 위에 볏집을 깔아 둔 남의 밭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밭을 밟아 뭉개는 등 개구쟁이 악동이었던 ‘나’를 아버지는 별로 귀여워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2,3일 전에는 부뚜막에서 장난을 치다가 늑골을 다치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형은 너 때문에 어머니가 빨리 돌아가셨다고 때리기도 했다. 형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 10일 한번은 싸웠다. 장기를 두다가 싸우다가 말을 내팽개쳐서 형의 미간을 다치게 하기도 했다. 그것을 전해 들은 아버지는 의절한다는 말까지 꺼냈는데... 키요가 울면서 대신 사과한 덕분에 아버지의 분노를 풀 수 있었다. ‘나’를 아껴주는 유일하게 사람은 하녀 키요 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나’에게 좋은 성품을 타고났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이해되지도 않고 사탕발림으로 말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키요는 더욱더 ‘나’를 귀여워해 주었다. 왜 그렇게 자신을 귀여워해 주는지 헌신적인 키요가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추운 밤에 먹을 것을 갖다 주지 않나 먹을 것만이 아니라 연필 필기장 등 온갖 것을 나를 위해 챙겨주었다.
키요는 도련님이 집을 갖고 독립하게 되면 따라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고지마치가 좋으냐 아자부가 좋겠느냐 하면서 그네도 준비할 거라는 등 멋대로 계획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서양식 집이건 일본식 집이건 갖고 싶지 않다고 하니 키요는 그래서 도련님은 욕심이 없어서 마음이 깨끗한 거라고 칭찬을 한다. 키요는 뭐라고 말해도 칭찬해 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5,6년 동안 이런 상태였다. 아버지에겐 혼나고 형과는 싸우고 키요에게는 과자를 받고 때때로 칭찬을 받았다.
어머니 돌아가신 6년째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그 당시 나는 중학교 졸업을 한다. 형은 큐슈로 떠나면서 재산을 정리하자는 말을 꺼낸다. 섣불리 형의 보호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사이가 좋지 않아서 싸우게 되고 머리를 숙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둘은 갈라졌지만 키요의 거취가 문제였다. 키요는 아내를 얻을 때까지 도련님과 함께 있겠다고. 키요에게 조카가 있었지만 오랫동안 있던 집이 편하다면서.
형은 큐슈에 가기전에 재산 정리를 해서 장사든 공부든 하라고. 600엔을 나에게 준다. 그리고 형과 신바시 정류장에서 헤어진 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1년에 200엔씩 3년간 사용해서 공부를 하기로 한다. 어느 날 물리 학교 앞을 지나가다가 학생 모집 광고를 보고 입학 수속을 밟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것도 부모로부터 대물림한 앞뒤 안 가리는 무모한 성격 때문에 일어난 실수라고 한다.
그리고 3년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빨리 지났고 졸업을 하게 된다. 어느 날 교장이 불러서 가보니 시코쿠 주변에 있는 중학교에 수학교사가 필요한데 월급은 40엔이지만 가면 어떠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사실 교사가 되는 것도 시골에 가는 것도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렇다고 무엇보다도 교사 외에 무엇을 하려는 목표도 없었기 때문에 그 상담을 받아들여 가겠다고 즉석에서 대답했다. 이것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무모함이 빌미였다.
지금까지 3년간 작은방에 칩거하면서 잔소리를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싸움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생애 동안에 비교적 평온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시코쿠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찹하기만 하다. 지금까지 도쿄를 떠난 적이 없다. 도쿄 외의 땅을 밟은 적은 친구와 가마쿠라에 소풍을 간 것뿐이다. 멀고 지도에서 보아도 바늘 끝으로 찌를 만큼 작게 보인다. 어떤 마을인지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모른다. 갈 수밖에 없지만. 귀찮은 생각이 든다.
약속 날짜가 다가와서 키요에게 갔더니 키요는 감기에 걸려서 누워 있다. 언제 집을 갖게 되느냐고 물으니 당분간은 갖지 못한다. 시골에 가야 한다고 하니 아주 실망한 모습이다. 그래서 가기는 가지만 곧 올테니까 갖고 싶은 걸 선물로 사주겠다. 아니 에치고의 엿(조릿대 잎으로 싼)이 먹고 싶다고 한다. 내가 가는 곳의 시골에는 그게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꽤 아쉬워 하는 눈치다. 떠나는 날 아침부터 키요는 와서 치약이나 손수건을 직물 가방에 넣어준다. 그리고 이제 이별일지도 모른다면서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어머니 대신 애정을 주었던 키요와 이별 장면이 짠했다.
시골 중학교로 가기 위해 배를 타야 한다. 기선에서 내리고 거룻배를 탔는데 사공은 벌거벗은 알몸에 훈토시를 매고 있다. 야만의 장소다. 에도에서 태어나 자란 화자의 눈에 비친 모습은 정말 야만이라는 말 외에 어울리는 말이 없을 것 같다. 벌써 이 장면부터 시골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떻게 살아 갈까 싶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중학교는 여기서 기차를 타고 2리를 가야 한다고 한다. 학교에 가서 교장과 만난다. 눈이 큰 너구리 같은 남자라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직원을 소개하는 등 긴 설교를 한다. 교장이 말한 대로는 도저히 할 수 없다.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을 잡아두고 학생의 모범이 되고 학교의 사표(師表)로서 우러러보게 해야 한다는 등 학문 이외에 개인의 덕화(德化)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교육자가 될 수 없다는 등 주문을 한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월급 40엔을 받자고 먼 시골까지 왔단 말인가. 선생들의 별명을 짓는다. 너구리 같이 생겼다며 교장에게 ‘타누키’라고 부르며, 험악한 얼굴을 한 수학교사 홋타를 ‘히에이잔(比叡山)의 악승’같다면서 ‘야마 아라시(山嵐)’라고 부른다. 교감은 희한하게 빨간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몸에 약이 되고 위생을 위해서 일부러 맞추었다는 말을 듣고 아카샤츠(빨간 셔츠)라는 별명을 붙인다.
