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 독서 -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신개념 독서혁명
권수택 지음 / 인간사랑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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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신간은 계속 쏟아지고 아직 읽지 못한 명작이며 고전이 산적해 있기에 괜히 초조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별별 독서법에 대한 책이 나오면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전에 속청 독서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독서에 일가견이 있는 빌게이츠조차도 책을 최고 속도로 읽는 능력을 갖고 싶다고 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신개념 독서혁명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오감 독서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빨리 더 많은 책을 읽는 것에만 급급한 우리에게 효율적인 책읽기의 관점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내용의 구성은 1.고정관념 깨기 2. 오감 독서법이란? 3. 오감자극 도구 ?내 안의 셰르파’ 4. 오감 독서 하루 실행 법 5. 실생활 적용으로 되어 있다.

 

* 5단계 오감 독서법

묵독(默讀)- 눈으로 읽기

낭독(朗讀)- 소리 내어 읽기

청독(廳讀)- 귀로 듣기

강독(講讀)- 마음으로 읽기

수독(睡讀)- 뇌로 읽기

 

 여기서 묵독이나 낭독은 일반적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는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청독은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듣는 방법으로 반복학습하기 좋고 특히 바쁜 생활에 쫓기는 직장인들에게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독서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강독은 청독을 반복하면 자신이 읽은 글이나 책에 대한 견해, 주장이 숙성되는데 새롭게 느낀 바를 추가하여 자유롭게 말하면서 녹음하는 것으로 더 깊은 책읽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강독의 예로 괴테와 조앤 롤링의 책읽기가 창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알려주는데 과연 명작과 명작가의 탄생과정은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독은 녹음한 글을 잠자면서 듣는 것으로 이러한 사이클로 읽는 책읽기가 오감 독서법의 주된 내용이다.

 

 내 경우에도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고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이어서 어떻게 좀 빨리 읽는 방법이 없나 해서 속독에 관한 포커스 리딩이란 책을 읽고 따라 해봤는데 내겐 무리였다. 물론 계속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책을 읽다가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바로 책을 읽을 때 눈으로 보면서도 속 발음을 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한 것 아니지만 그런 경향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속 발음은 눈으로 읽은 것이 입 속으로 말하는 과정을 거쳐 뇌에 전달되는 동안 읽기가 중단되면서 글의 내용과 관계없는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거나 잡념을 불러오기도 하며, 소위 멍 때림현상을 유발한다고 한다. 빨리, 많이 읽는 것이 좋겠지만 글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속독이 도움이 되는 글은 실용서적, 논문, 신문, 잡지, 인터넷 글이고, 시나 소설, 수필, 희곡 등 난해한 철학서적은 차분한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야 효과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책을 빠르게 읽으려는 우리의 조급함이 꼭 욕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이 있다. 느긋하고 편안하게 읽는다는 생각으로 읽어나가지만 그런 자세가 계속되면 따분해지고 독서의 흐름이 자주 끊기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신선한 자극에 노출될 때 활성화되는 성향이 있는데 속도가 너무 늦으면 뇌를 기쁘게 해 줄 수 없다는 맥락으로 이해된다. 책읽기의 속도에 대한 고민을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 있다.

 

말의 흐름은 영화필름과 같다. 하나하나는 정지되어 있으며,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에 속도가 결부되어서 따로 흩어져 있던 필름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연결되면 움직임이 발생한다. 읽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략) 마구잡이로 빠르게 읽어서는 안 되겠지만, 숙독(熟讀)으로 음미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느릿느릿해서는 살아있는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책은 바람과 같은 빠른 속도로 산뜻하게 읽어야 비로소 재미있는 의미를 털어놓는다. 책은 바람과 같이 읽어야 좋다.”(P51~52) (일본의 언어학자 도야마 시게히코의 나는 왜 책읽기가 힘들까?(다온북스, 2016))

 

여기서 묵독의 경우를 예를 들어보면,

명사와 어근 위주의 빠른 글 읽기가 묵독의 기본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방법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눈에 확 들어왔다.

 

 

 

 

 

 사진의 글은 미국의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문이다. 짙은 색 글씨는 명사와 어근을 강조한 것으로 그 부분에 시선을 더 주고 조사나 접사 어미 등 보조어 부분은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듯이 읽는 것이 빠른 글 읽기의 요령이라고 한다. 따라 해 봤더니 처음엔 잘 안되었는데 곧 적응이 되었고 그 덕분에 좀 더 빨리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빠른 글 읽기에 적당한 실용서 등을 읽을 때 활용하면 효과적일 것 같다.

 

낭독은 지금도 유용하지만 학창시절 수업시간을 떠올리면 쉽다. 책읽기를 시켰고 시를 외워서 낭송하는 숙제도 자주 있었다. 저자는 현대인이 누리는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음성을 녹음하고 mp3 앱을 다운로드 설치하는 방법과 mp3파일로 변환하는 방법 그것을 모닝콜 알람으로 등록하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오랫동안 효율적인 책읽기에 대해 강구하고 고심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낭독에 대한 이슈로 최근 중국에 낭독방(朗讀房)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태블릿PC에 수록되어 있는 유명한 고전작품이나 한시, 명언을 기호에 맞게 낭독하고 그것이 녹음이 되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다운을 받을 수 있게끔 되어 있다니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중국 정부의 발 빠른 대처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청독은 실생활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 같았다. 평소에도 가벼운 산책이나 운동을 할 때 노래를 듣거나 일본어 공부를 위해 청해 파일을 많이 듣는데 이 부분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은 일본어로 말하는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생긴 꿈이나 목표를 문장으로 만들어 녹음을 해서 듣는 것이다. 저자가 알려준 대로 알람으로 설정해도 좋겠다. 더 굳건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근사하고 멋질 것 같다.

 

 무엇보다도 와 닿았던 부분은 3장의 오감자극 도구 내안의 셰르파였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셰르파라는 단어와 책읽기라는 행위와의 조합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빨리 읽고 싶다는 조급증에 책을 읽고 나면 그것으로 끝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여기서 나는 어떻게 실생활에 실천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하는 과정이 결여되지 않았나 하는 반성하게 되었다. 효율적인 책읽기의 파트너인 셰르파 즉, 내 영혼의 소리, 양심의 소리, 내 생각의 소리,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습관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감 독서는 기존의 독서법에 청독, 강독, 수독의 방법이 추가되어 그야말로 오감을 만족시키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한 가지라도 배워서 활용해 나간다면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효율적인 책읽기와 더불어 독서의 혁명을 가져다 줄 것이다.

 

  

          ** 이 리뷰는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이 리뷰는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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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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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전부터 강렬한 제목에 끌렸고 절실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거라고 여겨져서 꼭 한번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책이었다. 요즘은 작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예전보다 기회가 열려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책을 내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공들여 읽고 쓴 시간의 축적이 있고 그것이 실행으로 옮기는 결단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쓴 글을 받아주고 인정해주는 출판사와의 만남도 있어야 할 것이고. 이래저래 아직도 자신의 책 한 권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는 잠재적인 독자는 넘칠 것이다.


역시나 절실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와 공감이 가는 문장이 많았다. 글쓰기를 하는 과정이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종교 같은 믿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의 말은 아주 간곡하다. 천천히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이 책을 읽고 나서 거기서 끝내지 말고 부디 써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배우라.(P18)고 말한다. 이 책이 나온 지 32년이나 되었는데도 전혀 고루한 이야기가 아니다. 글쓰기 워크숍이나 글쓰기 교실에서 있었던 다양한 사례의 이야기와 글쓰기 전반에 관한 것을 알려준다. 부드럽기도 하고 때로는 단호한 일침도 들어있다. 하지만 주된 내용은 끝없는 글쓰기 예찬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열정이 행간에 그득하다. 글쓰기는 외로움이며 고통이지만 모든 인간은 어차피 외로움과 고통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며 그것에 연연하지 말라고 한다.


종국에는 이렇게 말한다.


글쓰기는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P167)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문장이다. 쓴다는 행위 자체로 상실감, 우울감, 박탈감 등 온갖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자유를 줄 것이다. 다른 사람이 행복해보여도 누구나 비슷하게 크고 작은 아픔들이 있다. 온갖 글쓰기의 장점이 있겠지만 치유의 글쓰기는 삶의 의미를 찾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다.’(P19)


글쓰기 훈련은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마음을 지속적으로 열어 나가게 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옳았을 때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P30)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법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것이 사업상의 서류이든 장편 소설이든 박사 논문이든 또는 여행기이든, 그 글에는 힘이 실리게 된다.’(P30)


글쓰기도 훈련을 통해서만 실력을 쌓을 수 있다.’(P31)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라고만 하자.(P32)

 

이처럼 당신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들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5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만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세월 동안 글쓰기를 멀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P43)


 처음부터 욕심을 부려 위대한 작품을 쓰리라는 기대를 하다보면 커다란 절망으로 끝나기 쉽단다.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하듯이 천천히 한 단어 한 문장씩 써내려 가는 것이다. 자신을 믿고 순수한 마음으로 멈추지 말고 쓰라고 한다. 그렇게 쓰다보면 어딘가에 도달할 날이 올 것이고 글쓰기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쓴 글에서 우쭐하고 멈추면 안 된다. 일단 쓴 글은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글쓰기 훈련에 자신을 충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몰입하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에도 몰입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무엇을 쓸까. 하얀 백지를 마주하고 글이 써지지 않아 괴로웠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평소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를 때마다 아이디어를 적어 두는 노트를 따로 마련해 두라고 조언한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 같다. 한 단어든 한 문장이든 이러한 목록이 쌓이면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글감이 된다고 했다. 메모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부분이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글을 쓰기 위해 이런 작은 생각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정신 자세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글쓰기를 배운답시고 쓸데없이 대가들과 문학 강의를 좇아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진실은 아주 간단하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당신이 훌륭한 대가를 열 사람이나 만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글쓰기를 배우지 못한다.'(P64)