어쩔 수 없이 학교에 오긴 했으나 교장도 그렇고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월급 40엔을 받으면서 요구하는 건 많다고 생각한다. 속아서 왔다고 포기하고 거절하고 가버리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숙소 대금을 5엔을 내고 나니 지갑 속에는 9엔 밖에 없다. 9엔으로 도쿄에 돌아갈 수 없다. 찻값을 쓰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며 후회를 한다.
학교에서 첫 수업을 하고 나니 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분위기를 파악하게 된다. 공부를 해야 할 학생이 틈새 시간을 이용하여 청소 학교에 붙들려 있는 것을 보고 법이 있는 것인가 생각한다. 그렇게 느낀 것들을 야마 아라시에게 호소했더니 그는 아하하하, 웃으면서 학교에 대한 불평이 있으면 나한테만 말하라고 한다.
악동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부분이 참 안쓰러우면서도 웃겼다. 첫날 수업을 마치고 밖을 돌아다니다가 소바가게에 갔다가 덴뿌라(튀김)을 네 그릇이나 먹게 되었다. 그런데 미리 와 있던 학생들과 마주쳤다. 다음날 교실에 들어가니 칠판에는
‘선생이 한 가지의 덴뿌라를 네 그릇이나 먹었다는 소문이다‘ ’
다만 웃지 말 것‘
이라고 써 있다. 그 다음날은 스미타(住田)에서 아주 맛있다고 소문난 집에 단고를 먹으러 갔는데, 학교에 가보니 ’단고 두 접시 7전‘이라고 써있다. 또 온천을 좋아해서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탕에서 수영을 했었는데, 어느 날 갔더니 ’수영하지 말 것‘이라는 말이 붙어 있어서 단념했다. 다음 날 여지없이 칠판에는 ’탕에서 헤엄치지 말 것‘이라고 써있는 게 아닌가. 왠지 학생들이 나 한 사람을 정탐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악동들의 장난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비좁아 터진 시골에 온 자체가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다. 예의도 모르는 학생들에게도 실망했지만 교장을 비롯한 선생들도 마찬가지다. 교장과 교감을 제외한 나머지 선생들은 숙직을 해야 한단다. 왜 타누키와 아카샤츠는 예외냐고 했더니, 야마 아라시는 ’might is right’(힘이 정의다)는 말을 끌어 그게 바로 ‘강자의 권리’라고 말한다. ‘강자의 권리’와 ‘숙직’은 별문제다. 빨간 셔츠와 타누키가 강자라고 한다면 누가 인정할 것인가. 40엔 속에 숙직해야 한다는 조건이 들어있다면 참을 수밖에 없겠지,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며 분노한다.
숙직을 하는 날 수업이 끝나고 시간도 있고 해서 밖에 나갔다가 타누키와 마주친다. 그는 오늘 숙직 아니냐고 묻는다. 또 다시 걷다가 이번에는 야마 아라시를 만난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는 가다가 반드시 누군가와 마주친다. 바로 전에 교장을 만났다며 경고 비슷한 이야기를 하니 일단 학교에 돌아간다. 숙직실에 들어가 잠을 청하려고 들어갔는데 까칠까칠한 게 느낌이 이상해서 이불을 걷어보니 갑자기 5,60 마리의 메뚜기가 뛰쳐나온다. 모기장에 부딪히고 아수라장이 되자 화가 나기 시작한다. 정말 못 말리는 악동들이다.
메뚜기 세례를 받은 다음에는 왠지 또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아 잠을 잘 수가 없다. 이런 녀석들에게 당하다니 자신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 도저히 해낼 수가 없다며 신세타령을 하기 시작한다. 멀리 떨어져 와 보니 키요가 생각나고 교육도 받지 못하고 신분도 없는 하녀지만 인간으로서 우러러 보인다. 먹고 싶다는 에치고에의 사사아메(조릿대로 싼 엿)를 일부러라도 사다 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늘 자신을 칭찬했지만 칭찬받아야 할 사람은 키요 본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서구문물이 도입되기 시작한 일본 사회에서 예전의 도덕률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시기에 강직한 성격의 도련님인 ‘나’와 ‘빨간 셔츠를’ 대비하며 그 교활함과 허식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결국 부조리한 사회를 응징하지도 못했다. 소세키의 작품 『태풍』의 시라이 도야가 겹쳤다. 나쁜 선생들이 학생들을 선동해서 도야 선생을 괴롭혀서 쫓아낸 과정이 비슷해서 짠한 마음이 느껴졌다.
도쿄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키요를 만나러 간다. 그렇게 반겨주었던 키요, 현관이 딸려 있지 않은 집이라도 지극히 만족했던 키요는 폐렴에 걸려 죽고 만다. 봇짱(도련님) 봇짱 부르던 키요는 그렇게 갔다. 도련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겠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