 글쓰기는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말이 어쩌면 안도감을 주기도 하고 이보다 더 막연한 것이 또 있을까 싶은 느낌도 준다. 그만큼 글쓰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이 글 속에는 저자가 글쓰기를 교실을 운영하면서 사용한 다양한 방법들이 많았다. 글의 주제를 고르고 쓰는 일, 글을 발표하고 또 자신이 쓴 글을 어떤 방법으로 고쳐야 하는지 알려준다. 삶에 대한 세상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극진하게 느껴졌고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그 단호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아직까지 계속적으로 써 본적이 없지만, 쓴다고 하더라도 어떤 것을 써야 할지 막연할 때가 많았는데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를 응용하여 활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오르는 주제에 대한 생각을 종이에 적어 나만의 글쓰기 상자를 만들어 그 속에 넣었다가 한 장씩 제비뽑기 하듯이 꺼내어 써보는 것이다. 이것을 활용하면 어떤 주제가 걸릴까 예상해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고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세 가지는 많이 읽고, 열심히 들어 주고, 많이 써보는 것이라 한다. 여기에 어떤 이의를 달 것인가. 중요한 것은 기계적으로 연습량과 들인 시간으로 채우려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한다. 우울한 느낌이든, , 희망 등 진정한 자신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 충분히 몰입을 할 수 있을 때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것이다. 무엇을 쓰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는 동물들의 태도를 배워야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는 25년간 체험한 선()체험을 글쓰기에 접목하여 보여주는데 우리의 삶과 글쓰기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글을 쓰고 작가가 되는 일이 돈과 명예를 얻는 것도 근사하겠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생각은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가장 깊은 비밀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좀 더 깊이 있고 진지한 글쓰기로 나아가고 싶은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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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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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쓴 작가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문인 김연수·문태준과 ‘김천 3인문(三人文)’으로 통하는 중학교 동기동창이라는 소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김연수 작가와 문태준 시인의 글을 접한 후 그들의 노력과 내공에서 공감대를 얻어서였을까. 언젠가부터 글쓰기는 많은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학교나 직장 어디서든지 길고 짧은 글쓰기는 물론이고, 글로써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중요한 일이 되었다. 더구나 예술과 문화라는 분야에서 스토리텔링은 어엿한 한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흐름에 반영이라도 하듯 서점가에는 글쓰기, 책쓰기에 관한 책이 넘치고, 각종 교육 센터에는 그러한 강좌들이 성행하며 여전히 목마른 자의 갈증을 덜어주고 있다.


 나도 꽤 읽어 본 것 같다. 책 제목도 하나 같이 현란하다. 내 인생을 바꿔주는 ‘기적의 글쓰기’, 아직 읽어보지 못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등등... 하나같이 책을 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거나, 가족들도 당사자를 새롭게 본다는 등의 희망을 심어주는 이야기가 잔뜩 들어있다. 지금까지 읽어 온 책과 다르게 좀 개성이 느껴진다고 할까. 이 책의 구성은 창작의 도구들, 창작의 시작, 실전 글쓰기, 실전 그림 그리기, 대화 완전정복의 코너로 되어 있다. 와! 그림도 그릴 줄 아는 작가다! 웹툰을 연재하기도 했단다. 만화도 들어 있어서 적절한 여백도 있고 읽기에 편안하고 재미도 있다. 자신의 책에 본인의 솜씨로 그린 그림이 들어간다면 몇 배 더 뿌듯한 마음이겠지.


 창작의 도구들에서는 작가가 애용하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소개한다. 아이패드라든가 블루투스 해드폰, 각종 팬 들, 컴퓨터 등. 자신의 글쓰기 역사와 함께 업그레이드 된 애용품을 소개하는데, 이건 뭐냐? 하는 황당함도 들지만, 애교로 봐줄 만하다. 마치 공부하라는 부모님 말씀에 책상 정리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아이 같은 천진함이 보인다. 아마도 직업적으로 장시간 사용해야 하니 손목에 무리가 덜 가는 키보드라든가 질 좋은 필기도구를 찾게 되는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자꾸 물건이 쌓인다고.


 창작은 어떻게 시작될까. 굳이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구분하고자 할 때 서너 가지 기준이 있다고 한다. 한 문장에 같은 단어가 서너 개 있을 때,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반복하는 글, 마지막 대목을 ‘교훈’이나 ‘반성’으로 끝내는 글은 별로 신뢰할 수 없는 글이라고 했다. 너무 의도적인 티가 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글이겠지. 스코틀랜드 화가 폴 가드너는 “그림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흥미로운 곳에서 멈출 뿐이다.”(P57)고 한다. 14매 정도의 산문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글을 쓰기 시작하여 원고지 14매가 되면 멈춘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명쾌한가! 그러니 글쓰기 비법은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직접 써 봐야 한다. 외국어 공부에 왕도가 없듯이 글쓰기 또한 그럴 것이다. 써 보고 쓰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것이 아닐까.


 창작의 시작에 있어 읽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것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 다독, 정독, 속독 등 많은 방법이 있지만, 두 번 이상 읽는 방법으로 ‘방향’과 ‘의도’가 생긴다는 오에 겐자부로와 보르헤스의 말을 인용한 것이 공감된다.


“나는 인생이, 세계가 악몽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탈출할 수 없고 그저 꿈만 꾸는 거죠.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어요. 구원은 우리에게서 차단되어 있지요.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나의 구원은 글을 쓰는 데 있다고, 꽤나 가망 없는 방식이지만 글쓰기에 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계속해서 꿈을 꾸고, 글을 쓰고, (중략) 많은 경험 가운데 가장 행복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에요. 아, 책 읽기보다 훨씬 더 좋은 게 있어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인데, 이미 읽었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더 풍요롭게 읽을 수 있답니다. 나는 새 책을 적게 읽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건 더 많이 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군요.”(P64~65 『보르헤스의 말』)

이와 더불어 인간의 머릿속에 들끓고 있는 생각의 파편들, 붙잡아두면 생각은 썩어버린다며 적절하게 메모하거나 스크랩하는 등 자료를 저장해 둘 필요성을 말한다.


 실전 글쓰기에서는 첫 문장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우리는 문학작품을 접하면서 멋진 문장에 공감하고 마음을 뺏긴다. 17년차인 작가도 여전히 첫 문장은 어렵다고 한다. 하얀 원고지, 어서 입력해 주기를 기다리는 커서가 깜빡이는 빈 모니터는 작가에게 있어 진을 빼놓기도 하겠다. 더구나 원고마감이 코앞에 닥쳤는데 그런 상황이라면 피가 마를 일이다. 하지만, 일단 쓰면 ‘첫 문장과 함께 돌은 굴러가기 시작한다.’(P76)고.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이렇게 첫 문장으로 시작하여 끝을 경험하는 일, 바로 글을 쓰는 일이라는 것. 어디 글을 쓰는 일 뿐이겠는가. 인생은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듯이,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다. 어떤 일을 끝까지 해 보았는가, 자문하게 된다.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여 끝을 보았는가. 운동을, 일기를 끝까지 써 보았는가. 어떤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볼 때까지 해 보았는가 말이다. 시작은 있었지만, 끝은 없었다. 수없는 중단만이 자꾸자꾸 미련으로 쌓인다.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하루에 A4용지 4매씩 매일 한 달 동안 쓰면 한 권의 책 분량이 된다고. 시작해서 끝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대견한 마음이 들 것 같다.


 실전 그림 그리기 코너에서는 작가가 2000년에 꿈에 그리던 소설가가 되었는데, 할 일이 없었고 뭔가는 해야 해서 독학으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당시 유행하던 그림일기를 그리다가 웹툰을 연재하게 되는 사연이 들어있다. 글쓰기 관련 책에서 이렇게 그림 그리기까지 보여주는 글쓰기 책은 처음인 것 같아서 신선했다. 내용도 재미있어서 술술 읽을 수 있다.


 마지막의 대화 완전정복 코너는 수험생도 아니고 이건 또 뭐지, 하는 생뚱한 생각이 들었다. 언어 영역, 예술 영역, 사회 영역, 과학 영역 네 가지로 나뉘어 있다. 실제 문학 작품이나 인터뷰의 지문이 나오고 (문제)로 주어진 부분은 답을 맞추는 형식이다. 즉, 이어질 대화를 추측해야 한다. 생각보다 꽤 어렵다. 작가란 체험하지 않은 것을 쓸 수 없다고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체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상력이야말로 작품을 쓰는 원천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코너라고 할 수 있겠다. 여타의 글쓰기 관련 책과는 달리 작가만의 개성이 돋보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점이 호불호로 나뉠 수도 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저자의 독자에 대한 주문이기도 하다. 그냥 저절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이든 쓰기 시작할 때, 무엇이든 쓸 수 있는 마법이 생기겠지. 밥을 떠 먹여 줄 수는 있지만, 씹고 소화시키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창작자의 가장 중요한 재능이라는 ‘관찰’을 멈추지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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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여자들의 삶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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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의 체호프라고 평가되고 있는 단편의 명수 엘리스 먼로의 작품을 두 권을 읽었는데 특히 디어 라이프를 읽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어서 유일한 장편이며 자전적 소설이라는 이 작품이 무척 궁금했었다. 역시 단편과는 다른 느낌이다.디어 라이프에 나오는 단편들은 짧은 이야기 속에 절제된 감정 표현과 단호함에서 깔끔한 글이 느껴졌었다. 이 작품은 보통의 장편소설과 달리 전개가 복잡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플롯의 힘이 별로 강하지 않고 밋밋하다.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궁금한 게 있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고, 어느 만큼이 허구일까 하는 것이다. 화자를 통해서 비춰지는 말이나 태도에서 작가가 세상을 읽어나가는 관점이나 성격을 가늠하고 추측해보는 은밀한 기쁨을 충족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장편이지만, 여러 편의 단편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이웃 사람들, 가족, 친척, 친구들의 관계의 얽힘 속에서 바라본 욕망과 상실,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첫 이야기는 이웃사람 베니 아저씨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물고기를 잡는 아저씨를 도우며 와와나시강에서 개구리를 잡으며 야생의 자연을 즐긴다. 아저씨 전해주는 이야기, 그가 사는 공간은 물건으로 넘쳐나는 고물상을 연상케 하지만 거기서 아주 쓸모 있는 물건을 찾아낸다. 바로 신문이다. ‘가장 좋아하고 절대 지겨워하지 않았던놀이도구였던 것이다. 그것도 부모님이 보는 흔한 전쟁과 선거 이야기가 아닌, 아웅다웅 살아가는 사람 냄새가 나는 사건 사고들, 그야말로 델이 찾던 이야기의 소재였던 것이다. 어린 아이였음에도 작가의 꿈을 꾸고 나아가는 야무진 결심이 보여서 마음이 훈훈해졌다. 주변의 어떤 것에도 어떤 소리에도-특히 어머니에게는 더욱 더- 고분고분하게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자기주장이 있었던 것이다. 결코 순진하지 않은 꼬마 악당이라고 할까.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듯이 세세하고 솔직한 심리 묘사를 통해 긴장감의 분위기도 감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그 당돌함이 웃음 짓게도 한다.


 ‘젠킨스 벤드라는 친척 크레이그 종조부 집에서 놀다가 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은 어느 날, 그 종조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엄마에게 듣는다. 인자한 모습으로 자신을 배웅하던 종조부를 떠올리며 혼란에 빠진다. 죽음에 대한 호기심을 참지 못하면서도 장례식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두려워서 그랬을까. 보통 그 정도의 어린 나이에는 부모님이 이끄는 대로 하기 마련인데. 역시 자의식이 싹튼 영악한 어른 아이를 떠올리게 된다. 이에 어머니의 입을 빌어 죽음을 이야기한다.


, 그보다 먼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상당한 비율이 물로 이루어져 있어. 순수한 물로. 사람을 구성한 물질 중에서 그리 대단한 건 없어. 탄소, 아주 단순한 원소들이야. 이런 걸 뭐라고 하지? 값으로 따지면 98센트나 할까? 그게 다야. 놀라운 건 그게 조합되는 방식이야. 조합된 방식에 따라 심장도, 폐도 있는 거야. 간도. 췌장도. 위도. 뇌도. 이게 뭐라고? 원소들의 조합! 이 조합을 조합하고-그 조합을 또 조합하고-그러면 인간이 되는 거야! 우린 그걸 크레이그 종조부, 네 아빠 혹은 나라고 불러. 하지만 다 이런 조합에 불과할 뿐이라고. 이런 부분들이 하나로 합쳐져 한동안 특정한 방식으로 흘러가는 거야. 그러다 한 부분이 기능을 멈추거나 고장 나는 거지. 크레이그 종조부의 경우에는 심장이었어. 그래서 우리는 크레이그 종조부가 죽었다고 말하는 거야. 그 사람은 죽었다, 이렇게. 하지만 그게 우리가 그 현상을 보는 방식이야. 우리 인간의 방식. 우리가 늘 인간의 방식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자연의 방식으로도 생각한다면, 자연은 계속 흘러갈 뿐이고 죽어가는 건 그 일부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어-, 죽는 건 아니고 변하는 거. 변한다, 이게 내가 쓰고 싶은 단어야.(후략)(P90~91)



 나아가 미래의 죽음까지도 아우른다. 장기의 이식을 통해 누군가의 일부로서 계속 살아있게 된다면 죽음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살아있는 몸의 상속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죽음이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게 된다. 무거운 죽음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그것을 가볍게 해준다. 그저 자연의 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흔히 엄마와 딸의 사이는 애증의 관계라고 한다. 여기서도 델과 엄마의 관계가 그랬다. 이러한 불편한 관계는 모르는 사이에 대물림되는 것일까. 그래서 제목이 소녀와 여자들의 삶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오빠의 흔적이 별로 없던 집에서 종교에 빠진 어머니가 물려받은 약간의 돈을 모두 탕진하고 그로 인해 고생을 하고, 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몰래 집을 나가 학교에 다니게 된 이야기, 어둠 속의 감금과 고통으로 시작해서 용기, 저항, 탈출로 이어지는 벅찬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다. 꿈을 이루기 위한 열정과 현실 사이의 갭은 컸고... 아빠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한 이야기. 그럼에도 엄마는 자기만족이 되지 않았다. 신문사에 편지를 써서 보내고 백과사전을 팔면서 자신의 지식을 표현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엄마가 싫었다. 그러한 엄마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며 은근하고 헷갈리는 비웃음을 보내는 늙은 대고모들의 표정을 엄마는 눈치도 못 채는 것일까. 델은 엄마의 괴짜 같고 무모하고 당혹스러운 면을 아주 조금씩 꼬집어 이야기하는 대고모들과 엄마 사이에서 부끄러움과 측은함으로 갈등한다.


 엄마는 자의식이 좀 강하게 느껴지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눈치다. 가난하거나 약한 사람들에게 동정을 보였지만 술에 빠져 살거나 성적인 방탕, 욕설, 무계획적이고 무지에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면에서 볼 때 엄마의 삶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이에겐 숨 막히는 삶일 수도 있을까. 엄마를 바라보는 델이 그랬다. 그래도 유일한 공감대가 있었으니 바로 지식욕이었다. 기억력이 뛰어나고 영리한 델과 함께라면 엄마의 백과사전 사업에 도움이 될까 하여 동행을 하다가 델의 마음속에서 싹트는 자의식 때문에 중단이 되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내 생각엔 처녀들, 여자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분명히 그래. 하지만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건 우리 손에 달려 있어. 지금까지 여자들이 한 건 모두 남자들과 관계된 것뿐이었어. 우리한테는 여태 그게 전부였어. 정말로, 집에서 기르는 짐승만큼이나 우리 삶이라는 게 없었다고.”

하지만 나는 네가…… 머리를 쓰는 삶을 살면 좋겠어. 머리를 써야지. 마음을 딴 데 빼앗기지 말고. 남자 때문에-마음을 빼앗겨서-실수를 하게 되면 네 삶은 네 것이 아니게 될 거야. 모든 여자들이 늘 그래왔듯 너도 짐을 짊어지게 될 거야.”(P318)


 엄마의 걱정과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델의 속마음은 다르다. 여자가 피해를 입기 쉬운 존재이니까 자기보호가 필요하다는 충고임을 이해하지만 남자들과 똑같이 세상을 경험할거라고 결심한다. 못하게 말리면 왠지 더 하고 싶고, 거기서 벗어나 일탈하면서 느끼는 쾌감을 맛보고 싶어 하는 델이 보였다. 성적인 호기심을 누르려고 하지 않고 조금씩 알고 싶어 하고 조금씩 대담해진다. 엄마가 싫어하는 부분인데 들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가지지 않는다. 여린 듯 느껴지면서도 용감무쌍하게 나아가는 행동에 놀랍기도 했다. 작가가 되기 위한 실험정신을 충실히 경험하고자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단짝 나오미와 비밀이 없을 정도로 친하지만 삶의 방향에 있어서는 관점이 다르다. 평범하게 살아가겠다는 나오미를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결심한다. 한 쪽의 삶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대쪽의 삶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 삶이란 양쪽을 취하고 모두에게 익숙한 결혼이라는 것. 델은 그러느니 샬럿 브론테가 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오미와의 여태까지의 우정은 희미해지고 남자친구 제리 스토리와 모험 같은 사랑을 거쳐 또다시 가닛 프렌치와의 사랑에 이끌려간다.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는 세례를 받아야한다는 가닛의 말과 태도에서 폭력을 느낀다. 어느 날, 단순한 사랑 놀음이 아니라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거기서 빠져 나온다. 엄마의 엄마가 종교에 빠져 엄마에게 떠넘겨진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 떠올랐을까.


나는 마침내 지난날의 실수와 혼란을 끊어내고 마침내 환상이나 자기기만 없이, 비장하고 단순하게, 집을 떠나고 수녀원을 떠나고 애인을 떠나는 영화 속 여자들처럼 작은 짐 가방을 들고 버스에 올라타면서, 내 진정한 삶이 시작되려 한다고 생각했다.

가닛 프렌치, 가닛 프렌치, 가닛 프렌치.

진정한 삶.

(P434)


 이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아련하고 싸한 느낌이 들었다. 멋지고 비장한 느낌과 더불어 희망이 보였다고 할까. 결국 델은 늪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직시한다. 오랫동안 성장통을 겪고 나아가는 삶을 선택한다. 흔들리지 않는 삶이 없다고 한다.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못해 본 것을 후회하는 삶도 있고 용감하게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상처받고 깨지면서 멀리 돌아간 것을 후회하는 삶도 있을 것이다. 델은 엄마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으며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했지만 결국은 엄마의 말대로 언젠가는 정면에서 부딪치는 법을 배워야한다는 것을 따른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과정에서 깨닫고 얻은 것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고 정신은 강해지고 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10대나 20대 시절에만 방황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방황은 한 시절로 마감하고 안정된 채 살아가고 싶지만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삶을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사랑과 욕망, 죽음도 살아가면서 맞이하는 자연스런 삶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거기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도 오로지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사람은 특히 여자는 작은 희망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어떤 희망으로 채워가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정답이 없다는 인간의 삶은 한 편의 소설일 수도 있고, 그래서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 때로는 소설을 읽지 않을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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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 농부 가브리엘과 그의 정원 - 우리가 몰랐던 조지아 소설집 우리가 몰랐던 세계문학
이라클리 삼소나제 지음, 김석희.임정희 옮김 / 마음이음(한국문학번역원)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생소한 이름의 조지아는 들어본 적 있는 옛 이름 그루지야로 캅카스산맥에 위치한 오랜 역사 속에 풍부한 문화를 발전시켜 온 나라로서, 전쟁이 없던 세기가 없을 정도로 핍박을 받던 나라였음을 알았다. 지난 세기 70년 동안 소비에트 치하에서 살았음에도 그들의 언어를 지키기 위해 혼을 바쳤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압하지아를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치열한 전쟁을 벌이게 되었고 이 책의 작품들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를 잘 살려낸 작품으로 보인다. 이 소설집은 조지아 현대 작가들 열 명의 작품이 실려 있고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와 닮은 힘들었던 과거 역사를 떠올리며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문학의 역할이란 한 나라 역사의 증언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도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 여행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게 다르지만 나는 잠을 제일 좋아한다. 음식도 좋다. 예를 들면 따끈한 수프나 스테이트, 으깬 감자 같은, 하지만 잠이 더 좋다. 특히 날이 추울 때 따뜻하고 아늑한 침대에 누워 평화롭게 자는 아침잠이 최고다.’(P19)


  첫 문장은 아직 어린 아이인 화자의 작은 소망이다. 그렇게 커다란 꿈도 아니다. 전쟁이 없었다면 결코 깨닫지 못했을 열두 살 아이의 평범한 소망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아늑하고 따뜻한 침대에서의 아침잠을 그리워하는 이 소년은 지금은 몰래 찾아든 지하실에서 골판지 상자 속에서 잠을 잔다.


 전쟁은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모두 앗아가 버렸다. 심장발작으로 입원한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엄마는 고집을 부렸지만 결국 떠밀려서 피난을 가게 된다. 모든 것은 엉망이 된다. 환경이 변하면 사람도 변하게 마련이다. 다정했던 엄마가 술에 찌들고 아이를 손찌검을 하고 급기야는 보고 싶지 않은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 증오에 차서 아버지의 선물인 엄마의 결혼반지와 돈을 훔쳐서 달아난다. 생각해보면 수치스러움으로 진땀이 쏟아지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얼어붙는 듯한 추위와 배고픔의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단짝 친구 추파카와 본드를 흡입하고 아프리카의 낙원을 지나는 얼룩말, 코끼리, 코뿔소, 수많은 영양들의 무리를 본다. 그러다 추파카는 죽어가고... 엄마의 반지가 눈에 띄어 아버지를 떠올리고 소년은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한다. 영악한 친구 고슈카의 도움을 받아 트크바르첼리로 아버지를 찾으러 여행을 떠난다. 아버지의 냄새를 추억하며 한껏 희망에 부푼 마음이다. 오직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소년의 여정을 따라가며 어느새 손에 땀이 밴다. 과연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소년의 도전과 모험이 담긴 짧은 성장소설 같은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져 수상을 했고 작가에겐 최우수 각본상의 영예를 안긴 작품이라 한다.


양계 농부 가브리엘과 그의 정원


 이 작품은 이라클리 삼소나제가 쓴 것으로 1990년대 조지아를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그리고 있다. 가브리엘이 맞닥뜨린 삶에서 새로운 생활방식과 생존의 조건에 적응하려는 내면의 분투를 작가의 특색인 의식흐름의 기법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래 관공서의 구내식당 수석 요리사였던 가브리엘이 양계 농부로 불리게 된 것은 나라의 내전으로 인한 혼란한 상황에서 희생양으로 몰렸고, 아내 굴리코의 권유로 닭을 키우게 되면서 부터다. 짧고 둥글둥글한 체격과 바지런한 성품의 그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만 믿었고 요리사를 택한 것도 음식을 직접 다루는 일이 그의 삶의 중요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국의 상황으로 인해 그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고 새로운 일을 맞는 상황이 된다. 모든 시골 사람들의 꿈인 아파트 일층에 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하고 온갖 종류의 나무를 심고 어느덧 12년이 흘러 울창한 동산을 이루고 새들과 마을 사람들의 놀이터가 된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일구어낸 낙원에서 다른 사람들이 양계 농부라고 조롱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활에 만족하는 듯이 보인다. 나무들과 새들과 빛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정취와 풍광의 묘사가 나른하게 이어지는 평화로운 정경이다. 계절의 흐름을 오롯이 느끼며 지난날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카키색 재킷을 입은 노인의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지나가는 겨울은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외로운 외침 소리가 들린다.

-! 싼 장작 있어요!”

영혼의 눈에는 어두운 밤만 보이고, 차가운 심연 속에서는 떠돌이 개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저 멀리 들려온다. 창가에 서면 갈라진 아스팔트 위로 노인과 당나귀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고, 난로 연통이 창문 밖으로 삐져나온 흉측한 집들이 보인다. 바람이 창문을 때리고 잠시 잠잠해지던 바람은 곧 다시 휘몰아치면서 연통에서 검댕과 연기를 앗아가 교외 지역을 뒤덮은 먹구름과 뒤섞인다. 바람에 아스팔트 위의 빈 플라스틱 병이 뒹굴고 비닐봉지가 찢길 때, 어딘가에 몸을 숨긴 흰 비둘기들이 떠오른다.’(P91)


 하지만, 겨울이 깊어가며 점점 헐벗어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가브리엘의 차분한 마음은 더욱 가라앉고 심연 속을 서성이는 느낌이다. 혼란한 나라 상황이 계속되면서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감추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어서 봄이 되어 생명의 약동과 함께 가브리엘의 동동거리며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의식흐름의 기법으로 쓰인 작품들이 어렵게 느껴졌는데 반복적으로 읽어보니 시적인 느낌이 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능직 무명으로 짠 낙원


 러시아 전쟁에서 아들 라티를 잃은 레나는 밤이면 아들의 망령을 만난다. 아들을 잃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는 없을 게다. 아들이 어릴 때 입었던 능직 무명 바지에서 다람쥐, 토끼, 야자나무를 오려내서 벽에 붙인다. 바지는 갈가리 찢어졌다. 행복하다고만 할 수는 없었겠지만 이전의 삶이 낙원이었던 것이다. 오줌 쌀 곳을 가리지 못하고 첫사랑의 남자를 보고도 기억하지 못한다. 조카 라우라가 가끔 와서 숙모를 보살펴주기도 하지만 힘에 부친다.


어때요? 레나 숙모, 거기로 갈까요?”

어디로?”

노파가 나지막이 물었다.

거기…… 멋진 집으로요. 내가 종종 들를게요. 따뜻한 음식도 가져갈게요. 거기 가면 친구를 아주 많이 만날 거예요! 그럼 나한테도 그 사람들 소개 좀 시켜줘요. 여기서는 지내기 힘들어요, 레나 숙모. 기억 때문에 괴로울 거예요. 게다가 이렇게 혼자서, ,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P150)


“(전략) 이제 그만 가봐야 해요, 레나 아줌나, 라티의 영혼에 맹세컨대, 아줌마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내가 후회하게 해 줄 테니까요! 난 이제 가요, 걱정하지 말아요……. , 제 걱정은 하지 말아요…….”(P154)


 라티의 친구 렉소는 레나를 만나는 것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죄인이나 다름없다. 맨 정신으로 레나를 마주대할 수가 없어 술에 취해 횡설수설 장광설로 늘어놓기 일쑤다. 전쟁의 비극으로 인한 상실을 누가 어떻게 몰아내 줄 것인가.


 형제


 첫사랑의 아이를 잉태한 여인이 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들 바르탄을 낳는다. 바르탄이 상속자가 될 것이기에 잔인하고 모진 성격인 남편의 온갖 모욕적인 행동을 견디어낸다. 8년 동안이나 침묵을 지키면서. 남편이 이 사실을 모르리라는 여자의 생각과 달리 남편은 바르탄이 두 살이 되었을 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비웃음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참아내면서 아들을 미워도 하고 사랑하기도 한다. 그런데 8년이 지나 자신의 핏줄 레오가 태어나면서 인물들의 운명은 극으로 치달린다. 레오가 태어나던 추운 겨울 날 바르탄은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얻어맞는다.


 자신의 피붙이라는 이유로 오냐오냐 키우면서 레오는 위아래도 못 알아보는 망나니로 자라난다. 사랑을 독차지하는 레오에 대한 시샘과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은 깊어간다. 특히 형보다 더 교활하고 뻔뻔스러운 레오의 행동과 비웃음은 레오를 두려워하게 되고 형의 지위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오직 어머니의 위로만이 인간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바르탄에게 비빌 언덕이 더 이상 없다.


 그 차갑고 잔인한 아버지가 어느 날 몸져누웠는데, 두 형제는 각각 다른 이유로 기뻐한다. 레오는 재산을 모두 물려받을 생각에, 바르탄은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 병상을 지키며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희망은 사라진다.


나는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어. 나는 더는 내가 아니니까. 내 이름도 이제는 바르탄이 아니야. 내 이름은 하나뿐. 인간이 내 이름이야. 나는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어. 하지만 내 의무와 내 양심은 어떻지? 어머니는 어떻지? 어머니는 뭐라고 하실까?’(P197~198)


이 녀석은 몸속에 피가 얼마나 많은 거야?” 바르탄은 생각했다. 그리고 의식을 잃으려는 순간, 제수를 빼앗은 게 동생에 대한 앙갚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수는 어머니를 대신했을 뿐이다.(P203)


 사랑의 결핍은 시샘을 낳았고 냉담함과 잔인함은 복수심을 키웠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몸부림은 양심과 이성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애착의 대상을 잃고 낭떠러지에 선 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가를 절절히 보여준다.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이렇게 세밀하게 그려낼 줄이야. 구람 메그렐리슈빌리의 <형제>는 이 소설집에서 몰입감 최고의 소설이며 등장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빚어진 상처와 부도덕, 증오와 복수심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낯 선 먼 나라 조지아의 문학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고 할까. 앞으로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조지아 문학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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